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 못할 숙제. -(1)>
하지만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서진의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고 팔뚝에 핏줄마저 솟아있다.
“대답해!”
이곳은 서준경 검사와 나쁜 놈 잡아 보자며 만들었던 공간.
하지만 서준경 검사는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이동영 수사관 혼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진윤희의 정보를 기록해 두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
익숙한 모습으로 방에 앉아 수첩에 적었던 내용을 공책에 옮겨 적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진이 찾아왔다.
이동영 수사관의 눈이 일그러졌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이동영 수사관의 눈을 보는 순간 서진은 정말 바보 같은 고민을 했다.
‘내가 서준경입니다. 라고 말할까?’
이동영 수사관이라면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
모든 것을 밝히고 진하게 소주 한잔 하고 싶은 욕망.
하지만...
‘안 돼.’
그런 말을 지껄인다 해서 믿을 사람이 아니다.
만약 믿으면 이동영 수사관이 이상한 거다.
게다가 정의로운 검사 서준경은 죽었고 서진의 목표는 달라졌다.
단지 나쁜 놈들을 잡는 게 아니라 그 힘을 빼앗을 생각이다.
세상에 좋은 것은 다 나쁜 놈들이 가지고 있다.
힘없고 돈 없는 자의 외침은 동네 똥개가 왈왈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서준경 검사님이 가르쳐줬어요.”
서준경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이동영 수사관의 눈동자가 덜컥거렸다.
서진이 그 눈을 살피며 계속 말했다.
“그게 아니면 제가 여기를 어떻게 알겠어요?”
“네, 네가 서준경 검사를 어떻게 알아!”
“로스쿨 다닐 때 강연 오신 적이 있어요. 그때 인연이 되었는데, 일단 이것부터 좀 놓고...”
이동영 수사관은 눈을 찌푸렸다.
과거를 기억하면 서준경 검사는 곧잘 대학에 특강을 나갔었다.
그때마다 학생들이 열의가 넘친다며 칭찬했던 기억도 난다.
‘사실이라고?’
하긴 그게 아니면 이곳을 알아낼 수 없다.
이동영 수사관이 손에 쥔 힘을 스르륵 풀었다.
서진이 목을 잡고 콜록거리자 이동영 수사관이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해보세요. 로스쿨에서 만났다고요? 어떤 사이죠?”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데 짧게 말씀드릴게요.”
서진이 헝클어진 와이셔츠를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길게 변명할수록 허점만 드러난다.
진실은 없고 짜깁기한 말이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주요 부분만 찍어 이야기했다.
-작은아버지가 김영준 검사장이다.
-난 김영준 검사장을 잡고 싶고 그걸 우연히 서준경 검사가 알게 되었다.
-죽기 전에 나를 찾아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계속 수사를 이어가 달라는 게 서준경 검사님의 마지막 부탁이었어요.”
“그,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서준경 검사님 입 무겁잖아요. 조카가 제 삼촌 잡겠다고 난리 치는데 그걸 어디에 이야기하겠어요?”
이동영 수사관이 눈을 감았다.
믿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서진은 김윤환을 유배 보내려 하고 바닥에 깔린 사진 역시 놈을 저격하고 있다.
믿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서진이 쐐기를 박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수사관님이 뭘 하시는지 입 다물고 있을게요.”
이동영 수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
삐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잠시 밖으로 나갔던 이동영 수사관이 들어왔다.
손에 들린 것은 소주 한 병이다.
“뭐예요?”
서진이 물었지만 이동영 수사관은 대답이 없다.
김영준 검사장의 기록물을 쌓아두고 그 위에 휴대폰을 올렸다.
휴대폰에 서준경 검사의 사진이 보였다.
이동영 수사관은 물끄러미 서준경 검사의 사진을 바라봤다.
정말 그리운 것처럼...
그러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하...”
담배에 불을 붙여 휴대폰 앞에 내려뒀다.
담배 연기가 향처럼 흔들거릴 때 술잔을 소매로 슥슥 닦는다.
이어서 술을 채우더니 서준경 검사의 사진을 향해 건배하듯 잔을 내밀었다.
“드세요.”
그리운 친구에게 하듯 한 마디.
그 술잔을 휴대폰 앞에 내려두며 서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작은아버지든 뭐든 박살 내달라는 말이다.
서진은 그 말을 알아들었고 대답했다.
“그러죠.”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이동영 수사관의 눈이 부릅떠졌다.
‘또?’
또 서준경이 겹쳐 보인다.
아니, 서준경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진과 서준경의 관계를 알았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또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진짜 미쳤나.’
이동영 수사관이 얼굴을 벅벅 비볐다.
***
김영준 검사장이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58분이 지났어.’
