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57화 (57/250)

<계획이 틀어지면. -(1)>

***

“술 냄새... 어제 누구랑 마신 거야?”

진영이 책상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서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어젯밤을 떠올렸다.

“하...”

도광현과 3차까지 마셨다.

뭔 놈의 술을 물처럼 마시는지 억지로 들여보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퍼붓고 있을 거다.

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몇 시야?”

“11시. 해장국 끓여놨으니까. 가서 먹어.”

서진은 방을 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님께 가볍게 인사 후 식탁에 앉았다.

황태해장국과 깍두기가 보인다.

진영이 마주 앉으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먹어봐.”

진영이 직접 끓인 거다.

호텔에서 파스타를 만든다고 하는데.

“맛있네. 전공 바꿔. 한식으로.”

속이 시원해지는 게 지난번 먹었던 파스타보다 훨씬 맛있었다.

진영이 기분 좋게 웃는다.

“그럴까?”

“깍두기도 네가 한 거지?”

“응.”

“당장 바꿔. 재능을 살려야지. 나중에 한식 세계화의 일등 공신으로 이름 날릴 것 같은데?”

두 형제가 낄낄대며 농담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진영의 옆에 앉으며 서진을 빤히 바라본다.

“왜 그렇게 보세요?”

“혹시 만나는 여자 있어?”

뜬금없는 질문에 서진이 콜록콜록 기침했다.

“...여자요?”

“어.”

“없으면 한번 만나볼래?”

검사라는 타이틀만 가져도 선 자리가 쏟아진다.

그런데 서진은 재정 건설 대표의 아들에 준수한 외모까지 갖춘 엄친아다.

뚜쟁이들이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괜찮은 사람 있던데. 전 장관님 딸이라고 하거든? 얼굴도 예쁘다고 들었어.”

어머니는 적극적이었다.

거기에 무심한 척 텔레비전만 보던 아버지도 한몫 거들었다.

“한번 만나봐. 부담 갖지 말고 가볍게.”

서진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진윤희의 성폭행 고소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은 목표에 집중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것을 손에 쥐면 전 장관의 딸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거절하면 이런 대화가 계속 오갈 것 같았다.

“딱 한 번만 만나볼게요.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강조한 거다.

하지만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내가 손주 장가가는 것은 볼 수 있으려나?”

서진의 결혼을 넘어 손주의 결혼까지 생각하는 중이다.

그때였다.

드르륵.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한정아 검사에게서 온 메시지와 링크.

-찌라시 나왔어.

서진은 곧바로 링크를 터치했다.

휴대폰 화면이 넘어갔고 찌라시 내용이 드러났다.

-여배우 병에 걸린 A양은 매니저와 겸상 안 하기로 유명.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집안까지 좋은 B를 만남.

두 사람의 모습이 특급호텔에서 자주 목격된다는 화끈한 소문.

관계자에 따르면 A양은 벌써 혼수를 알아보는 중.

하지만 B는 A양과 결혼할 생각이 없음.

-유명 연예 기획사가 권력자 집안의 B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B는 집안 배경과 화려한 말발을 내세워 막 성인이 된 연습생을 호텔로 데려간다고.

기획사는 B의 아버지가 무서워 말도 못 하고 속만 까맣게 타는 상황.

모두 김윤환에 대한 거다.

이어서 인기 남자 배우와 룸살롱을 드나든 것.

그들과 단체로 술을 먹고 난잡한 파티를 즐긴 것 등 더러운 내용이 열 개 정도 이어졌다.

물론 일반인은 봐도 그 대상이 김윤환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대한민국 권력자가 한둘이 아니고 김윤환 같은 평검사는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이걸 김윤환이 본다면?

‘돌아 버리겠지.’

서진은 휴대폰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날 저녁.

서진은 강원도로 떠나기 전에 김영준 검사장의 집에 들렀다.

김영준 검사장은 보이지 않는다.

