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95화 (195/250)

<허세 (1)>

도깨비 같은 얼굴.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

그 모든 게 장지혁 검사의 눈빛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내리라고 한 말 안 들리나?”

장지혁 검사가 빠루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차량의 창문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열어. 부숴버리기 전에.”

장지혁 검사의 눈빛은 진심이다.

차를 부숴서라도 두 사람을 끄집어내려 한다.

운전기사가 다급히 여자를 바라봤다.

“사, 사장님...”

운전기사의 눈빛은 간절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를 내려달라는 것.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잠깐만...”

여자는 고민했다.

그녀는 마약 밀수의 주범, 검찰의 손에 잡히면 인생은 끝이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자는 도주의 계획을 세우려 했지만 장지혁 검사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빠루의 세기가 점점 강해진다.

“셋 시간 준다. 하나, 둘...”

여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도주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른 침을 삼키며 창문을 열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입술을 움직였다.

“...왜 그러시죠?”

“몰라서 묻나?”

“무슨 일이 있나요?”

“미치겠네... 끝까지 모른 척?”

“제 남편이 오늘 여기서 낚시를 한다고 해서요. 그래서 온 것인데...”

여자는 생각했다.

자신의 성별은 여자.

험난한 마약 밀수의 현장에 여자가 나타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검찰도 경찰도 그렇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

즉, 낚시를 핑계로 적당히 속여 넘길 수도 있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의 옆에 선 수사관, 그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중이다.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

“아, 남편이 가져 오라는 낚시 도구도 있어요. 트렁크에... 보여드릴까요?”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겁을 먹은 척, 긴장한 척,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선량한 눈빛.

그러자 수사관이 장지혁 검사를 보며 말했다.

“트렁크, 확인해 볼까요?”

그 말과 동시에 여자는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됐어.’

일단 속였다.

이제 제부도에 들어가서 적당히 숨어 있다가 검찰과 경찰이 철수한 후 몸을 드러내면 된다.

100kg에 달하는 마약을 빼앗기는 것은 아깝지만 돈이야 다시 벌면 되는 거다.

세상에 마약을 원하는 고객은 많고 원금 회복은 금방이다.

“그럼, 확인해 보겠습니다.”

수사관이 몸을 틀어 차량의 뒤편으로 이동할 때였다.

여자는 긴장된 한숨을 내뱉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트렁크에는 정말 낚시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수사관은 여자의 결백을 인정해 줄 거다.

여자는 그렇게 예상했다.

그런데.

“셋.”

장지혁 검사가 낮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며 차량의 내부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어?’ 하는 순간 장지혁 검사의 손은 거침없이 잠긴 차량의 문을 열고 있다.

“내려.”

“왜 그러시냐고요!”

여자가 발악하듯 소리쳤고 수사관들도 장지혁 검사를 말리려 했다.

“검사님!”

“이러시면 안 돼요!”

만약 여자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래서 민원이라도 들어가면 그것은 큰 문제다.

차라리 범인을 놓친 후 욕을 처먹는 게 덜 골치 아픈 일.

“트렁크에 낚시 가방도 있어요!”

“그만하세요!”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여자의 머리를 잡아챘다.

“악!”

여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를 때, 장지혁 검사가 무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한다.”

“놔! 놔!”

여자가 머리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나오며 악을 내질렀다.

수사관들은 여전히 장지혁 검사를 말렸다.

“검사님!”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뒷일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 여자 수사관들을 불러주세요.”

검사의 입에서 책임진다는 말이 나왔다.

수사관들은 더 머뭇거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바삐 움직였다.

여성 수사관이 여자를 구속했고 운전기사와 택배 기사로 위장한 조직원 등의 손에도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여자가 두목이라는 게 내뱉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다 저 여자가 시킨 거예요!”

“우리는 잘 못이 없어요! 돈을 준다고 해서 따라왔을 뿐이라고요!”

“전 정말 운전만 했어요.”

이들에게 의리란 없다.

마약을 준다고 하면, 돈을 준다고 하면 형제자매도 팔아먹을 놈들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된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장지혁 검사는 철썩 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밤바다와 파도 소리, 시원한 바람은 담배를 피우기에 최적이라 생각하며 불을 붙였다.

그렇게 뿌연 연기를 내뱉고 있을 때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중년의 수사관이 옆에 다가와 물었다.

“뭘요?”

“저 여자가 마약 밀수범이라는 거요.”

“아...”

장지혁 검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서진 검사가 말해줬거든요.”

“...김서진 검사요?”

“네, 그놈이 신통방통한 놈이라.”

중년의 수사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작전에 서진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범인을 알았지?’

수사관은 궁금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배오네요. 준비하죠.”

마약을 실은 배가 어선으로 위장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

-경기도의 한 항구를 통해 마약을 밀수하려던 일당이 검거되었습니다. 중앙지검 장지혁 검사는 한국의 마약왕이라 불리는 A씨와 공범 24명을...

헤드라이트가 길게 이어지며 중앙지검으로 검찰 승합차가 연이어 들어왔다.

차량이 향하는 곳은 건물 앞.

문이 드르륵 열리며 수사관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

잡힌 범죄자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얼굴 좀 들어봐요!”

“누구야? 누가 마약왕이야?”

“야!”

기자들이 요청했지만 놈들도 창피한 것을 알고 있는지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로 장지혁 검사의 차량이 멈춰 섰다.