서진이 강원 지검의 계획을 알아 오겠다며 떠난 게 벌써 58분이나 지났다.
‘1시간 내로 온다더니.’
사실 1시간이란 시간 안에 뭔가를 알아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서진 스스로 정한 시간이다.
‘아직은 모자란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하는 놈은 큰일에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을 더 주지.’
서진은 아직 어리다.
게다가 가족이다.
김영준 검사장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달리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했다.
‘이제 1분.’
그때였다.
서재 문이 열렸고 그 소리에 김영준 검사장이 몸을 틀었다.
눈이 커진다.
서진이 서 있었다.
급히 달려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연다.
“알아 왔습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시간 안에 약속을 지켰다.
김영준 검사장의 입가에 점차 미소가 번졌다.
“알아 왔다고?”
*
서진과 김영준 검사장이 마주 앉았다.
서진이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휴대폰에는 김윤환의 사진이 들어 있다.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은 휴대폰을 보지 않고 툭, 뒤집는다.
‘뭐지?’
서진이 눈을 찌푸리며 시선을 들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쪽의 조건대로 사건 이관과 윤환이를 동남군으로 보내지.”
“......!”
김영준 검사장은 휴대폰 안에 뭐가 있는지, 강원도에서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관심 없었다.
그저 서진의 실력을 보고 싶었던 거다.
김영준 검사장이 다리를 외로 꼬며 말을 이었다.
“서진아, 서울로 와.”
“......!”
“여기서 일 배우다가 윤환이 복귀하면 함께 해. 윤환이가 너를 끌어주고 넌 윤환이를 밀어주고. 윤환이가 총장하고 넌 그 책상을 물려받고.”
김영준 검사장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서진이 서준경으로 있을 때도 보지 못했던 미소.
그래서 서진은 더 환한 미소로 허리를 굽혔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만.”
즐거운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김영준 검사장의 입에서 갑자기 브레이크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입을 열었다.
“이 짧은 시간에 또 발령받아 서울로 오는 것은 무리가 있어. 사람들은 빽이라도 썼나 생각할 거야. 나쁜 평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지. 하지만 굳이 여지를 남길 필요도 없어.”
김영준 검사장이 몸을 일으켜 커피 머신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며 말을 잇는다.
“춘천에서 접으려는 사건이 하나 있어.”
서진이 밖으로 나간 1시간 동안 김영준 검사장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강원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확인했다.
그리고.
“방치된 폐가, 그 아궁이에서 유골이 발견됐지. 여섯 달 전에 행방불명된 이십 대 여성이야.”
“......”
“살해당한 것은 분명한데, 용의자는커녕 증거조차 나타나지 않았어. 사실상 수사가 종료되는 거지.”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의 앞에 커피를 내려두며 다정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해결할 수 있겠어?”
정말 미친놈이다.
몇 달 동안 탈탈 털었지만 증거 하나 없는 사건을 해결하라니.
놈은 서진이 이 숙제에 실패했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서진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그것만 해결했으면 눈치 안 보고 널 데려왔을 거야. 업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넌 실패했고 난 널 서울로 올리기 위해 무리를 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말 잘 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개소리를 내뱉을 게 분명하다.
놈은 서진과 김윤환이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놈이 원하는 것은 김윤환이 서진의 고삐를 잡는 것.
유치하지도 않다.
하지만 서진도 바라는 바였다.
놈은 서진의 실패를 확신하고 있지만.
사건을 해결하면 김영준 검사장의 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서진이 커피잔을 손에 들며 환하게 웃었다.
“네, 작은아버지.”
서진은 커피를 입에 댔다.
능력이 있어도 빽없고 힘이 없어 인정 못 받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서진은 그럴 이유가 없다.
김영준 검사장은 원치 않겠지만 그 손으로 서울행 티켓을 전해줄 테니까.
이제 그 힘을 거부하지 않을 거다.
김윤환이 동남군으로 이동하면 따까리 노릇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계획을 이용하며 탐욕적으로 꿀꺽하면 된다.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지세헌 부장검사의 방은 지진이 난 것처럼 떠들썩했다.
“김윤환이 동남군에 간다고!”
“대박!”
“찌라시 하나에 김영준이 물러선 거야? 푸하하하!”
승리는 언제나 기분 좋은 법이다.
그것도 강원 지검의 형사 2부라는 작은 조직이 김영준 검사장의 입에서 항복을 받아냈다.
이들의 환호성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서진은 지세헌 부장검사의 앞에 섰다.
모두가 떠나고 둘만 남은 상황.
지세헌 부장검사가 볼펜을 빙글 돌리며 서진을 바라봤다.
“왜?”
“춘천 폐가 사건을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지세헌 부장검사가 돌리던 볼펜이 뚝 멎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진을 향했다.
