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2)>
***
안양의 커피숍.
파파라치 전문 언론사를 창업한 성대준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 그러니까…… 백기호 의원이라고요?”
“네.”
“하…….”
성대준은 목이 타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물기가 젖은 입을 손등으로 슥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어려워요. 이제 론칭한 사업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자빠질 수는 없어요.”
“들킬 염려는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없죠. 없는데, 가능성은 존재하잖아요? 검사님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지만, 말씀드릴게요. 국회의원은요, 괴물이에요. 진짜 괴물.”
성대준은 계속해서 위험성을 내뱉었지만 서진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그 심드렁한 얼굴에 성대준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쨌든, 저는 못 합니다. 겁이 나네요. 그리고 검사님은 참 겁이 없으시네요.”
“네, 겁은 없죠.”
성대준이 몸을 일으킬 때,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돈은 많네요.”
“뭐, 뭐요?”
서진의 시선이 성대준에게 향했다.
새롭게 목표를 가진 뒤, 서진은 지라시 언론사를 손에 쥐고 싶었다.
지금은 언론을 통제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언론의 그늘에 가려진 진실을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소문은 저잣거리에서 시작하는 것.
그 저잣거리가 지금은 지라시다.
서진이 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툭 치며 입을 열었다.
“성대준 사장님의 그 회사, 지분을 사고 싶습니다. 전부도 좋고 일부도 좋고. 원하는 만큼의 지분과 가격을 적어 보세요.”
“거, 검사님!”
“백기호 의원의 얼굴에 똥을 뿌리는 게 그렇게 무섭나?”
“지금 그게 무슨!”
“나는 안 무섭고?”
성대준의 눈동자가 덜컥 흔들렸다.
상대는 검사다.
작은 파파라치 회사 정도는 언제든 찢어 버릴 수 있다.
법이란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성대준이 주먹을 꽉 쥘 때,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은하 기자에게 들었습니다. 정치권 지라시를 관리했고 이은하 기자와 같은 회사에도 있었다고요. 연예인 꽁무니나 쫓아다니려고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셨나? 아니잖아요. 투자받고 원하는 회사 만드세요.”
“……!”
“그리고 기사 하나 적어 주는 대가로 선뜻 투자금을 지원하겠다는 호구, 나를 만난 것은 천운 같은데, 아닌가요?”
성대준이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서서 서진을 바라볼 뿐이다.
서진의 말대로다.
기사 하나 작성해 주는 대가로 투자금을 지원하겠다는 호구를 만난 것은 천운이다.
잠시 그렇게 있던 성대준이 다시 의자를 빼내 서진의 앞에 마주 앉았다.
“검사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난 성대준 씨의 생각이 더 궁금한데요? 목표가 뭡니까? 파파라치로 시작해서 메이저 언론사? 아니면 투철한 기자 정신?”
당연히 아니다.
월급쟁이의 한계를 느끼고 그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차린 거다.
재주넘는 곰이 아니라 돈 받는 왕 서방이 되기 위해.
그 표정을 읽은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원하는 투자금 적으세요.”
성대준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수첩을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백기호는 위험해요.”
“위험하기 전에 기사 내릴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린다고요?”
“네.”
기껏 올렸는데, 내린다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성대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서진은 그 해답까지 전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성대준이 투자금을 작성하기를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성대준이 서진에게 수첩을 내밀었다.
투자금은 4천만 원, 지분은 10%
사실 성대준은 상당히 고민했다.
이제 시작하는 회사, 자본금 3억 원.
적어 낸 것은 급한 돈 4천만 원.
성대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진의 답을 기다렸다.
4천만 원이란 돈은 크다.
누군가의 1년 연봉이 되기도 한다.
‘이제 와서 많다고 하는 거 아냐?’
미래가 불투명한 회사에 4천만 원이란 큰돈을 선뜻 내밀 사람은 많지 않다.
