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하나. -(6) >
‘장사?’
돈놀이를 말하는 거다.
예상대로 작은어머니는 친정과 연을 끊지 않았다.
심지어 사채까지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깊은 생각을 더 이어 가기는 어려웠다.
딸랑, 커피숍의 문이 열리며 작은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는 서진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너······.”
죽일 것 같은 눈빛.
하지만 서진은 당황하지 않고 넉살좋게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지금 작은어머니 오셨거든요. 바꿔 드릴게요.”
서진이 작은어머니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화 왔어요. 작은어머니가 안 계시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오셨네요.”
작은어머니가 느릿한 동작으로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그사이에도 그녀의 섬뜩한 눈은 계속해서 서진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시침을 뚝 떼고 있었다.
작은어머니가 서진의 표정을 통해 알아낼 것은 없었다.
그리고 작은어머니의 시선이 발신 번호로 향했다.
엄선주라는 아름.
작은 어머니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휴대폰을 귀에 대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통화해.”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됐다.
그리고 작은어머니는 다시 서진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쏘아 붙였다.
“내 물건에 손대지도 마.”
“네, 언짢으셨으면 죄송해요.”
서진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냉랭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찬 바람을 휘날리며 접촉 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커피숍을 떠났다.
작은어머니가 떠나는 것을 보며 서진은 곧바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던 엄선주의 연락처를 적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기록해 둬야 한다.
‘010······.’
조금씩 진실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잠시 후, 서진은 작은어머니와의 만남을 끝내고 중앙지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신호에 걸렸을 때, 강원도에 있을 이동영 수사관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의 전화.
이동영 수사관의 목소리에는 친절과 반가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 검사님. 오랜만이에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중앙지검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보는 눈이 많고 어떤 식으로든 김영준 검사장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동영 수사관에게 연락한 거다.
-말씀하세요. 뭐든 괜찮습니다.
“저희 작은어머니 성함이 엄시영입니다. 친정 쪽의 가족 관계를 알고 싶습니다.”
단순 가족 관계만 알아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과 재산 등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동영 수사관이 흔쾌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이동영 수사관과 통화를 종료하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서진은 중앙지검에 도착했다.
사무실로 올라와 업무를 보기 위해 기록물을 펼치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국제 전화, 누구인지 뻔하다.
김윤환이다.
‘미친놈.’
서진은 작은어머니에게 김윤환의 동거 사실을 알렸다.
끔찍이 아끼는 아들의 동거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작은어머니가 아니다.
작은어머니는 바로 연락을 했을 테고 김윤환은 온갖 잔소리를 다 들었을 거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거기는 새벽 아니야? 공부하려면 잠을 자야지, 왜 전화를 하고 있어?”
-야, 이 새끼야! 내 뒷조사를 해? 내가 누구를 만나······!
“비싼 돈 내고 유학 간 거니까, 열심히 공부해. 잘 자.”
서진은 뚝 통화를 종료했다.
정신 빠진 놈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리고 다시 기록물로 시선을 옮기던 서진은 문뜩 작은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채?’
작은어머니에게 연락했던 사람은 엄선주.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작은어머니는 사채를 하고 있다.
물론 직접 사채를 운영하며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아닐 거다.
‘투자 형식이겠지.’
사채는 최소 2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
불법적인 것에 손을 대면 수백, 수천 퍼센트도 기대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돈 놓고 돈 먹기.
‘미친······.’
서진이 입술을 씹었다.
아무리 그대로 검사장의 아내가 사채에 손을 대다니.
아무리 투자 형식, 수사의 손길이 뻗어도 쉽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있을 테지만, 이건 정말 미친 거다.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동영 수사관이다.
-메일로 보냈어요.
작은어머니의 친정 쪽 가족 관계가 도착한 거다.
서진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노트북을 열고 곧장 메일을 확인했다.
‘있어.’
엄선주라는 인물이 있다.
작은어머니의 동생.
직업은 무직.
하지만 서진은 속지 않았다.
엄선주는 사채업자다.
서진이 마우스를 움직여 계속 자료를 확인했다.
드러난 재산은 약 800억.
