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7화 (167/250)

<다를 게 없다 (6)>

카메라의 셔터음이 요란했고 기자들의 모든 시선이 서진에게 집중됐다.

들려올 목소리를 기대하는 거다.

그리고 인사를 마친 서진이 마이크 앞에 섰다.

“지금부터 연쇄 독살 살인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진의 낮은 목소리가 브리핑실을 울리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기자들은 침묵했고 서진의 입에서 내뱉어질 단 하나의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지금껏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독살 살인 사건.

정준우 부장검사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신마호텔에서 기자회견까지 하는 중이다.

기자들이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지며 그들은 경악했다.

피해자는 대학을 비롯해 헬스클럽과 각 봉사 활동 그리고 각 커뮤니티 사이트의 번개 등으로 잠깐의 인연을 겪은 사람들.

김서영은 그중에서 타깃을 정했고 범죄를 계획 후 피해자를 관찰했다.

“피고인은 우연을 가장해 피해자를 만났고 독이 든 커피를 내밀었습니다.”

대부분은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연을 가장해 만난 골목이라는 장소가 특별한 인연처럼 상황을 연출했고 그곳에서 나눈 잠깐의 대화는 친근함을 더했다.

게다가 착하고 예쁘게 생긴 김서영의 얼굴을 보면 어떤 의심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망한 피해자의 숫자가 열한 명.

“본 검찰은…….”

***

“꺼.”

야당의 실세 중 하나 백기호 의원의 사무실이었다.

백기호 의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동시에 텔레비전 화면이 검게 변했다.

백기호,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김영준 총장과 함께 권력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사람 중 하나.

차기 또는 그다음 대선을 노린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중이다.

그 백기호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며 어이없다는 듯 끌끌 웃었다.

“쉽게 가나 했더니, 쉬운 일은 없어.”

이번 회담이 국민을 우롱한 여당의 삽질로 기록되면 대선은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 야당의 경선이 곧 대선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김서진이란 놈이 불쑥 튀어나오며 다시 혼란으로 돌아섰다.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대선으로 가는 길이 가시밭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뒤집히고 또 뒤집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인 곳이 대선.

“정준우 저놈하고 접촉한 게 누구라고?”

이런 상황에도 백기호 의원의 표정과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이성적이며 여유로웠다.

그 모습이 보좌관은 두려웠지만 표현하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여동수 의원입니다.”

“여동수?”

백기호 의원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그 국회의원을 떠올렸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거다.

끝까지 필요할지, 아니면 버려도 상관없을지.

그리고 그 계산의 시간은 짧았다.

백기호 의원이 담뱃재를 툭툭 털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김영준이 타고 오를 거야. 그 전에 버려.”

“……!”

“여동수 아들놈이 이번에 로스쿨에 들어갔어. 알겠지만 그 입학에 문제가 많아. 아들 인생 망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은퇴하라고 해.”

보좌관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여동수 의원만 잘라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상대는 여당이 아니라 검찰이다. 놈들이 칼을 휘두르면 어디까지 피를 봐야 할지 알 수 없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보좌관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의원님, 문제는 정준우 부장검사라고 생각합니다.”

보좌관이 리모컨을 들고 다시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단상에 선 정준우 부장검사의 얼굴이 보인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있고 눈동자의 초점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궁지에 몰렸습니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궁지에 몰린 쥐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동안 여동수 의원과 통화하고 만났던 자료를 김영준 총장에게 바칠 수도 있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의원과 껄끄러운 관계.

만약 김영준 총장이 이 악물고 덤빈다면 아찔할 정도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이번에도 느긋했다.

“정준우는 네가 알아서 하고. 난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의, 의원님?”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

백기호 의원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를 그렸다.

머릿속에서는 서진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다.

지금껏 서진의 행보.

그리고 어긋남.

“이상해…….”

생각을 마친 백기호 의원이 휴대폰을 손에 들더니 꾹꾹 연락처를 찾았다.

이어서 강원지검에 있는 서진의 동기 이소희, 그녀의 전화번호에서 백기호 의원의 손가락이 멎었다.

***

그리고 대검찰청.

김영준 총장은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는 정준우 부장검사의 처참한 얼굴을 보면서.

