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지면 (2)>
“기, 김서진? 이 시간에 여기는 왜?”
이정철 검사는 당황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하지만 서진은 느긋했다.
상대가 흔들릴수록 머릿속이 차가워진다.
“그러게요. 검사님은 이 시간에 여기 왜 계실까요? 혹시…….”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시선을 틀었다.
서진의 시선이 닿은 곳은 정준우 부장검사가 있는 취조실.
동시에 이정철 검사의 눈동자가 덜컥거렸다.
확실히 느낀 거다.
서진은 모든 것을 알고 이곳에 왔다.
이정철 검사 본인이 왜 이곳에 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서진의 시선이 다시 이정철 검사에게 닿았다.
“얘기 좀 했으면 하는데요.”
이정철 검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서진은 이정철 검사보다 몇 년 후배.
마음 같아서는 박살 내고 싶다.
하지만 무리다.
서진의 뒤에는 검찰총장 김영준이 서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포식자.
그의 눈에 벗어나면 잔인하게 찢겨 죽을 수도 있다.
그럼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이정철 검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야외 휴게실.
이정철 검사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을 때, 서진이 캔 커피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게요. 몇 명이나 됩니까?”
“뭐?”
“왜 그러세요? 아시잖아요, 제가 뭘 묻고 있는지?”
정준우 부장검사의 아래에 있으며 권력의 단 꿀을 기다리는 자들, 그들의 숫자를 묻는 거다.
이정철 검사는 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은 조용히 이정철 검사를 살폈다.
‘이정철…….’
지방대를 졸업하고 검사가 된 인물.
학벌은 물론 재력도 없다.
이 악물고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지만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 우수한 대학 출신이 발이 채이도록 많은 곳.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눈에 띄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이정철 검사에게 눈에 띨 능력과 실력은 없다.
이곳에서는 그저 그런 사람이며 비주류.
부장검사 정도에서 옷을 벗어야 할 운명.
‘하지만…….’
가진 탐욕은 크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준우 부장검사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즉, 서진에게 필요한 인물이다.
먹이를 던져 주면 철저히 꼬리를 흔드는 놈.
검사가 아니라 개.
던져 주는 먹이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 이득을 위해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 놈.
서진은 이정철 검사의 목에도 개목걸이를 선물해 주기로 했다.
“야당의 여동수 의원, 정준우 부장검사님과 손을 잡은 사람.”
여동수 의원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이정철 검사는 눈을 부릅떴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잡힌 게 오늘.
어느새 수사가 거기까지 진행됐는지 이해 못 하는 표정이다.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부터 정준우 부장검사님의 움직임은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
“정준우 부장검사님은 벼랑 끝에 섰습니다. 사나운 물살에 휩쓸린 거죠. 그런데 아직 희망을 갖고 있겠죠. 지금의 험로를 지나면 국회의원의 배지를 달지도 모른다는 희망.”
이정철 검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방금 취조실에서 정준우 부장검사와 나눴던 대화, 그 내용이 서진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시잖아요? 정준우 부장검사님은 이곳이 끝이에요.”
서진이 이정철 검사의 앞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백기호 의원실에서 들어온 메시지.
백기호 의원은 여동수 의원보다 몇 단계 위의 권력자.
그쪽에서 서진에게 연락이 왔다.
“뭐, 뭐라고 했지?”
“뻔하죠.”
서진은 조용히 웃는 것으로 대답을 전했고 이정철 검사는 모든 게 끝났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서진은 아직 백기호 의원과 통화하지 않았다.
그저 메시지만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백기호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컸다.
이정철 검사가 낄낄 웃기 시작했다.
“……뻔하다?”
“네.”
“결국 사냥개?”
“네.”
“하…….”
이정철 검사는 비참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서진은 “뻔하다.”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이정철 검사의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중이었다.
계속 함께해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배신을 때려야 하나?
그 순간 이정철 검사의 머릿속에 정준우 검사의 목소리가 스쳤다.
“정철아, 내가 입 열면 너도 죽어. 이제 네가 갈 길은 나를 따르는 수밖에 없어.”
되돌아갈 길은 없다.
