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과거는 (6)>
악마의 정체는 서진.
서진이 다가설수록 놈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바쁜 일 있냐고 물었는데.”
남자가 품에 손을 넣더니 다급히 칼을 꺼냈다.
날 길이 11cm의 폴딩 나이프.
남자가 입을 죽 찢어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비켜.”
하지만 서진은 물러서지 않는다.
물끄러미 놈의 손에 들린 나이프를 바라볼 뿐이다.
“지금 집어넣으면, 그건 봐줄게. 하지만 계속 들고 설치면 가중처벌 될 거야.”
“……뭐?”
남자는 조금 당황했다.
날고뛰는 형사들도 칼을 보면 경계한다.
그런데 곱상하게 생긴 서진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처음과 똑같이 여유로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중이다.
“씨발, 비키라고 했어!”
순간, 옆에서 들려온 험악한 목소리.
“어떤 미친 새끼가, 이 분이 누군 줄 알고 날붙이를 들이대고 있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흔들리는 가로등의 불빛에 비춰진 그들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딱 봐도 깡패.
남자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려 왔다.
“비, 비키라고…….”
그러면서 남자는 힐끗 뒤를 바라봤다.
여차하면 몸을 틀어 도망칠 생각.
하지만 앞에도 뒤에도 맹수가 우글거린다.
그들이 살벌한 눈빛으로 남자를 쏘아보고 있다.
“칼 내려놔. 그건 없던 일로 해 줄 테니까.”
서진은 분명 부드럽게 말했지만 남자의 귀에는 ‘칼을 내려 두면 목숨은 살려 줄게.’로 들려왔다.
결국, 남자는 손에 힘이 빠졌다.
칼이 땅으로 떨어졌고 남자는 양손을 들어 항복의 표시를 보였다.
더 까불어 봤자 안 된다는 것을 느낀 거다.
서진이 수갑을 들고 남자의 손목에 채웠다.
남자는 순순히 체포에 응했고 담벼락의 쇠뭉치에 수갑을 걸어 두며 상황을 종료했다.
“고생했어.”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에 나타났던 덩치들이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덩치들은 장석민의 부하다.
약쟁이를 체포하는 일은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것, 혹시나 해서 배치했는데 꽤 괜찮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
덩치들이 사라지고 수갑에 묶여 있던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알아서 뭐 하게?”
남자는 눈을 깜빡였다.
처음 봤을 때, 놈은 서진을 형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진의 외모는 거친 형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잘생겼다.
물끄러미 서진의 얼굴을 살피던 남자가 순간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야 서진의 얼굴을 알아본 거다.
“기, 김서진?”
“김서진은 반말이고.”
서진이 남자의 앞으로 다가가 놈의 품을 뒤적였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남자의 입에 물린 후 불을 붙여 줬다.
“피워.”
남자는 인생의 마지막 담배를 피워 대듯 힘껏 빨아들였다.
어쩌면 마지막 담배가 될 수도 있는 순간.
남자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흐를 때, 서진이 물었다.
“배달 전문이지?”
“…….”
“뭐, 대답 안 해도 돼.”
서진은 다시 놈의 품을 뒤적였다. 꺼낸 것은 휴대폰.
“비밀번호.”
“…….”
“묵비권 행사해도 좋은데, 뒷감당도 생각해야지. 난 너 따위 잡범은 필요 없고 실적이 중요하거든. 네가 대답하지 않으면, 난 너를 마약의 거두로 포장해서 보고할 거야.”
“……!”
“왜 그렇게 봐? 못할 것 같아? 내 이름 알면, 나에 대해 알지 않나? 우리 작은아버지가 검찰총장이란 거. 그 정도 조작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원래 검찰이라는 게 있는 죄를 찾는 조직이 아니야. 없는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우는 거지. 그러니까, 억울해하지 마라.”
남자는 턱에 힘을 꽉 줬다.
하지만 마음속은 갈등하고 있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
‘검사라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
‘고작 배달꾼인데, 어떻게 마약의 거두로 포장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
하지만 남자는 영화를 많이 봤고 대한민국 사법 체계가 멋대로 흐른다고 믿었다.
