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5화 (5/250)

<환생 검사. -(3)>

***

며칠 후, 늦은 밤이었다.

서진은 사무실에 남아 실무관이 건네 준 자료를 읽고 있었다.

‘사망자의 이름은 우수경. 나이는 41세.’

남편과는 7년 동안 떨어져 살았다.

사실상 이혼 상태.

아들이 둘, 한 명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또 한 녀석은 유치원생이다.

여자 혼자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밤 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

사건 당일, 일하는 횟집에서 작은 회식이 있었다.

사장에게 택시비를 받았지만 돈을 아낀다며 걸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그 부분을 읽었다.

‘회식, 돈을 아낀다며 걸어가다가 교통사고...’

생각에 빠졌던 서진은 서류를 봉투에 담은 후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향하는 곳은 여자가 일하던 횟집이다.

잠시 후, 횟집 앞에 서진의 차가 멈춰 섰다.

겨울밤의 횟집은 한산하다.

여름이라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영업 끝났습니다.”

“검찰입니다.”

서진이 신분증을 내밀자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경 씨 일 때문에 오셨죠? 경찰은 봤어도 검찰은 또 처음 보네요. 앉아요. 앉아.”

서진이 테이블에 앉았고 사장이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벗으며 맞은편에 자리했다.

서진이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그날 회식은 즉흥적으로 한 것입니까? 아니면 미리 공지했습니까?”

“회식이요? 며칠 전부터 이야기 했죠. 아무래도 다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택시비를 주셨다고요?”

“네, 뭐...”

“얼마 주셨어요?”

“10만원이요.”

“택시비로는 조금 많지 않나요?”

사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택시 안 탈거 알고 있었어요.”

“안 탈 것을 알고 있었다고요?”

“수경 씨가 웬만한 거리는 버스도 안탔어요. 그 돈이면 애들 과자를 사준다면서 악착같이 돈 모으던 사람이에요.”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요?”

“네. 세상 흉흉하다고 해도 끝까지 걸어가던 사람이에요. 한번은 내가 강제로 태웠거든요? 그랬더니 코너 돌아서 내리고 걸어갔습니다. 그날 그냥 택시 탔으면 지금도 웃으면서 일하고 있었을 텐데요. 에휴...”

사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진은 지금 들은 말을 간단히 정리했다.

-회식은 공지되어 있었다.

-피해자는 늦은 시간에도 걸어 다닌다.

-살해를 계획했다면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

횟집에서 나와 운전석에 앉은 서진은 다시 자료를 넘겼다.

‘피해자의 언니 우수진, 나이는 45세. 미혼.’

시장에서 삼겹살집을 하고 있다.

가게의 규모는 15평.

장사는 잘 안 되는 편이며 최근 일수에도 손을 댔다.

드러난 빚은 1억 2천만 원.

‘빚. 그리고 사채...’

서진은 자료를 한 장 더 넘겼다.

이번엔 가해자의 정보가 나온다.

‘이름은 장동익.’

피해자의 언니와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해당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120명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서로 알고 지냈을 확률이 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로 이사했고 폭력 전과 2범이다.

‘최근 출소를 했고...’

3천만 원의 빚이 있으며 작년 8월 이 지역으로 다시 이사 왔다.

‘언니와 가해자가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어.’

통화 기록에 겹치는 부분이 없다.

‘동네가 작아서 오며 가며 얼굴은 봤을 텐데.’

서진은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피해자는 1년 3개월 전 생명 보험에 들었다.

보험금은 10억, 자신이 죽어도 두 아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대비를 한 거다.

그런데, 수익자가... 언니다.

서진은 눈을 찌푸리며 서류를 탁 덮었다.

검사는 진실을 찾는 사람이다.

때로 그 진실은 징그럽고 더러울 수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탐욕스럽고 징그러운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

-내 상대가 네 밑에 있는 애더라. 김서진, 맞지? 잘 가르치고 있어?

“남의 집 교육 신경 쓰지 말고 끊어.”

-너처럼 안 되게 해야지. 똑같이 만들래?

