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04화 (204/250)

<날개를 달다 (3)>

* * *

다음 날, 서진은 다시 파출소로 향했다. 그리고 젊은 경찰은 조사한 CCTV 영상의 메모리 카드를 건넸다.

“8시 50분부터 10시까지 주변의 모든 CCTV를 확인했는데요.”

실종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의심 가는 게 있다.

“실종자가 전 남자 친구와 함께 들어간 골목, 여기가 빠져나오는 길목 중 하나거든요.”

그곳에 검정색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길목을 가로막고 서 있는 차.

골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비추지 않았지만.

“진흙으로 번호판이 가려져 있어요.”

서진은 영상을 보며 입술을 쓸었다.

의도적인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번호판이 가려져 있다. 그리고 실종자가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시간에 맞춰 시동을 건 후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 차가 이동한 곳은요?”

“추적을 했는데…….”

젊은 경찰은 도로 CCTV를 뒤지며 해당 승합차의 경로를 뒤쫓았다.

성남에서 나와 송파 IC로 진입, 외곽순환 도로를 이용해 인천으로 빠져나갔다.

“이게 끝이에요. 그다음에는 번호판이 진흙으로 가려진 승합차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비슷한 모양의 승합차가 많았다. 도심에 들어서 진흙을 지운 후 이동했다면 특정 짓기 힘들다.

“인천…….”

서진이 입술을 쓸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이 그려진다.

실종자의 울부짖음, 범죄자들의 악랄한 웃음소리.

‘하…….’

현장에 남은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범인을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서진은 그 모든 모래를 뒤집어서라도 범인을 찾을 생각이다.

“김은범에 대한 것은요?”

“아, 여기요.”

젊은 경찰이 전 남자 친구 김은범에 대한 신상을 서진에게 건넸다.

‘고등학교 때 학교 폭력으로 소년원 1년…….’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은 재수를 해서 들어갔다.

소년원을 나온 후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서진은 서류를 넘기며 어제 만났던 김은범의 모습을 떠올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았고 자동차는 억 소리가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집이 부유하지는 않아.’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 어머니는 가정주부, 살고 있는 동네 역시 평범하다.

서진이 서류를 손가락으로 툭 치며 젊은 경찰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하나 더 부탁드릴게요. 같은 시기에 소년원에 있던 놈들, 김은범과 같은 방을 사용했던 놈들 좀 찾아 주시겠어요?”

“네.”

젊은 경찰이 몸을 틀어 컴퓨터로 이동할 때, 소장이 서진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해결될 기미가 보입니까?”

소장은 이 사건이 반드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윗선에서 지시한 일, 성공만 하면 특진도 노릴 수 있는 일.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미가 안 보여도 해결해야죠. 어려워도 해야 하고요.”

그때 파출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들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서진의 시선이 문을 향해 틀어졌다.

민원인인가 싶었는데…….

“안녕하세요? 중앙지검 이석우 부장검사……. 어? 김서진?”

실종 사건 특별 팀을 맡은 검사 일곱. 가장 앞으로 그 팀의 팀장을 맡은 이석우 부장검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석우 부장검사, 실력은 없지만 손바닥을 잘 비벼 성공 라인을 탄 사람.

하지만 이 사건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검사.

서진을 본 이석우 부장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넌 여기 왜 있냐?”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반부패부에 있는 놈이 파출소를 왜 찾아?”

이석우 부장검사에게 실력과 능력이 없다 해도 이 바닥에서 십 년 이상을 굴러먹은 사람, 그는 서진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챘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서진을 향해 뚜벅, 뚜벅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거 내 밥그릇이야. 나도 좀 먹고살자.”

“……!”

“표정 봐라? 왜? 기분 나빠? 총장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려고?”

이석우 부장검사가 서진의 팔을 어루만지며 계속 말했다.

“그런데, 어쩌지? 이거 총장님 특별 지시야. 실종 사건 특별 팀.”

“…….”

