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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41화 (141/145)

141화.

남자는 커튼이 닫혀 집 안이 보이지 않게 되자 땅에 발길질을 해 댔다.

그러다 반딧불이같이 작고 빛나는 무언가가 날아오길래 손으로 낚아챘는데, 다시 손바닥을 열어 보니 잿빛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

그때, 집 안의 커튼이 다시 활짝 열렸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이 집의 주인인 여자를 좇았다.

그녀가 커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커튼을 연 건 다른 이였다. 그럼 대체 누구였을까. 분명 혼자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손바닥 안에서 잿빛 가루가 전부 사라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뚜렷해지는 그것들은 너무나도 괴이한 것들이었다.

생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런 것들.

커튼을 열어젖힌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생명체가 주저앉아 고개를 떨어뜨린 채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근육질의 몸은 일으키면 천장을 뚫고 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천장에는 다리가 무수히 많은 벌레가… 머리만 인간인 괴물이 딱 붙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커튼 왼쪽 끝에 거인이 있었다면 오른쪽 끝엔 거대한 거미가… 이번에도 머리만 인간의 외형을 한 아이가 살기를 가득 담은 눈빛으로 창밖을 쏘아보았다.

곧장 자신이 좇던 여자의 옆을 보니 은발의 남자가 곁에서 그녀를 지키듯 서 있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아 입 모양을 자세히 보니, ‘꺼져. 이 버러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남자는 온몸이 떨리는 느낌에 상체를 구부렸다. 아무리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어 봐도, 창문에 머리를 박아 봐도 이상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대체 저것들은 무엇이지?

충격에 얼어붙은 것처럼 멈추어 있으니 꼬마 하나가 창가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제 배를 잡고 웃는데 입이 찢어져라 크게 벌어졌다.

자신을 놀리는 듯한 아이의 행동에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솟아 이를 악물고 노려보자, 아이는 그제야 정색하며 눈을 까뒤집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제 얼굴을 뜯는 자세를 취했는데 정말로 얼굴이 뜯겨 나갔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악!”

그 모습을 본 남자는 경악해 비명을 연신 지르다 도망치려고 곧장 뒤를 돌았다. 그러자 새하얀 무언가가 길을 가로막고 떡하니 서 있었다.

길디긴 흰머리의 여자가 흰자를 크게 치켜뜨고 남자를 바라봤다. 가만히 있는데도 살벌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그만 바지가 뜨겁게 축축해지는 일을 치르고 말았다.

극대화된 두려움 앞에 발이 얼어붙은 남자는 몸을 달달 떨었다. 그러고 있으니 여자의 하얀 머리카락이 서서히 들려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곧 찌를 듯이 남자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곧장 미친 사람처럼 허겁지겁 도망쳤다.

***

내가 닫았던 커튼이 갑자기 저절로 열렸다.

“……?”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초자연적인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창밖의 남자는 다시 내부를 들여다보더니 어째선지 점점 죽을상인 표정이 되었다. 남자의 반응이 하도 이상하여 나도 놀라다 말았다.

그렇게 잠시 집 안 곳곳을 둘러보던 남자는 비명을 마구 지르더니, 갑자기 뒤돌아 멈추어 있다가 뭐라도 본 건지 급박하게 도망쳤다. 몹시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나는 그가 정말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지는지 보려고 곧장 커튼 근처로 다가가 확인했다. 그리고 남자가 멀어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아주 괴상했다.

남자는 달려가다 저 혼자 여러 번 넘어지기도 했다. 마치 무언가가 곁에서 그를 괴롭히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맞고 있는 사람처럼 몸을 웅크리며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가끔 네발짐승처럼 손을 짚어 가며 뛰기도 했다.

게다가 급격한 경사에서 구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 건지 벌떡 일어나 죽어라 달렸는데, 얼마나 미쳤는지 제집도 지나쳐 달아날 정도였다.

“휴우…….”

희한한 광경이었지만 남자가 더는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미쳐서 저런 것 같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랬는데…….

“맞다!”

생각해 보니 내 처지도 안심하긴 일렀다.

정말 노엘이 여기까지 날 쫓아온 걸까? 내가 저를 버리고 떠나서 화가 많이 났을까. 그래서 내 목숨을 앗아 가겠다고 하는 건가.

숨으라고 하긴 했는데 지금 당장 숨어야 하는 건지. 어떡해야 하는 건지 몰라 거실을 배회하고 있었다.

가슴이 점차 뜨겁게 두근거렸다. 쿵쿵. 쿵쿵. 쿵쿵. 쿵쿵.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 번 더 노엘과 친구들을 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긴 한데.