“야...”

-끊는다. 가서 시간 남으면 얼굴이나 보고 밥이나 먹자.

통화가 끊겼다.

탁.

휴대폰을 내려둔 이명수 검사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일정한 리듬으로 볼펜을 똑딱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김서진.”

서진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이명수 검사가 쫙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데뷔 전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네.”

“교통사고지? 어떤 것부터 확인해야해?”

“12대 중과실, 특히 이번 사건은 블랙박스 동영상 분석과 제한 속도에 따른 전방주시의무 위반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로교통공단에 의뢰해서 분석서를 받아야 합니다.”

“받았어?”

“사고지점으로부터 53.2m에서 73m 전에 제동했어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고 분석됐습니다.”

“분석했더니 어땠어? 전방주시의무 위반이야?”

“급커브길이지만 도로가 넓고 트여 있습니다. 운전에 집중했다면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

“네.”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답은 잘 하네.”

이명수 검사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평소에는 사나웠는데 지금은 상당히 부드러웠다.

그 이유는 방금 통화했던, 그러니까 서진의 상대 변호사 때문이다.

이명수 검사와 그 변호사는 검찰 동기였다.

같은 대학을 나왔고 사법 연수원을 함께 했지만 두 사람이 추구하는 길은 달랐다.

이명수 검사가 법에 따라 움직일 때 놈은 권력자를 대변하는 정치 검사가 되었다.

그 결과 놈은 월급 많이 받는 변호사가 되었고 이명수 검사는 유배지에 처박혔다.

그런 놈이 방금 전화를 해서 속을 뒤집어 놨다.

놈을 상대해야 하는 서진의 기를 꺽을 수는 없었다.

“첫 소환 조사지?”

“네.”

“그쪽 변호사가 검사 출신이야. 선배라고 주눅들지 말고 기선 제압 단단히 해.”

“알겠습니다.”

“됐어. 그럼 계속 일 봐.”

이명수 검사는 서진이 준비한 자료를 확인해 줄까 하다가 말았다.

단순 교통 사고였고 방금 답변을 들어보니 쟁점이 될 부분은 알아서 잘 체크하고 있었다.

“잘 해.”

“네.”

***

다음 날.

지청 앞에 반짝 거리는 검은색 승용차가 멈춰 섰다.

벤츠 S클래스.

내린 사람은 단단한 체구의 남자, 이름은 구상진, 서진의 상대 변호사였다.

서류 가방을 들고 앞으로 이동할 때 기다리고 있던 신종승이 그의 옆에 섰다.

“오셨어요?”

“오랜만이다. 공기 좋은 곳 있으니까 얼굴이 좋아졌어.”

신종승은 구상진 변호사의 친구 아들이었다.

항상 철없이 생각했는데, 검사가 되어 지청에서 만나게 되니 의젓하게 보였다.

“그래, 내 상대는 어떤 검사님이지? 첩보 좀 줘봐.”

구상진 변호사의 앓는 소리에 신종승이 슬쩍 웃었다.

“수습이 뭐 있겠어요? 아, 성격이 조금 건방지니까 이해해 주세요.”

“수습이 건방질 수 있나?”

“걔 아버지가 재정건설 대표거든요.”

“하...”

구상진 변호사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흘렀다.

최근 법조계에 금수저가 많아지면서 때때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이 나타난다.

“박살나봐야 법 무서운 줄 알지.”

“살살해주세요. 하하.”

“안 돼. 그런 놈들은 혼나 봐야 해.”

구상진 변호사가 신종승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끝나고 식사나 같이 할까?”

“네. 맛있는 곳으로 모실 게요.”

구상진 변호사는 신종승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은 뒤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로펌 중 하나에 소속되어 있다.

게다가 압도적인 승률과 정재계의 인맥은 구상진이라는 이름을 브랜드화 시킬 정도였다.

그 뒷모습을 보며 신종승이 빙긋이 웃었다.

‘김서진... 망신한번 당해봐라.’

