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를 게 없다 (5)>
이어서 들려온 것은.
“김서영 씨? 김서영 씨?”
커피숍에서 들었던 서진의 목소리다.
김서영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오늘 있었던 일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갑자기 검사에게 연락이 왔다.
-형사가 뒤를 쫓았다.
-DNA가 검출되었다고 했다.
-다시 그 검사가 찾아왔다.
그럼, 결론은 하나다.
걸렸다.
그 미래는 뻔하다.
언론 앞에 서야 하고 세상은 자신을 욕할 거다.
물론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떨어질 형량.
10년 또는 20년, 어쩌면 무기.
자유를 빼앗긴 채 교도소에 있어야 하는 그 지옥 같은 시간.
출소 후의 삶도 문제다.
그 누구도 그녀를 받아 주지 않을 거다.
연쇄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싫어!’
***
서진이 문에 귀를 댔다.
경호원이 끝까지 김서영을 추적했고 안에서는 작은 기척이 느껴진다.
분명 안에 있다는 것.
하지만 김서영은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주할 곳은?’
머릿속으로 건물을 그려 봤지만 도주할 곳은 딱히 없다.
있다면 뛰어내리는 것뿐.
이곳은 2층이고 조금만 용기를 내면 충분히 가능하다.
서진이 옆에 선 황기승 형사에게 시선을 틀었다.
“뛰어내릴지도 모르니까 1층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단번에 서진의 말을 알아들은 황기승 형사가 “이상 있으면 바로 올라올게요.”라는 말을 내뱉으며 복도를 달려 계단을 내려갔다.
서진은 다시 문을 두들겼다.
“김서영 씨? 있는 것 다 알고 있어요.”
서진이 문에서 팔을 떼고 한숨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방심하던 서진은 문과 함께 밀려 넘어졌고 김서영이 빠르게 튀어나와 복도를 달려 나갔다.
“김서영!”
서진이 외쳤지만 김서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입술을 씹으며 있는 힘껏 달릴 뿐이다.
‘잡힐 수 없어!’
김서영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무리다.
황기승 형사가 무서운 얼굴로 김서영을 노려보며 올라오고 있었다.
밖에 서 있던 황기승 형사는 내부의 소란을 듣고 빠르게 이곳으로 향한 거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김서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복도에서는 검사가 달려오고 있다.
계단에서는 형사가 올라오는 중이다.
‘창문으로 뛰어내릴 걸 그랬어.’
김서영은 후회했다.
다급한 마음에 차분히 생각하지 못한 거다.
긴장된 머릿속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외길만 제시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김서영은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계단에서는 김서영과 서진 그리고 황기승 형사의 걸음 소리가 긴박하게 울렸다.
그리고 덜컹! 옥상의 문을 열고 김서영이 들어섰다.
옥상에는 물탱크와 각 통신사의 안테나, 건물주가 가꾸는 작은 텃밭 그리고 세입자들이 널어 둔 빨래가 보인다.
옥상의 용도는 그게 전부였다.
이곳 역시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서영이 빠르게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아찔하기만 하다.
떨어지면 죽을 거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험상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작 그만…….”
난간을 짚고 있던 김서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옥상 입구에 서 있던 황기승 형사가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말을 이었다.
“반갑다, 정말로.”
그 말이 끝이었다.
황기승 형사는 잠시 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김서영을 바라봤다.
눈과 코 그리고 입, 얼굴 전체를 지나 그녀의 모든 것.
2년 동안 그렇게도 간절히 보고 싶었던 범인.
그런데 30대 초반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성이라니.
황기승 형사가 어이없다는 듯 끌끌끌 웃었다.
“흉악한 깡패처럼 생기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아쉽네.”
“…….”
“이 나라가 외모 지상주의라 흉악하게 생긴 놈은 얼굴을 박살 내도 언론에서 칭찬을 해 주거든. 제압 중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하면 되니까. 그런데 너같이 생긴 애들은 또 달라요. 때리면 과잉 진압이라고 지랄을 해요.”
