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03화 (203/250)

<날개를 달다 (2)>

* * *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

점심시간을 이용해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백기호 의원이 젓가락으로 나물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윤환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백기호 의원의 눈동자가 날카롭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그 눈빛을 흘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끄집어 낼 거니까요.”

“사실 저는 결혼이 어찌 되든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김 총장이 나를 믿으려면 혼사가 필요하니…… 마음이 급하네요.”

“윤환이가 안 된다면 그다음도 있습니다.”

“……다음?”

“꼭 직접적인 사돈이 될 필요는 없죠. 간접적인 관계라는 것도 있잖아요?”

백기호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김영준 총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거다.

간접적인 사돈, 김영준 총장의 형 김준만을 일컫는 거다.

‘그 아들, 김서진.’

백기호 의원은 김윤환이 아니라 서진이 이소희의 남편이 된다면 자신의 인생에 훨씬 이득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마음을 숨긴 채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보좌관에게 전달받은 내용이 있어요. 일주일에 한 명씩 벌써 아홉 명. 여대생 실종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글쎄요. 보고서를 읽어 봤는데, 아직 특별한 게 없어요.”

여대생 실종 사건, 인터넷에서는 도시 괴담처럼 알려지는 중이다.

장기 매매가 되었다느니, 변태 같은 사이코패스가 여자를 잡아가 사육한다느니, 어느 섬으로 팔려 가 성매매를 한다느니.

거기에 근거 없는 목격담도 퍼지고 있다.

-어제 여자 납치되는 것 봤다.

편의점 알바 끝나고 골목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데, 예쁜 여자가 지나감. 그래서 쭉 보고 있는데, 검은색 승합차가 오더니 갑자기 문을 열고 여자 머리 잡아 태우고 떠남. 그게 끝임. 경찰에 신고했는데, 찾기 힘들 듯.

ㄴ진짜야?

ㄴ세상 무섭네. ㄷㄷㄷ

ㄴ일찍 다녀야겠다.

하지만 수사 기관의 판단은 조금 다르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 범죄자도 낯선 곳에서는 몸을 사린다. 그런데, 범인이 홍길동도 아니고 전국을 돌며 흔적 없이 여자를 납치하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실종자들이 SNS와 인터넷에 올린 게시 글을 분석해 보면 부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분노, 가출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경찰 측에서는 단순 가출 정도로 판단하는 것 같아요.”

“단순 가출?”

“네.”

김영준 총장의 말에 백기호 의원이 시뻘건 육회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총장, 이 판을 키워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백기호 의원에게 닿았다.

백기호 의원이 끌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림이 꽤 좋아요. 한창 예쁠 때의 여대생, 실종, 살인, 강간, 장기매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안타깝게 느낄 스토리죠. 감성을 건드릴 수 있어요. 그 감성을 분노로 만드는 겁니다. 사회가 불안하면 여당의 지지율은 꺾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지지율은 고스란히 제게 몰릴 겁니다.”

백기호 의원이 티슈를 들어 입술을 슥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 나라의 치안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안하다고 여겨요.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히틀러는 말했다.

-나는 천국을 지옥이라고 믿게 할 수 있으며, 반대로 지옥과 같은 비참한 생활도 천국이라 믿게 할 수 있다.

그 말을 떠올리며 백기호 의원이 계속 말했다.

“우리도 똑같이 하는 겁니다. 대중에게 우리나라를 지옥처럼 믿게 하는 겁니다. 진실이 없는 허구, 하지만 거짓은 진실을 이기는 법이죠. 언제나처럼, 똑같이.”

백기호 의원이 티슈를 테이블 위에 툭 던지며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가 소름 끼치게 보인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의 무능이 알려지겠네요.”

“사람들은 강한 자에게 지배받기를 원하죠.”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서진이 이 사건을 쑤시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 *

그 시각.

서진은 젊은 경찰과 함께 성남의 한 골목에 도착해 있었다.

