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1)>
“……기사요?”
-아직 안 보셨구나? 검사님의 가족 관계를 언급한 기사가 있더라고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의원님께서 검사님을 좋게 보고 있거든요. 아침에 기사 확인하시더니 화를 내시더라고요. 기사는 바로 내리도록 지시했으니까…….
더 듣지 않아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사를 작성한 것은 백기호 의원의 사무실.
병 주고 약 주고.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해결해 주며 영향을 미치려 하는 영웅 증후군이다.
문제는…….
‘왜?’
서진은 평검사.
백기호 의원 정도의 레벨이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치한 짓까지 하는 것을 보면.
‘김영준 총장?’
답은 하나, 놈의 목적은 김영준 총장.
조카인 서진을 회유해서 가깝게 둔다면 김영준 총장과의 싸움에서 여러 가지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서진은 통화를 종료하려 했다.
그런데 놈이 한마디를 더 붙인다.
-앞으로도 난감한 일 생기면 도와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서진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허탈하게 웃었다.
백기호 의원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유치한 장난을 왜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지금은 선전포고, 앞으로 더 심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알아서 굽히라는 협박.
‘이거 안 되겠네.’
서진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똑같이 해 줘야겠어.’
***
“식사는 하셨어요?”
“네.”
사무실에 도착한 서진은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이동영 수사관이 책상에 홍삼 음료를 올려 두며 안쓰럽게 바라봤다.
“건강 챙기면서 해요. 건강이 우선이에요.”
“그래야죠.”
“제가 가장 아끼던 두 사람이……. 어쨌든, 식사는 꼬박꼬박 챙기세요.”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을 볼 때마다 먼저 간 서준경과 아내가 눈에 밟혔다.
서진은 두 사람과 비슷하다.
서준경처럼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내처럼 밤낮없이 일을 한다.
그래서 걱정됐다.
열심히 살았던 두 사람의 마지막은 처절했기 때문이다.
서준경은 모함으로 사망했고 아내는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먼저 가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었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다.
빙긋이 웃으며 홍삼 음료의 병뚜껑을 뜯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서진은 ‘이번엔 다치지 않을게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음료를 한 번에 마셨다.
이후 노트북을 펼쳤다.
악의적으로 작성된 기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없다.
놈들의 행동은 빨랐고 백기호 의원의 보좌관이 말한 것처럼 놈들이 올렸던 기사는 싹 사라진 상태다.
‘그럼…….’
서진은 기사를 작성했던 ‘쿠코뉴스’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믿기도 어려운 가십성 연예 기사가 대문을 장식하고 있다.
말 그대로 조잡하다.
‘주소는…….’
서울시 강동구.
서진은 곧장 그 주소를 검색했다.
그런데.
‘소호 사무실?’
소호 사무실이란 상주하지 않아도 주소지만 올려놓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곳.
‘아마…….’
찾아가도 쿠코뉴스의 관계자를 만나기는 어려울 거다.
놈들은 주소지만 넣어 둔 채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찔리는 놈들의 특징이다.
‘이것들 봐라…….’
서진이 슬쩍 웃었다.
애초에 쿠코뉴스를 상대로 화풀이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그대로 재현해 주고 싶었다.
‘똑같이…….’
백기호 의원 측이 도발해 왔다.
당한 채로 가만히 있으면 놈들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것.
받은 만큼 작은 선물을 보내 주는 게 세상의 도리이며 놈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치다.
서진이 천천히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전화가 향하는 곳은 이은하 기자.
“잠깐 뵙고 싶은데요.”
-네! 저 지금 서초동에 있어요. 금방 갈게요.
이은하 기자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서진은 지검 앞 커피숍에서 이은하 기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녀의 앞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밀어 두며 서진이 물었다.
“쿠코뉴스라는 언론사가 있는데요. 혹시 아세요?”
“쿠코뉴스?”
