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만이 계속되면.-(1) >
* * *
한남동, 공시지가 400억의 대저택, 아파트 5층보다 더 높은 담벼락. 그곳은 신마그룹 신무학 회장의 집이었다.
신무학 회장, 버스 운송업을 시작으로 뒤늦게 재벌에 오른 케이스.
부동산 상승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땅을 사고팔며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자가 되었다고 멈추지 않았다.
다음 먹이는 기업이었다.
건설부터 자동차, 전기와 유통까지 인수와 합병.
그렇게 덩치를 키웠고 지금은 7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세월은 공평하다는 말이 있듯 신무학 회장도 나이를 먹었고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탐욕은 끝이 없다.
신무학 회장은 지금도 현역에서 뛰며 살벌한 눈으로 먹잇감을 찾고 있다.
회장에게는 신일승을 포함한 세 명의 아들과 신지연이라는 딸이 있지만 맡긴 것은 계열사 몇 개가 전부.
지금도 신마그룹은 신무학 회장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그 신무학 회장이 찻잔을 내려 두며 혀를 끌끌 찼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것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는데······.”
신무학 회장의 앞에는 신지연이 앉아 있었다.
신지연이 최대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빠, 일승이가 이솔아라는 여배우를 만나는 중에 아이돌 가수를 호텔로 끌어들였어요. 여배우는 배신당했다고 느꼈겠죠. 때리지만 않았어도 적당히 끝낼 수 있었을 텐데. 하······.”
“분위기는?”
“좋지 않아요.”
이솔아의 동정 여론이 커지며 신일승을 구속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다.
-신마그룹 불매운동 갑니다.
-이솔아가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칼까지 휘둘렀으면 살인미수 맞잖아? 구속해라!
-돈 많으면 뭐 해? 난 일당 받아 살지만 피해는 안준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저 새끼, 주가조작도 했을걸.
-맞아. 저 새끼 때문에 한강 간 사람 많음.
-구속, 구속, 구속, 구속.
└구속이 되겠냐? 분명히 질질 짜면서 ‘죄송합니다.’ 하고 풀려나겠지.
└눈물쇼에 속으면 안 됨. 무조건 구속!
└생각할수록 역겹네.
하지만 신무학 회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적당히 짖어 대다 끝날 것을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신무학 회장은 사건은 사건으로 덮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신문사와 포털 사이트 사장 놈들을 불러서 밥 좀 먹여. 그리고 적당한 것 하나 던지라고 해. 일승이에 대한 것은 한 글자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신문, 사전에서는 발생한 사건에 대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간행물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신무학 회장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오직 선전과 선동.
언론은 서민을 다룰 수 있는 도구다.
“일승이는 적당히 데려와. 내 자식을 검찰이 왜 혼을 내? 혼찌검은 부모가 해야지.”
“알겠어요.”
“그리고 일승이 잡아간 놈······.”
서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려 했다.
신지연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중앙지검에 전화해서 해결했어요, 사건에서 빼라고.”
신무학 회장의 시선이 신지연에게 틀어졌다.
“그게 해결한 거야?”
왜 유배를 보내지 않았냐는 눈빛이다.
신지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지켜보는 눈이 많아요. 정권도 마지막이 다가오는 중이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검찰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신무학 회장이 끌끌끌 웃었다.
“지연아, 검찰의 자존심을 세워 줄 필요 없어. 배고플 때를 기다렸다가 먹이를 던져 주면 알아서 꼬리 치는 게 그놈들이야. 그런 놈들에게 자존심이 있을까?”
신무학 회장은 생각했다.
강자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움직이는 거다.
다정히 대해 주면 고마운 줄 모르는 게 인간이다.
사람을 다룰 때에는 그 사정을 봐주지 마라.
“놈들에게 힘을 보여 줘. 다시는 우리 식구를 건들지 못하도록, 이빨을 뽑고 눈알을 도려내서라도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해.”
“알았어요.”
신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그 말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힘을 보여 줄 대상은 검찰이나 서진이 아니다.
발톱을 숨기고 있던 신일승이다.
신지연이 떠났다.
잠시 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던 신무학 회장이 노쇠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준태야!”
늙은 몸과 달리 목소리가 쩌렁하고 울렸다.
