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검사. -(4)>
서진은 대답대신 USB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장동익의 시선이 USB에 집중됐다.
서진은 이 USB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이 있다.
장동익의 동공은 수축됐으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매우 빠른 순간 일어난 표정의 변화, 하지만 동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장동익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서진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찌르듯 말했다.
“CCTV 영상입니다. 장동익 씨, 사건 당일에 피해자가 일하는 횟집 근처 커피숍에 앉아 있었네요?”
“네?”
구상진 변호사가 또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증거가 있다 해서 뭔가 했더니, 겨우 당일 행적 파악입니까? 그럼, 그 커피숍에 있던 모든 사람이 용의자겠네요?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은 그만 하세요. 이 사건은 블랙박스 영상이나 돌려보면 될 일입니다.”
“...분명히 다른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뇨, 교통사고입니다.”
구상진 변호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답한 후 강압적인 눈빛으로 서진을 노려봤다.
그리고 서진이 눈을 마주치자 느릿하니 말을 이었다.
“검사님... 임관한지 얼마나 됐습니까? 난 이 바닥에서 15년을 굴렀어요.”
“...그래서요?”
구상진 변호사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잡은 채 서진을 향해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그리고 눈알을 부라리며 지금까지보다 더 위협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래 굴러먹다 보니 검사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이네요. 피해자의 언니가 보험금 수익자라고요? 그래서 그 분이 우리 의뢰인과 손을 잡고 청부 살해를 했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
“가뜩이나 유가족들 마음 안 좋은데 들쑤시고 다니지 마세요. 검사님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릴 수도 있습니다.”
“......”
“그러니까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면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그게 아니면 조용히 교통사고 이야기나 합시다.”
구상진 변호사는 서진을 강하게 노려봤다.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서진을 무시하고 있다.
언제든 박살낼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엿보인다.
구상진 변호사의 동기들이 검찰의 주요 보직에 앉아 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요직에서 일을 한다.
이제 막 검사가 되어 똥오줌도 못 가리는 새끼는 언제든 목을 비틀 수 있다.
구상진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지금이었다.
‘뭐지?’
서진의 행동은 처음부터 느긋했고 건방졌다.
데뷔 전을 치르는 수습 따위가 가질 태도가 아니었다.
여기까지도 이상했는데, 지금 그 눈빛이 변했다.
“변호사님, 제 이름 실검에 오를까봐 걱정해 주셔서 감사한데요. 기소는 제가 하는 겁니다. 조사를 하고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렇게 기소할 겁니다. 교통사고가 맞는다고 하면 그렇게 기소할 거고요. 그런 것까지 일일이 변호사님께 허락받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서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처음과 똑같이 평온하게, 하지만 그 순간 구상진 변호사는 꺼림칙한 위압감을 느꼈다.
이건 수습이 아니다.
수습의 탈을 쓰고 있지만 절벽을 기어 올라온 베테랑 검사가 보인다.
구상진 변호사가 마른 침을 삼킬 때, 서진의 시선이 다시 장동익에게 옮겨졌다.
구상진 변호사는 다급히 어떤 것도 대답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입 다물고 있어요. 이놈에게 틈을 보여서는 안 돼요. 일단 오늘은 방어적으로 갑시다.’
그 눈빛을 받은 장동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 장동익의 눈이 벌게졌다.
서진이 장동익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내뱉고 있어서다.
“2억은 좀 약하고. 변호사 선임 비까지 3억 가자. 그럼, 도와줄 게.”
장동익의 눈이 벌게졌다.
“어, 어떻게...”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서진의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노가다를 해도 10만 원 정도 받는데, 3억이면 땡큐지.”
흑백의 세상에서 들었던 장동익의 말을 그대로 내뱉은 거다.
서진이 서슬퍼런 눈동자로 장동익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제가 한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장동익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끔찍한 무엇인가를 본 눈빛이다.
장동익은 입 다물고 있으라는 구상진 변호사의 지시도 잊은 채 중얼거렸다.
“나, 나는 안 죽였어.”
“죽였습니다.”
“안 죽였어!”
서진이 노트북을 열고 메모리 카드를 집어넣었다.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이 나왔다.
차에서 내린 장동익이 피해자를 향해 달려가더니 상황을 확인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서진이 그 장면에서 화면을 멈췄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에 전화했습니까?”
“겨, 경찰이요. 아니 보험회사요. 119였나?”
구상진 변호사가 다시 치고 나왔다.
“사람을 친 시점에 정신이 있겠습니까? 기억 안 나는 것은 당연해요. 기록에 따르면 장동익 씨는 곧장 119에 전화했습니다.”
서진의 눈동자가 구상진 변호사를 향했다.
“블랙박스에서 가리키는 시간은 새벽 1시 40분, 그런데 소방서에서 신고를 받은 시간은 1시 46분. 통화 연결음이 6분이나 이어졌나요?”
“블랙박스의 시간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까? 안 맞춰 놓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요! 검사님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서진이 툭 통화 내역을 내려뒀다.
“장동익 씨가 소방서에 전화한 시간은 새벽 1시 46분.”
“네! 억지라고요!”
“맞습니다. 장동익 씨는 새벽 1시 46분에 전화했습니다.”
“그러면 된 거잖아요!”
“노트북 화면에 보이는 1시 40분에는 피해자의 언니 우수진에게 전화했죠. 피해자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취조실의 건너편, 유리를 통해 서진의 취조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명수 검사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장동익의 표정을 살피던 이명수 검사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실무관님, 김서진 검사 자료 조사 한 것 있죠? 그것 좀 가지고 와 주세요. 네, 전부.”