모두 건물에 박혀 있다.
이것 역시 거짓, 금과 그림 또는 차명으로 재산을 은닉하고 있을 거다.
서진은 엄선주가 가진 건물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보인다.
엄선주가 가진 건물 중 강남의 중심에 박힌 3층짜리 꼬마 빌딩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 지하층이 오랜 시간 공실이다.
그 기간이 8년.
‘말이 돼?’
일부러 세를 놓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다.
서진이 노트를 펼치고 ‘엄선주’를 적었다.
이어서 작은어머니와 안나 루의 이름으로 여백을 채웠다.
아직 안나 루와 작은어머니의 연관성은 밝혀진 게 없지만 서진은 시나리오를 하나 써 보기로 했다.
‘작은어머니의 집안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종로의 큰손으로 이름을 날렸어. 그런데, 외국계 자본이 들어온 거지.’
대한민국의 사채시장에서 종로 큰손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있다.
일본 자금이 유입되었고 그들의 손에 사채시장이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의 광고를 통해 나오는 대부 업체의 대부분이 일본계일 정도.
그리고 놈들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저축은행과 금융권을 흡수했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기업까지 넘보고 있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향하는 중이야.’
하지만 정부는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사채시장을 잡으면 서민이 급한 돈을 빌리기 어렵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면서.
서진이 안나 루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뇌물이 통한 거지.’
안나 루와 만난 국회의원이 수십 명이다.
자신의 배만 부르면 국민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자들.
그들은 돈을 받고 안나 루의 조직과 손잡았다.
그리고 놈들이 사채시장에서 힘쓸 수 있도록 뒷배가 되어 주고 있다.
‘그런데 이걸 작은어머니의 집안이 보고만 있었을까?’
서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집안의 태생이 사채업자.
탐욕스럽기로 따지면 둘째가기가 서럽다.
외국계 자본이 우리나라 국민의 등골에 빨대를 꽂는 걸 지켜만 보지 않았을 거다.
놈들과 손잡고 막대한 돈을 투자를 받아 같이 빨았을 게 분명하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서진이 펜을 툭 내려 뒀다.
‘시나리오는 여기까지.’
엄선주를 만나고 안나 루를 잡으면 안개에 가려진 숨은 진실을 볼 수 있을 거다.
* * *
며칠 후.
서진은 GA텔레콤이라는 회사의 사옥에 와 있었다.
로비에 앉아 시계를 확인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내려왔다.
국회의원의 아들 전창현이다.
그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에요? 왜, 회사까지 찾아와서 그래요?”
전창현은 권력자의 자식들 모임에 속해 있던 놈.
서진 덕에 신일승이 박살 났고 모임도 흐지부지될 판이니, 서진의 얼굴이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서진은 사람 좋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 앞에 커피숍 있던데요. 달달한 커피나 한잔하실까요?”
“우리가 커피 마실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왜? 안 마신다고 하면 그 사이비 종교 뇌물 장부인가 뭔가로 또 협박하려고요?”
서진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러자 전창현이 주변을 곁눈질로 아무도 없다는 것을 살핀 후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봐요, 검사님. 그때는 우리도 당황해서 닥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 생각해 봐요. 우리 부모님들이면 그쪽이 내는 기사 다 막을 수 있어요. 우리도 그 정도 힘은 있다고요.”
“······.”
“그리고 그쪽 작은아버지가 중앙지검 검사장님이잖아요? 우리 부모님들이랑 한배를 타고 있는데, 우리 부모님을 수사한고요? 그걸 허락할까요?”
“······.”
“그리고 우리가 검찰에 끈이 없을 것 같아요? 우리 모임에 있는 사람들의 고모부 이모부가 각 지검의 차장검사고 검사장이에요!”
조용히 놈의 말을 듣던 서진이 수긍했다.
“맞아요. 검사장님이 그깟 정치자금 조금 받았다고 한배를 타고 있는 든든한 동지를 내칠 리 없죠.”
“그걸 아는 사람이!”
놈이 치아를 꽉 깨물 때,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일단 커피나 한잔합시다. 커피는 내가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서진은 전창현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 옆을 스쳤다.
