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궁금하네. -(5)>
최희준 검사의 얼굴은 정말 볼만했다.
그 작은 실눈이 부릅떠지며 초조하게 흔들리는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궁금했는데.’
서진은 최희준 검사가 벼랑 끝에 몰리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았다.
놈의 얼굴은 시시각각 붉었다가 창백해졌다가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
최희준 검사의 눈에 힘이 확 들어갔다.
이어서 시선이 휙휙 틀어진다.
최희준 검사는 CCTV를 확인하고 테이블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녹취가 안 되고 있다.
CCTV만이 이 상황을 기록하는 중이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상은 언제든 거짓으로 꾸밀 수 있다.
-자신은 마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서진이 들어와 다짜고짜 범인 취급했다.
-선배로서 기분이 나빴다.
‘증거는 없어.’
최희준 검사의 시선이 마담에게 틀어졌다.
마담은 장부가 집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서진도 지금 들었다.
최희준 검사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충분해.’
마담의 집에 들어가 장부를 찾으려면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 한다.
서진이 움직이는 시간이면 충분히 빼돌릴 수 있다.
법은 절차가 존재하지만 악은 망설임이 없다.
법이 움직이는 순간이면 모든 일이 끝난 뒤다.
최희준 검사가 마담을 향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야, 지금 저 새끼 들어오고 했던 이야기 모두 모른다고 잡아떼. 경찰 연락처 알고 있던 것은 단골이라 저장해뒀다고 말하고. 알았어?”
마담은 최희준 검사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자 최희준 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옮겨졌다.
당황했던 표정은 사라졌다.
얼굴 전체에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미친 새끼야, 녹취 안 되는 거 몰랐어? 다른 사람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나불거려 봐. 누가 뭐라고 하나. 난 검사야. 검사가 취조실 들어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
놈의 입에서 더러운 목소리가 이어지며 서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최희준 검사가 서진을 향해 한발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하... 새끼야. 우리 없던 일로 하자. 그럼, 나도 네가 선배한테 대들고 그런 새끼란 거 소문 안 낼게. 이런 일 계속되면 너만 피곤해져.”
최희준 검사가 서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의도적인 행동이다.
CCTV 영상에 후배를 교육하는 선배의 모습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다.
최희준 검사가 픽 웃었다.
“김 검사, 표정 풀어. 자꾸 그러면 내가 나쁜 놈 같잖아.”
“......”
“그리고 선배로서 말해두는 데 이런 사건에 목멜 필요 없어. 네 실적에도 도움 안 되는 일이야. 자살한 사람 그만 편하게 놔주고... 너 표정이 왜 그래? 왜 웃고 지랄이야!”
서진이 웃고 있었다.
흐느적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 내가 웃었나? 무슨 말을 하는지 더 듣고 싶어서 참으려고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참을 수 없네.”
“뭐?”
서진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녹음 표시가 보인다.
“네가 하는 말 녹음되고 있어.”
최희준 검사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놈이 끌끌끌 웃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고맙다. 정말 고마워. 고해성사 녹음되던 거 알려줘서.”
순간 놈이 재빨리 손을 뻗었다.
‘어?’ 하는 사이 서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는다.
그리고 곧바로 취소 버튼을 눌렀다.
놈이 저장되지 않았다는 표시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됐어.’
동시에 놈은 취조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음성 파일을 취소한 것만으로 안심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휴대폰을 없앨 계획.
이곳만 나가면 모든 상황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진이 놈의 어깨를 쥐며 가로막았다.
“어디를 가?”
최희준 검사가 사나운 이를 드러냈다.
“CCTV 녹화되고 있으니까 행동 잘해라. 덤비면 좆되는 것은 너야. 생활 편하게 하려면 알아서 행동해.”
“까고 있네.”
서진이 놈의 배를 걷어찼다.
콱!
최희준 검사가 ‘컥!’ 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서진이 그 앞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어이, 마담. 잘 들어. 이건 폭력이 아니야. 난 증거물을 보존하려고 애를 쓰는 거지.”
최희준 검사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다.
“이 씨발 새끼가!”
최희준 검사가 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서진은 잔인하게 웃으며 시계를 풀고 있었다.
기다리던 상황이다.
이 새끼, 몇 대 때려야 화가 풀릴 것 같다.
그 사이 최희준 검사가 시뻘건 눈동자로 달려들었고 서진의 멱살을 쥐었다.
“뒈지고 싶어!”
놈이 주먹에 힘을 줬다.
하지만 서진이 빨랐다.
구둣발을 움직여 놈의 정강이를 가격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악!”
최희준 검사는 정강이를 쥐며 물러섰다.
그리고 놈의 판단력은 빨랐다.
서진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씨발!”
놈이 악을 질렀다.
이어서 빼앗은 서진의 휴대폰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CCTV를 보며 외쳤다.
“선배가 뭐라 했다고 그걸 녹취하고 있어! 위아래도 없는 새끼야!”
어떻게든 지금의 행동을 기록에 남기며 정당화하려 는 거다.
영화판에 나갔어도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았을 것 같다.
그 간절한 행동에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햐... 이거 진짜 대단한 놈이었네. 내가 왜 몰라봤을까?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희준 검사가 부서진 휴대폰을 손에 쥐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여유 부리지 마. 녹음은 취소됐고 휴대폰도 망가졌어. 그런데 네가 날 때린 것은 기록되겠지. 넌 끝이야!”
그때였다.
“뭐 하는 짓이야!”
벼락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서진과 최희준 검사의 시선이 문을 향해 틀어졌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 있었다.
그가 씹듯이 말을 뱉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
조우재 부장검사는 황당했다.