하지만 노엘이 분노의 칼을 뽑아 들고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현실이긴 한 걸까? 그가 대체 여길 어떻게 왔다는 말인지.

주체할 수 없는 혼란함에 일단은 회피하는 길을 택해야겠단 생각이었다. 일단 차를 끌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차 키가 없다면 수동으로라도 시동을 걸어 봐야겠다.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린 나는 곧장 현관으로 달려갔다.

“어…?”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 잠금장치를 풀었는데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려라. 제발!”

무언가가 문을 단단히 붙잡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위화감에 오싹해진 난 급히 2층으로 뛰어올랐다. 무언가 이상하다.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는 감각은 크리스마스 때부터 계속 느끼긴 했지만, 지금은 더 크게 와닿았다.

커튼이 저절로 열린 것도 그렇고 현관문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창문을 밀어 보았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이 이렇게 무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곤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2층에 다다르자 벽에 붙은 종이를 새로 발견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글씨를 읽어 내렸다.

<자, 방해꾼은 해치웠으니 이제 숨바꼭질을 계속할까? 어서 숨어야지. 리사.>

“하아….”

<그렇게 쉽게 목숨을 내어 줄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노엘이든 무엇이든… 아무리 내 현재 상황이 외롭다고 한들 죽고 싶지는 않았다.

희망을 품고 있었다. 상황이 어떻든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살아 볼 예정이었다. 그러니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동기 부여는 확실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어디 숨느냐는 것이었다.

삐걱. 삐걱.

고민하던 중,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 나무 바닥의 소리는 아래층에서도 지하실과 이어진 계단이 내지르는 신음이었다.

맨 아래층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걸까?

삐걱. 삐걱. 삐그극.

1층으로 올라온 발소리는 공중분해 된 듯 사라졌다. 다음 소리가 나려면 내가 방금 올라온 계단 일부를 밟아야 할 것이다.

소리 때문에 항상 피해서 밟는 곳이었다. 계단 중간 부분만은 요란하도록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등에서 피어난 소름이 목덜미까지 올라왔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층으로 다시 내려가긴 글렀다.

그렇게 결국 도달한 곳이 고작 내 방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조용히 방문을 걸어 잠갔다. 어차피 다른 방들은 텅 비어 있어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물론 내 방도 할머니가 아끼던 오래된 서양식 옷장들과 침대 그리고 책상뿐, 별다른 건 없었다.

삐걱.

계단의 그 부분을 밟았나 보다. 벌써 2층으로 올라오고 있다니.

나는 산만하게 서성거리다 침대 밑으로 들어가려고 엎드렸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왜 갑자기 데릭이 떠오른 건지. 맨날 침대 밑에 들어가 잠을 자던 녀석 때문에 저 밑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마치 지금도 저 안에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두피에 소름이 번졌다.

결국 내가 들어갈 곳은 옷장뿐일까? 일단 옷장 문을 열어젖히니 빈틈없이 걸린 옷이 참으로 안락해 보였다.

갑자기 시작된 현실 숨바꼭질이 무서워져선 다시 창문을 열길 시도해 보았다. 역시 꼼짝도 하지 않자 체념하게 되었다.

결코 내 힘만으로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직감이 날아들었다. 노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과 절망 그 사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방황했다.

어쩔 수 없이 옷장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촘촘히 걸린 옷가지를 뚫고 들어간 뒤엔 내 몸을 철저하게 가렸다. 이윽고 문을 닫으니 컴컴해졌다.

터벅터벅.

가까워져 오는 발걸음 소리에 나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틀림없는 노엘 고유의 느긋한 리듬이었다.

그 익숙한 발소리가 뼛속까지 깊이 울려 퍼졌다. 저 소리에 무서웠던 적도 있지만, 노엘과 친밀해진 뒤로는 안심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 느껴지는 심정은 무서운 건지 안심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철컥.

방의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소리가 재촉하듯 살벌하게 흔들렸다.

끼이-익.

조금 있으니 매섭게 진동하던 문고리가 갑자기 부드럽게 열렸다. 누군가가 안에서 문을 열어 주기라도 한 듯이.

터벅. 터벅.

신발을 신어서인지 발소리가 더욱 잘 들렸다. 들어온 걸음이 방을 둘러보는지 잠시 멈추어 섰다.

나는 숨도 쉬지 않는 채로 입을 꽉 막고 눈을 크게 떴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그리운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분명 지금 이 장면은 노엘과 내가 처음 맞닥뜨리기 전과 똑같았다. 아련하게 떠오른 추억에 가슴속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조금이라도 소리 내면 안 되는데. 노엘이라면 귀가 밝아 작게 내쉬는 숨소리도 다 들을 텐데.

이미 목구멍까지 차오른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처럼 나를 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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