전창현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 진짜······.’
전창현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서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가 몸을 틀어 서진의 뒤를 쫓았다.
*
커피숍이었다.
서진이 커피를 내려 두자마자 전창현이 다급히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의 스케줄을 알려 주면, 그 장부를 없애 주겠다고요?”
사이비 종교의 뇌물 장부에 박제된 이름을 말하는 거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그 뇌물 장부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폭탄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작은아버지가 허락할 일도 없을 테고요. 그렇다고 이 장부가 남아 있는 게 그쪽 입장에서는 썩 마음 편한 일은 아니잖아요? 감당할 수 없는 폭탄이어도 폭탄은 폭탄, 언제 뻥하고 터지면······ 어휴, 상상하기도 싫네요.”
전창현이 마른 입술을 핥을 때, 서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서 도와주시면 시원하게 넘겨드리겠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은 제외하고 그쪽 아버지, 전유곤 의원님의 이름 만요.”
서진은 그동안 안나 루가 정치인을 만난 날짜와 횟수를 분석했다.
그리고 며칠 안에 전창현의 아버지 전유곤 의원과 접촉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창현을 통해 알아내려 하는 중이다.
물론, 전유곤 의원의 보좌관을 통한다면 더 쉽게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서진은 아직 그들과 일대일로 접촉할 급이 아니다.
전창현은 목이 타는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주변의 눈치를 슬쩍 본 후 정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아버지 이름만 삭제한다는 거죠?”
“네.”
전창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람은 놔두고 아버지 이름만 삭제된다는 것은 기회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지만, 그게 터지면 아버지 혼자만 남게 될 거다.
그럼 아버지를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될 수 있다.
‘문제는······.’
서진의 요구가 아버지의 비공식적인 스케줄이다.
전창현의 입장에서 서진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인물.
게다가 비공식적인 스케줄은 비리가 드러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다.
전창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렵겠네요. 제가 아버지 비서도 아니고 비공식 스케줄까지 어떻게 압니까?”
“약속드리죠. 이번 일에서 의원님의 비리를 알게 돼도 눈감겠습니다.”
“검사 말을 어떻게 믿어요? 차라리 지나가는 똥개를 믿지.”
놈의 이죽거리는 말에 서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의원님을 타깃으로 잡은 게 아니라 다른 놈을 확인 좀 하려는 거예요.”
“됐습니다.”
“그럼, 저는 또 협박을 해야겠네요. 제가 협박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데······ 지금은 상황이 좀 급해서요.”
“하! 또 사이비 종교의 장부? 지금껏 말했잖아요? 그거 그쪽이 터뜨릴 수 없다고.”
서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신일승이랑 붙어먹었다고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대정호텔에 장기 투숙하던데, 거기서 연예인 연습생이랑 뭘 하는 걸까요? 쎄쎄쎄?”
“······!”
전창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서진이 내뱉는 말은 자신의 이야기다.
“그, 그걸······.”
서진은 당황으로 일그러진 전창현의 얼굴을 뒤로하고 계속 말을 내뱉었다.
“모 국회의원의 아들, 호텔에 연습생 세 명을 불러 쎄쎄쎄를 하다.’이런 제목의 글이 SNS에 올라가면 어떨까요? 호텔 CCTV는 확보했으니까 가서 지울 생각은 말고. CCTV 영상 파일을 갖고 싶으면, 내 말을 따르고.”
“씨, 씨발······.”
“욕은 하지 말고 선택하세요. SNS의 스타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아버지의 비공식 스케줄을 건네주시겠어요? 저라면 속는 셈 치고 지나가는 똥개보다 못한 검사의 말을 믿어 볼 것 같은데요.”
전창현이 입술을 씹으며 낮은 목소리로 사납게 말했다.
“검사님!”
하지만 서진은 놈의 사나운 목소리를 외면했다.
선하게 웃으며 악마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전창현 씨, 약속했잖아요. 이번에 비리를 보게 되면 눈감겠다고.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뺨 맞기 싫으면 끄덕이세요.”
< 일단 하나.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