게다가 쐐기를 박은 것은 서진에게 걸려 온 전화다.
장지혁 검사가 말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배달꾼이었어. 이놈 잡았고 쑤셔보면 나불댈 거야.
“저도 잡았습니다.”
-어?
“이놈이 그쪽 대장이라네요.”
-갈게!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며 다시 남자에게 시선을 틀었다.
“계속 묵비권 이어 갔으면 좋겠네.”
“저, 저기요…….”
“이제 네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으로 처리될 거야. 재판에서는 반성이 없다고 판결 날 거고.”
“거, 검사님?”
“아르바이트생은 조금만 회유하면 네가 모든 걸 지시했다고 증언할걸. 알잖아? 너희 같은 뽕쟁이들은 형제, 자매도 없는 거.”
“그게 아니라…….”
“그리고 네가 거래하던 약쟁이들 있지? 그 애들은 돈이 많아. 끈도 많고. 걔들 역시 너를 지목하며 풀려날 거야.”
남자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앞으로 펼쳐질 하루가 참담하게 보이고 있었다.
서진은 시시각각 변하는 남자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날붙이 들고 설쳤던 것 봐준다고 했지? 취소.”
“검사님!”
“10년. 딱 10년만 살고 나와라. 그때는 나도 부장 달고 있을 테니까, 국밥 한 그릇 사 줄게.”
“102517.”
“응?”
“휴대폰 비밀번호요! 102517이라고요!”
서진이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풀고 내용을 확인했다.
놈보다 조금 윗선에 있는 연락책과 보낸 메시지.
별것 없다.
장소 그리고 접선 장소.
하지만 윗선과 나눈 친근한 대화를 보면, 마냥 말단은 아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공급책과 닿을 정도의 위치.
이용할 수 있는 놈.
서진은 끌끌끌 웃었다.
김윤환의 구속까지 한 발 다가섰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다.
“야, 비밀번호 말한 김에 야당도 한번 해라.”
야당, 마약 사건 정보 브로커를 지칭하는 말.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마약 판매상을 수사기관의 정보력만으로 잡아내기는 힘들다.
게다가 이들은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해 수사에 혼선을 줄 정도로 치밀한 조직.
놈들을 부숴 버리기 위해서는 브로커가 필요하다.
“공급책 정보 넘기면 집행유예. 어때?”
서진이 다시 놈의 입에 담배를 물렸다.
남자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흐릿하게 흘렀다. 그러다가 잠시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행유예요?”
“어.”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장지혁 검사가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놈이 대장이야?”
“대장인 줄 알았는데, 야당을 하겠다네요?”
“야당?”
장지혁 검사가 남자의 얼굴을 살필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약은 다시 넣어 두는 게 어떨까요?”
“어?”
아르바이트생과 이 남자가 잡히고 고객까지 잃는다면, 공급책의 귀에도 검찰의 수사 소식이 들어갈 거다.
더 은밀한 곳으로 숨을 테고, 영영 놈의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다.
지금은 한발 물러설 때다.
장지혁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전을 통해 상황을 알렸다.
“아르바이트생은 취객 폭행으로 체포하는 것으로 하고요. 약은 다시 변기 수조에 넣어 두죠.”
무전을 마친 장지혁 검사의 시선이 남자에게 향했다.
“이름은?”
“구영진이요.”
남자의 이름은 구영진.
구영진은 이미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다.
순순히 대답하며 야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고 있었다.
“서열은?”
“말단이죠.”
“공급책하고 해외를 오가는 지게꾼만 알아 와. 물건이 들어오는 시기까지 찾아내면 더 좋고.”
지게꾼, 마약 운반책을 일컫는 말.
장지혁 검사가 노리는 것은 해외를 오가며 마약을 몰래 들여오는 자들.
“어떻게든 알아 와. 목숨 걸고 정보를 빼내. 그래야 네가 살아.”
장지혁 검사의 무거운 목소리에 구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진이 놈의 수갑을 풀어 주며 입을 열었다.
