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 묻은 개. -(3) >
서진의 말은 심각할 정도로 건방졌다.
하지만 강석룡 변호사와 강준호 부장판사는 그 건방짐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것, 그게 전부였다.
강준호 부장판사가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나마 다행이야. 수사관을 대동하지 않았어.’
그것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은하 기자...’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봤던 얼굴, 예능 프로그램에도 곧잘 출연하며 광고도 자주 찍는다.
‘돈에 관심이 많다는 거지.’
강준호 부장판사가 생각을 마쳤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좋아.’
강준호 부장판사가 시선을 들었다.
입술을 씹고 있는 강석룡 변호사가 보였다.
‘미친 새끼.’
방금까지 강석룡 변호사와 술잔을 부딪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강석룡 변호사의 얼굴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저놈 때문에 이런 상황을 맞이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석룡 변호사가 필요하다.
저놈의 도움이 있어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강준호 부장판사가 테이블 밑으로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강석룡 변호사의 무릎을 툭 치며 눈짓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빠져나가야지!’
강석룡 변호사가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준호 부장판사가 서진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이제 다음 차례다.
‘일단 윽박지르는 거야.’
서진의 얼굴은 순하다.
딱 봐도 공부만 하다가 검사가 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재정건설의 대표라고?’
곱게 자라 평탄한 길을 걸어온 뻔한 놈, 요즘 이런 금수저 출신의 판사와 검사가 많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어. 작은 돌부리에 치여도 허둥지둥...’
강준호 부장판사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제 서진에게 사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줄 시간이다.
“자네 누군가? 도대체 어떤 새끼가 내 앞에서 건방진 말을 지껄이고 있어!”
강준호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쩌렁거리는 소리에 이은하 기자가 흠칫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서진은 위축 대지 않았다.
조용히 그들의 앞에 마주 앉아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소개가 늦었네요. 중앙지검 검사 김서진입니다. 앞으로 두 분을 수사할 사람이죠.”
“수사? 무슨 혐의로?”
서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놓인 종이, 강석룡 변호사가 적어온 판결문을 가리켰다.
“그거, 좋은 증거가 될 것 같은데요.”
순간, 강석룡 변호사가 판결문을 손에 쥐더니 좍좍 찢었다.
이어서 다급히 접시에 올리고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였다.
활활 타는 종이를 보며 강석룡 변호사가 히죽 웃었다.
“어려서 그런가? 정말 미숙하네요. 증거가 어디에 있다는 거죠?”
“......!”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과 동시에 강석룡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설마, 이 건물 CCTV를 기대하고 있나요? 이미 처리했으니까 기대하지 마세요. 그럼, 남은 것은 기자분이 찍은 사진? 종이에 적힌 내용까지 찍히나? 아니잖아요?”
비열한 목소리가 끝났다.
동시에 강준호 부장판사가 입을 열었다.
“재판 전에 이렇게 만나서 미안하네. 그런데, 우리 둘이 친척이야.”
“...친척이요?”
“그래, 내 아들이 다음 달에 결혼하게 됐어. 그 일로 이 사람이 찾아와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는 중이야.”
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강준호 부장판사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 친구의 재판, 내가 재판장으로 나서는 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서 교체를 신청할 생각이었어. 자, 오해가 풀렸나?”
서진이 입술을 쓸었다.
그리고 강준호 부장판사가 서진의 표정을 살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주소록을 툭툭 넘기며 연락처를 찾는다.
그렇게 손가락이 멈춘 곳에 ‘백기호’ 의원이 있다.
강준호 부장판사가 서진을 향해 화면을 보이며 말했다.
“만약 오해가 풀리지 않은 것 같다면, 난 백기호 의원님께 연락할 생각이야. 이번에 국회 법사위 위원장을 맡으셨다지? 다음 정권에는 법무부 장관이 되실 거야.”
“......”
“자네, 나이가 어려서 모르는 가?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난 모든 것을 해명했고 재판부를 교체 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런데, 끝까지 망신을 줄 생각인가?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어.”
“.....!”
“서울에는 사람이 많아. 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형법이 아니라 사람 사는 법도 배워야 해.”
서진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며 강준호 부장판사가 비웃었다.
‘새끼...’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통하고 있다.
나이가 어려도 검사다.
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알고 있을 거다.
‘겁먹었네.’
강준호 부장판사가 다시 강석룡 변호사에게 눈짓했다.
‘기자 끌고 나가. 가서 돈으로 입을 막아. 천만 원이면 충분할 거야.’
강석룡 변호사도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여기는 부장판사님만 믿겠습니다.’