“서진이 왔니?”

작은어머니가 건조한 목소리로 인사할 뿐이다.

“잘 계셨어요?”

“어.”

작은어머니는 이상하다.

김영준 검사장과 김윤환은 적어도 눈앞에서 적대적인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낸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김윤환의 방으로 올라가는 서진을 잡고.

“잠깐만, 윤환이가 너 대신 뒤집어썼다며?”

“네?”

“너희 지검에서 있던 일이라고 들었어. 그거 윤환이가 수습하다가 혼났다며?”

여전히 건조한 말투지만 눈은 쏘아보고 있다.

서진이 대답하지 않자 그 옆을 스치며 굳이 한 마디를 더 내뱉는다.

“윤환이한테 사과해.”

웃기지도 않는다.

사건은 김윤환이 훔쳤고 제멋대로 날뛰다가 이 지경으로 치달은 거다.

하지만 서진은 감정을 숨겼다.

“알겠습니다.”

서진은 김윤환의 방으로 올라갔다.

김윤환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서진이 들어왔지만 얼굴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다.

“형.”

서진이 다정하고 안쓰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윤환이 한숨을 내뱉으며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왜 왔어? 구경하러 왔냐?”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얼굴은 검게 멍들었고 입술은 터져 있다.

김윤환이 얼굴을 쓸어 만지며 입을 열었다.

“내가 회사에 마스크 쓰고 다녀. 쪽팔려서.”

“그걸 왜 가져가서...”

“우연이라고 했잖아. 내가 사건이나 훔쳐 가는 그런 양아치로 보여? 그리고 결과를 봐. 내가 다 뒤집어썼잖아? 넌 고마워해야 해 새끼야.”

김윤환은 자신이 피해자라 생각하며 당당하다.

오히려 서진을 윽박지르고 있다.

작은어머니의 태도나 김윤환이나, 그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욕이라도 확 내뱉고 싶었지만 서진은 표정을 감춘 채 의자에 앉으며 괴로운 사람처럼 한숨을 내뱉었다.

“형도 들었지?”

“뭘?”

“강원 지검에서 나 난처한 거.”

서진이 강원 지검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은 김윤환도 들었다.

그건 미안했는지 놈이 창문을 열고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넌 안 맞았잖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리던 김윤환의 표정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문제?”

“어.”

김윤환이 코웃음을 쳤다.

“중앙지검 똘마니가 강원지검장 아들 멱살 잡고 구속시킨 것보다 더 큰 문제야?”

김윤환에게는 지금이 최악이었다.

더 큰 문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서진의 표정이 불안했다.

김윤환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뭔데?”

“이거 형이니까 이야기하는 거야. 내 입에서 나갔다는 거 비밀로 해야 해. 가뜩이나 왕따당하고 있는데 알려지면 정보까지 팔아먹은 놈 되는 거야.”

“알았으니까 말해봐.”

서진의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처럼 낮아졌다.

“조용준 검사장이 보복을 준비하는 것은 알지?”

조용준 지검장의 이름이 나오자 김윤환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놈은 대단한 빽이 있다.

“야, 겨우 그거야? 됐어. 아버지가 언론사 사장들 만나 술잔 돌렸어. 조용준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들 살인 때문에 가뜩이나 이미지 안 좋은데 누가 도와주겠냐? 움직여봤자...”

“찌라시는 가능하잖아.”

김윤환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진이 그 표정을 살피며 최대한 안타까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형이 어떻게 노는지 조사했나 봐. 원래 그걸 언론에 터뜨리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찌라시에 보낸 것 같아.”

“내가 노는 걸?”

“링크 보냈어. 읽어봐.”

김윤환이 허겁지겁 휴대폰을 찾아 손에 들었다.

초조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긴다.

적나라한 내용에 눈이 부릅떠졌고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떤 새끼가.”