“저 집에 자취하는 친구가 있어서, 저기서 과제를 했거든요.”

연락을 받고 나온 실종자의 친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0시가 통금이라고 하면서 9시쯤 먼저 일어났어요. 게네 아빠가 무섭거든요.”

서진은 친구의 말을 들으며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실종자의 집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그것도 버스와 지하철이 바로 왔을 때 걸리는 시간이다.

‘10시가 통금, 마음이 조급했을 거야.’

친구는 실종자의 아버지가 가부장적이라 말했다. 실종자가 통금 시간을 어기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

‘달렸겠지, 버스 정류장까지.’

서진은 실종자의 친구를 보낸 후 통신사의 위치 추적이 끊긴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제를 한 곳에서 300m 떨어진 곳.

“이 지역 CCTV 전부 확인할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블랙박스…….”

경찰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CCTV 영상에 대한 협조 요청을 하고 있을 때, 서진은 실종자의 마지막 흔적이 기록된 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복잡하게 주차된 자동차가 보인다.

서진은 각 자동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차량은 방전을 걱정하며 블랙박스 전원을 종료시켜 뒀다.

하지만 서진은 단 하나의 차량이라도 찾기 위해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찾았다.

B사의 외제 차, 출고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새 차 냄새가 물씬 나는 것.

서진은 곧장 휴대폰을 들고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가 중천인데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확인할 게 있는데요.”

경찰이라는 말에 차주는 놀란 목소리로 곧 내려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서진이 휴대폰을 품에 넣자 젊은 경찰이 옆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검사님, 아까 파출소에서요.”

“네? 어떤?”

“그…… 우리 소장님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

소장은 말했었다.

-됐다고! 이런 일로 찾아온 사람 일일이 대응하지 마.

젊은 경찰은 서진이 그 말을 잡고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젊은 경찰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충을 이해하니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젊은 경찰이 멋쩍게 웃을 때, 차주가 부스스한 머리로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이라고요?”

서진이 차주의 앞으로 다가가 신분증을 내보였다.

남자의 눈이 커진다.

“거, 검찰?”

“이곳에서 실종 신고가 들어왔는데, 확인할 게 몇 가지 있어서요. 혹시 주차를 언제부터 해 뒀죠?”

“어제…… 밤 7시? 그쯤부터 세워 뒀어요.”

실종자가 친구들과 헤어진 게 9시.

7시부터 주차를 해 뒀다면 이 차의 블랙박스는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죄송하지만 블랙박스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차주는 흔쾌히 메모리 카드를 뽑아 서진에게 건넸다.

서진이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메모리 카드를 삽입했고 영상을 8시 50분으로 돌렸다.

영상이 흐른다.

실종자의 모습, 그 뒤를 쫓아오는 남자.

실종자의 팔을 낚아채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찾은 것 같죠?”

젊은 경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서진은 대답하지 않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영상에 집중했다.

‘면식범이야.’

실종자의 반응을 보면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다.

오히려 기분 나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메모리 카드 저희가 가져갈 수 있을까요?”

“네?”

서진의 말에 차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건네진 오만 원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서진은 다시 언덕을 올라갔다.

다시 실종자의 친구를 불러냈고 영상을 보여 줬다.

“아는 사람이죠?”

물끄러미 영상을 보던 친구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은범이에요.”

“은범이?”

“시언이의 전 남자 친구요.”

시언이는 실종자의 이름, 은범이란 사람은 전 남자 친구.

“어제 같이 과제를 했고 시언이가 집에 간다고 했을 때 쫓아 나간 것은 봤는데, 얘는 곧 돌아왔거든요.”

“곧이라면?”

“십 분? 이십 분? 그 정도 걸린 것 같은데요.”

“이 사람이 실종자를 쫓아 나간 이유는요?”

“다시 사귀자고 졸랐을걸요, 얘가 시언이를 잊지 못해서.”

