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과거는 (5)>
* * *
강남의 한 커피숍.
그곳에 이중호가 앉아 있었다.
이중호는 권력자의 자제가 모여 만든 모임에서 연락책을 자처하던 놈.
장관의 아들이며 서진에게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다.
“아버지가 재정건설의 대표고 작은아버지는 검사장인데, 왜 노력을 해요? 혹시? 대학이랑 로스쿨 들어갈 때, 백 썼어요? 에이, 부끄러운 거 아니에요. 여기 다 그래요.”
그 이중호가 난처한 얼굴로 스트로를 입에 대며 단번에 마실 것처럼 커피를 흡입했다.
“천천히 마셔. 체하겠다.”
맞은편에 앉은 것은 서진이다.
서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중호는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원래 원 샷 하는 것을 좋아해서요.”
이중호에게 서진은 신마그룹의 막내아들을 잡아넣은 강자.
부모님들의 비리와 자신의 비리를 손에 들고 옭아맨 악마.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우리 이렇게 얼굴 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지?”
“그러네요.”
이중호는 평생 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부탁 하나 하고 싶어서 불렀어. 애들 소집 좀 해 봐.”
“……네?”
“그리고 주변에 약쟁이가 있는지 알아봐.”
“……!”
김윤환이 손에 얻은 마약, 그것은 ‘있는 집 자식’들이 암암리에 구매한다는 것.
그리고 이중호와 만나는 놈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큼의 ‘있는 집 자식’들.
그들은 김윤환이 얻은 마약의 루트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중호는 서진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질 낮은 마약을 찾기 위해 모임을 소집하는 게 아니다.
“들은 소문이 있어요.”
커피를 입에 대던 서진의 시선이 이중호에게 틀어졌다.
어서 말해 보라는 눈빛에 이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도 높은 마약이 유학생을 중심으로 퍼지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이것 때문에 부른 것 맞죠?”
부모 잘 만난 놈들, 인생의 모든 것이 시시하기 때문에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자들, 그들이 손에 대는 마약.
이중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 눈빛에 사건을 수월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스몄다.
이 사건이 풀어지면 김윤환의 계획을 사전에 부숴 버리고 오히려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
김윤환 구속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도 크다.
“계속 말해 봐.”
“SNS를 통해 구매자들과 연락을 하고요.”
“접선 방법은?”
“던지기요.”
던지기, 직접 마주하지 않고 약속된 장소에 마약을 놓아둔 후 찾아가게 하는 수법.
“그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김윤환은 장석민을 향해 절대 구할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SNS를 통해 연락이 오간다면, 아이디 확보만으로 거래가 가능하다는 뜻.
하지만 이중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소개가 있어야 해요. 흔히 하던 마약 거래가 업소 직원을 통해 손님이 받는 구조였잖아요? 그런데 검사님이 몇 곳을 쑤셨고 심지어 종로경찰서장까지 집어넣으면서 경찰들이 이를 악물고 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더 음지로 숨었다?”
“네.”
지금도 업소 직원과 손님의 거래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질이 떨어지는 것.
더한 쾌락을 원하는 자들은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어떤 놈이 그 틈새시장을 찾아 사업을 시작했고 법망에 걸리지 않는 부유층, 그것도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 고객으로 삼았어요. 사업 확장은 소개로만 이뤄지고요.”
“뭐야, 신분을 드러내놓고 약을 처받는다는 거야?”
“약쟁이잖아요. 약이 중요하지 뭐가 무섭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웬만한 검사는 안 무서워하잖아요.”
이들은 일개 검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서진의 뒤에 재정건설과 김영준 총장이 없었다면, 서진 역시 우습게 생각했을 거다.
서진이 물끄러미 이중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잘 아네? 꼭 해 본 것처럼.”
“봤거든요. 듣기도 했고요.”
“누구한테?”
이중호가 서진을 향해 상체를 굽혔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맨입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잖아요?”
“네 연락처, 네 아버지, 네가 저질러 온 쓰레기 같은 짓, 지워 줄게. 됐나?”
이중호의 아버지가 저지른 죄는 사이비 종교에서 돈을 받아먹은 것.
장관을 잡아내는 데 장부에 적힌 이름만으로는 어렵다.
서진은 흔쾌히 찢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중호가 저지른 쓰레기 같은 짓은 정신병이 의심될 정도의 여성 편력.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중호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 이야기가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면, 두들겨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누리던 모든 생활을 잃은 뒤 수도승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애들 모을 필요는 없는 거죠?”