기자들의 다음 타깃은 장지혁 검사다.

“마약 밀수 현장을 급습하셨는데요.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마약왕이라 불리던 여성도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이 마약도 유흥업소 종사자를 통해 유통되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검사님!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장지혁 검사는 눈을 깜빡였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기자를 앞에 두는 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표정을 감추며 뚜벅, 뚜벅 걸었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말없이 스쳐 지나려 했지만 옷깃을 잡고 늘어지는 기자들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장지혁 검사는 결국 시선을 틀어 입을 열었다.

“자세한 것은 브리핑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기자들은 더 악바리처럼 달려든다.

그것도 정말 쓸데없는 질문으로.

“마약 일당 두목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얼굴은 예쁘게 생겼습니까?”

*잠시 후, 사무실에 들어온 장지혁 검사가 넥타이를 풀어내며 숨을 내돌렸다.

“씨발, 범인 잡는 것 보다 기자 상대하는 게 더 어렵네. 범인 얼굴 생긴 게 무슨 상관이야?”

“고생하셨어요.”

툴툴 거리고 있을 때, 들려온 목소리는 서진이었다.

서진이 장지혁 검사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커피숍에서 산 커피를 탁 내려뒀다.

물끄러미 커피를 바라본 장지혁 검사가 슬쩍 웃었다.

“새끼, 일 하고 오니까 비싼 거 사주는 구나? 그런데, 퇴근 안 했어?”

새벽 2시다.

사건과 연관 없는 서진은 진작 퇴근했어야 할 시간.

“고생하시는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퇴근해요.”

“뭐, 어쨌든 잘 마실 게.”

장지혁 검사가 끌끌 웃으며 커피를 입에 댔다.

역시 범인의 얼굴을 본 후 마시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다.

“살면서 저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 두고 카메라 마사지 받는 게 처음이거든? 이래서 잘난 놈들이랑 놀아야 한다고 했나 봐.”

농담처럼 내뱉었지만 서진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거다.

실적을 넘겨 준 것.

놈들의 밀수 장소가 바뀐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알려 준 것.

서진이 아니었다면 오늘 밤에 소탕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장소 바뀐 거.”

장지혁 검사가 커피를 내려두며 물었다.

물론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알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

“구영진의 표정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닦달했더니 술술 자백했어요.”

“지금은 구치소에 있고?”

“네.”

“미친 새끼.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으면, 자유라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사건을 해결하고 온 회포는 여기까지였다.

이제 일을 해야 한다.

장지혁 검사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휴대폰은 총 6개.

모두 그 여자의 것.

“이게 필요하다고 했지?”

“네.”

“일단 취조실에 박아 뒀으니까 가서 확인해 봐.”

“감사합니다.”

휴대폰을 챙기는 서진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취조실을 찾았다.

앉아 있는 사람은 마약 조직의 두목, 이름은 최선혜.

잡혀온 사람 취고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다.

아니, 자신감 넘친다는 말이 오히려 어울린다.

서진이 그 앞에 의자를 끌어 앉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다.”

최선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웃는 눈으로 서진을 바라볼 뿐이다.

서진은 그녀의 눈빛을 상관하지 않고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려 녹음 기능을 꺼버렸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는 숨겨야 한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장지혁 검사에게 받아 온 휴대폰 6개를 늘어놨다.

“네 거 맞지?”

“......”

“손가락 내놔.”

휴대폰은 지문으로 잠겨 있다.

그래서 최선혜의 지문을 요구했는데, 그녀는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혹시, 판도라의 상자라고 알아요?”

“뭐?”

서진이 시선을 들어 최선혜를 바라봤다.

최선혜가 정말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빙긋이 웃고 있다.

서진이 정말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판도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 본 판도라. 똑같아요. 그 휴대폰을 열면 불행해질 거예요.”

“재밌네.”

“내 휴대폰에는 고객 명단이 들어 있죠. 연락처, SNS... 그런데, 그거 건들면 안 돼요. 그쪽이 검찰총장의 조카라 해도, 아니 검찰총장이라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거니까요.”

서진이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두며 최선혜를 바라봤다.

앞으로 또 어떤 말을 지껄일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계속 말해 봐.”

그런데, 최선혜는 그 모습을 보며 서진이 겁을 낸다고 생각했다.

붉은 입술로 재수 없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상자를 연 판도라는 재앙을 초래한 여자라 일컬어졌지만 그 휴대폰을 확인한 검사님은 어떻게 불리게 될까? 분명한 것은 다칠 거예요. 그 안에 있는 이름, 모두 괴물이거든요.”

“......”

“국회의원, 재벌, 그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 궁금하죠? 그 사람들, 자기 자식은 끔찍하게 아끼죠. 남의 자식이 고생하든 말든, 죽든 말든, 내 자식만 행복하면 된다. 그게 그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

“그러니까, 확인할 생각하지 말고 나 혼자 잡아넣어요. 어차피 못 잡잖아요?”

서진의 어이없게 웃으며 최선혜를 바라봤다.

“다친다?”

“네. 어쩌면 그 이상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어요. 죽을 수도 있고.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만수무강해야죠.”

“고맙네. 내 건강도 생각해 주고. 그런데...”

서진이 최선혜를 향해 상체를 굽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허세 부리지 마. 난 너같이 범죄를 저지른 새끼가 거물인 척 하는 게 정말 역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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