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90화 (90/250)

<정말 궁금하네. -(4)>

최희준 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김영준 검사장의 눈빛은 무서웠고 최희준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때,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켜.”

최희준 검사는 다급히 몸을 틀었고 김영준 검사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 옆을 스쳤다.

그 사이 최희준 검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언제부터 있었지? 들었을까? 들었다면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죄, 죄송합니다.”

최희준 검사가 다급히 고개를 숙이자 김영준 검사장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최희준 검사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뭐가?”

“네?”

“갑자기 뭐가 죄송하지?”

“그, 그러니까...”

최희준 검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김영준 검사장이 어디서부터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잘못을 최소한 축소하는 것.

“김서진 검사를 교육 시키고 있었던...”

“희준아.”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최희준 검사는 잠시 기대했다.

‘교육할 게 있으면 해야지.’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착각은 자유다.

김영준 검사장은 시계를 풀고 있었다.

“뒷말을 하고 다니는 것은 좋아. 하지만 걸리지 말아야지.”

혹시나 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최희준 검사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순간.

빡!

김영준 검사장이 최희준 검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최희준 검사가 맞은 곳을 부여잡으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최희준 검사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평생 칭찬만 받으며 살아온 인생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만 잘하면 다들 인정해줬다.

검사가 되고 나서는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폭력적인 상황이 두려웠고 김영준 검사장이 악마처럼 여겨졌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최희준 검사를 향해 다가서며 놈의 주둥이를 콱 움켜잡았다.

“언제나 입이 문제야.”

최희준 검사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잘라 버릴까?”

“읍! 읍!”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 어떻게 나불나불 떠들고 다닐 수 있지?”

김영준 검사장은 검찰 내에서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 임관한 사람.

곱게 자란 최희준 검사와 달랐다.

“희준아, 내 눈에 띄지 마. 서진이의 사건에 관여하지 마. 만약 사건에 관여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김영준 검사장의 눈동자가 취조실을 향했다.

“참고인 또는 피고인으로 앉게 될 거야.”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들려왔다.

최희준 검사는 무릎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며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김영준 검사장이 입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빙긋이 웃으며 놈의 뺨을 툭툭 두들겼다.

“가.”

최희준 검사는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쉬지 않고 내뱉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최희준 검사가 서진을 향해 태클 걸 일은 없을 거다.

문제는.

“괜찮을까요?”

“뭐가?”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그 시선에 최희준 검사에 대한 기억은 이미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방금 폭력적인 눈빛은 증발했고 다정한 작은아버지가 되어 서진을 보고 있다.

“아뇨. 아닙니다.”

검사장의 뒷말을 하다 걸린 잘못이 있으니 다른 곳에서 떠들 수는 없다.

정강이 한 대 맞은 게 전부이니 뭐.

게다가 검사장을 상대로 헛짓거리 할 수 있는 담력도 없을 테고.

“서장이랑 관련되어 있다는 말은 뭐지?”

“아, 그냥 떠봤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떠봤다고?”

사이코 메트리에서 봤다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없다.

“어제부터 이상할 정도로 관여하더라고요. 선배의 관심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요. 그래서 지나치는 말로 던져봤는데 과민반응이네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서진의 말을 들은 김영준 검사장이 한참을 웃었다.

나름 이 바닥에서 굴러먹었다는 최희준 검사를 가지고 놀다니.

“그래, 취조는 아직 하는 중인가?”

김영준 검사장도 서진이 경찰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수사를 했고 취조를 하는지 궁금했다.

조카라는 이유도 있지만 짧은 시간에 강원도를 휩쓸어 버린 능력의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운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실력이었는지.

그래서 계속 취조하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그때였다.

지이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룸살롱 압수수색 영장 발부됐습니다.

서진이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김영준 검사장에게 입을 열었다.

“영장이 나왔다고 해서요.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복도를 달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김영준 검사장이 껄껄 웃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서진아, 넌 검사야. 검사가 가장 잘 어울려.’