“준태야!”
임준태, 회장의 비서실장이다.
그가 다급히 나와 회장의 앞에 허리를 굽혔다.
“부르셨습니까?”
신무학 회장의 시선이 창밖으로 옮겨졌다.
신지연의 자동차가 차고를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신무학 회장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해야 할 일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지연이 좀 지켜봐.”
* * *
그 시각, 중앙지검.
기록물을 들고 복도를 걷던 서진이 창밖을 바라봤다.
날씨가 좋다.
돗자리를 펴고 소풍이라도 가고 싶은 날이다.
하지만 꾹 참고 일을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삶.
그런데 그때.
퍽!
누군가와 어깨를 강하게 부딪쳤다.
감정이 실려 있을 정도로 강한 힘.
몸이 비틀어진 서진이 앞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창밖을 보고 있던 잘못이 있으니 일단 사과를 하는데, 앞에 선 놈이 냉랭한 눈으로 서진을 노려본다.
서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시비를 걸기 위해 일부러 부딪친 거다.
신일승에게 용돈을 받는 한창희 검사였다.
놈이 서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찍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신 놓고 다니지?”
그 순간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펼쳐진 사이코메트리의 세상.
*
신일승의 취조실에 한창희 검사가 들어갔고 수작질을 벌이고 있었다.
“······검찰이 하는 일이 뭐야? 없는 죄를 만드는 거잖아요! 난 사냥이라고 말했어요! 사냥!”
이어서 신일승은 300억이라는 거금을 서진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신일승은 취조실을 벗어나는 한창희 검사를 향해 말했다.
“내가 시나리오 하나 줄까요? 김서진 그놈 아비가 공사판에서 일하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설 회사를 믿을 것 같아요? 아무리 깨끗한 회사여도 부실 공사로 언론 플레이하면 일단 욕부터 박고 볼걸.”
한창희 검사가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틀었다.
그러자 신일승이 실실 웃으며 계속 입을 열었다.
“부실 공사의 비리를 김서진이 막아 줬다. 어때요? 아비가 저지르고 자식이 막아 주고. 그럼 사람들이 되게 좋아하겠네.”
한창희 검사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신일승이 말을 이었다.
“레밍 효과를 믿으세요. 우리나라 국민들, 대학 졸업률이 높다고 하는데. 에이, 아니에요. 그거 다 지잡대야. 멍청해. 레밍하고 똑같아. 누가 욕하면 생각 없이 욕할 거예요.”
레밍은 ‘나그네쥐’라고 불리는 설치류다.
개체수가 급증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우두머리만 보고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놈들은 절벽을 만나도, 바다나 호수에 빠져도 계속 우두머리를 쫓아 따르며 모두 죽고 만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팩트에 대한 확인 없이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르는 집단행동을 레밍 효과라 부른다.
그리고 재정건설의 부실 공사 의혹이 터지면 사람들은 생각 없이 집단적으로 욕을 할 게 분명하다.
“검사장 눈치는 보지 마세요. 옷 벗어도 우리 회사에 취직 자리는 보장해 줄 테니까. 막말로 옷 벗으면 옆집 아저씨잖아?”
하지만 한창희 검사의 눈동자가 불안했다.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그건······ 허위 사실 유포, 또는 그런 걸로 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해외 언론을 이용해서 슬쩍 소스만 넘겨줘요. 우리나라가 망하기 바라는 해외 언론이 얼마나 많은데. 넙죽 받을 거예요. 딱 하나만 기억해요. 거짓이 진실을 이긴다. 알잖아요?”
한창희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사이코메트리가 끝났다.
서진의 눈에 살기가 흘렀다.
‘이것들 봐라?’
이 미친놈들이 시답잖은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다.
검사라는 놈이 거짓이 진실을 이긴다는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야 할 놈이 또 늘었다.
그때 한창희 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론에서 이름 좀 오르내리니까 선배가 병신으로 보이지?”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서진이 그대로 한창희 검사의 옆을 스쳐 지났다.
그러자 한창희 검사가 서진의 어깨를 콱 잡았다.
“이 새끼 봐라? 선배가 말하는데 그냥 가고 있어?”
