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86화 (186/250)

<동아줄 (6)>

김영준 총장은 병적일 정도로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게 자신의 수족이나 가족, 조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의심하고 견제하며 또 의심한다.

김영준 총장의 성공이 상대의 약점을 잡고 이뤄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준 총장은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용할 수 있겠어.’

서진은 생각했다.

언젠가 김영준 총장의 저 성격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거짓된 힘으로 정상에 오른 자의 끝은 똑같다.

그들의 손에 권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피바람에 몰락하는 게 역사의 흐름이다.

서진이 볼펜을 손에 들었다.

김영준 총장이 유리벽 너머에 서 있다 해서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엄선주에 대한 취조는 1~2시간으로 끝날 게 아니다.

적어도 10시간.

그 모든 시간 동안 김영준 총장이 이곳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즉, 김영준 총장이 있을 때만 조심하면 되는 거다.

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엄선주와 시선을 마주쳤다.

엄선주의 눈빛이 흉흉하다. 자신의 언니에게 당했다는 분노와 치욕으로 몸을 바르르 떨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서진을 쏘아보며 입술을 움직이려 한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어떤 말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김영준 총장이 들어서 좋을 것은 없다.

서진이 그녀의 목소리를 막기 위해 입을 열었다.

“김현봉을 앞세워 불법 추심을 했죠?”

하지만 엄선주는 서진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느릿한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간다.

“잘 잤니? 난 한숨도 못 잤어. 밤새 생각했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어떤 죄를 지었을까, 왜 여기 있을까.”

“엄선주 씨!”

서진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엄선주의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산한 미소를 그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만 망할 수는 없잖아?”

“……!”

엄선주가 내뱉은 말은 예상과 달랐다.

서진은 엄선주가 김영준 총장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건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싸움을 걸고 있다.

그것도 김영준 총장을 상대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딱 그 꼴이네. 네 작은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총장까지 올랐는지, 궁금하지 않아?”

“……!”

“세상에 알릴 거야. 망했을 때, 세상의 비난을 받았을 때, 누가 더 아픈지 궁금해. 나 혼자 왜 죽어? 같이 죽어야지.”

“……!”

“난 그럴 돈이 있고 추할 때까지 발버둥 쳐도 잃을 명예가 없어. 진흙탕 싸움은 내가 이길걸. 그리고 난 상관없어. 몇 년 살다 나와도 돈이 있잖아? 잠시, 쉰다고 생각하면 돼. 난 계속 떵떵거리며 살 거야.”

서진의 부릅뜬 눈을 보며 엄선주가 잔잔히 웃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컵을 들어 입에 댔다.

***

“꺼.”

바깥에서 취조실을 보고 있던 김영준 총장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직원은 다급히 녹화와 녹음을 종료하며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꺼, 껐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치아가 바스라질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엄선주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은 예상했지만, 끝까지 더럽게 행동하고 있다.

김영준 총장은 엄선주의 가족을 모두 박살 내겠다고 협박했었지만, 엄선주는 같이 죽자며 달려든다.

궁지에 몰린 쥐는 잃을 게 없다.

김영준 총장의 얼굴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엄선주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하다.

변호사를 부를 테고, 기자와 접선할 거다.

옥중 서신이라는 이름으로 김영준 총장의 치부를 드러낼 생각이다.

김영준 총장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돌아섰다.

이어서 저벅저벅 취조실을 벗어났다.

지금은 이곳에서 엄선주의 취조를 지켜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

“왜? 당황했어? 내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어? 그럼 가서 네 작은아버지한테 말해.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날 내보내라고!”

엄선주의 발악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은 장지혁 검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김영준 총장이 중앙지검을 떠났다는 것.

‘엄선주의 계획을 듣고 떠난 김영준, 김영준이 있는지 모르는 엄선주…….’

서진은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벌어질 두 사람의 싸움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물론 김영준 총장이 이길 것은 뻔하다.

엄선주는 대한민국 검찰총장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서진이 기대하는 것은 그 싸움이 끝난 뒤, 그때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뱃속이 간질거렸다.

‘엄선주는…….’

그녀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살기 위해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하지만 곧 벼랑에서 떨어져 거센 물줄기에 빠질 운명이다.

그 안에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그저 손을 허우적댈 뿐이다.

그 손을 서진이 잡아 주면, 엄선주는 모든 정보를 토해 낼 가능성이 크다.

‘마음에 들어.’

엄선주는 입꼬리를 비튼 채 서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은 미소를 숨기기 위해 취한 자세인데, 엄선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진이 화를 참는다고, 마음이 동요되고 있다고 여겼다.

어쨌거나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조카다.

동남군에 있던 놈이 강원지검을 거쳐 중앙지검에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를 김영준 총장의 뒷받침이라고 판단했다.

즉, 김영준 총장이 무너지면 서진의 미래 역시 깜깜한 암흑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엄선주 본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까지 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각오해야 할 거야.”

엄선주의 눈에 살기가 살벌하게 흐른다.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게 있다면 모든 것을 뒤집을 것 같다.

당장이라도 서진의 뺨을 때릴 것 같은 눈빛이다.

하지만 서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 엄선주를 취조하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 그녀가 낭떠러지에서 추락해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것을 기다릴 뿐이다.

***

그날 오후, 구치소의 변호사 접견실.

엄선주는 자신의 변호사를 만나고 있었다.

변호사가 테이블에 담배를 올려 두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끊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끊게 생겼어?”