성대준이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서진이 수첩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1차로 5억 보내 드릴게요. 지분은 제가 51% 갖는 것으로 하죠. 물론 경영에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을 겁니다. 이따금 제가 원하는 기사를 올려 주시면 됩니다.”
“……네? 5억요?”
“계약서는 번거로우니까 작성하지 말죠. 오간 돈이 곧 신용이니까요.”
성대준에게 서진의 다른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5억, 그 돈을 준다면 백기호가 아니라 대통령의 욕이라도 작성해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더 은밀한 곳에 자리하시고 규모도 더 늘리세요. 그리고 회사가 돌아가는 걸 봐서 2차, 3차 쏴 드릴 수도 있으니까 한번 키워 보세요. 지라시를 쏘면 곧바로 실검에 오를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5억이 끝이 아니라 2차, 3차가 더 있다고 한다.
이 정도 스케일로 지라시를 쥐려 하는 것이면, 그 의도는 위험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거부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잘해야죠. 프로잖아요.”
성대준의 표정이 바뀌었다.
거저 주는 돈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거다.
“그래야죠. 그럼 백기호에게 던질 엿은 우리가 준비합니까?”
“적당히 관능적인 소설을 적어 주세요. 주인공 이름은 이니셜로 작성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올렸다가 곧바로 내릴 기사다.
소설이든 뭐든 상대를 자극만 하면 된다.
성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은 음료를 한 번에 싹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무실을 음지로 이동하고 소설도 쓰려면 바쁘겠네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성대준이 고개를 숙인 후 자리를 떠났고 서진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사가 둘.’
서진의 손에 개목걸이가 채워진 검사가 둘이다.
조우재 부장검사와 이정철 검사.
이어서 손잡은 검사가 셋이다.
전동국 대검 차장검사와 동부지검 김관용 부장검사, 마지막으로 장지혁 검사.
‘지라시가 하나.’
오늘은 사람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만들 지라시 언론을 얻었다.
조금이지만 전선이 갖춰지고 있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검사와 권력자 그리고 그들을 움직일 압도적인 자금을 손에 쥘 생각이다.
‘다음은…….’
서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살게 된 이 세상, 손에 들어온 모든 것을 놓치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다짐했다.
그렇게 서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끝났어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은하 기자가 다가왔다.
성대준이 떠난 것을 보고 쪼르르 이동한 거다.
“아, 네. 기자님 덕에 이야기가 잘됐어요.”
“바로 지검에 들어가실 거예요?”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은하 기자가 배고픈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뒤다.
“밥이라도 먹고 들어갈까요?”
그 말과 동시에 이은하 기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기다리면서 근처 맛집을 검색했거든요? 저기, 저 아파트요. 단지 내 상가에 맛있는 쫄면집이 있대요. 쫄면 좋아하세요? 먹으러 갈까요?”
고마운 마음에 비싼 것을 사 주려 했는데, 쫄면이라니.
서진이 비싼 것을 권하자 이은하 기자가 생긋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 쫄면 좋아하거든요.”
***
며칠 후, 서울의 한 호텔.
서진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향하는 곳은 레스토랑, 백기호 의원과 약속이 잡혀 있었다.
서진은 바뀌는 숫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백기호…….’
놈이 서진을 만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서진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 거다.
하지만 이용하려 할 뿐, 신뢰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백기호 의원의 입장에서 김영준 총장의 조카를 신뢰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다.
서진은 슬쩍 웃었다.
백기호 의원의 생각대로 움직일 생각은 없다.
얻는 것 없이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미래는 사양이다.
놈의 성격이 그렇다.
머리를 숙이는 동시에 영원히 군림하려 한다.
‘그럼…….’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대등한 조건에서 마주 앉아 거래를 해야 한다.
백기호 의원은 김영준 총장과 반대에 선 자.
김영준 총장을 꺾기 위해 몇 박스의 비리를 주워 담았을 사람.