“...그건 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피해자의 신원은 밝혀졌지만 그게 끝이다.
어떤 흔적도 없는 완전 범죄.
즉, 검사의 이력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 깡치 중의 깡치다.
실패했다는 주홍글씨처럼 평생을 따라다닐 거다.
“그런데 그걸 왜 하려고 그래?”
“해보고 싶습니다.”
지세헌 부장검사가 볼펜을 똑딱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서진은 동남에서 몇 번이나 깡치를 해결한 사람.
이번에도 ‘혹시?’라는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실패하면 창창한 앞길에 똥 덩어리가 던져질 수 있다.
위로 올라가려면 도움 되는 사건만 해결하며 유능한 것처럼 조작돼야 한다.
지저분한 이력은 한계가 명확하다.
지세헌 부장검사 자신처럼.
그래서 반대하려고 했는데, 서진의 눈동자가 진지하다.
“허락해주십시오.”
지세헌 부장검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하나 약속하자. 네 이름으로 사건을 올리지 않을 거야. 실패했을 때를 생각해봐. 네 이력에 평생 남을 일이야.”
“......”
“하지만 사건 해결이 눈에 보이면 그때는 네 이름에 올려주지.”
실패해도 문제가 없다.
지나치게 감사한 조건이다.
서진은 바로 허리를 굽혔다.
지세헌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리라고 생각하면 빠져. 괜히 시간 빼앗기지 말고.”
“알겠습니다.”
지세헌 부장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진의 어깨를 두들겼다.
“미안해서 이러는 거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김윤환은 네 친척이잖아.”
김윤환, 고맙게도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많다.
서진이 폐가 사건을 손댄다는 소문이 지검 전체를 휩쓰는 것은 금방이었다.
어디를 가도 기대와 우려 섞인 목소리가 한 가득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은 더 커지는 거야. 증거 없다며? 만용이고 나대는 거지.
-그래도 동남에서 미제를 몇 번이나 해결했다며?
-운이 계속되겠냐? 그리고 동남에서 밀어줬다는 소문도 있어. 난 내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안 믿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새끼 말하는 거 보니까 실패하기를 바라나 보네. 너보다 잘 생겼다고 질투하지 마.
-저놈은 운 50, 빽 50이야. 만약에 성공하면 내가 밥 산다.
-김서진한테?
-어!
오랜만에 만난 이명수 부장검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스타는 스타네. 흡연실 가면 다 네 얘기야. 그런데, 신경 쓰지 마. 기대해서 저러는 거니까. 그런데, 자신은 있고?”
“글쎄요. 퇴근하고 현장에 가볼 생각입니다. 가면 뭐라도 있지 않겠어요?”
“없을걸? 경찰 애들이 쥐 잡듯이 쑤셨는데 머리카락 하나 안 나왔어. 걔들이 없다면 없는 거야.”
경찰청 과학 수사과가 현장을 확인했지만 이명수 부장검사의 말대로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해봐야죠.”
하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며 세상에 완전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진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명수 부장검사가 낄낄 웃었다.
“거기 흉가로 소문난 거 알지? 밤에 가면 귀신 볼 텐데. 처녀 귀신 나와서 장가나 갔으면 좋겠네.”
이 사람이 진짜... 악담을 하고 있다.
***
그날 밤.
서진은 현장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약초 캐는 노인이 살았고 그 노인이 죽고 난 뒤에는 방치되어 폐가가 된 곳.
“으스스하긴 하네.”
밤에 와서 그런지 좀 무섭긴 했다.
하지만 서진 역시 죽었다 깨어난 몸.
용기를 내서 천천히 현장으로 걸었다.
부엌은 큰 아궁이가 존재했다.
옛 시골에서 볼법한 모습이다.
서진은 쭈그리고 앉아 아궁이 안을 살폈다.
저곳이 유골이 발견된 곳이다.
‘왜 남겨둔 거지?’
가장 먼저 든 의문이다.
이런 식의 살인을 저지른 놈은 유골을 가만두지 않는다.
땅에 묻어 더 완벽한 범죄를 계획한다.
‘그런데 왜?’
서진은 혹시 사이코 메트리의 능력이 발현될까 싶어 부엌의 이곳저곳을 만져봤다.
하지만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원할 때 딱 나오는 힘이 아니라 가끔은 답답하다.
통제할 수만 있다면 김영준 검사장의 서재에 들어갔을 때 능력을...
‘어?’
그 순간이었다.
부엌 옆에 있는 방문에 손을 대는데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사이코 메트리가 시작된 거다.
*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두꺼운 점퍼를 입은 남자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내려왔다.
부엌에는 김장할 때 쓰는 비닐이 쫙 깔려있다.
남자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