서진이 영상을 뒤로 슥슥 넘겼다.

은범이란 놈이 골목에서 나오는 게 보인다.

물론 실종자는 없다. 홀로 나오고 있다.

“불러 주세요.”

서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블랙박스로 흔적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사람.

뭔가 꼬여 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 * *

“김은범입니다.”

오후 5시.

뿔테 안경을 쓴 앳된 얼굴의 김은범이 서진과 경찰의 앞에 섰다.

전 여자 친구의 실종 이야기에 김은범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다.

영상을 본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이건 제가 맞아요.”

“쫓아간 이유는?”

“다시 사귀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자리에서 휴대폰 신호가 끊겼는데, 예상되는 거 있나요?”

“죄, 죄송해요.”

김은범은 난데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서진이 눈을 찌푸리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 시언이가 싫다고 해서, 전화로 친구들을 부른다고 해서 제가 휴대폰을 빼앗아 집어 던졌어요.”

“휴대폰이 파손된 흔적은 없던데요?”

“액정만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부서졌나 봐요.”

김은범이 ‘아…….’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휘청거렸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시, 시언이 죽었나요? 어떡하죠? 네?”

경찰이 김은범의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을 겁니다.”

경찰은 김은범이 받은 충격을 예상했다.

경찰과 함께 검사까지 현장에 온 것, 일반인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진은 김은범의 심정을 뒤로했다.

실종자의 지인,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은 입바른 말이 아니다.

범인을 잡아 무릎을 꿇리고 그 진실을 보여 주는 거다.

“대학생이라고 했죠?”

“아, 네.”

김은범이 대답했다.

이제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나이.

그런데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1억을 훌쩍 넘는다.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진은 건조하게 말한 후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경찰이 쫓으며 빠르게 말했다.

“CCTV 확인해서 실종자 이동 경로 확보할게요. 저 골목 주변부터 확인하고…….”

“김은범도 조사해 주세요.”

“네? 김은범요? 골목에서 혼자 나왔다고 해도 빠져나가는 길이 저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요? 실종자가 다른 곳으로 나갔을 수도 있고…….”

경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은범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게다가 보였던 표정과 반응은 용의자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서진은 그런 김은범을 조사하라 말하고 있다.

서진이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서진의 눈동자가 아직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김은범을 담는다.

“그래도 확인해야죠.”

서진은 김은범의 표정을 봤다.

현장에 온 검찰과 경찰을 앞에 두고 안심하는 표정.

떨리는 목소리는 연기.

“뭔가 숨기고 있어요.”

* * *

중앙지검.

사무실로 돌아온 서진에게 이동영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여대생 실종 있잖아요?”

“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에게도 전하지 않고 실종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비밀로 하려던 것은 아니고 일이 바빠 전하지 못한 것.

그런데 이동영 수사관이 먼저 그 말을 꺼내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종 사건은 왜요?”

“대검에서 우리 지검에 특별 수사팀을 만들라고 지시가 떨어졌어요.”

뭔가 이상했다.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 중 하나.

이 사건을 내버려 둘수록 백기호 의원에게 유리하다.

‘그런데, 특별 수사팀?’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이 내민 특별 수사팀의 명단을 손에 들었다.

“……!”

서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별 수사팀에 소속된 자들, 그들은 전부 배부른 돼지.

실력은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는 놈들.

가만히 앉아 로펌에서 부르기만 기다리는 자들.

이런 놈들은 백 명이 있어도 범인을 잡지 못한다. 아니, 잡지 않는다.

이런 놈들로 수사 팀을 구성했다는 것은…….

‘하!’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김영준 총장의 생각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검찰, 치안의 불안정을 공론화시키며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기 위한 것.

‘이런 게 검찰 총장이라고…….’

서진이 손에 쥔 종이를 구겼다.

그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서 김영준 총장의 얼굴에 집어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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