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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71화 (71/145)

71화.

“맞아. 노엘의 말이 다 맞아. 나는 이제 이 다리로 괴물들을 모두 찔러 버릴 수 있다고!”

리마가 우뚝 기립하며 더듬이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침잠했던 분위기가 다시 활기를 띠는 듯 되살아났다.

“리마를 괴롭히면 제 거미줄로 다 묶어 버릴 거예요!”

아직도 리마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의문투성이인, 타란티나도 더듬이 다리로 팍팍 찌르는 시늉을 하며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래. 난 예전의 알프레드가 아니야. 이 근육은 운동하지 않아도 영원히 지속되겠지. 게다가 몸도 이렇게 거대해졌으니 이젠 날 이렇게 만든 녀석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해 주고 싶어.”

굳이 팔을 접으며 터질 것 같은 알통을 보여 주는 알프레드였다.

그리고 베키가 이어서 말했다. 그녀는 뾰족한 손톱을 세우며 입술을 달싹였다. 진지하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어딘가 낯설었다.

“어디 올라오기만 해 봐. 눈알을 도려내 주겠어.”

나는 그 모습이 진심으로 무서워서 혼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녀라면 그저 숨통만 끊어 놓을 게 아니라 영원히 고문할 것만 같았다.

노엘은 반전된 분위기를 인지하고는 찡그린 눈을 곱게 펴고 씩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아직도 무력했던 과거에 갇혀 있으면 곤란하다고.”

나는 단숨에 모두의 사기를 끌어 올린 노엘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황태자로서의 신분과 생활은 모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었고 모두 말도 편하게 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는 모두에게 이미 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는 이곳 모두에게 가족이고 친구이자 왕이었다.

“그때는 나도 어렸고 힘이 없어서 너희를 지켜 주지 못했지만…….”

노엘이 다시 입을 열어 흩어졌던 모두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이번에는 적어도 함께 싸울 테니까.”

과거에 함께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때를 생각하니 그도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괴로움을 무마하려는 듯 다들 천진난만하게 히죽이며 웃음을 흘렸다. 그의 마음을 다 알고 이해한다는 얼굴들이었다.

“노엘. 너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도 다 네 덕분인걸.”

알프레드가 노엘의 어깨 위에 커다란 손을 얹으며 말했다. 훈훈한 기운이 감돌고 주변이 녹아내릴 듯이 따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남아 있는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었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찾아온다고 했던가.’

나를 덮친 위화감이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위화감으로만 남아 있길.

***

나와 노엘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돌아가며 3층까지 올라온 괴물들의 동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6층에선, 방책 말고도 방어 체계를 더욱 견고히 해 둘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며 모두의 위치로 돌아갔다.

나는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고민에 빠졌다. 붉은 보석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가려면 4층으로 가야 했고, 괴물들은 아직 3층에 있었다.

때를 놓치게 되면 4층으로 아예 못 내려가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돌아가게 될 시기는 더욱 멀어진다.

어떻게 벌어질지 모를 괴물들의 습격에 나 역시 휘말리게 될 것이었다.

솔직히 무척 두렵고 무서웠다. 머릿수만 해도 저쪽이 훨씬 우세했으니까. 게다가 나는 그저 유약한 몸의 인간이었다. 인간들의 전쟁도 무서운데 괴물들의 전쟁은 말도 안 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노엘처럼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처럼 용감하지도 않았다. 조그만 벌레만 봐도 까무러치며 도망가는 습성의 소유자.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쓸모없었나…. 하는 자괴감이 다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4층에 내려갔다 올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계단 쪽은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었다. 저번처럼 토드를 구하겠다고 몰래 빠져나가기는 불가능했다.

‘붉은 보석 이야기는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지.’

이제 살아남은 환영은 노엘과 토드, 리사뿐.

티나도 남아 있긴 했지만……, 아마 그 뒤로 실험을 당했을 것이다. 붉은 보석이 티나의 마지막 모습을 내게 보여 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노엘의 방으로 돌아오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3층에 몰려 있던 괴물들이 가끔 한두 마리씩 올라오곤 했지만, 그 정도는 계단을 지키는 녀석들에겐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난 방에 거의 갇혀 있다시피 들어앉아 있는 중이었다. 온몸에 좀이 쑤셔 근질근질했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간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엘이 나와 토드의 일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 건 다행이었지만, 그 이후로 감금 생활이 지속되고 있던 것이었다.

특별히 그가 문에 자물쇠를 채우거나 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계단으로 가면 마주칠 것이었기에 몰래 나가 봤자 갈 데도 없었다.

“그럼 다녀올게.”

노엘도 주기적으로 나가서 상황을 계속 주시하는 모양이었으니, 나도 이렇게 할 일 없이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계속하던 터였다.

“노엘!”

문손잡이를 쥔 노엘이 뒤를 돌아보았고 나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이곳이 공포 게임이란 걸 망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큼한 미소에 괜히 심장만 쿵쿵거린다.