“…….”
“그러니까 부탁할게. 혹시 칼 같은 것 없어? 있으면 뽑아 봐. 칼 뽑는 즉시 눈깔을 뽑아 줄 테니까.”
황기승 형사는 진심으로 김서영이 칼을 들기를 바라며 그녀를 향해 다가섰다.
김서영은 황기승 형사와 난간 아래를 번갈아 바라봤다.
앞에는 괴물 같은 형사.
뒤에는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질 벼랑.
“왜 죽였냐?”
황기승 형사가 김서영에게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하지만 김서영은 대답하지 않는다.
“씨발, 왜 죽였냐고!”
“…….”
“네가 죽인 사람들에게는 애가 있었어! 가족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다고! 그런데, 왜!”
황기승 형사는 떠올렸다.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던 남편, 품에 안겨 우는 아기, 제발 범인을 잡아 달라고 하소연하던 군인의 어머니.
그런데 그 순간 김서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왜 죽였냐고?”
“…….”
“그냥.”
황기승 형사는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물었는데, ‘그냥’이라니.
김서영의 얼굴에는 죄책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여 놓고 정말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죽기 직전에 살고 싶어서 몸을 바르르 떨거든? 그걸 보고 싶었을 뿐이야.”
“……하나만 묻자. 정말 다 아는 사람들이었어?”
“멍청해? 아는 사람이니까 내가 준 커피를 마셨겠지.”
“다른 이유는 없었고?”
“어.”
“씨발!”
저것은 악마다.
황기승 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목을 꺾어 죽여야 한다.
반드시 그럴 거다.
황기승 형사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황기승 형사가 김서영에게 달려들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올 때였다.
모든 것은 그 짧은 시간에 벌어졌다.
김서영은 황기승 형사를 바라보다가 몸을 틀어 난간을 향했다.
남은 삶이 어떨지 뻔히 알고 있는 김서영은 거침없이 난간에 다리를 올렸고 황기승 형사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황기승 형사의 손은 허공을 쥘 뿐, 그녀의 치맛자락도 잡지 못했다.
김서영의 체중이 난간의 밖으로 실리며 그녀의 몸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이제 끝.
잠깐의 고통을 느끼며 편히 죽으면 되는 거다.
김서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김서영의 손을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잡아끌었고 떨어지던 그녀는 다시 옥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옥상 바닥을 구른 김서영이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난 긴장된 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옮겼다.
“누구 마음대로 죽으래? 넌 편히 죽으면 안 돼. 남은 죗값은 치르고 가야지.”
김서영을 끌어당긴 것은 서진이었다.
서진이 저벅저벅 김서영을 향해 다가섰다.
김서영은 부릅뜬 눈으로 서진을 바라볼 뿐,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이, 이게…….”
조금 전, 옥상으로 올라서며 서진은 황기승 형사에게 눈짓했었다.
황기승 형사가 정면을 노리는 사이 서진 자신은 물탱크 등 구조물을 이용해 측면으로 향하겠다고.
최악의 순간에 맞선 범죄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내린 결정.
그 덕에 김서영은 자신의 죗값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황기승 형사가 김서영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지만 김서영은 끝까지 멍한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이 김서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끝이야.”
김서영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떤 반항도 없었다.
조용히 황기승 형사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서진은 옥상의 난간으로 걸어가 먼 밤하늘을 바라봤다.
또 한 번 범인을 잡았다.
이번의 범인은 이유 없이, 감정 없이,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죽인 사이코패스 김서영이다.
그런데 서진의 머릿속에서는 김서영의 얼굴과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들은 권력욕만을 갖고 정치를 하려는 자들.
정준우 부장검사, 김영준 총장 그리고 각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에도 이유와 감정은 없다.
그저 자신의 욕망에 취해 칼을 휘두르고 서민의 목이 잘려 나갈 뿐이다.
‘뭐가 다를까?’