베테랑 변호사가 이 악물고 요리를 시작하면 김서진 따위는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닐 거다.

신종승은 지금부터 그 모습을 즐기기로 했다.

***

딸칵.

조사실의 문이 열리고 구상진 변호사가 들어왔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가해자 장동익과 서진이 시선을 틀어졌다.

“구상진입니다.”

그는 서진의 앞에 명함을 내려둔 후 가해자 장동익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어떤 말도 없이 서진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검사님,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무례한 질문, 기선제압을 위한 첫 공격이다.

하지만 서진은 오히려 반문했다.

“실례인 것을 알면 묻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는데요.”

구상진 변호사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하지만 잠시다.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시작하죠.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 커브길에서 역주행으로 들어오는 자전거, 앞만 보고 달리는 아이들, 운전자가 피할 겨를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모든 것이 전부 운전자의 잘못이라며 죄인 취급을 하죠.”

“그래서요?”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한 기소를 욕심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검찰 측의 주장을 전부 반박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과속여부 판단...”

“잠깐만요.”

서진이 그의 말을 멈췄다.

구상진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진을 바라본다.

“왜죠?”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장동익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장동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전과 2범이다.

검사를 많이 만나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가 구상진 변호사에게 물었다.

“변호사님, 어떻게 할까요?”

“우리 젊은 검사님이 뭐가 궁금한지 한번 들어봅시다.”

구상진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동익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십시오.”

“장동익 씨, 빚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상진 변호사님은 수임료가 꽤 비싸지 않나요?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출장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네?”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셨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장동익은 눈을 깜빡였고 구상진 변호사는 인상을 콱 찌푸렸다.

“검사님!”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궁금했어요.”

서진은 그 말을 끝으로 의자에 등을 파묻듯 비스듬히 앉았다.

수습답지 않은 느긋한 태도였다.

그런 서진을 보는 구상진 변호사의 눈이 일그러졌다.

‘새끼가...’

앞에 앉은 앳된 검사는 아직 수습이었고 이게 데뷔 무대였다.

그럼, 자신 같은 베테랑 변호사를 보면 쫄아야 한다.

대 선배였고 미디어에도 간간히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진의 눈빛은 무심하다.

구상진 변호사의 껍데기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수습 맞아?’

신종승이 조금 건방지다는 말을 했는데, 이건 건방짐을 넘어섰다.

옛날이었다면 조인트를 맞아도 할 말 없는 태도다.

그리고 서진의 말이 이어졌다.

서진은 별 것 아닌 것을 묻는 것처럼,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물었다.

“장동익 씨, 동남 초등학교 나오셨죠?”

“네? 네.”

“우수진이라고 아세요? 피해자 언닌데.”

“...우수진이요?”

서진은 장동익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장동익은 지금 초조하다.

그리고 그것은 구상진 변호사도 느꼈다.

“장동익 씨, 대답할 필요 없는 질문입니다. 대답하지 마세요.”

“네.”

장동익은 대답 후 입을 꾹 닫았다.

하지만 서진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보험 수익자가 피해자의 언니예요. 알고 있었나요?”

“검사님!”

구상진 변호사가 책상을 쾅! 치며 일어섰다.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서진을 노려본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궁금한 것을 묻는 겁니다. 조사하는 것이고 수사하는 것이죠.”

“이게 수사입니까? 교통사고와 무슨 상관이죠?”

구상진 변호사의 목소리에서 강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진은 신경 쓰지 않고 장동익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장동익의 표정은 방금과 달랐다.

쉴 새 없이 손을 조몰락거리며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서진이 그의 모든 것을 관찰하며 조용히 말했다.

“장동익 씨, 그리고 변호사님. 교통사고가 아니라 다른 사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고 판단했습니다.”

“......!”

장동익이 움찔 거리는 동시에 구상진 변호사의 목소리가 강하게 흘렀다.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증거도 있고요.”

서진의 서늘한 목소리에 구상진 변호사의 행동이 멎었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동익의 눈동자가 삐그덕 거리며 서진을 향했다.

“...증거가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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