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56화 (56/250)

<과거, 현재. -(2)>

이동영 수사관은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을 느꼈다.

김서진의 행동과 눈빛을 보며 서준경 검사를 떠올린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하다.

김서진의 얼굴에 서준경이 겹쳐 보인다.

‘도대체, 뭐야...’

이동영 수사관은 자신이 ‘이제 진짜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다.

서준경은 죽었다.

직접 장례까지 치렀다.

아니, 그 전에 상대는 서준경이 아니라 김서진이다.

그 순간이었다.

김서진의 얼굴에 서준경의 표정이 사라졌다.

무서웠던 눈빛이 온화해지더니 김서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밝은 얼굴로 입을 연다.

“어? 여기서 뵙네요.”

*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이동영 수사관은 이 골목 저 골목을 수첩에 의지한 채 두리번, 두리번.

그러더니 한 곳에서 멈춰 섰다.

골목에 몸을 숨기고 힐끗힐끗 뭔가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서진이 그 뒤에 섰다.

그런데.

‘지, 진윤희?’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저주스러운 얼굴.

진윤희, 그녀는 서진이 서준경이었을 때 실무관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서준경을 고소했었다.

-중앙지검 서준경 검사 실무관 성폭행.

모든 것은 거짓, 심지어 제대로 된 증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진실에 관심이 없었다.

일관적인 진술과 진윤희의 눈물이 증거라며 서준경을 검찰의 치욕으로 지목했다.

서진의 머릿속에 그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녀는 울며 말했다.

-서준경 검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난 검사야. 네가 신고한다고 치자. 누가 믿어줄 것 같아? 네가 뭐라고 떠벌려도 난 다 덮어버릴 수 있어.’ 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서준경 검사가 무서웠고...

누가 시켰는지, 어떤 사주를 받았는지 몰라도 진윤희는 서준경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 중 하나.

서진은 지금 당장 진윤희에게 달려가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싶었다.

그때,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의 눈빛을 느꼈다.

그가 멍하니 서진을 보고 있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강원 지검으로 유배 받은 후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며 조용히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이러고 있다니.

미칠 정도로 고마웠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 여기서 뵙네요.”

눈을 깜빡이던 이동영 수사관이 곧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검사님은 여기 어쩐 일이세요?”

“집이 근처라, 서울 올라온 김에 한 바퀴 돌고 있었죠. 수사관님은요?”

“아, 제가 중앙지검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오랜만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럼.”

이동영 수사관은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서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다급히 자리를 떠났다.

서진의 시선이 이동영 수사관의 뒷모습을 향했다.

지켜보는 서진의 눈빛이 씁쓸하다.

‘이제 그만 하세요.’

이만큼이면 됐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이 위험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서준경의 죽음은 잊고 자신의 삶을 살며 딸 성아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서준경의 복수는 서진이 할 생각이다.

반드시.

그리고 이동영 수사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서진의 눈동자가 진윤희에게 틀어졌다.

씹어 먹을 눈빛으로 진윤희를 노려보며 서진은 도광현의 전화번호를 찾아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디야?”

-아, 뭐예요? 갑자기 사라지고.

“미안. 이쪽으로 올래? 술 한잔 하자.”

서진의 시선이 진윤희의 호프집 입간판으로 향했다.

‘안주를 시키면 소주가 100원.’이라는 광고가 보인다.

그것을 보며 서진이 말을 이었다.

“소주가 100원이래.”

-와... 70억 있는 분이 지금 100원짜리 소주를 마시겠다고요? 30살 먹은 양주를 마셔도 모자란 데? 경제라는 것은요. 부자가 돈을 써야 돌아가는 거예요. 몰라요?

“됐고. 와라.”

서진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내려뒀다.

*

오래지 않아 도광현이 도착했다.

서진은 곧바로 몸을 틀었고 목표는 진윤희의 호프집이다.

도광현은 ‘진짜 소주예요?’라며 구시렁거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뒤로는 별말 없이 서진의 뒤를 쫓았다.

“어서 오세요.”

진윤희가 인사했다.

당연하지만 진윤희는 서진의 얼굴을 모른다.

그녀는 반가운 인사로 서진을 맞이하며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리고 메뉴판을 내려두며 입을 말했다.

“정해지면 말씀해 주세요.”

진윤희의 외모는 꽤 예쁘고 목소리마저 친절하다.

살짝 웃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서진은 그녀의 추악한 모습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행동 모두가 역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꾹 참는다.

가면을 벗기고 박살 낼 때를 기다려야 한다.

서진도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바로 주문할게요.”

서진은 치킨과 계란말이를 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테이블에는 소주 3병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도광현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주말농장을 하며 물 대신 소주를 마셔서 강해졌다나 뭐라나.

어쨌든, 도광현이 계란말이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왜 자꾸 광현아, 광현아. 이름을 부르는 겁니까?”

뜬금없는 말에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이름이 도광현이잖아? 개명했어?”

“아, 진짜... 내가 형이잖아요?”

도광현이 주섬주섬 신분증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탁 올려뒀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입을 연다.

“저는 서른한 살. 프로님은?”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도광현에게 진실을 말했다.

“사실 난 나이가 많아. 마흔 살이 넘었어.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야.”

서진의 껍데기는 28살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마흔이 넘은 서준경이 앉아 있다.

그래서 진실을 말했는데 도광현은 믿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믿는 게 이상한 거다.

“하하... 그렇게까지 형한테 반말하고 싶은 거예요?”