*

사무실에 들어온 서진은 재킷을 걸친 후 품에서 수첩을 꺼내 착착 펼쳤다.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다.

‘진윤희...’

서준경을 성폭행범으로 몰아갔던 실무관.

지금은 커피숍에 호프집까지 차린 후 잘 먹고 잘사는 중이다.

서진은 잠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도광현과 진윤희의 호프집에 들러 그녀의 휴대폰을 잠시 훔쳤던 일.

그때 찾은 연락처가 지금 수첩에서 보고 있는 번호, 저장은 ‘자기’로 되어 있었다.

서진은 그 연락처의 주인과 진윤희가 부적절한 관계이지 않을까 의심했다.

그래서 명의를 찾아봤는데 대포폰이었다.

이후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서진은 젊었고 천천히 조여가면 흉악한 진실을 볼 수 있다고 믿어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으며 다시 이 번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사건의 끝에 연락처의 주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고 있었다.

그때, 책상에 놓인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메시지다.

-검사장님 만났지? 기분이 어떠셔?

방금 최희준 검사와 마주했을 때도 조우재 부장검사가 ‘검사장님 취조실로 가신다. 잘해!’ 이런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 덕에 상황을 잘 이용하기는 했는데.

‘왜 이리 친한 척이야?’

물론 이유는 알고 있다.

지금 조우재 부장검사는 찬밥 신세다.

김영준 검사장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지검에서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중이다.

그래서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진과 검사장의 상황을 공유하려 한다.

서진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 장단을 맞춰주는 중.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래? 다행이네.

서진은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슬쩍 웃었다.

김영준 검사장은 언젠가 조우재 부장검사를 다시 부를 거다.

더러운 일을 맡기기에 조우재 부장검사만큼 제격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상황은 많이 바뀌어 있을 거다.

최근 조우재 부장검사의 상황을 보면 춘천의 땅값이 치솟는다며 방방 뜨고 있다.

하지만 땅값이 폭락하면 그곳이 곧 지옥.

그때는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주인이다.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줄을 잡을 것이고 놈은 김영준 검사장의 눈과 귀를 가릴 선봉에 서게 될 거다.

서진은 그때를 기다리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

“검사장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요!”

그 시각, 최희준 검사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통화의 상대는 종로 경찰서 서장.

최희준 검사의 마음은 다급하기만 한데 서장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장길주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 지금 그 말을 믿는 거야?

“그럼, 아니라고요?”

-최 검사, 우리 애들 입 무거워. 자네 지금 그 탐정 놀이하는 검사한테 낚인 거라고!

최희준 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방금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다급한 마음에 생각 없이 움직였는데, 장길주 형사는 베테랑이다.

최희준 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개새끼가...’

수화기 너머에서 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서진이란 놈은 서준경처럼 보내자고. 그럼 되는 거야.

“하...”

-그리고 지금은 그 마담부터 만나. 룸살롱에 뭐가 있는지 듣고 자료나 빼돌려. 그게 우선이야.

최희준 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서진에게 낚였다고 해도 김영준 검사장까지 만만히 볼 수는 없다.

“어렵다고 했잖아요.”

-내가 의원님께 연락해둘 게.

“검사장 지시를 받았다니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최 검사, 이거 잘 못 하면 게이트로 번질 문제야. 김영준 검사장이라도 못 건드려. 그 사람 총장 달고 싶어서 정치인 눈치 보는 거 몰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움직여.

“......”

-가라고. 지금 자네가 무서워할 것은 김영준이 아니라 자네 인생이야.

협박 가득한 목소리에 최희준 검사가 이를 빠득거리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래...’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검사장 지시라 해도 그 마담을 만나야 한다.

뇌물 장부라도 나오는 순간 인생 박살 나는 것은 한순간이다.

*

“죄송합니다. 김서진 검사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취조실 앞.

직원이 최희준 검사를 막았다.

하지만 최희준 검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렸다.

“알고 있어요. 검사장님 지시죠?”

“네?”

“저 지금 부탁받고 왔어요. 김서진 검사가 압수수색을 나가면서 저 여자한테 뭐 하나만 물어봐달라고 했거든요.”

