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0화 (10/250)

<환생 검사. -(8)>

“피고! 조용히 하세요!”

“아아아악!”

판사가 법대를 내리쳤지만 우수진은 멈추지 않았다.

“피고!”

“난 안 죽였어! 안 죽였다고! 믿어줘!”

“경위! 끌어내세요!”

법정 경위가 달려와 우수진을 끌어냈다.

우수진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비명을 질렀고 발버둥을 쳤다.

“아아아악!”

우수진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녀가 떠난 법정은 태풍이 할퀴고 간 것처럼 적막했다.

판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10분간 휴정하겠습니다. 검사, 증거 채택 여부는 10분 후에 결정하죠.”

세 명의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서진도 이정우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구상진 뿐이었다.

‘젠장.’

그 잠깐 사이에 구상진의 얼굴은 검게 변해 있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입술은 바짝 말라 갈라져 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우수진을 봤고 확실히 느꼈다.

‘망했어.’

이번 재판은 일방적인 폭력과 같았다.

변론은커녕 한 마디도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끝나버렸다.

문제는 그 상대가 신분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라는 거다.

고객들은 능력을 의심하며 외면할 테고 회사에서도 그의 책상은 없어질 거다.

하지만 구상진은 포기 하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그는 벼랑 끝에 몰려서도 자신이 살 길을 고민했고...

‘찾았어.’

구상진의 눈이 빛났다.

그의 시선이 피고인석을 향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우수진을 상상하며 냉혹하게 중얼거렸다.

‘죽을 거면 너 혼자 죽어. 난 안 죽어!’

***

“검사, 그리고 변호인 앞으로 나와 주세요.”

10분 후, 재판이 이어졌다.

돌아온 우수진은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으로 멍하니 있었고 구상진 변호사는 한숨을 크게 내뱉으며 판사의 앞에 섰다.

판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 휴대폰을 증거로 채택할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시작하세요.”

서진은 들고 있던 휴대폰의 음량을 이들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설정했다.

그리고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낯선 남자의 음성이 흘렀다.

-치긴 쳤어. 그런데, 아, 아직 숨 쉬는 것 같아. 어쩌지? 기다릴까? 기다리면 죽을 것 같은데... 아, 씨발. 누가 보면 어떡하지? 야, 우수진! 3억이다. 알았어. 확실히 죽여줄 게. 그러니까 잊지 마.

판사는 물론이고 구상진 변호사도 마른 침을 삼켰다.

우수진의 이름이 나왔고 약속된 액수가 밝혀졌다.

이건 확정적이다.

서진이 구상진 변호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변호인은 아실 겁니다. 이 목소리는 장동익의 음성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전에 약속된 증거가 아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공판에서 거부되는 것일 뿐, 다음 공판에는 증거로 채택될 게 확실하다.

구상진 변호사가 대답하지 않자 서진이 다시 물었다.

“정석대로 하시겠습니까?”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다음 공판까지 반박 자료를 만드는 게 정석이다.

때로는 증거자체를 무효화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구상진 변호사는 정석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인정하겠습니다.”

구상진 변호사는 이 사건을 포기했다.

그는 지금부터 ‘이 사건이 교통사고인 줄 알았습니다.’라고 우길 생각이다.

‘그래야 살 수 있어.’

이 재판에 패배하면 고객을 잃는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까지 잃을 수는 없다.

방송에 나가 얻는 수익마저 포기하면 말 그대로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

구상진 변호사는 털레털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자 판사가 입을 열었다.

“증거로 채택하겠습니다. 그럼, 검사 계속하세요.”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우수진의 앞에 서서 냉랭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피고인, 이 휴대폰이 누구 것인 줄 알고 있습니까?”

우수진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봤다.

“...내 동생 것이라면서요?”

“어떤 게 녹음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우수진은 대답하지 않았고 서진은 녹음 재생 버튼을 꾹 눌렀다.

-목숨 좆나 질기네. 아직도 안 죽었어. 하... 수진아, 돈 생기면 뭐 할 거냐? 가방? 이 상황에 샤넬을 갖고 싶다고? 너 진짜 미쳤구나? 난 3억 있으면...

장동익의 목소리가 법정을 채웠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진짜... 죽을 때 까지 기다린 거야?”

“저거 또라이네.”

“동생 죽이고 그 돈 받아 샤넬을 산다고?”

그때였다.

“씨발!”

한 남자의 설움 섞인 목소리가 법정을 흔들었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공장 점퍼를 입고 있는 남자, 사망한 우수경의 남편이었다.

그가 우수진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핏발선 눈동자로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사람이냐고!”

가난한 살림, 애들 밥 좀 먹여 보겠다고 집을 떠나 공장을 전전했다.

하지만 운이 좋지 않은지 월급이 밀리고 회사가 무너지고...

그래도 아내는 씩씩했다.

“그깟 돈 없어도 괜찮아. 우리 행복하잖아. 그러니까 그만 돌아오면 안 돼? 내년부터는 함께 있자. 애들도 아빠가 필요해. 내가 더 열심히 일할 게.”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했다.

고생하는 것 뻔히 알면서 옷 한 벌 못 사줬다.

“죽어! 씨발!”