서진의 질문에 이은하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시사를 다루는 사람, 가십성 연예 전문 언론사까지는 모르는 눈치다.
그러다가.
“잠시만요. 알아볼게요.”
이은하 기자가 휴대폰을 손에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쿠코뉴스라고 알아? 몰라? 모르면 기자 생활 끝나? 확…… 이 새…….”
욕을 하려던 이은하 기자가 서진의 눈치를 힐끗 본 후 말을 순화시켰다.
“이 새…… 그래, 이세 팀장님에게도 여쭤봐.”
-네? 이세 팀장님이요? 그게, 누구…….
“끊어. 알아보고 전화해. 10분 줄게.”
통화를 종료한 이은하 기자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세 팀장님이라고 인맥 넓은 분이 있거든요. 금방 연락이 올 거예요.”
그렇게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이은하 기자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쿠코뉴스, 지라시 직원들이 모여 만든 곳.
광고비를 목적으로 되도 않는 기사를 올리는 곳.
“그러니까 양아치래요. 기자 망신은 다 시키고 다니는데, 실체 없는 유령 회사라 알아내기 힘들 거라네요. 그런데, 왜요? 뭐 있어요?”
서진은 언제나 특종을 몰고 다닌다.
이은하 기자는 이번에도 뭐가 있는지 귀를 쫑긋했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아뇨.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서요.”
“아…….”
“그건 그렇고, 그런 비슷한 회사의 기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비슷한?”
“가능하다면, 더 은밀한 곳이면 좋겠어요.”
눈동자를 움직이며 생각에 빠졌던 이은하 기자가 손뼉을 짝 치며 입을 열었다.
“있어요!”
***
다음 날.
서진은 이은하 기자와 경기도 안양, 그 시청 앞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서진이 커피를 들고 테이블로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더니 수군댔다.
“맞지?”
“어. 여긴 왜 온 거지?”
“와, 대박…….”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행동하는 것부터 말투까지, 연예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었다.
급기야.
“저기…….”
한 사람이 테이블 앞에 섰다.
휴대폰을 꺼낸 것으로 봐서 사진을 같이 찍어 달라고 할 것 같다.
정말 연예인도 아니고.
하지만 상대도 용기내서 다가왔을 거다.
최대한 친절히 미소를 그리는데.
“이은하 기자님 맞죠?”
“네?”
“정말 팬이거든요.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 주실 수 있을까요?”
자세히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이은하 기자에게 향해 있다.
‘연예인 병 걸린 것도 아니고.’
서진은 픽 웃으며 스트로를 입에 댔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이은하 기자를 지켜봤다.
모르는 사람의 옆에 서서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를 보자 저게 프로구나 싶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떠났다.
서진은 이은하 기자와 함께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여기 오피스텔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치권 지라시를 작업하던 사람이고요. 그리고 우리 회사에 있던 적도 있고…… 또 사업장 주소지는 이곳저곳으로 흩트려 놔서 찾기도 힘들 거예요.”
서진이 손을 저었다.
과거사는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그래서 지금 뭐 하는 중이죠?”
“파파라치요. 규모는 작아요. 이제 시작하는 사업이라 월 100만 원도 수익을 올리기 힘들다고 들었거든요?”
“좋네요.”
“그럼 지금 부를까요?”
“네. 그런데…… 그분들 오면 저 혼자 이야기해도 될까요?”
“네?”
이은하 기자는 눈을 깜빡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려는 게 좀 그래서다.
하지만 잠시다.
곧 흔쾌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에게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네, 그럴게요. 아니, 지금부터 피해 있을게요. 어차피 검사님 얼굴은 알고 있을 거니까요. 괜찮죠?”
이은하 기자가 커피를 들고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조금은 멀찌감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
서진은 커피를 입에 대며 어떤 사람이 나올까 생각했다.
‘파파라치, 100만 원 수익, 주소지를 공개하지 않고 숨겨 둔 사람.’
놈은 철저히 수면 아래 있다.