김영준 검사장쯤 되는 사람이 최희준 검사를 콕 찍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릴 리 없다.

최희준 검사는 그렇게 예상했고 예상이 맞았다.

직원이 순순히 비켜섰다.

“그럼, 수고하세요.”

최희준 검사는 문고리를 돌리며 취조실로 들어섰다.

표독스러운 눈으로 앉아 있는 마담이 보였다.

최희준 검사를 본 마담의 눈에 생기가 돈다.

최희준 검사가 마담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녹취 버튼을 꺼버리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입 모양 보이니까 고개 숙이고 대답해. 장부 있지? 어디 있어?”

“나부터 풀어줘요.”

“어디 있냐고. 지금 압수수색 들어갔어!”

최희준 검사가 사납게 물었지만 마담은 입을 다물었다.

그 장부가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야, 너 하나 살자고 지랄하다가 전부 다 뒈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말해. 어디 있어? 제발 빨리 말해 시간 없어! 압수수색을 하면 다 나온다고!”

압수수색을 떠난 지 1시간이 넘었다.

잘 숨겨 놨다고 해도 언제 발각될지 알 수 없다.

최희준 검사는 초조했지만 마담도 버틴다.

“나부터 나가게 해달라고요.”

*

그런데 취조실의 유리 벽 너머에 서진이 서 있었다.

차가운 눈으로 최희준 검사와 마담을 지켜보는 중이다.

소리는 들려오지 않지만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뻔하다.

“검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들여보냈습니다.”

직원의 목소리에 서진의 시선을 틀었다.

문 앞에서 최희준 검사를 막던 직원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탁하나 더 해도 될까요? 이것 좀 빌리고 싶은데요.”

서진이 직원의 휴대폰과 서류 봉투 하나를 손에 쥐었다.

직원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

다시 취조실.

최희준 검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마담을 윽박질렀다.

“너도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약속할게. 어디 있어?”

“몇 번 말해요! 일단 나가게 해달라고요. 그게 우선이야. 내가 지금까지 최 검사님 주머니에 넣어준 게 얼마야?”

“야! 내가 거짓말할 것 같아?”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어?”

마담의 눈에도 핏대가 섰다.

최희준 검사가 이를 악물었다.

“제발 좀 믿어라.”

그때, 취조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최희준 검사의 시선이 다급히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서진이 서 있었다.

최희준 검사가 뻣뻣해진 얼굴을 억지로 풀어내며 입을 열었다.

“야, 그렇게 보지 마.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얼굴 한번 보러 온 거...”

“장부 찾았는데.”

“뭐?”

“장부 찾았다고요.”

서진이 손을 들었다.

누런 봉투가 흔들리는 동시에 최희준 검사의 표정이 박살 났다.

“차, 찾았다고?”

서진이 최희준 검사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쪽은 조만간 피고인으로 이야기하고.”

서진이 쩍쩍 갈라지는 최희준 검사의 얼굴을 뒤로하고 마담에게 시선을 틀었다.

“잘 숨겨 놨더라?”

마담은 기겁해 있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그걸 어떻게...”

“왜? 못 찾을 줄 알았어? 최희준 씨, 많이도 드셨네요. 탈 날 줄 몰랐나?”

최희준 검사가 비틀거리며 악귀 같은 눈으로 마담을 쏘아봤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모두 마담의 잘못이라고 생각됐다.

조금만 빨리 말했다면 수사관을 이용해서라도 빼냈을 텐데.

“이 병신 같은 게! 진작 말했으면 됐잖아!”

“난 가게인 줄 알았죠! 우리 집까지 압수수색을 할 줄은 몰랐다고요!”

“뭐? 집?”

압수수색은 분명 룸살롱으로 나갔다.

그런데 뜬금없이 집이라니.

최희준 검사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을 때 서진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집에 숨겨두셨어?”

최희준 검사가 서진을 향해 고개를 확! 틀었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기는 너 진짜 좆됐다는 말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