“내가 팀장이고 넌 우리 팀이 아니고. 총장님과 검사장님은 새로운 팀원 없이 그대로 진행하라 지시하셨고. 무슨 말인지 알지?”

꺼지라는 말, 이석우 부장검사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김영준 총장에게 직접 선택받았다는 자신감이 눈에 보일 정도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서진의 옆을 스치며 다른 검사에게 지시했다.

“누가 서진이 배웅 좀 해라.”

그 말과 동시에 한 검사가 서진의 옆에 다가와 말했다.

“나가.”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시선을 틀어 이석우 부장검사를 바라봤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서진을 신경 쓰지 않고 소장의 앞에 서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고에 대한 것과 수사 과정에 대한 것 등등.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겠습니다.”

사건에 밥 그릇 싸움이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라 해도 검사다.

수사 인력이 많아지면 범인을 찾는 일이 수월해질 것은 분명하다.

서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선배 검사를 따라 파출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진이 떠난 파출소 안.

이석우 부장검사가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건방진 새끼.”

이석우 부장검사에게 서진은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다.

부모 잘 만나 성공한 케이스.

이석우 부장검사는 서진이 이뤄 놓은 모든 실적을 비하했다. 김영준 총장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석우 부장검사는 생각했다.

‘저 새끼는 숟가락을 빼지 않을 거야.’

서진이 탐정 놀이는 유명하다.

낮에는 현장을 돌고 밤에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은 같은 검사들이 보기에 얄미울 정도다.

그런 서진이 부장검사의 지시를 따를 것 같지 않다.

아니, 총장을 뒤에 둔 놈이기에 부장검사 따위의 지시는 따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서진 검사를 서포트한 경찰이 있나요?”

“네?”

이석우 부장검사의 느닷없는 질문에 소장이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젊은 경찰을 바라봤다.

소장과 시선을 마주친 젊은 경찰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대답했다.

“제가 서포트했습니다.”

“이제 빠지시고.”

“네?”

“빠지라고요.”

이석우 부장검사의 시선이 파출소를 살폈다. 그 시선이 멎은 곳은 구석에 앉은 경찰.

실종자의 아버지가 찾아왔을 때, “남자 친구 없어요?”라고 물어봤던 사람.

딱 봐도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염증을 느낀 표정.

이석우 부장검사가 그 앞으로 걸어가 입을 열었다.

“제가 김서진 검사를 잘 알죠.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들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직 젊다는 게 문제예요. 혈기가 왕성하죠. 무모하게 달려들어 사고를 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말인데, 경장께서 김서진 검사를 감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석우 부장검사가 메모지를 찢어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후 경장의 앞에 내려 뒀다.

서진이 범인을 찾으면 중간에 가로채면 된다. 범인을 못 찾고 어리바리 움직이면, 수사를 방해했다고 비난할 수 있다.

어떤 것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사람 좋은 얼굴로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탁드립니다.”

* * *

그리고 이석우 부장검사가 떠난 뒤, 경장은 몸을 일으켜 젊은 경찰의 앞으로 다가갔다.

“박 순경, 들었지?”

“……네?”

“김서진 검사한테 전화 오면 받지 마. 넌 이제 빠져. 그리고 다 나한테 넘겨.”

지금껏 실종 사건에 어떤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경장이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검찰에서 특별 수사팀까지 꾸려진 상황, 공적을 쌓으면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 생각한 거다.

경장이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젊은 경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젊은 경찰이 뽑아낸 소년원 명단을 보며 픽 비웃었다.

“야, 이런 거 한다고 범인 안 잡혀.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순찰이나 나가. 휴대폰은 두고 가고.”

* * *

-말씀하신 0820 차량이에요. 차는 리스고요.

서진은 커피숍에 앉아 이동영 수사관과 통화하고 있었다.

파출소에서 나오며 김은범이 타고 다니는 차량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고 이동영 수사관은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하이패스 기록은 없다는데요.

하이패스 이용 내역은 30일간 도로공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다.

하지만 놈의 기록이 없다.

