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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70화 (70/145)

70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세차게 저었다. 역시 그건 나라도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였다면 화가 나서 당장 목을 비틀며 해명하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충격받은 상태일 텐데, 그런데도 대체 무슨 심리길래 내게 화 한번 내지 않는 건지. 과거 그의 모습처럼 또 혼자 있을 때 눈물을 쏟아내는 게 아닐지.

“노엘, 아까 내가 토드한테 안겨 있던 거 말이야.”

“응…?”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아주 편한 방법이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겠지.

노엘은 최선을 다해 날 배려하고 있었다. 저 변함없는 다정한 눈빛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런 그를 알아봐 주기를.

그러니 그에게 제대로 해명해야겠다.

“그곳에서 거미 수백 마리가 지나갔었거든. 그때 내가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 잠시 토드의 몸을 인형처럼 빌린 것뿐이었어.”

토드가 강제로 나를 속여서 그랬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건 그들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렇다고 토드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잠시 옛 연인 때문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고 여기기로 했다.

나는 노엘과 토드가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내길 바랐다. 더군다나 그들이 서로를 좇는 눈동자를 볼 때면, 도저히 차갑게 연을 끊을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다른 무언가가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서로가 싫었다면 이미 둘 중 하나가 죽은 지 오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었고, 아직 다시 회복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인형?”

“거기 혼자 있었다면 진짜 죽을 뻔했어. 토드 인형이 아니었으면 아마 난 견디지 못하고 거미 밥이 되었을지도 몰라.”

“…….”

“토드를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꽉 안았더니! 참을 만했어. 아마 내 옆에 토드가 아닌 리마가 있었다면 리마도 막 끌어안고 그랬을 거야.”

방금 발언은 좀 많이 나간 것 같았지만, 노엘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지금도 그의 마음은 지옥일 것이었다. 그 지옥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며 헤엄치게 두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엘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과장과 거짓말도 보태서 열심히 해명했더니, 어느새 양옆으로 축 내려간 노엘의 눈꼬리를 볼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촉촉한 눈동자를 온전히 내비쳤다.

‘이것 봐…. 역시 혼자 힘들어하고 있었잖아.’

그 모습을 보니 이제야 그가 앓던 고통이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노엘은 뭐라 말하려 했는지 입을 살짝 벌렸지만, 입술이 떨려 다시 다물고 말았다.

여전히 진정이 안 되는지 어려워하는 모습에,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그의 머리를 끌어당겨 내 품에 안아 넣었다.

“괜찮아. 지금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나중에 말해 줘도 되니까 무리하지 마.”

“…….”

나는 허리를 굽혀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손으로는 그의 등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비누 향기가 코로 솔솔. 그보다도 더 달콤한 그의 향기와 함께 섞여 흘러들어 왔다.

“화내지 않고 기다려 줘서 고마워. 노엘.”

“…….”

“미안해. 다시는 인형이라도 토드를 안지는 않을게. 이렇게 너만 안을 거야.”

그러자 그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직도 떨리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내 품 안으로 얼굴을 더욱 깊이 파묻었다.

“응….”

여기 와서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이 몸의 진정한 주인이었더라면……. 그래서 노엘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 진짜 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행복했을까.

과거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그녀가 몹시 부럽고 또 부러웠다.

정작 그녀는 전혀 원하지 않던 자리였지만, 나는 원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역시 변함없었다. 그저 한순간으로 지나갈지 모르는 이 사랑이라는 짜릿한 감정에 목숨 거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둘째 치고. 조금은 억울해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은 노엘의 눈물 한 방울조차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내 것이었다. 오로지 나로 인해 생긴.

노엘은 과거의 그녀와 지금의 내게서 정말 아무런 차이점도 발견하지 못한 걸까?

단 한 번이라도 의심한 적은 없는 건가. 나는 그가 아니기에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흔들리지 말자. 그새 또 흔들려 버리다니. 그녀가 부럽다니. 정신 차리자.’

애초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남자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전까지는 노엘에게 잘해 주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탕탕탕!

누군가 방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보이지도 않는데 문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알프레드인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 품에서 고개를 뗀 노엘이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낮게 말했다.

“들어와.”

나도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예상대로 알프레드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노엘, 방해해서 미안한데. 베키가 돌아왔어.”

알프레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왠지 나와 노엘이 비밀스러운 짓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나갈게.”

말하며 일어선 노엘은 나를 보며 따듯한 웃음을 지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다음에 할 생각인가 보다.

“나도 같이 갈래.”