기자들이 질문을 내던지고 있지만 정준우 부장검사는 어떤 답변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동자만 좌우로 돌리고 있는 게 전부다.

“제 그릇을 알아야 편히 사는 법인데…….”

김영준 총장이 끌끌 웃었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분명 엘리트다.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했으며 검찰에 들어왔다.

그리고 중앙지검의 부장검사라는 막대한 타이틀까지 얻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인생의 승자.

하지만 검찰은 그런 사람들만 모이는 곳.

그런 사람들의 사이에서 정준우 부장검사는 자신의 한계를 느껴야 했다.

동기들은 물론 후배에게도 진급이 뒤처졌고 그 위를 바라볼 수 없게 된 거다.

그것은 치욕이었고 망신.

그래서 그들의 위로 단번에 올라서기 위해 여의도를 꿈꿨다.

금배지를 달면 뒤처졌던 것을 만회할 수 있다고 여긴 거다.

그 결과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지금껏 쌓아 온 명예까지도.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을 때 부르르르,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서진이다.

브리핑이 끝났다고 보고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거다.

“고생했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쉬고 싶겠지만 마무리까지 해야지?”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일단 정준우부터 잡아 와. 죄명은 아무거나 같다 붙여, 그동안 해 먹은 게 많으니까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다음 일은 그 후에 지시하지.”

-네.

서진의 시원한 대답을 들으며 김영준 총장은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리고 천천히 창밖으로 시선을 틀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게 보인다.

그 바람에 피 냄새가 배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번은 했어야 할 일이야.’

정준우 부장검사 야당과 손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그들의 뒤를 캐고 있었다.

김영준 총장의 라인에도 야당 소속의 의원은 있었고 연루된 사람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정준우 부장검사를 통해 빠져나갈 수 없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면 되는 거다.

김영준 총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백기호…….”

***

중앙지검의 분위기가 들썩였다.

그 누구도 서진이 이 사건을 해결하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미제였고 게다가 기간까지 제한이 있던 사건.

그런데, 서진이 해결했다.

서진을 시기하던 검사들은 입을 다물었고 다른 검사들은 서진을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하지만 서진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시간이 없었다.

김영준 총장의 지시.

정준우 부장검사를 끌고 와라.

“그런데요. 정준우 부장검사를 데리러 가는데, 이렇게 많은 수사관이 필요해요?”

검찰의 승합차에 오르던 수사관이 묻자 서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게요.”

정준우 부장검사 하나를 잡아 오는 데 필요한 인원은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출동하는 승합차만 세 대.

그 안에 수사관들이 우르르 타고 있다.

이것은 김영준 총장의 쇼.

비리를 저지른 검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 주는 것.

즉, 자신의 지지율을 향한 노림수.

그리고 야당을 향해 정준우 부장검사와 연루된 모든 사람을 끄집어내겠다는 선전포고, 앞으로의 지옥을 예상하며 기다리라는 뜻.

서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

***

신마호텔의 입구.

검찰의 차량이 도착하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브리핑실에 있던 기자도 많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자들을 보면 그건 많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다.

외국의 유명 배우가 내한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들이 서진을 향해 일제히 마이크를 내밀었다.

“김서진 검사님! 범인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2년 동안 미제였던 사건을 어떻게 해결한 거죠?”

“경찰 인터뷰에서 검사님이 직접 쓰레기를 뒤졌다고 했는데요.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까?”

“검사님!”

서진의 뒤에는 이곳에 함께 온 많은 수사관들이 있었고 앞에는 그 이상의 기자들이 보였다.

텔레비전에 비친 서진은 거물처럼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김영준 총장은 서진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 2년 동안 못 잡은 것을 딱 잡아? 그런데 얼굴도 잘생겼어? 키도 크고? 검사니까 공부도 잘했겠네? ㅋㅋㅋ

└김서진이 누군지 잘 모르나 보네요.

└알아야 함?

└쟤 돈도 많아요. 아빠가 재정건설 김준만 대표임. 얼굴, 키, 학벌, 직업, 돈, 능력, 심지어 결혼도 안 했음. 다 가진 남자.

└ㅆㅂ 술 마시러 갑니다. 더러운 세상.