“연락은 항상 이 대포폰으로. 위치 추적되고 있으니까, 1시간에 한 번씩 메시지 보내서 생사 신호 보내. 메시지 끊어지는 순간 주변 CCTV, 블랙박스 다 뒤져서 30분 내로 널 찾아낼 자신 있으니까 도망칠 생각은 말고.”
“네.”
구영진은 손에 쥔 휴대폰을 보며 대답했다.
서진이 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하나만 생각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순간, 넌 자유야.”
***
며칠 후, 서진의 집.
서진의 가족은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물론 김영준 총장의 가족도 함께.
김윤환의 입사 축하라는 명목으로.
김유미는 병원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빠졌다.
이놈의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언제나 불편하다.
다른 사람은 침묵하고 있지만, 아버지와 김영준 총장은 정말 즐거운 듯 대화를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시커먼 속내를 안다.
재정건설 역시 자신의 야망의 도구.
김윤환을 통해 빼앗으려는 수작.
그 속을 게워 냈을 때, 얼마나 역겨울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큰아버지 말 잘 듣고 있는 거지?”
“그럼요. 착실히 하고 있어요.”
김영준 총장이 김윤환에게 질문을 던졌고 김윤환은 시원하게 답했다.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틀어졌다.
“고마워, 형.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회사에 가족 들이는 게…….”
“임원, 아니 본부장이나 부장도 아니고 과장인데, 그게 뭐가 어려운 결정이었을까요? 별 볼 일 없는 스펙도 아니고 검사 출신인데, 누가 뭐라 한다고.”
작은어머니가 김영준 총장의 말을 끊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쏘았다.
김영준 총장이 화를 억누르며 작은어머니를 향했다.
하지만 작은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다.
오히려 와인 잔을 들며 퉁명스럽게 말을 잇는다.
“그렇다고요.”
“제수씨, 미안해요. 직원들 눈치가 보여서 오래 고민했어요.”
아버지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사과하자 작은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앞으로 잘해 주세요.”
“그럼요. 일도 잘하고 있으니까, 주변 사원들한테 인정만 받으면…….”
서진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물끄러미 작은어머니를 바라봤다.
작은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렇게 원하던 재정건설에 김윤환이 들어갔지만 이소희와의 혼사가 마음에 걸린 거다.
김영준 총장이 이 자리에서 김윤환의 결혼 발표를 할까 싶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런 작은어머니를 보며 서진은 다짐했다.
‘제가 꼭 파혼하게 만들어 줄게요.’
파혼 뒤에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구속 그리고 친아버지 찾기.
하지만 일단 작은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파혼.
그걸 이뤄 주는 게 조카의 도리.
서진은 ‘난 좋은 사람이야.’라고 장난스럽게 생각하며 혼자 풉 하고 웃었다.
“왜? 좋은 일 있어?”
서진의 웃음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물었다.
서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뇨, 그냥 갑자기 재밌는 일이 생각나서요.”
“재밌는 일이면 같이 듣자.”
“사건에 대한 거라, 들으셔도 재미없을 거예요.”
식사를 마친 후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부터는 어른들의 대화가 이어질 시간.
자식들은 뒤로 물러나는 게 예의다.
서진과 진영은 각자의 방으로 이동했고 김윤환이 서진의 뒤를 쫓았다.
김윤환이 방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변한 게 없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철야라 잠자는 용도로 쓰는 방이잖아.”
“하긴, 나도 철야 많이 했지.”
김윤환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까 왜 웃은 거야? 어떤 사건인데? 같이 웃자. 오랜만에 사건 들으면서 추억도 되살리고 싶네.”
“아…… 그거?”
서진이 의자를 빼내 앉으며 슬쩍 웃었다.
김윤환은 김영준 총장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서진의 가설.
한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정말 별일 아니고. 맞다.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아는 사람이 있는데,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거든? ‘우리 아버지는 나와 정말 다른 것 같아.’라고. 그런데 얼마 전에 친자 검사를 했어. 유전자 검사 결과는 불일치로 나왔고.”
“…….”
“어머니가 결혼 전에 만나던 다른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친아버지인 것 같대.”
서진이 잠시 말을 멈춘 후 김윤환을 향해 상체를 구부렸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