이정철 검사는 오랜 시간 정준우 검사와 함께했고 그 치부 역시 그대로 드러난 상태다.
서진이 허탈하게 웃는 이정철 검사의 손에 구깃구깃한 서류를 툭 올렸다.
“정준우 부장검사님이 이걸로 협박하나요?”
이정철 검사의 시선이 다급히 서류로 향한다.
담배를 비벼 끈 채 서둘러 서류를 펼쳐 본다.
“……!”
이정철 검사의 비리였다.
작은 것부터 큰 것.
돈을 받은 것부터 검사라는 지위로 남을 협박해서 얻어 낸 이득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게 터지면 끝이다.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이걸 어떻게……?”
“우습네요.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인데, 이런 걸로 협박이나 하고. 약속드리죠. 정준우 부장검사님은 이 자료에 대해 입도 뻥끗할 수 없을 겁니다. 한다고 해도 범죄자의 마지막 발악으로 느껴지게 만들어 드리죠.”
“……뭐?”
이정철 검사는 서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는 중앙지검 부장검사다.
지금 취조실에 잡혀 있다 해도 가진 권력이 갑작스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어진 서진의 말에 이정철 검사는 모든 것을 수긍했다.
“잊으셨나 봐요? 제 작은아버지가 총장입니다. 그리고 그 성격도 잘 알고 있어요. 받은 만큼 주시는 분입니다.”
이정철 검사는 멍하니 서진을 바라봤다.
이어질 말이 두려운 거다.
그리고 서진이 이강철 검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져오세요. 정준우 부장검사와 야당의 인물을 한꺼번에 입 다물게 할 증거.”
“……!”
“또 하나 약속드릴게요. 제가 가진 검사님의 비리, 안 터뜨릴 겁니다. 탄알은 총 안에 있을 때 가장 무서운 법이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정철 검사는 서진의 손을 잡지 않았다.
여전히 눈을 깜빡일 뿐이다.
서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손 잡으세요. 떨어질 보상을 생각한다면, 이제 끝이 보이는 사람과 앞으로 미래가 약속된 사람, 비교 대상도 아닌 것 같은데요.”
“…….”
“설마, 제가 나이 어린 후배라 문제가 되나요? 재밌네요, 스스로 사냥개라 칭하신 분이 벼랑 끝에 서서 사람이 되려 하다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다 두들겼으면 결정 내리세요. 정준우 부장검사님의 손을 잡고 법원에 갈지, 내 손을 잡고 정준우 목을 칠지.”
이정철 검사는 다리에 놓인 서류와 서진이 내민 손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취조실에서 의리를 지키기보다 이 기회에 총장의 라인에 속하기로.
서진이 사냥개 운운했지만 자존심 따위는 필요 없다.
앞으로의 삶이 중요한 거다.
이정철 검사가 서진의 손을 꽉 잡았다.
“녹취 파일이 있어. 여동수 의원과 정준우의 밀담이 담겨 있지. 타고 올라가면 게이트로 번질 수도 있을 거야.”
“좋은 결정 하셨습니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목표는 모든 권력을 손에 얻는 것.
그 시작은 더러운 놈들을 서진의 손으로 조종하는 것.
세력을 키우는 것이다.
***
“검사님? 검사님?”
익숙한 목소리에 서진이 눈을 떴다.
이동수 수사관이 보인다.
“아이고, 어제도 여기서 주무셨어요?”
“……몇 시죠?”
“8시 30분이요.”
사무실의 한쪽에 마련된 방, 서진은 그곳에 간이침대를 놔둔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제는 김서영을 잡느라 밤을 새고 어제는 취조실을 감시하다가 이정철 검사와 대화를 나누고.
이틀 동안 눈을 붙인 게 4시간이 채 안 된다.
“식사는 언제 했어요?”
“기억이 없네요.”
“아이고, 이러다가 몸 축나요. 나가서 국밥이라도 먹고 와요. 어서!”
“일단은 좀 씻고요.”
서진은 이동수 수사관의 잔소리를 들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피폐해진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
‘밥은 먹어야겠네.’
***
지검 근처의 국밥집에 들렀다.