법원 경위가 달려드는 남편을 붙들었다.

“놔! 놓으라고! 제발...”

우수진의 시선이 천천히 남편을 향했다.

그녀가 건조한 눈빛으로 남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뻔뻔했다.

“수경이가 죽은 것은 다 네 잘 못이야.”

“...뭐?”

“왜 떠나 살았어? 왜 돈을 못 벌어? 그러니까 보험에 들었지. 널 못 믿으니까 내 이름으로 걸어 둔 것이고! 다 네 잘못이야!”

“씨발!”

그가 우수진에게 달려들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경위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바동거리며 밖으로 끌려가야 했다.

“놔! 제발! 제발!”

한 맺힌 목소리에 법정은 숙연해졌고 그 적막을 깬 것은 판사의 입에서 흐른 한숨이었다.

판사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는 오랜 시간 법정에 있었지만 이런 시끄러운 재판은 많지 않았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변호인, 반대신문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하지 않겠습니다.”

판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1차 공판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공판은 10일 후 오후 2시에 하겠습니다.”

재판부가 서둘러 떠났고 법정에는 방청객들의 긴장된 숨이 토해졌다.

서진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구상진 변호사가 노려봤지만 상관하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보따리를 챙겨 몸을 틀었다.

재판이 끝나고도 변호사와 신경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서진은 복도를 걸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잠깐 사이에 꽤 많은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먼저 이정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

증거를 가져다 준 게 고마워 밥이라도 사주려 했는데 뭐가 바쁜지 떠나 버렸다.

서진은 계속해서 휴대폰을 만졌다.

다음 메시지는 이명수 검사다.

-끝났으면 전화해.

서진은 통화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검사님. 막 끝났습니다.”

-그래? 실수한 것은?

이명수 검사는 재판을 방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서진이 베테랑 변호사인 구상진을 상대로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딱 그것이었다.

그리고 서진도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결과가 나오면 다 알게 될 일이다.

“실수는 없었...”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서진이 멈칫거렸고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셔터를 눌러댔다.

서진의 얼굴을 향해 플래시가 쏟아졌다.

“교통사고에서 청부 살인의 의혹을 찾아낸 게 검사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신 거죠?”

“첫 사건이라고 들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

서진의 아버지 김준만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치며 집에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시선은 아버지의 손으로 향했다.

신문이 가득하다.

아버지가 저렇게 신문을 가지고 들어올 때의 이유는 언제나 하나였다.

파업이나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 등 큼직한 문제가 터졌을 때다.

아버지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자 새끼들...”

“당신은 괜찮은 거예요?”

“검사...”

“네? 검찰 문제면 서방님께 부탁해서...”

“됐어. 검사장이 이런 문제 해결할 사람도 아니고. 에이.”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문 하나를 쫙 펼쳤다.

메인은 정치권의 이야기로 한 가득이다.

아버지는 말없이 한 장을 넘기고 두 장을 넘겼다.

종이 펄럭이는 소리가 초조하게 들릴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꽉 닫힌 입술과 찌푸려진 눈매가 보였다.

어머니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꾹 참았다.

불안한 얼굴로 아버지의 설명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신문을 넘기던 것을 멈추고 작은 단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소리 내서 읽어봐.”

어머니가 작은 글자를 또박또박 읽었다.

“교통사고로 위장될 뻔 한 동남군 살인 청부사건. 두 아이의 엄마는 한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김서진 검사는 작은 단서에 의심을 품고...”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봤다.

“이게 뭐예요?”

“뭐긴? 우리 아들 이름이 신문에 나왔잖아. 김서진.”

“네?”

아버지가 두툼한 신문을 손바닥으로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내 아들 이름 새겨진 신문은 죄다 사 왔지. 이게 석간인데, 내일 조간도 전부 살 거야. 정 비서 시켜서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도 전부 인쇄해 두라고 했어.”

“다른 문제가 있던 게 아니었어요?”

“문제지! 우리 아들 얼굴 나온 신문도 있어! 잘생긴 내 아들 중매한다고 뚜쟁이 연락이 엄청나게 올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푸하하하!”

***

그 시각, 동남군 지청.

법원에서 나온 서진은 본청에 들러 이명수 검사의 심부름을 한 후 이제야 지청에 도착했다.

첫 공판을 잘 끝낸 만큼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한다.

그동안 도움 받은 수사관, 실무관, 이명수 검사에게 줄 커피를 사서 캐리어에 담은 후 엘리베이터에 탔다.

서진은 사무실이 있는 6층을 누른 후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동안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건 뭐였지?’

오늘 아침 이정우와 차를 타고 법원에 갈 때였다.

서진은 이정우의 전화 통화를 들으며 흑백의 세상을 보게 됐다.

그동안 서진은 흑백의 세상에 대해 ‘사이코메트리처럼 어떤 물건을 만졌을 때 튀어 나온다.’ 정의 내렸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물건을 만지는 게 아니라 관련 이야기만 들어도 튀어나오나?’

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생각을 멈춰야 했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얻을 답도 없기는 하다.

곧바로 사무실로 향해 문고리를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잘했어!”

까칠한 이명수 검사가 서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옆에서 실무관과 수사관이 짝짝짝 손뼉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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