“응?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아, 아니! 필요한 거라니. 그렇다기보단….”

“그럼?”

“나도 오늘은 같이 나가면 안 될까?”

“베키를 만나고 싶은 거라면 이리로 불러 줄게.”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런 식으로 인력 손실을 낼 수는 없었다. 전쟁터의 인력을 개인의 심심풀이로 이용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게 아니라면…?”

차츰 그의 미소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에게 내 안전이 최우선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뭔가를 하고 싶어. 함께 지키면 안 될까?”

그의 눈썹 가운데가 한순간 움찔했다.

“네가 저기서 무얼 할 수 있는데.”

결코 비웃는 표정도, 무능력을 따지려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아주 걱정된다는 얼굴.

“…….”

그런데도 순간 경직되어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의 현실적인 소리에 가슴을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그러니 정신이 다 혼미해지는 바람에 턱이 똑 빠진 것처럼 열렸다.

길게 늘어진 내 얼굴을 본 그는 잠시 움찔하더니 다시 다정하게 웃었다.

“리사, 네게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말이 너무 과하게 나갔네. 네 그런 마음만은 잘 받을게. 하지만… 나는 네가 그것들과 맞설 능력이 있더라도 상대하게 두지 않았을 거야.”

마음만은 잘 받겠다니…. 내 의도는 정확히 전달된 모양이다. 그런데 내게 능력이 있어도 어차피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니.

“네가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된다면…….”

갑자기 고개를 떨군 그가 얼굴을 들어 올렸을 땐 조금 무서운 낯빛을 띠고 있었다. 태풍이 와도 그의 짙은 안개를 뚫고 지나갈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도저히… 절대 견딜 수 없을 거야. 리사… 그럼 나는 아무도 지킬 수 없게 돼.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릴 거야…….”

미세하게 떠는 그의 어깨를 본 순간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이해되었다. 그의 최대 약점이 나란 걸.

알고 말았다. 내가 잘못되면 그는 모든 동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 제발… 부탁이야. 너만은 무사히 네 안전만을 생각해 줘. 이기적이어도 되니까. 오직 너만을 생각해.”

“……응. 알았어.”

이 이상 그를 더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그럼, 오늘도 조심히 다녀와. 네 말대로 난 여기 안전하게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고마워. 리사.”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처지인가 싶었다.

고맙다니… 대체 뭐가. 후…….

이렇게 혼자 편하게 있어도 되나 싶은데…. 도대체 그는 내 무엇이 고마운 건지. 가슴이 제법 저릿하다.

“다녀올게.”

노엘이 나가고, 나는 다시 앉을 정신도 없이 방을 배회하고 다녔다.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이니 잡념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4층으로 갈 수도 없고 계단에서 함께 지키지도 못한다니. 누가 보면 애지중지 모셔야 할 공주님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톡톡. 톡.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는데 익숙한 소리였다.

“들어와도 돼! 아니, 내가 열어 줄게!”

타란티나가 뭉툭한 다리 끝으로 두드리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그녀라면 문을 열기 위해 거미줄을 쏠 게 뻔했으니 내가 열어 주어야만 했다.

벌컥!

문을 활짝 열어 주니 눈앞의 커다란 검은 털 다리와 마주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하늘로 쳐들었다. 그제야 타란티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올려다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티나의 모습을 여지없이 확인하게 되었다.

“타란티나, 여긴 무슨 일이야?”

하지만 그녀는 동굴에서 나와 만났던 일은 모를 것이었다. 환영을 겪은 건 나뿐이니까.

환영을 통해 과거의 녀석들은 가끔 내게 말을 거는데, 지금의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환영인 녀석들과 지금의 녀석들을 분리해서 보지는 않았다. 그때의 녀석들이나 지금이나 크게 괴리감을 느낄 만한 건 없었으니 말이다.

굳이 뽑자면 토드의 성격 정도? 밝은 느낌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아주 지독한 느낌이 강하다.

“노엘이 언니가 심심할 거라 그래서 왔어요. 베키는 아래로 내려가 본 상태라 내가 대신 온 거예요.”

뭔가 높임법이 이상하게 섞인 말이었지만 괜히 꼬투리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심심할까 봐 베키 대신 보낸 거라니……. 이렇게 또 인력 손실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나는 거의 때리다시피 이마를 짚었다. 이러면 내가 더 방해꾼이 된 거 같은데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눈치 보여 죽겠다.

이런 나를 타란티나도 얼마나 하찮게 볼지 걱정스러웠다. 이러다 다들 노엘에게 반란이라도 일으키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 나는 괜찮아! 심심하지 않아. 그러니 어서 가서 일 봐도 돼.”

무표정한 타란티나에게서 정말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는지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력함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한 나의 상태를 그녀가 알아챌까 봐 조마조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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