강석룡 변호사가 ‘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이은하 기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기자님, 잠깐 좀 볼까요? 밖에 나가..”
그때였다.
지금껏 침울하게 있던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부장판사님?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요.”
“.....!”
“백기호 의원님, 무서운 분이죠. 그런데, 죄지은 사람을 커버칠 성격은 아닌 것 같던데요.”
강준호 부장판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라?”
서진이 뺨을 긁적이며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재판 거래, 그것도 사이비 종교 교주의 형량을 장난치려는 현장이 들킨 거잖아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
“부장판사님께 백기호 의원님이 비난 여론을 감당하면서까지 움직일 가치가 있나요? 진짜 궁금하네...”
어수룩하게 말하고 있지만 도발하는 거다.
거침없는 눈빛으로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고 있다.
분노한 강준호 부장판사가 테이블을 쾅! 치며 악을 내질렀다.
“이 새끼가!”
“판사까지 되신 분이 입에 걸레를 무셨나?”
서진의 눈빛도 돌변했다.
서늘한 시선으로 강준호 부장판사를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강준호 부장판사도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증거 있어? 있냐고! 그래, 내가 여기서 변호사 만났다. 그런데, 친척이라고 했잖아! 징계 정도는 받을 수 있겠네! 그런데, 넌 어떻게 될 것 같아? 내가 가진 모든...”
강준호 부장판사가 으르렁거릴 때였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은하 기자가 손을 살짝 들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요. 증거 있어요.”
강준호 부장판사와 강석룡 변호사의 시선이 이은하 기자를 향해 홱홱 틀어졌다.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눈빛이다.
이은하 기자가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밖에 있을 때부터 동영상 촬영하고 있었거든요.”
“.....!”
이은하 기자가 카메라를 조작했다.
곧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흐른다.
-10억짜리 아파트면 며느리한테 체면은 차릴 수 있지 않을까요?”
강준호 부장판사와 강석룡 변호사의 얼굴이 처참하게 변해갔다.
빠져나올 수 없는 증거다.
재판 거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만...”
강준호 부장판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은하 기자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두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아직 현역에서 뛰어도 되겠어요.
“그만!”
강준호 부장판사가 테이블을 꽝! 꽝! 꽝! 내리쳤고 강석룡 변호사가 빠르게 말했다.
“이 기자, 돈 필요하지 않아? 돈 줄게. 어? 얼마면 될까?”
강석룡 변호사의 모습이 추했다.
그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증거를 없애야 한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얼마면 되냐고!”
“아, 저 돈 필요 없는데요.”
“어?”
“저도 나름 벌어요.”
“씨발!”
강석룡 변호사가 이은하 기자의 카메라를 확! 낚아챘다.
그리고 ‘씨발, 씨발’ 거리며 다급히 메모리 카드를 뽑았다.
이어서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더니 삼키려 한다.
그 발악하는 모습을 보던 서진이 끌끌끌 웃었다.
“애 쓴다.”
그 목소리가 불길했다.
강석룡 변호사의 눈동자가 서진을 향해 다급히 틀어졌다.
“...왜, 왜 웃어?”
“궁금한 게 또 하나 생겼네요. 메모리 카드 맛이 어때요? 춘천에서도 비슷한 짓 하는 변호사 본 적 있는데, 다들 왜 그러실까?”
뭔가 있다는 거다.
강석룡 변호사의 얼굴이 심각할 정도로 구겨지기 시작했다.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제가 하나 가르쳐 줄게요. 요즘 카메라는 블루투스라는 기능이 있어요. 버튼만 누르면 그 안의 파일을 휴대폰에 옮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난 이미 옮겼고. 그쪽은 헛수고하는 중이고.”
강석룡 변호사의 행동이 뚝 멎었다.
얼굴에 좆됐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입에서 신음만 흐른다.
“아...”
이제 끝이다.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다.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석룡 변호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정리된 것 같은데, 그만 갑시다.”
순간, 강준호 부장판사가 서진의 손을 다급히 잡았다.
그리고 무릎까지 꿇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날 잡으면, 자네 적이 많아질 거야.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 한 번만 봐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다음 달에 아들 결혼식이 있어. 그때까지만 봐주면 안 되겠나? 어? 그러면, 내가 자네가 맡은 재판은 앞으로 잘 봐줄게. 다른 사람이 자네 재판을 맡아도 내 말이면...”
하지만 서진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봐줄 마음이 없다는 거다.
강준호 부장판사가 버럭 외쳤다.
“사법부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야! 천둥벌거숭이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사법부를 적으로 돌리...”