하이패스를 이용하지 않았거나 고속도로를 타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놈의 차량 정보를 보면 지방에서 속도위반으로 과태료를 낸 게 몇 번 있다.

즉, 고속도로를 이용했다는 것.

‘억 대의 차를 타고 다니면서,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뭔가 더 미심쩍어진다.

‘다시 한번…….’

서진은 실종자의 마지막이 기록된 현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 전에…….’

서진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김윤환의 친구였던 장석민에게 전화를 거는 거다.

“흥신소 사업은 잘되고 있어?”

-이게 남의 집 망가뜨리는 일이네요. 불륜이 뭐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흐흐.

“부탁 하나만 하자.”

서진은 장석민에게 김은범의 사진과 주소, 차량 번호를 보낸 후 관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은범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꺼림칙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법.

서진이 모든 일을 마친 후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젊은 경찰과 만나기로 한 것이 오후 3시.

30분이 지나도록 젊은 경찰이 오지 않고 있다.

전화를 해 볼까 싶어 시선을 휴대폰으로 옮기는데 커피숍의 문이 열리며 경장이 들어왔다.

“여기 계셨네요?”

“박 순경은요?”

경장이 느끼하게 웃으며 서진의 앞에 마주 앉았다.

“우리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고 투입되고. 박 순경은 지금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그리고 이거…….”

경장이 서진의 앞에 서류를 내려뒀다.

젊은 경찰이 조사한 것, 김은범과 함께 소년원에 있던 자들.

서진이 서류를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넘겼다.

살고 있는 지역, 현재 하고 있는 일.

서진의 그 모습을 보며 경장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런 거 보면 뭐가 나오나?’

경장은 젊은 경찰에게 어제 있었던 수사 과정을 전해 들었다.

실종자의 친구와 전 남자 친구 김은범을 만난 것.

그리고 전 남자 친구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 것.

‘빤하잖아, 남녀 문제로 다투고 가출한 거지. 지금쯤 바다에서 실연 후 드라마나 찍고 있겠지.’

경장은 사건이 해결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한 해 접수되는 가출과 실종자 신고 수만 해도 어마하다.

몇 달 동안 연이어 발생한 것은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 것 같은 우연일 뿐이다.

경장은 이석우 부장검사에게 서진의 동향을 일러 준 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류를 넘겨보던 서진의 눈이 짙어졌다.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서류에 담긴 과거를 본 거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어떤 짓을 했는지, 젊은 경찰이 아니라 경장이 이곳에 나온 이유.

‘이거…….’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김영준 총장이 제멋대로 검찰력을 낭비하는 것부터 부장검사라는 놈이 밥 그릇 싸움을 하려는 것 그리고 경장의 저 태도까지.

협조해서 범인을 잡으려던 생각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장석민이다.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대며 건조하게 말했다.

“어, 말해.”

-마침 근처에 있는 애가 있어서 그쪽으로 보냈거든요. 지금 이동한다고 하는데, 쫓으라고 할까요?

서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여러 상황이 솟아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만약 김은범이 정말 범인이라면, 아니, 놈들과 한 패거리라면…….

‘패거리와 함께 실종자를 납치 후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갔을 수 있어.’

예상이 맞는다면 검찰과 경찰의 눈을 다른 곳으로 틀어진 지금에서야 실종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 장소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서진이 몸을 일으키며 경장에게 말했다.

“용의자가 경기 북부로 이동하고 있다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네?”

경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난데없이 용의자라니, 그것도 경기 북부라니.

이걸 부장검사에게 전하면 대박이다.

“아, 따라갈게요, 저는 제 차를 가지고 와서.”

“그럼, 가면서 주소 찍어 드릴게요. 일단 외곽 타고 북부로 이동하세요.”

“아, 네.”

경장이 몸을 일으킨 후 다급히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놈은 부장검사에게 연락 후 경기 북부로 향할 거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놈의 이동 경로는 아직 모른다.

고생 없이 밥상에 앉으려는 놈들과 함께할 수는 없다.

서진은 부장검사와 경장에게 빅엿을 날릴 생각을 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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