* * *
“이번에는 비싼 커피 맞지?”
“달달한 게 좋지 않나요?”
“요즘 쓴 게 좋더라.”
“쓴 거요?”
“어, 엄청 쓴 거.”
중앙지검.
서진은 장지혁를 만났다.
서진은 “쓴 커피…….”라고 중얼거렸고 장지혁 검사는 “비싼 거…….”라고 말하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이 장지혁 검사를 끌고 도착한 곳은 이번에도 휴게실이다.
“야…….”
“원하는 대로 블랙커피.”
“와, 있는 놈이 더해. 시켜 먹을 거 있으면 좋은 것부터 먹여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 엄청 써요.”
장지혁 검사가 커피를 건네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약쟁이 한번 잡죠.”
“약쟁이?”
서진은 알고 있는 내용을 전했다.
부유층 사이에 은밀히 돌고 있는 순도 높은 마약.
이야기를 들은 장지혁 검사의 표정이 밝지 않다.
“잡아 봤자 연예인 몇 놈 족치고 끝나는 거 아니야?”
“그렇겠죠.”
부잣집 자식들에게 마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
마약을 놀이 문화로 여긴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들이 잡혀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
단속이 이뤄진다 해도 부모가 가진 돈과 권력을 통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물론 잡혀 오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부모가 정치권의 분노를 샀을 때, 정치권은 그 자식들을 향해 회초리를 들어 올린다.
수사기관을 통해 체포하고 언론을 통해 망신을 준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마무리는 씁쓸하다.
그들의 부모가 정치권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사건은 일단락.
놈들은 집행유예 또는 증거 불충분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산다.
“서민이 배고파서 빵을 훔치면 징역 2년, 재벌가 자제는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여해도 집행유예. 씨발…….”
장지혁 검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뿌리를 뽑을 때까지, 언젠가는 집어넣을 수 있을 때까지 잡고 또 잡아야 한다.
“이번에는 장지혁 검사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한 걸로 가죠.”
“잉? 넌? 보조에도 이름 넣지 마?”
“네.”
장지혁 검사가 커피를 입에 대며 끌끌 웃었다.
“또 누가 있구나?”
“김윤환이요.”
“……!”
장지혁 검사의 표정이 확 굳었다. 입에 담긴 커피를 내뿜지 않은 게 다행이다.
장지혁 검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아는 그 김윤환? 총장의 아들 김윤환? 네 친척 형?”
“네.”
“아오! 서울 생활 적응 좀 되나 싶었더니, 유배 가겠네.”
“유배는 안 갈 거예요.”
표면적으로 봤을 때 장지혁 검사는 그저 마약 공급책 또는 유통책을 잡았을 뿐이다.
김윤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말 그대로 우연.
“그리고 김윤환이 마약 유통책과 연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요. 마약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렸겠죠.”
명단에 김윤환의 이름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멍청해 보여도 김윤환은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놈.
잔머리는 돌아간다.
‘그렇다 해도 상관은 없어.’
서진은 어떻게든 김윤환을 연관 지을 생각이다.
* * *
다음 날, 서진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재정건설로 향했다.
근처의 커피숍.
김윤환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서진을 확인한 놈의 눈이 매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순간이다. 이내 밝은 모습으로 다가와 서진의 앞에 마주 앉았다.
“왜? 들어와서 사무실 구경이라도 하지.”
“잠깐 들른 거야. 이건 입사 선물.”
서진이 테이블에 내려 둔 것은 커피숍의 상품권이었다.
“이게 뭐야?”
“직장인은 커피 많이 마시잖아.”
“싱겁기는……. 어쨌든 땡큐.”
김윤환이 상품권을 품에 넣으며 다시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쫙 깔린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재정건설, 잘 키워 볼게. 걱정하지 마.”
오늘 첫 출근 한 놈이 ‘잘 키워 볼게’라니……. 미친놈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서진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
“그때 했던 이야기 기억하지? 우리 세대 들어서 입장이 바뀌었다고. 우리 아버지들, 가끔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고 하잖아. 우리도 안 좋았던 기억은 잊고 앞으로 잘해 보자. 난 안에서, 넌 밖에서.”
“그래, 안에서 잘해 줘.”
서진이 내뱉은 말에 주어는 없었다.