자리에 앉아 뒷목을 꾹꾹 주무르고 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평소에도 가끔 알아보시는 분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게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힐끔힐끔, 이곳에 앉아서도 마찬가지.
모든 눈동자가 서진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예상하기로 어제 일 때문이다.
브리핑에서부터 정준우 부장검사를 체포하는 현장까지, 서진의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담겼고 지금도 아침 뉴스에 서진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젠장.’
서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휴대폰으로 기사나 보는 게 속이 편하다는 생각을 한 거다.
그런데.
‘하…….’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정치사회면을 뒤적거리는데, 드러난 기사의 제목이 가관도 아니다.
[외모지상주의 이제 검사까지? 김서진 검사 ‘훈훈 외모’]
[김서진 검사 ‘배우 뺨치는 슈트 핏’]
[미제 전문 검사, 일등 신랑감 등극?]
심지어 정치사회가 아니라 연예 기사에도 서진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얼굴이 붉어질 정도.
낯 뜨거운 기사를 작성한 모든 기자를 고소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계속해서 기사를 살폈다.
무슨 소리를 어떻게 했을지 궁금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기사의 하단에 이상한 제목이 보인다.
[김서진 검사는 누구? 김영준 총장의 조카, 재정건설 김준만 대표의 아들]
서진은 손가락을 움직여 기사 내용을 살폈다.
나쁜 내용은 없다.
그저 서진의 가족 관계를 죽 설명한 게 전부다.
‘이거…….’
언젠가 이런 기사가 나올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
지금은 서진의 이름이 한창 오르는 중.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처럼 욕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 내부만 봐도 그렇다.
서진의 활약이 짙어질수록 싫어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상황에 이런 기사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 반감을 가질 수 있다.
서진이 댓글란을 확인했다.
예상대로다.
비록 관심을 받지 못한 기사라 댓글은 몇 개 없지만 대다수가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
-금수저네.
└몰랐어? 유명했는데.
-검찰총장하고 혈연관계였어? 사건 몰아주기?
-하긴…… 그게 아니면 검사 하나가 저 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 다 해결된 사건에 숟가락만 올렸을걸.
└그럼, 대박 사기네?
└기어 중립 박는다.
서진의 멘탈은 몇 개의 댓글에 나갈 정도로 약하지 않다.
이 정도면 서준경이었을 때, 성폭행범으로 몰려 처먹었던 욕을 생각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하지만 서진은 계속해서 기사를 살폈다.
‘뭔가 이상해.’
댓글들이 작성된 시각을 보면 기사가 작성된 후 1~2분의 간격을 두고 주르륵 올라왔다.
마지막 ‘기어 중립’이라는 댓글만이 3시간 이후에 적혔을 뿐이다.
즉, 이 기사는 서진을 까기 위해 작성했다는 것.
댓글 역시 언론사에서 써 올렸을 게 분명하다.
서진은 스크롤을 내려 기사를 작성한 회사를 찾아냈다.
‘쿠코뉴스?’
듣도 보도 못한 언론사.
지난 기사를 검색했더니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연예인 신변잡기만을 중점으로 다루는 곳.
정치사회에 대한 기사는 전혀 없다.
‘여기서 왜?’
서진이 입술을 쓸었다.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나를 욕하면 이득을 볼 수 있는 곳. 집안 사정을 들춰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곳.’
서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빠졌다.
머릿속에 몇 가지 퍼즐이 맞춰진다.
‘야당 그리고 백기호.’
서진은 휴대폰 화면을 다시 포털 사이트로 이동했다.
그리고 방금 봤던 기사와 같은 제목을 입력한 후 검색해 봤다.
다른 언론사, 그 역시 처음 본 회사, 키워드만 따서 프로그램으로 작성된 기사가 주르륵 뜬다.
회사명은 다르지만 이 모든 기사를 ‘쿠코뉴스’라는 곳에서 작성했을 게 분명하다.
물론, ‘쿠코뉴스’라는 곳도 실체가 있는지 불확실하지만.
그때였다.
휴대폰의 화면이 바뀌며 발신 번호가 떠올랐다.
상대는 백기호 의원의 보좌관.
그놈이 전화를 걸어왔다.
“네, 김서진입니다.”
-혹시 기사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