서진의 연락을 받고 취조실로 왔는데 피의자를 앞에 두고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가 났다니.
“설명해봐. 어서!”
최희준 검사의 입에서 애절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부, 부장검사님, 김서진 검사가 인권은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수사를 해서 지적 좀 했습니다. 그랬더니 녹취를 하고 제가 휴대폰을 뺏자 때리는데...”
최희준 검사가 말을 이어가며 마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마담이 외쳤다.
“마, 맞아요! 저 사람이 막 때렸어요. 발로 차고!”
조우재 부장검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진에게 옮겨졌다.
이건 검사장 조카라도 안 될 일이다.
서열이 확실한 검사 조직에서 선배를 구타했다는 소문이 돌면.
“김 검사! 사실이야?”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술을 뜯으며 물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놈들의 말이 거짓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김윤환이 망가졌는데 서진조차 무너진다면,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이냐고!”
그때, 서진이 품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내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툭 건넸다.
“들어보세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조우재 부장검사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옮겨졌다.
녹음 표시가 보인다.
“녹음?”
그 말과 동시에 최희준 검사의 얼굴이 쩍하고 박살 났다.
“저... 저!”
뜬금없이 또 하나의 휴대폰이 나타났다.
최희준 검사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그리고 서진의 시선이 최희준 검사를 향해 틀어졌다.
“내 휴대폰 부술 것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직원한테 빌렸어. 안심했을 때 무슨 말을 더할까 궁금해서.”
최희준 검사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벌건 눈동자에는 영혼이 없다. 절망만이 가득하다.
실이 툭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녹음된 파일을 듣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최희준 검사를 향했다.
“이거 진짜 또라이 새끼네.”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해온 조우재 부장검사에게도 최희준 검사의 행동은 충격이었다.
지금도 휴대폰에서 그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미친 새끼야, 녹취 안 되는 거 몰랐어? 다른 사람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나불거려 봐.
조우재 부장검사가 녹음 파일을 종료하며 마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무서운 목소리로 압박했다.
“야. 장부가 집에 있다고?”
“없어요!”
마담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없다고요. 장부.”
“집에 있다며?”
“잘 못 말한 거예요. 없다고 했잖아요.”
어차피 압수수색을 하면 다 나온다.
그런데 마담은 정말 강하게 부정한다.
‘왜?’
서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마담을 살폈다.
그리고 서진의 얼굴이 콱 일그러졌다.
마담이 앉은 자리, 테이블 아래에 최희준 검사의 휴대폰이 떨어져 있다.
그 소란 속에서 최희준 검사의 휴대폰을 얻어 조력자에게 메시지를 보낸 거다.
단 한 글자.
-집.
서진이 다급히 몸을 틀며 입을 열었다.
“부장검사님 죄송하지만 저 여자 집으로 압수수색 영장 좀 부탁드려요.”
“어?”
“지금 나가야 할 것 같아서요. 경찰에게... 아니에요. 제가 빨리 갈게요.”
마담의 메시지를 받은 누군가가 그곳으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부를 빼앗기면 말 그대로 도마뱀 꼬리 자르기.
그렇다고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사건이 서장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조력을 받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도 마담의 테이블 아래 떨어진 휴대폰을 봤다.
서진의 등을 치며 빠르게 말했다.
“가! 어서 가!”
***
마담이 사는 곳은 낡은 주택가의 투룸이었다.
룸살롱의 마담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모아둔 돈은 없다.
버는 족족 성형과 명품을 소비해서다.
그리고 그곳에 서진이 도착했다.
재빨리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저기.’
마담의 집은 2층, 외부 계단이 있는 주택이다.
서진은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있는 힘껏 달렸다.
곧 마담의 집 현관에 도착했고 빠르게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서진의 입에서 긴장된 숨이 흘렀다.
다행히 잠겨 있다.
아직 누군가가 오지 않은 거다.
서진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수사관을 보내 달라고 연락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
휴대폰이 없다.
직원의 휴대폰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줬고 서진의 휴대폰은 부서졌다.
대포폰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사용할 수는 없다.
‘됐어. 오겠지.’
서진이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마담의 집 문에 등을 기댔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을 테고 서진의 안전을 위해 수사관을 보냈을 거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 이곳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터벅, 터벅.
낯선 발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무시무시하게 생긴 남자가 보였다.
체구는 작지만 다부지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지저분하다.
문제는 눈빛이 정상이 아니다.
위험한 느낌이 살벌하게 흘렀다.
그놈이 서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검사.”
놈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혼자?”
서진이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러자 놈이 낄낄낄 웃으며 두 손을 맞잡아 우드득 소리를 냈다.
“뭐야, 진짜 혼자 왔어? 검사라고 하면 무서워할 줄 알았나? 그런데 어쩌지? 난 검사 그런 거 안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어차피 맞으면 살려달라고 할 거잖아? 어?”
놈의 말투가 외국인처럼 어눌했다.
귀를 후비며 서진을 향해 다가섰다.
“그런데 검사를 죽이면 얼마나 받으...”
그때, 계단에서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놈의 시선이 뒤로 틀어졌다.
네 명의 남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덩치만 봐도 곰 같은 자들, 딱 봐도 경찰은 아니다.
깡패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은 놈을 죽일 것처럼 쏘아보고 있다.
놈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순간 놈의 귀에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경찰 죽인 놈들을 상대하는데 내가 혼자 다닐 것 같아? 그럴 리가 없잖아.”
놈의 시선이 서진을 향했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다.
서진이 놈을 향해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경호원이야.”
“거, 검사가 무슨 경호원을...”
“아, 나 돈 많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