다를 게 없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 수백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라는 말이 있지만 서진에게는 그저 똑같은 살인자일 뿐이다.
서진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모두를 쓸어버리겠다고.
그렇게 건조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서진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김영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잡았습니다.”
***
다음 날, 오전 10시.
서울 신마호텔 기자회견장.
정준우 부장검사가 넥타이를 고치며 거울을 보고 있었다.
“어때?”
정준우 부장검사의 심복처럼 행동하는 검사가 슬쩍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멋지십니다.”
“멋지면 안 돼. 초췌해 보여야지.”
정준우 부장검사는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넥타이를 조금 더 느슨하게 풀어냈다.
“지금은 어때?”
대한민국 서울에 각 국의 정치인과 기업인이 모이는 회담이 이제 이 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언론은 연일 회담을 성사시킨 여당과 해당 국회의원을 칭송하는 중이다.
그리고 며칠 전, 정준우 부장검사는 야당의 국회의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금이 엿을 집어 던질 시기야. 때가 됐어.
정준우 부장검사는 한숨을 내뱉으며 품에서 쪽지를 꺼내 펼쳤다.
쪽지에는 오늘 기자들을 모아 놓고 떠벌릴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저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은 검찰의 내부적인 문제를 고발하려고 합니다.……(중략)……김영준 총장은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손을 잡았습니다……(중략)……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독살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며……(중략)……최근에는 범인으로부터 해당 회담에 참석한 타국의 정치인과 기업인을 암살하겠다는…….
약 15분가량의 메시지.
이게 터지면 여당의 지지율은 폭락할 거다.
김영준 총장은 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쪽지에 있는 내용이 전부 사실은 아니다.
대부분은 거짓.
‘하지만…….’
상관은 없다.
진실이라는 게 별것 있을까? 원래 99%의 거짓에 1%의 진실을 섞으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면 그게 진실이다.
“가자.”
정준우 부장검사가 단상으로 걸어 올라섰다.
웅성이던 기자들의 목소리가 싹 사라졌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정준우 부장검사에게 향한다.
중앙지검 부장검사의 긴급 기자회견.
그 장소는 검찰이 아니라 신마호텔 기자회견장.
이 이유만으로도 기자들은 특종이라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들이 눈을 반짝였고, 정준우 부장검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에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이어서 쪽지를 펼치며 적힌 메시지를 고스란히 읽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기자회견장은 얼음이 쏟아진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여, 연쇄살인?”
“그런 이야기 들었어?”
“쉿!”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검찰.
아니, 저것은 알 권리를 넘어 생존권에 가깝다.
청산가리를 이용한 무차별적인 살인이라니.
문제는 여당이 섞여 있다는 거다.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에 눈이 돌아 검찰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
야당과 가까운 언론사의 기자들은 노트북을 열고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쪽지에 적힌 글귀를 읽어가던 정준우 부장검사가 힐끗 기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신없이 기사를 쓰는 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됐어.’
지금의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자회견은 성공적이며 정준우 부장검사는 부조리를 파헤친 정의로운 검사로 포장될 거다.
비록 검찰에서는 쫓겨나야 하겠지만 그 뒤에 여의도가 기다리고 있다.
미래는 창대하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힘주어 계속 말했다.
“저는 이 사건이 비공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정준우 부장검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구석에 선 심복이 손으로 엑스를 그리고 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기까지 한다.
‘뭐야?’
그 모습이 불길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심복의 행동을 살피던 중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은하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부장검사님,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네?”
이은하 기자의 당돌한 목소리에 정준우 부장검사는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며 시선을 틀었다.
이은하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범인이 잡혔다고 연락이 왔어요. 중앙지검의 김서진 검사가 체포했고 특정할 수 있는 증거도…….”
정준우 부장검사는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인생 작살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
그리고 그 시각.
중앙지검에서도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들이 모인 브리핑실, 그곳의 단상에 선 것은 서진이다.
서진이 기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중앙지검 검사 김서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