서진에게도 필요한 인물이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서진이 밖으로 나와 로비 앞에 섰다.
익숙한 얼굴, 백기호 의원의 보좌관이 보였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보좌관은 그 말을 남긴 채 몸을 틀었고 서진이 그 뒤를 쫓았다.
식당 전체를 빌렸는지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뚜벅뚜벅 들릴 뿐이다.
앞서 걷던 보좌관이 힐끗 서진을 살폈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이 정도에 겁을 먹거나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이빨을 드러내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놈이지. 하지만 날 놀라게 한다면…… 가져와야지. 무슨 수를 써서든.”
보좌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동안 놀랄 일은 없었어.’
서진에게 선전포고를 한 후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그 어떤 일도 없었다.
그저 평온한 시간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럼 오늘을 끝으로 눈 밖에 나는 것인가?’
보좌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의 끝에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의원님, 김서진 검사가 왔습니다.”
앞에 선 보좌진에 의해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백기호 의원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서진이 백기호 의원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김서진입니다.”
“앉아.”
서진과 보좌관이 안으로 들어섰다.
서진이 백기호 의원과 마주 앉았고 보좌관은 백기호 의원의 뒤에 섰다.
그러자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힌다.
한 끼에 수십만 원이 넘는 한정식.
비슷한 가격의 술.
이 모든 게 세금.
백기호 의원이 말없이 술병을 들었다.
그리고 서진의 잔을 쪼르르 채웠다.
서진이 술잔을 받은 뒤 술병을 들어 기울이며 침묵으로 가득한 공간을 깨웠다.
“지난번 일은 감사했습니다.”
“어떤?”
“저희 가족에 대한 기사를 막아 주신 일이요.”
“아.”
백기호 의원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사람, 그 기사를 내리라고 지시한 사람, 그 모든 게 자신이면서 모른 척한다.
“그런 것으로 일일이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어.”
“아뇨. 받았으면 돌려주는 게 예의라고 배워 왔습니다.”
술잔을 손에 쥐던 백기호 의원의 행동이 뚝 멎었다.
서진의 말투는 분명 예의 있었지만 뭔가 가시가 돋쳐 있다.
“예의?”
“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의원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지라시가 돌더라고요.”
“……!”
서진이 정말 공손한 자세로 백기호 의원을 향해 휴대폰을 내밀었다.
백기호 의원이 느릿하게 손을 뻗어 휴대폰을 손에 쥔다.
하나의 지라시.
톱스타 A 양,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톱스타 B 군을 자신의 집에 데려갔는데, 스폰서가 온다는 말에 급히 B 군을 쫓아냈다고 함. A 양과 뜨거운 밤을 기대하던 B 군은 화가 나서 스폰서가 누구인지 알아봤는데, 대선을 노리는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 C라 조용히 피했다고 함. 국회의원 C의 여성 편력은…….
백기호 의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뒤에 서서 내용을 읽은 보좌관은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삼키며 서진을 향했다.
누가 봐도 서진이 움직였다.
지난번의 복수를 하려는 것.
‘이 미친 새끼.’
이건 이빨을 드러낸 거다.
백기호 의원은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죄송하다고 말해! 제발!’
보좌관이 서진을 향해 다급히 눈짓했다.
시작할 분노의 끝이 어떨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진은 그 눈빛을 외면하며 한술 더 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인 후 여의도를 들쑤셨고 곧바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 정도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백기호 의원이 휴대폰을 내려 뒀다.
이어서 그 서늘한 눈빛이 서진에게 닿았다.
보좌관은 눈을 질끈 감고 이어질 호통을 기다렸다.
그런데 백기호 의원의 반응은 보좌관의 예상과 달랐다.
끌끌끌 웃기 시작한다.
정말 기분 좋게, 무릎까지 치면서.
그리고 술잔을 입에 대며 말했다.
“자네, 마음에 들어. 딸이 있다면 사위를 삼고 싶을 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