-얼굴이 되니까 영화 같네. 인터뷰하는데 뒤에 수사관들 내리는 거 보고 소름.

└저도 영화 보는 줄 알았어요.

-김서진 얼굴 나온 게 지금까지 토막 뉴스였잖아? 이제 9시 뉴스에 오프닝 가는 거냐?

└9시만 나오겠어? 모든 뉴스 지분을 차지하는 거지.

-내가 저 형 뜰 줄 알았어.

└나도, 나도.

└연예인이냐? 뜨게?

└위엣분 또 질투하신다. 저 얼굴이면 검사 그만두고 연예인 해도 인정.

-현대판 소년 탐정이네. 이 안에 범인이 있다.

└김서진 옆에 있으면 범인임.

└지나가는데 김서진 마주치면 조심해야 함. 그 주변에 연쇄살인범 있음.

그 전의 미제나 사이비 종교를 해결했을 때는 서진의 이름이 잠깐 스치는 정도, 언론은 서진이 아니라 사건과 범인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옥상에서 속옷 등이 도둑맞는다고 설치해 CCTV, 그곳에 범인 검거 현장이 정확히 찍힌 거다.

그러니까, 서진이 자살하려는 범인의 손목을 잡아채서 끌어내는 장면.

김영준 총장은 그 영상도 시원하게 공개했고 서진의 얼굴과 이름은 계속해서 언론과 포탈에 오르내렸다.

서진은 수사관과 기자들을 대동하고 정준우 부장검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기자들의 카메라는 서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해서 담는 중이다.

‘이거 부담스럽네…….’

서진은 오랜만에 긴장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워낙 많은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니 어렵다.

서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함께 걷는 수사관들도 긴장한 표정이다.

단 한 명을 잡으러 가는 길인데 깡패 집단을 터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덜컥’ 소리와 함께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앉아 있던 정준우 부장검사가 눈을 부릅뜨고 서진을 향했다.

동시에 좁은 문, 서진의 뒤에 선 많은 수사관들을 보고 버럭 외쳤다.

“뭐야…… 뭘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왔어! 씨발, 내가 살인이라도 저질렀어?”

“가시죠.”

“이 새끼야, 왔으면 혐의부터 말해!”

더 말을 섞을 생각은 없었다.

서진이 수사관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수사관들이 저벅저벅 정준우 부장검사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부장검사님, 가시죠.”

수사관들은 최대한 친절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중앙지검에서 부장검사까지 했던 인물이라 예를 지킨 거다.

하지만 정준우 부장검사는 뿌리치며 발광했다.

“놔! 이 개새끼들! 말하라고! 내가 무슨 죄를…….”

정준우 부장검사의 목소리는 곧바로 줄어들었다.

수사관들의 뒤에 있는 수많은 카메라를 본 거다.

“……지었냐고.”

서진이 정준우 부장검사를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까발려 볼까요? 뽀찌 받은 것부터 시작할까? 그러지 마세요. 가족을 생각해야죠. 내가 여기서 입 열었다가 전 국민이 알게 될 텐데요.”

정준우 부장검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뿐이다.

입술을 씹어 댈 뿐 욕설을 더 내뱉지 않았다.

그저 수사관들에 의해 비척비척 끌려 나갈 뿐이다.

방금만 해도 정준우 부장검사는 여의도로 향하는 단꿈을 안고 스타처럼 단상에 올랐었다.

눈앞에 펼쳐진 청사진만 바라봤다.

하지만 본분을 잃고 권력을 위해 달려가던 검사의 마지막 모습은 비참했다.

서진은 수사관들에게 끌려 나가는 정준우 부장검사의 뒷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봤다.

‘이제 하나.’

정준우 부장검사를 시작으로 연루된 모든 정치인의 숨통을 끊어 버릴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김영준 총장의 힘을 이용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김영준 총장 역시 끌어내린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명 소리가 울리고 고통을 느껴야 할지 모르지만, 피고름은 그렇게 짜내는 거다.

그런데 정준우 부장검사가 승합차에 오를 때였다.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시지다.

-백기호 의원실의 보좌관 박정길이라고 합니다.

김영준 총장과 반대편에 서 있는 백기호 의원에게 연락이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