“원래 나이 그런 거 신경 안 쓰잖아? 돈 많고 힘 있으면 형이라며?”

“...어떻게 알았어요?”

“서준경 검사님께 들었다니까.”

도광현이 술잔을 손에 쥐더니 ‘그 양반, 어디까지 이야기한 거야. 하긴 70억 있으면 형이기는 하지.’하며 중얼거렸다.

서진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주 하나 더 시킬까?”

“오돌뼈요.”

냉큼 대답한 도광현은 넙죽넙죽 안주를 집어 먹었다.

서진은 도광현과 술을 마시면서도 진윤희를 관찰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같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가끔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도 내쉰다.

그 사이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이 착착착 놓였다.

그리고 다음 주 있을 총선에 대비해 각 진영의 봉사자들이 들어와 명함을 놓고 갔다.

이어서 진윤희가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서진이 도광현을 향했다.

“여기 가게 주인.”

서진의 낮은 목소리에 도광현이 눈을 반짝였다.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거다.

도광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진이 입을 열었다.

“휴대폰을 잠깐 빌리고 싶은데 가능할까?”

서진은 검사다.

저렇게 말할 때는 이 술집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도광현의 시선이 진윤희가 앉아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 분홍색 케이스의 휴대폰이 눈에 보인다.

“저거요?”

“어.”

도광현이 고개를 틀어 가게 전체를 살폈다.

눈빛은 진지해졌고 목소리는 침착하다.

“CCTV도 없네요. 그럼, 쉽죠.”

도광현이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더니 소매마저 걷었다.

누가 봐도 취객.

“제가 계산할게요.”

도광현이 손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진윤희가 들어왔다.

“가시게요?”

“네.”

도광현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비틀비틀 진윤희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진윤희에게 카드를 건네는 순간 테이블을 잡으며 와당탕탕! 넘어졌다.

진윤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곧장 도광현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아이고, 안 취했어요. 안 취했어. 괜찮으니까 계산해주세요.”

진윤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딱 봐도 취했다.

혀는 꼬였고 다리도 풀렸다.

허우적대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진윤희가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제가 정리할게요.”

“죄송합니다.”

도광현이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진윤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 사이 진윤희의 휴대폰은 도광현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

밖으로 나온 도광현은 유즈얼 서스펙트의 한 장면처럼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보였던 행동을 기억하면 정말 반전 같은 움직임이다.

그리고 서진과 도광현은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편의점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서진이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두자 진윤희의 휴대폰을 만지던 도광현이 입을 열었다.

“잠겨 있는데요.”

“줘봐.”

서진이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패턴으로 락이 걸려 있다.

하지만 서진은 그녀의 패턴을 알고 있다.

바뀌지 않았다면.

‘Z.’

서진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휴대폰의 잠금이 풀렸다.

서진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남자 친구.’

진윤희가 인상을 쓰던 것은 남자 친구와의 대화다.

-어디에요?

-왜 연락 안 받아요?

-이럴 거예요?

-계속 이러면...

싸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윤희의 연락을 남자 친구가 무시하는 모양이다.

‘별 내용 없고.’

서진은 주소록을 확인했다.

몇 개 되지도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없다.

아버지, 어머니, 알바생 그리고 친구, 친구, 친구...

그런데, 순간 서진의 머릿속에 진윤희와 남자 친구의 대화가 스쳤다.

‘이럴 거예요? 계속 이러면?’

수상하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남녀의 대화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협박성 메시지처럼 여겨진다.

서진은 다시 남자 친구와의 대화를 살폈다.

‘이상해.’

대화가 길지 않다.

주로 진윤희가 먼저 연락하고 남자는 ‘아니.’, ‘괜찮아.’ 등의 답문으로 대답하고 있다.

그 외에는 진윤희가 메시지를 보내면 남자가 곧장 전화를 거는 것 같다.

저장된 이름은 유치하게도 ‘자기.’

서진은 남자 친구의 연락처를 찾아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툭툭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생각에 빠졌다.

‘혹시라도...’

서진은 진윤희와 남자의 관계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닐까 의심했다.

‘놈은 돈 있고 힘 있는 놈이겠지. 스폰인가?’

놈이 진윤희에게 호프집을 차려줬을 거다.

그리고 그 끝에 서준경 검사의 죽음을 사주한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진윤희는 휴대폰을 잃어버려서는 안 돼.’

유출이 됐다고 판단되는 순간 놈은 모든 흔적을 지우고 진윤희를 버릴 거다.

생각을 마친 서진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이제 돌려줘.”

“네? 가져다주라고요? 다시? 훔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내가 언제 훔치라고 그랬어? 잠깐 보고 싶다고 그런 거지.”

도광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서진의 눈빛이 서늘할 정도로 진지하다.

도광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가져다주고 올게요.”

도광현은 휴대폰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비틀대는 취객으로 변해 술집을 향해 걸었다.

문제는 없을 거다.

-넘어지면서 제 것인 줄 알고 들고 왔어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또 올게요.

이렇게 말하면 가볍게 넘어갈 일, 지금 도광현은 완벽한 취객이다.

실제로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고.

*

그 모습을 이동영 수사관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수첩을 펼치며 펜을 들었다.

‘김서진...’

이상한 놈이다.

김영준 검사장의 아들 김윤환과 사촌이면서 그쪽을 공격한다.

뭐, 거기까지는 사촌 간의 감정싸움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있는 놈의 자식들이 법정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오랜 시간 지켜봤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윤희를 파고 있다.

도무지 뭔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 새끼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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