통화를 종료한 이명수 검사는 다시 취조실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중얼거렸다.
“...살인사건?”
잠시 후, 실무관이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이명수 검사는 그동안 서진이 조사한 자료를 휙휙 넘겨봤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는다.
“아... 이 미친 새끼.”
그렇게 한참을 웃던 이명수 검사가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며 이명수 검사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빠졌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장 검사님, 이명수입니다. 잠깐 내려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화다.
어느새 부장 검사는 물론 지청장과 부지청장까지 이명수 검사의 앞에 서 있었다.
그들 모두 서진의 자료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지청장이 종이 뭉치를 흔들며 물었다.
“교통사고인 줄 알았는데 청부 살인이었다고? 그것도 친언니가? 동생이 애 둘 키우며 힘들 게 사는 것을 뻔히 보면서?”
“네,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직 구멍은 몇 개 보이지만 관련 몇몇 체포해서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겁니다.”
지청장이 혀를 끌끌 차며 유리벽 너머 서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저 놈이 이걸 어떻게 쑤신 거야? 내용 보니까 미제로 끝나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한 거잖아?”
그 말에는 이명수 검사도 동의했다.
시골 길에서 일어난 새벽녘의 교통사고.
두 아들을 놔두고 떠나야 하는 피해자의 사연이 안타깝지만 이 사건에서 살인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자신이 맡았어도 교통사고로 끝났을 거다.
가볍게 숨을 내뱉은 이명수 검사가 입을 열었다.
“지청장님, 가벼운 시나리오 하나 써도 되겠습니까?”
지청장의 시선이 이명수 검사를 향했다.
“시나리오?”
“우리 지청이 오랫동안 조용했습니다. 한번 정도는 시끄러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참에 우리가 아직도 검찰에 붙어 있다는 것을 알리고요.”
“끝이야?”
“구상진이 제 동기입니다. 저놈 명성에 스크래치 한번 내주고 싶습니다.”
구상진 변호사가 검사였던 시절, 그는 권력자를 대변했다.
정치권과 손을 잡고 재력가에게 아양 떨며 돈을 벌어왔다.
지금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며 똑똑한 척 정의로운 척을 다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지청장과 부지청장 그리고 부장 검사, 비록 썩은 동태눈깔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칼을 휘두르던 칼잡이들이다.
구상진 변호사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지청장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툭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스크래치? 어떻게 줄 건데?”
“동생을 죽인 언니. 자극적인 내용입니다. 여론은 주목할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구상진이 끼어 있습니다. 그 구상진이 언니 측을 변호하다 데뷔하는 신인한테 깨지는 겁니다. 그게 언론에 알려지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습니까?”
지청장이 끌끌끌 웃었다.
“그거 좋네. 스크래치를 내든지 아니면 숟가락을 꺾든지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이명수 검사가 허리를 굽혔다.
지청장과 부지청장, 부장 검사가 떠나고 이명수 검사는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김은지 기자님, 우리 지청에 구상진이 와 있는 것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수습한테 쩔쩔 매고...”
***
“오늘 김서진 검사, 첫 소환 조사인 거 알고 있어?”
서진의 동기인 신종승과 이소희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이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인줄은 몰랐네요.”
“상대를 잘 못 골랐어. 상성이 안 좋아. 상대가 누군 줄 알아? 구상진 변호사님이야. 알지? 구상진 변호사님.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시는 분.”
이소희는 관심 없었다.
서진이나 신종승이나 부모 잘 만난 재능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해서다.
이들은 그게 전부다.
더 발전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 믿고 설치다가 여기서 끝나는 거다.
신종승은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진이가 이번에는 좀 힘들 거야. 법정에서는 망신까지 당할 수 있어. 아무래도 신인이 구상진 변호사님을 이기기는 힘들지. 이 지역 판사하고도 친한 것 같고.”
그때, 두 사람의 대화가 멎었다.
그들의 앞으로 지청 출입기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 때 기자들은 다급히 말하고 있었다.
“누구? 구상진? 구상진이 여기는 왜 와?”
“돈 많이 받았나 보지. 소문 못 들었어? 구상진은 돈만 주면 악마도 변호할 사람이야.”
“으... 난 그 느물거리는 얼굴이 정말 싫어.”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신종승이 기분 좋게 웃었다.
“내 예상대로네. 이런 시골에 구상진 변호사님 왔다고 기자들도 난리 났잖아?”
서진이 병가를 내기 전만 해도 신종승은 서진을 밥으로 생각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살살 웃으며 분위기를 맞춰 주는 동생.
그런데, 이놈이 삐뚤어졌다.
그것도 자신이 눈길을 주고 있는 이소희 앞에서...
신종승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납할 수 없었다.
“...기사 한 줄은 찍힐 것 같은데, 데뷔전이 평생 흑역사로 남겠어.”
그때였다.
신종승의 귀에 기자들의 목소리가 충격적으로 들려왔다.
“그런데, 구상진이 깨지고 있다고?”
“어. 수습 검사가 대단한가 봐. 미제로 빠질 뻔 한 사건을 끄집어냈대. 구상진은 수습 검사 앞에서 허우적대는 중이고.”
“설마...”
“진짜야, 제보 준 사람이 헛소리할 인물이 아니야.”
멀리 떨어져가는 기자들의 뒷모습을 신종승이 눈동자만 움직여 살폈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지 눈만 껌뻑이고 있다.
‘뭐지?’
신종승의 모든 예상이 어긋나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신종승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곧장 취조실로 가는 거다.
서진과 구상진 변호사가 있는 그곳.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취조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쾅! 문이 열리며 구상진 변호사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구상진 변호사가 취조실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