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85화 (185/250)

<동아줄 (5)>

김영준 총장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멈추지 않는다.

“근본도 없는 년을 윤환이 짝으로 지어 준다고? 미쳤어?”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서…….”

“난 반대야. 절대 못 시켜. 안 돼. 이건 안 되는 일이야!”

작은어머니는 김영준 총장의 말꼬리를 자르며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윤환이가 어떤 앤데,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첩? 첩이라고?”

김영준 총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소희와 김윤환의 혼사는 백기호 의원과 함께 권력의 탑에 오르기 위한 거래다.

혼사 이야기가 물거품이 되면 그 거래 역시 어그러진다.

그건 안 된다.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결혼은 해야 해.”

김영준 총장은 단호했다.

그러자 작은어머니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집에 가서 어떤 일이 있는지 말해 줄 테니까…….”

김영준 총장은 작은어머니를 달래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작은어머니의 목소리는 찢어질 것처럼 날카롭게 올라갔다.

“못 시킨다고 말했어. 여기서 나 죽는 꼴 보고 싶니? 손목이라도 그을까? 아니면, 뛰어내려?”

“엄선주하고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거야?”

김영준 총장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작은어머니의 치부를 들춰냈다.

작은어머니가 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꿍꿍이?”

“그래, 꿍꿍이.”

“꿍꿍이는 네가 있겠지.”

부부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서진은 조심스레 바를 빠져나와 복도로 향했다.

복도에는 바텐더, 그러니까 바의 사장이 창문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작은어머니와 엄선주의 분위기가 서늘해질 때 나와 지금껏 그 자리에 서 있던 거다.

서진이 나온 것을 확인한 사장이 담배를 끄기 위해 급히 서둘렀다.

“계속 태우세요. 괜찮아요.”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엄연히 금연 건물, 사장이 민망하게 웃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서진이 사장의 앞으로 다가서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

“오늘 듣고 보신 것은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수표에 적힌 숫자를 본 순간 사장은 정말 환하게 웃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당연히 할 일인데요.”

사장은 정말 기뻐했다.

작은어머니와 엄선주가 싸울 때 밖으로 나와 피워 댄 담배가 몇 개비나 되는지 모른다.

그 긴 시간 동안 들어가지도 못하고 씨발, 씨발 지껄인 욕이 한 바가지다.

그런데 그 고생이 수표가 되어 돌아왔다.

사장이 수표를 품에 넣을 때, 서진은 시선을 옮겨 닫힌 문을 바라봤다.

안에서는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가 싸우고 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너 때문이잖아!”

작은어머니의 날카로운 음성이 바깥으로 새어 나올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뭔가를 집어 던져 깨부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김영준 총장의 난처한 얼굴이 저절로 떠오른다.

물론, 저 싸움으로 이소희와 김윤환의 혼사가 뒤집히지는 않을 거다.

작은어머니의 분노만으로 혼사를 무르기엔 김영준 총장의 욕심이 크다.

‘하지만…….’

서진이 노리는 것은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의 지속될 냉전.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 신경 쓰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다른 곳에 향해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표정은 좋지 않다.

여전히 냉기가 뚝뚝 흐르고 있다.

작은어머니는 그대로 계단을 걸어 내려갔고 김영준 총장은 서진의 앞에 섰다.

“정리하고 집으로 가. 내일 출근하면 내 방으로 오도록 하고.”

“네.”

김영준 총장은 지시를 내뱉은 후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됐다.

사장도 창가에서 몸을 뗀 후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만요.”

“네?”

사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서진을 향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한 표정이다.

서진이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더 꺼내며 입을 열었다.

“CCTV 영상은 제가 가져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오늘 있었던 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진은 오늘 있었던 일을 소장하려 한다.

서진이 수표를 건네자 사장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집에 들어간 것은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데, 현관문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온 것은 동생 진영이다.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다.

퀭한 얼굴이 지금까지 노동에 시달리다 온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일했어?”

“우리 쉐프가 또라이거든. 오늘 뭐가 기분 나쁜지는 몰라도 내일 쓸 야채 다 손질하고 퇴근하라네. 그래서…….”

“고소해. 형이 박살 내 줄게. 형량은…… 10년? 그 정도면 마음에 드나?”

물론 농담으로 던진 말이다.

진영도 서진의 손에 끌려가는 쉐프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10년은 약하고 무기징역은 당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은데. 나중에 우리 쉐프가 횡령하는 거 보면 꼭 고소할게.”

진영이 씻기 위해 준비했고 서진은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닫은 후 USB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화면에 CCTV 영상 파일이 보인다.

클릭 후 화면을 슥슥 넘겼다.

서진이 가게에 들어오자 작은어머니가 뛰쳐나오는 것부터 엄선주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모든 모습까지 모두 담겨 있다.

이것만으로는 약하다.

영상만 있을 뿐, 음성은 담겨 있지 않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에 의거 CCTV에 음성이 녹취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진은 작은어머니가 어떤 말을 내뱉을지 몰라 휴대폰을 사용해 모든 음성을 녹음해 두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이어폰을 연결 후 귀에 꽂고 녹음 파일을 재생시켰다.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던 곳이었기에 음질에 문제는 없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다.

‘좋네.’

이 영상과 녹취록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서진이 USB를 뽑아 책장 아래로 툭 던져뒀다.

* * *

다음 날 아침, 김영준 총장은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내와 밤새 싸우느라 눈을 붙인 게 고작 1시간도 되지 않는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김영준 총장이 몸을 바로 하자 비서가 들어와 입을 열었다.