주어를 넣었다면 ‘교도소 안에서 잘해 줘.’라는 말이 완성된다.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뒷바라지할게. 너 총장까지 시켜 줄 테니까, 열심히 해.”
김윤환은 이미 재정건설의 주인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번 마약 사건을 시작으로 놈이 향해야 할 곳은 재정건설의 대표이사실이 아니라 교도소라는 것도 모른 채.
“고마워 형.”
“나만 믿어.”
김윤환은 서진을 향해 가식적인 미소를 건넸다.
하지만 서진은 김윤환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
놈은 조만간 박살 날 서진을 기대하는 중이다.
그게 기분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즐겁게 느껴진다.
서진은 김윤환의 피를 말려 죽일 생각이니까.
그때 서진의 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임의 연락책을 담당하는 이중호에게 온 것.
발신 번호를 확인한 서진이 김윤환을 향해 말했다.
“이거 어쩌지? 느긋하게 커피 한잔하려고 했는데, 일어나야겠네?”
“괜찮아. 나도 들어가 봐야지. 낙하산으로 굴러온 놈이 뻗대고 있을 수는 없잖아? 조만간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들어가 봐.”
서진과 김윤환은 인사를 나눈 후 등을 돌렸다.
커피숍을 빠져나온 서진이 차에 오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말해.”
-운남식품이라고 아시죠?
꽤 많은 인스턴트식품을 손에 쥐고 있는 곳.
-거기 손자가 정희오라고 하거든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본론만.”
-어제 걔랑 술을 마셨는데, SNS를 몰래 봤어요. 오늘 밤 11시,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J빌딩 3층 화장실 세 번째 칸이요. 걔 얼굴은 메시지로 보낼게요.
* * *
서진은 송파구 거여동으로 향했다.
J빌딩, 이름만 빌딩일 뿐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되고 작은 상가 건물.
도로는 물론이고 건물의 출입구에도 CCTV가 없다.
1층 화장실에 하나 달린 게 전부.
범인은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은폐하려 한다.
서진은 계단을 걸어 마약이 던져질 3층 화장실에 올랐다.
이중호가 말한 세 번째 칸은 양변기가 설치된 곳.
마약은 밀봉되어 수조에 넣어질 게 분명하다.
‘계획은 알겠고…….’
서진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주변을 살폈다.
이 건물의 출입구는 둘, 각 출입구에 차를 주차 후 블랙박스로 CCTV를 대신할 생각이다.
혹시 놈을 놓쳤을 경우에 대비한 것.
서진은 계속해서 주변을 걸으며 거리의 모든 구조를 머릿속에 담았다.
잠시 후, 장지혁 검사가 수사관들과 함께 나타났다.
* * *
늦은 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검은 백팩을 등에 맨 채 건물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산 남자는 힐끗 힐끗 주변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도로 이곳저곳, 지나는 사람처럼 잠복한 수사관들이 귀에 건 무전기를 통해 빠르게 무전을 시작했다.
-거수자 발견.
-검은 모자.
-예의 주시하고 있어요.
그사이 1층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밖으로 나왔다.
문을 잠근 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종이를 붙여 두고 건물로 들어갔다.
수사관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모자를 쓴 남자에게 박혀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화장실을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시끄럽게 무전이 시작됐다.
-아르바이트생! 3층 접근!
-화장실 들어가는데요?
-씨발, 잡아!
-저 개새끼!
수사관들이 움직였다.
빠르게 건물 입구에 서서 도주로를 막았다.
도로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모자를 쓴 남자, 놈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러다녔다.
그리고 툭툭 재를 털며 몸을 틀었다.
정말 느긋하게, 여유롭게.
하지만 건물을 스친 놈의 걸음이 다급할 정도로 빨라진다.
향하는 곳은 골목의 어둠 속.
‘젠장…….’
놈이 입술을 씹었다.
놈의 정체는 배달꾼, 아르바이트생으로 있던 놈도 배달꾼.
놈들은 치밀할 정도로 서로를 은폐해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놈은 일단 생각을 멈췄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도주, 어두운 골목 속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것.
수사관들이 떠났을 때, 자신의 윗선에게 연락해서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제 복잡한 골목을 돌며 이곳을 빠져나가면 된다.
“바쁜 일 있나 봐?”
느릿한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남자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식겁한 눈동자를 옮겼다.
골목의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림자, 그 그림자가 남자를 향해 저벅저벅 악마처럼 걸어왔다.
그 악마가 스산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