서진이 그 말을 뚝 끊었다.
“상관없는데.”
“뭐?”
“상관없다고. 검사가 적이 많다고 무서워하면 되나? 그럼, 옷 벗어야지.”
*
그 시각, 중앙지검.
흡연실에는 수사관들이 모여 있었다.
“들었어?”
“어떤 거? 어제, 김서진 검사 칼 맞은 거? 우리 지검에서 그거 모르면 간첩이지. 몇 번을 들었는지 고막에서 피 나올 것 같... 잠깐만, 저거 뭐야?”
주차장에 멈춰선 차량.
서진이 내리더니 두 명의 남자를 질질 끌고 가는 중이었다.
수사관들이 눈을 깜빡였다.
“저거... 강석룡 변호사 맞지?”
“저쪽은 강준호 부장판사 같은데?”
*
잠시 후, 수사관들의 대화가 바뀌었다.
“야, 칼 맞은 검사가 다음 날에 판사와 변호사 잡아 온 이야기 아냐?”
“그런 미친 이야기가 어디 있어? 그런 것은 영화로 나와도 안 믿겠네.”
“김서진.”
“어?”
“김서진 검사 이야기라고. 방금 잡아왔어. 몰라?”
“대박.”
영화는 안 믿어도 서진이 했다고 하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
며칠 후, 구치소의 변호사 접견실.
“100억 쏴준다는 거죠? 선불 10억, 7년 이하 잡으면 90억? 맞아요?”
신지석의 앞에 새로운 변호사가 나타났다.
모든 변호사가 거부했고 국선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나타난 변호사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삼십 대 중후반의 남자.
신지석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는 멍청한 놈이, 아니 변호사가... 어쨌든, 그쪽은 안 그랬으면 좋겠네요.”
강석룡 변호사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다.
공판은 다가오는데 이미지만 더 나빠진 거다.
이제는 정말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10년 이상 어쩌면 무기징역까지.
그런데, 마주 앉은 변호사가 빙긋이 웃었다.
“에이, 저 아니면 변호 맡을 사람도 없잖아요? 국선이면 바로 무기 받을 거고. 험악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좋게 가죠. 제가 이래봬도 꽤 실력 좋은 사람이에요. 아시죠?”
신지석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다른 변호사를 찾아봤을 텐데, 이제 그럴 시간도 없다.
‘젠장.’
고민하던 신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케이, 그런데, 선불은 20억으로 하죠. 나한테 쏴줄 필요는 없고요. 이쪽 보육원으로 보내주세요.”
“...보육원으로 보내라고요?”
신지석이 눈을 껌뻑였다.
미친놈인가 싶었다.
*
“이두진 변호사요?”
“네.”
서진은 지검 근처의 커피숍에서 이은하 기자를 만나고 있었다.
포크로 케이크를 푹 찌르던 이은하 기자가 놀란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 분이 이번 재판을 맡았다고요?”
이두진 변호사, 주로 대기업과 싸우는 변호사다.
지금까지의 이력을 보면.
-장난감 독성 물질 사건.
-가맹점주들을 도와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를 상대로 고소.
-건설 현장 산업재해 은폐 사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특허권 침해.
약자들을 도와 승산 없는 싸움을 해왔던 사람.
이번 사건을 맡을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서진이 테이블을 툭툭 두들겼다.
‘이유가 궁금하네...’
***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지 마라!”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법원 앞은 시위를 하는 신도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사실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저들의 시위는 신지석이 구속된 후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첫 번째 공판이 있는 날, 평소와 시위대의 숫자가 달랐다.
도로를 가득 메운 그들이 ‘종교 탄압 아웃!’이라고 붉은 글씨로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절박한 목소리가 법원은 물론 서초구 전체를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 서진이 나타났다.
신지석과 서동식을 구속했고 그 변호사와 판사를 잡아넣은 놈.
부운 교의 신도들에게 서진은 악마였고 마귀였다.
“개새끼야!”
“쌍놈의 새끼!”
“악마야!”
“지옥에나 떨어져라!”
서진은 그들을 상관 않고 뚜벅, 뚜벅 계단을 걸어 법원으로 향했다.
순간, 서진을 향해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평소와 똑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어느 정도의 구형을 고민하고 있느냐, 어려움은 없었느냐.
그때, 한 기자가 빠르게 물었다.
“시위대의 시위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십니까?”
서진이 걸음을 멈춰 서서 기자를 향해 느긋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본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찍어야 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플래시가 터져 올랐다.
그리고 서진이 입을 열었다.
< 똥 묻은 개.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