남들의 신상을 캐서 돈 벌 궁리를 하는 것을 보면 비밀스럽게 숨어 탐욕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다.
서진의 마음에 꼭 들었다.
“김서진 검사님?”
그리고 서진의 앞에 한 남자가 섰다.
파파라치와 지라시를 전문으로 한다기에 조금은 거친 외모를 생각했었는데, 정반대다.
40대 초반.
깔끔한 와이셔츠에 말끔한 외모.
“성대준입니다. 이은하 기자 소개로 왔는데요.”
잠깐의 인사를 나눈 후 성대준이 서진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힐끗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이은하 기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나 봐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거물급 의원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
그 시각.
백기호 의원의 사무실.
백기호 의원이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의원님, 죄송하지만 어떤 생각이십니까?”
보좌관의 질문에 백기호 의원이 고개를 틀어 ‘무슨 소리야?’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보좌관은 백기호 의원과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이다.
하지만 저 감정 없는 눈빛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모시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사이코패스가 앞에 있다면 딱 저런 눈빛일 거다.
보좌관이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김영준 총장이 여동수 의원을 비공개 소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칫 우리까지 올라올 수 있는데…….”
백기호 의원이 끌끌 낮게 웃으며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영준은 신경 쓸 것 없어. 그 양반, 나와 같은 약점을 갖고 있거든. 칼을 겨누다가 결국은 내려 두게 될 거야.”
“네?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어. 더 알려고 하지 마.”
백기호 의원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두려웠다.
보좌관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백기호 의원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보좌관이 그 뒤를 따르며 빠르게 물었다.
“그, 그럼 김서진은 왜 신경 쓰시는 겁니까?”
“김서진?”
백기호 의원이 걸음이 뚝 멎었다. 그리고 슬며시 웃으며 느릿하게 보좌관을 바라봤다.
“검사가 옷 벗을 각오를 하면 누구라도 끌어내릴 수 있다는 말 알고 있나?”
“……!”
“그놈은 위험해. 나한테 덤벼들면 제 작은아버지가 다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 녀석이야.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드는 불나방, 그게 그놈이야. 미친 거지.”
“……!”
“그래서 지켜보는 중이야. 우리 편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싹을 짓밟든가 둘 중 선택하기 위해. 자네는 내 옆에서 그 시간을 함께했으면서도 아직 내 생각을 모르겠나?”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백기호 의원이 김서진을 신경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지라시 언론으로 겁을 주신 거군요.”
“겁을 줘?”
“아닌가요?”
백기호 의원이 황당한 눈으로 보좌관을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저벅저벅 사무실을 벗어나며 계속 말했다.
“사이비 종교에 혼자 뛰어들었던 놈이야. 살인마를 여럿 잡은 놈이고. 그런 놈이 고작 그런 기사 몇 줄에 겁을 먹어? 이 사람아, 지금 난 김서진을 시험하는 중이야.”
“……네?”
“자네 말대로 이 정도에 겁을 먹거나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이빨을 드러내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놈이지. 하지만 날 놀라게 한다면……. 가져와야지, 무슨 수를 써서든.”
보좌관은 눈을 깜박였다.
방금 전까지 백기호 의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또 아니다.
‘무슨 말이야?’
꼬리를 마는 것과 이빨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놀라게 하는 것을 원한다니.
그리고 또 무슨 수를 써서든 가지고 온다니.
‘하…….’
보좌관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지금껏 백기호 의원은 자신이 원한 것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권력과 돈, 여자 그리고 사람마저도.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됐다.
“타십시오.”
보좌관이 차량의 문을 열었다.
차량의 뒷좌석에 앉은 백기호 의원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김서진…….’
김영준 총장이 서진을 언급한 게 몇 번이나 된다.
그 냉혈한이 그 정도로 인정했다면 분명 뭔가 있다는 뜻.
그리고 그동안 지켜봤던 김서진은 분명 이용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