“그래, 어차피 금방 돌아올 테니까. 같이 다녀오자.”

“응. 근데 베키가 돌아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디 갔다 온 거야?”

이렇게 위험한 상황인데 혼자 어딜 다녀온 건지.

“1층의 문이 뚫렸는데도 올라오는 녀석들이 현저히 적으니까. 아래층을 살펴보고 오겠다고 했거든.”

“그랬구나…. 다행이다. 무사히 돌아왔다니.”

“그러게.”

이제 나가자는 듯 그가 내 허리를 부드럽게 휘감았다. 그저 팔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안긴 느낌이 들 수 있다니. 따듯하고 포근한 이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문을 나서서 계단 쪽으로 가니 다들 옹기종기 모여 베키를 둘러싼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노엘이 다가서자 그들은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양옆으로 주르륵 비켜섰다.

“노엘, 리사. 무사했구나.”

다행히 베키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고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으로 정말 다행이라는 듯 내게 미소 짓는 그녀였다.

나 역시 그녀를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감격스러운 눈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베키! 다행이야. 어디 다친 덴 없고?!”

“그럼, 나는 멀쩡해. 잘 어울린다. 붉은 원피스.”

“고, 고마워.”

새삼 붉은 원피스보다도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낀 참이었다. 칭찬에 인색한 베키였는데. 이런 식으로 불쑥 치고 들어올 줄이야.

“일단 3층까지는 괴물들이 꽉 들어차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 물론 계단 주위 한정.”

베키는 모두를 한 번씩 훑으며 상황을 요약해서 말했다. 노엘은 그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고, 모두 노엘과 베키의 대화를 잠자코 들었다.

“흠. 그렇다면 3층까지만 확인한 건가?”

“더 내려가 보고는 싶었지만… 3층에서 막혀 버렸어. 더는 계단을 내려갈 수도 없는 상태였고.”

“더 올라올 생각이 없는 건가. 왜 그곳에서 멈춘 거지?”

“그런데 괴물들이 잠을 자는 것 같은 모습이긴 했어.”

“잠을 잔다고…?”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는데 숨은 쉬는지 불뚝 튀어나온 배만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라고.”

“흠…….”

노엘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몰래 더 내려가 볼까 싶기도 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깨워 버릴까 봐…. 게다가 자는 것도 확실한 건 아니었고.”

“잘했어. 베키. 고생했어.”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꿈에서 보았던 끔찍한 장면을 떠올렸다.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 꿈이 제발 예지몽이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쩐지 자꾸만 신경 쓰이는 것이 영 불길했다.

30개의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간신히 말을 참던 리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노엘,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불안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 보니 리마뿐 아니라 모두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노엘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그는 굳건한 눈빛으로 그들의 눈 하나하나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을 푸는 줄 알았는데 더욱 무서운 얼굴로 픽 웃어 보였다.

“너희,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불안해하던 녀석들은 일제히 궁금증으로 가득해져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엘은 입꼬리 한쪽을 비틀어 올리며 눈꼬리를 아래로 찡그렸다.

“3층까지 올라온 것들은 오랫동안 우릴 괴롭혔던 것들이야. 그것들로 인해 생긴 고통과 상처를 다시 한번 겪을 셈이라면 막지는 않겠다만, 두렵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빠져.”

노엘이 한마디 할 때마다 깊은 정적이 흘렀다. 내겐 조금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 역시 노엘의 다양한 모습 중 일부였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잔잔한 눈은 노엘에게 고정되어 진지한 빛을 발했다.

“화가 나지도 않는 거냐고. 지금 너희의 몸을 봐. 과거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가녀린 인간의 몸이 아니란 걸 아직도 인정하지 않은 거야? 아직도 회피할 현실이 남아 있는 건가? 그 몸으로도 삶을 택한 건 스스로가 아니었나.”

그 말에 타란티나는 검은 털이 수북한 자신의 다리에 시선을 내렸다.

리마는 30개의 다리를 조용히 훑었고, 알프레드는 커다란 양손을 쫙 펴선 내려다보았다.

베키는 내려 묶은 자신의 길고 흰 머리를 다시 한번 손으로 매만졌다.

자신의 일부를 확인하는 그들의 눈동자는 익숙하다는 듯 평온해 보였다.

데릭은 인간의 모습으로 있었지만, 팔짱을 끼고 어떤 생각에 잠긴 듯해 보였다. 저렇게 자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안구가 습해지는 것 같아 잠시 눈알에 힘을 빡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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