“중앙지검장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말과 동시에 중앙지검 검사장이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앞에 파일철 하나를 내려 뒀다.

“말씀하신 겁니다.”

검사장이 가져온 것은 FLF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간략히 요약한 정보.

깡패의 일에 자신의 처제 엄선주가 끼어 있는 만큼 김영준 총장은 검사장을 불러 직접 보고받는 중이었다.

“어린애들을 꼬드겨 장사하는 놈들입니다. 장지혁 검사가 몇 달 전부터 지독하게 쫓다가 어제…….”

“장지혁?”

“네.”

서진은 이 사건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혹시라도 있을 김영준 총장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에서 서진은 협조자였을 뿐이다.

김영준 총장은 검사장의 추가 설명을 들으며 파일을 넘겼다.

‘엄선주의 신분이 노출될 염려는 없어.’

엄선주는 김영준 총장의 경고를 허투루 들을 사람이 아니다.

어떤 질문에도 입을 꾹 다물 게 분명하다.

게다가 믿을 수 있는 인력으로 그녀의 수사를 배치했으니 걱정할 일은 없을 거다.

‘문제는…….’

중앙지검이다.

장지혁 검사는 타협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놈이 FLF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김현봉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엄선주까지 타고 올라오면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예상하기 어렵다.

고민하던 김영준 총장이 서류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이 사건, 장지혁은 손 떼라고 해.”

“……네?”

“지금까지 고생했으면 됐어. 그만 다른 일 하면서 휴식도 취해야지. 김서진에게 넘겨.”

“초, 총장님…….”

검사장은 당황했다. 그는 장지혁 검사가 몇 달 동안 뒤쫓아 해결해 낸 사건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다 된 밥상을 서진에게 넘기라니.

“실적은 장지혁의 어깨에 올려 주도록 해. 그럼 문제 되는 거 없잖나?”

이렇게까지 말하면 검사장은 거부할 명분이 없다.

총장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알겠습니다.”

* * *

잠시 후, 중앙지검.

장지혁 검사는 부장검사 앞에 서 있었다.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새끼야, 그렇게 보지 마. 위에서 내려온 지시야.”

부장검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장지혁 검사의 사건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다.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며 갖가지 사고를 친 것은 이제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오랜 시간 공들였다고 한다.

새벽까지 잠복해서 청부업자까지 잡아왔다.

그런 사건을 서진에게 넘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하…….’

부장검사는 장지혁 검사가 짐승처럼 날뛰어도 잠시는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실적은 너한테 준다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부장검사는 생각했다.

이제 장지혁 검사가 대들 시간이라고.

그런데 장지혁 검사의 행동은 예상과 달랐다.

화를 내기는커녕 순순히 수긍한다.

“네, 넘길게요.”

“어?”

부장검사가 오히려 당황했는지 되묻기까지 했다.

“뭐라고?”

“넘긴다고요.”

“……괜찮겠어?”

“서진이라면서요? 같이 수사했으니까, 잘하겠죠. 믿을 수도 있고요.”

장지혁 검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몸을 틀어 부장검사실을 벗어났다.

부장검사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놈이 순순히 사건을 넘긴다고? 장지혁이? 김서진이라 괜찮다고?”

부장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장지혁 검사가 아니라 서진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장지혁 검사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이놈은 점쟁이 팬티를 훔쳐 입었나…….’

어제였다. 김현봉을 잡은 후 장부를 뒤적이던 그때, 서진이 말했었다.

“이 사건, 장지혁 검사님이 마무리 짓기는 어려울 거예요.”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사실이 되어 돌아왔다.

서진에게는 확실히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

후배이기는 하지만 그 통찰력을 인정한다.

장지혁 검사는 ‘신들렸네, 확실히 신들렸어.’라고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서진을 발견했다.

장지혁 검사가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들었어? 나한테 손 떼라더라?”

“네, 저도 들었어요.”

서진은 대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김영준 총장을 만났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심중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장지혁 검사가 조용히 웃으며 서진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엄선주 만나러 가는 거야?”

“네.”

“조져.”

서진은 시원한 미소를 그렸다.

조금 전, 김영준 총장은 서진을 불러 말했다.

FLF엔터테인먼트는 물론 엄선주까지 서진이 도맡으라고.

엄선주와의 관계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진을 믿는 거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같다.

서진은 어제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술집에서 수사관들에게 끌려 나가던 엄선주는 서진을 스치며 입술을 움찔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

김영준 총장이 두려워 내뱉지 못한 말.

서진은 그 이야기를 들어 볼 생각이다.

장지혁 검사와 헤어진 후 서진은 곧장 엄선주가 있는 취조실을 향해 갔다.

그렇게 취조실 앞에 도착한 서진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이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고 취조실 안으로 눈을 번뜩이며 앉아 있는 엄선주가 보였다.

서진이 의자를 빼내 엄선주의 앞에 마주 앉았다.

‘목적은 세 가지.’

엄선주의 자백, 어제 듣지 못한 말 그리고 작은어머니의 과거.

그 모든 것을 서진은 파악할 거다.

“그럼, 시작할까요?”

서진이 서류를 펼치는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장지혁 검사에게 온 메시지.

-김영준 총장이 보고 있다.

유리벽 너머에 김영준 총장이 서 있다.

서진조차 확실히 믿지 못한다는 뜻.

‘이거 재밌네.’

서진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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