엄선주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공간을 채울 때, 엄선주의 시선이 변호사를 향했다.

“내일 아침부터 하나씩 터뜨려. 먼저 지라시를 이용해.”

엄선주는 검찰총장의 사돈이 큰손의 집안이라는 것부터 알리기로 했다.

그것도 언론이 아니라 지라시를 통해서.

“천천히 겁을 주면서 내가 칼을 들었다는 것만 알려 줘.”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칼날에 다치는 것은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엄선주는 그 이치를 잘 아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김영준 총장에게 보여 줄 생각이다.

“……겁을 먹을까요?”

“내 이름이 언론에 단 한 줄이라도 나왔어? 아니잖아? 김현봉은? 없지? 왜겠어? 꽁꽁 숨기고 있는 거야. 혹시라도 내 이름이 알려지면, 난처해질까 봐. 우리 형부, 야망이 큰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원래 가진 게 많을수록 겁이 많으니까.”

엄선주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엄선주가 계속 말을 이었다.

“오후에는 검찰총장이 사채업자의 돈을 받고 고시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려.”

“역시 지라시입니까?”

“어. 거기까지는 지라시야.”

“그럼, 다음은요?”

“칼을 보여 줬는데도 말을 안 들으면, 그때는 사용할 수밖에 없잖아? 언론을 이용해야지. 내일 저녁에 언론사 사장들과 만나. 적당히 돈을 주고 소스를 줘. 딱 손가락 베인 것만큼만 아프게.”

엄선주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히죽 웃었다.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꺼내 들었다.

엄선주의 지시 사항을 적고 있을 때다. 변호사는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무심한 눈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던 변호사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휴대폰에 집중한 변호사의 눈동자가 기겁한 듯 부릅떠졌다.

“시, 실장님…….”

“왜?”

“이, 이거.”

변호사가 말을 더듬으며 손에 든 휴대폰을 다급히 엄선주에게 넘겼다.

엄선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화면에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제목은 ‘김영준 총장 직접 브리핑’.

엄선주의 눈이 일그러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엄선주가 재빨리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화면 속, 단상에 선 김영준 총장이 굳은 얼굴로 기자들을 보며 허리를 굽혔다.

이어진 말은 충격이다.

-어제 새벽, 본 검찰은 폭력 조직과 결탁한 사채업자 엄 모 씨를 체포했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봤다.

그 침묵에 기자들은 눈을 반짝인다.

검찰총장이 일개 폭력 조직 소탕 사건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시간을 끌고 있다.

기자들은 이럴 때 특종이 터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맞았다.

-사채업자 엄 모 씨는 제 처제입니다.

휴대폰을 든 엄선주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고 입에서는 긴장된 숨이 싸늘하게 흘러나왔다.

김영준 총장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선주는 당장이라도 김영준 총장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엄선주의 체포는 자신이 직접 지시한 일이라고.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범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아니, 검사의 가족이기 때문에 더 엄한 벌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엄선주는 결국 동영상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재생을 멈추며 눈을 감았다 떴다. 이어서 깔깔깔, 미친 것처럼 웃었다.

그 웃음이 뚝 그쳤을 때, 엄선주의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리고 변호사의 앞으로 휴대폰을 툭 던지며 냉랭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전화해.”

“네?”

“어디겠어! 언론사 사장들한테 전화하라고!”

“아, 네!”

엄선주의 서슬 퍼런 눈길을 받으며 변호사는 휴대폰의 버튼을 꾹꾹 눌렀다.

신호음이 이어진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다른 곳을 연결했지만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물론 받은 사람도 몇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똑같았다.

-내가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어서…….

-아이고, 어쩌나? 선약이 있는데.

변호사가 처참한 심정과 함께 테이블에 휴대폰을 올려 뒀다.

“……죄송합니다. 이제 전화할 곳이 없습니다.”

엄선주는 피가 배어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엄선주가 가진 돈, 그동안 뿌린 돈은 김영준 총장의 권력 앞에 막혀 버렸다.

이제 도와줄 사람은 없다.

여론도 좋지 않다.

모두 김영준 총장을 응원하고 있다.

-대박. 처제도 잡은 거야?

-진짜 법대로네. 아무도 안 봐줘.

└멋있다. 김영준.

-요즘 검찰 믿을 만함.

-이 처제 미친 거 아님? 총장이 형부라고 여기저기 지랄하고 다녔겠지. 미친×.

└백 믿고 설쳤는데, 그 백이 안 봐줬음. ㅋㅋㅋㅋ

└김영준이 말했잖아, 가족이니까 더 안 봐준다고.

└사형! 사형! 사형! 사형!

└사형까지는 무리겠지만 총장이 직접 지시했는데, 적어도 10년은 나오겠지?

└저 아줌마 10년 뒤에 나오면 몇 살?

-김영준이 대선 나와라. 한 표 뽑아 준다.

순간, 엄선주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자신의 끔찍한 미래를 본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 역시 교도소를 벗어날 수 없는 시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아악!”

엄선주가 손바닥을 들어 테이블을 쾅, 쾅, 쾅 쳤다.

이어서 테이블 위에 보이는 모든 것, 변호사의 휴대폰과 수첩 그리고 볼펜을 집어 던졌다.

“시, 실장님!”

“놔! 놓으라고!”

엄선주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다.

그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물론,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억울해서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비참하기 때문이다.

“아아아아악!”

그때 변호사 접견실의 문이 열렸다.

변호사는 엄선주를 끌어내기 위해 직원들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직원이 아니다.

서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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