김영준 검사장은 찌라시를 무시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각 찌라시 회사에서 날아오는 문서가 책상 한가득.

거짓과 진실을 가리면 숨어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찌라시를 보는 순간 당장 그 주인공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다.

아는 것보다 더 문란하게 생활하는 아들의 참모습에 분노할 게 분명하다.

그 순간 서진이 기름을 끼얹었다.

“그래도 B군 이런 식으로 나와 있으니까 형인지 모르시겠지?”

“이거 만든 회사가 어디야? 알아봐. 연락해서 지우라고 하면 돼. 월요일에 아버지 책상에만 안 올라가면 되는 거잖아?”

“형, 나 지금 따돌림당하는 중이야. 이거 알아내는 것도 힘들었어.”

서진은 완곡히 고개를 저었지만 김윤환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빨리 알아봐!”

“어려워. 이것도 겨우 알아낸 거야.”

“씨발!”

김윤환이 휴대폰 주소록을 검색했다.

이어서 함께 문란한 파티를 즐겼던 배우의 전화번호를 찾는다.

그리고 통화가 연결되었는지 방을 서성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해? 야, 네가 불었지? 너지! 네가 아니면 그걸 누가 알아!”

놈은 끝까지 남 탓이다.

정말 한심한 모습이지만 모든 것은 서진의 계획대로 되고 있다.

‘무리수를 두겠지.’

김윤환은 김영준 검사장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할 거다.

지금도 박살 난 상태인데 이것까지 김영준 검사장이 알게 되면 맞은 곳 또 맞을지도 모른다.

김윤환은 서두를 것이고 가진 권력을 악용할 거다.

서진과 강원 지검의 형사 2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넌 동남군이야.’

거기에 서진의 계획은 하나 더 있었다.

김윤환이 동남군에 유배당하면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은 서진에게 향할 거다.

김영준 검사장은 검찰총장 그리고 그 위를 노리는 사람.

검찰에 남아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즉, 서진을 밀어줄 거다.

물론 겉모습만 그렇다.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을 이용하는 거다.

훗날 김윤환이 복귀했을 때 서진에게 줬던 힘을 빼앗아 김윤환에게 넘겨줄 계획을 세우며.

하지만 서진은 받은 권력을 내뱉을 마음은 절대 없다.

모두 씹어 삼킬 생각이다.

그런데.

“뭐 하는 거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목소리가 들렸다.

김윤환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고 서진의 시선은 목소리를 향해 틀어졌다.

언제 들어왔는지 김영준 검사장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아, 아버지...”

김윤환이 통화를 종료하며 김영준 검사장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 영혼은 없다.

얼마나 겁을 집어 먹었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조용히 손을 내민다.

“가져와.”

김윤환이 비틀거리며 김영준 검사장의 앞으로 다가가 휴대폰을 건넸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김영준 검사장은 감정 없는 눈빛으로 김윤환의 휴대폰을 살폈다.

찌라시를 읽던 김영준 검사장이 분노했다.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예상하건대 단체로 난잡한 파티를 즐겼다는 내용일 거다.

그리고.

빡!

김윤환의 얼굴에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악!”

김윤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잡고 고통스러워할 때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이어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렀다.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

서진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방문이 기다렸다는 듯 스르륵 닫혔다.

김영준 검사장은 아마 시계를 풀고 있을 거다.

그리고 방 안에서 김윤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버지!”

*

김영준 검사장의 서재는 전체가 책으로 가득했고 중앙에 회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서진은 책을 툭툭 만지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알게 되며 김윤환에게 무리수를 기대하는 계획은 엎어졌다.

그런데 서진의 표정은 여유롭다.

계획이 무너지면 새로운 판을 깔면 된다.

애초에 또 다른 계획이 머릿속에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재의 문이 열리며 김영준 검사장이 들어왔다.

김영준 검사장이 풀었던 시계를 손목에 차며 테이블의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서진을 보며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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