서진의 시선이 한창희 검사에게 틀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잡은 한창희 검사의 손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창희 검사님? 신일승에게 용돈 받아서 어디에 쓰셨습니까?”
“······뭐?”
“검사 월급으로 국제 학교 학비 대기는 버겁지 않나요?”
한창희 검사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가슴이 철렁였다.
“이, 이 새끼가!”
“새끼, 새끼······. 검사가 돼서 입에 욕을 달고 다니면 되나?”
한창희 검사가 서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서진을 노려본다.
“너 지금 선배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선배는 무슨······. 돈 받고 꼬리 흔드는 개새끼지.”
서진이 한창희 검사의 손을 확 뿌리쳤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 한창희 검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창희 검사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서진이 놈의 코앞에 서서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24시간 줄게. 그 안에 증거인멸 해. 받은 돈 싹 치워. 신일승과의 통화 내역부터, 그동안 만났던 호텔의 CCTV, 그리고 우리 지검 복도의 CCTV도 지워야겠네. 마지막으로 그동안 먹고산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출처를 증명해야 할 거야.”
“너······ 너······.”
“왜?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한창희 검사가 입술을 씹었다.
그리고 신일승과 만났던 모든 상황을 떠올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진이 꼬리를 밟을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철저히 몸을 숨겼는데, 도대체 어떻게······.
서진이 냉랭하게 웃으며 한창희 검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유명한 속담도 모르시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한창희 검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서진이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1분 지났네. 23시간 59분 남았어.”
멍하니 있던 한창희 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서진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증거인멸을 시작하면 그 뒤를 쫓아다니며 먼지를 주워 댈 거다.
하지만 증거를 없애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문제다.
한창희 검사는 생각했다.
서진이 무엇인지 모를 증거를 갖고 있다고.
24시간이 지나면 그 증거만으로 자신의 목을 자를 것이라고.
서진이 가진 증거를 알면 좋을 텐데, 서진의 표정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젠장!’
그리고 서진의 얄미운 목소리가 한창희 검사의 귀에 쑤셔 박혔다.
“23시간 57분 55초. 54초. 53초. 시간 많으신가 봐?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어차피 죽을 것, 지금은 닥치는 대로 숨겨야 하지 않겠어?”
“새끼야, 두고 보자.”
한창희 검사가 서진의 옆을 스쳤다.
그리고 서진이 한창희 검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경호 말고 다른 일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
잠시 후, 서진은 취조실에서 신일승과 마주 앉아 있었다.
신일승이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구속영장은 넣었고?”
“아직.”
“잘 생각했어. 해 봤자 헛수고야. 고작 마약 몇 번 한 거랑 여자 몇 대 때린 것으로 구속? 그것도 나를?”
“두고 보면 알 일이야.”
“이제 몇 시간 안 남은 것 알지? 하루 남은 거 맞지? 그럼 나, 밖으로 나간다.”
신일승이 몸을 일으키더니 서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어서 악랄한 눈동자로 쏘아보며 험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나가면, 넌 뒈져.”
서진이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정말 황당하다는 듯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느긋하게 말했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미안한데, 구치소가 네 집이 될 거야. 이사는 교도소로 갈 테고. 아직 서른이 안 됐지? 마흔 살이 될 때, 그 기념으로 내보내 줄게.”
“미치겠네, 진짜 재밌네.”
이놈은 끝까지 나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신무학 회장을 믿고 있는 거다.
마약과 폭행으로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긴급체포로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약 28시간.
그런데 서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놈의 비서실장이 서진과 손잡았다.
비서실장을 통해 비리가 착착 쌓이는 중이다.
뇌물을 집어 먹은 한창희 검사가 헐레벌떡 달려 나가고 있다.
게다가 이두진 변호사가 주가조작으로 고소한 상태이며 이솔아의 일로 민심이 돌아섰다.
모든 화살이 신일승을 향해 쏘아지는 중.
그 모든 폭탄이 일제히 터지면 신무학 회장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무리다.
서진은 순간 궁금해졌다.
이 건방진 놈의 포장지가 벗겨졌을 때, 알몸으로 대중 앞에 섰을 때, 놈이 어떻게 변할지.
< 자만이 계속되면.-(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