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50화 (50/145)

50화.

노엘의 방으로 함께 돌아왔다.

오는 내내 그에게 알프레드에 대해 캐물었지만, 물어볼 때마다 묘하게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꾸 자연스럽게 말을 돌려서 더는 물어볼 수도 없게 만드는 그였다.

“그래도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는 내게 노엘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까도 진하게 껴안고 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럴까 봐 갑자기 긴장되는데.

“네가 다쳤을까 봐 숨이 멎는 줄 알았어….”

왠지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숨이 멎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다쳐도 큰일 난 것처럼 걱정으로 야단이니 이 몸을 상처 하나 없도록 소중히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도 안 다쳤어. 게다가 괴물 한 마리를 내 손으로 해치웠는걸! 나 진짜 세!”

불쾌한 쾌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그 감각이 잊히지 않아 마음이 붕 떠 있었다.

“나도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런 험한 일을 하게 만들어 정말 미안해.”

아니. 미안하라고 한 말이 아닌데.

“왜 또 네가 미안해해…. 나쁜 건 그 녀석들인데.”

“인원을 보충해서 좀 더 촘촘히 문을 지켜야겠어. 다시는 그 문을 뚫고 들어올 수 없도록.”

인원 보충이라니. 그 인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별장 어딘가에 그가 아는 누군가가 또 있다는 건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함께 문을 지켜야 마땅한 상황인데, 나는 탈출을 위해 붉은 보석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리사, 그래서 말인데. 역시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취소하면 안 될까? 당분간만이라도….”

“뭐?!”

자유롭게 돌아다닌 지 이제 겨우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아무래도 네가 너무 걱정되어서 그래. 자꾸 그것들과 맞닥뜨리게 되니까…….”

“인원 보충해서 더 잘 지킬 거라면서! 그럼 괜찮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알프레드랑 네가 금방 구하러 와 주었잖아.”

“흠…….”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 한다.

또다시 방에 수감이라도 된 듯 갇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기를 감지한 나는 뇌를 데굴데굴 마구 굴렸지만, 갑작스러워서 그런지 눈알만 데굴데굴 굴렀다.

“노엘! 이건 어때? 나한테 검술을 가르쳐 줘.”

“검술?”

“그리고 여분의 무기가 있다면 내게 주지 않을래? 나도 괴물을 쓰러뜨릴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 그럼 너도 덜 걱정되지 않겠어?”

“나는 네가 전설의 괴물 학살자라고 해도 걱정할 거야. 설령 네가 괴물이라고 해도 매일 걱정할 거라고.”

이런….

노엘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검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능력이 아니잖아. 체력과 근육도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없어.”

“그렇긴 하네…….”

나는 내 가녀린 팔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을 들 힘조차 없음이 분명하다. 근육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나를 단념시킨 노엘은 예쁘게 눈을 휘었다. 만족스러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청혼 준비까지 틈틈이 하느라, 요샌 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줄었어.”

그가 내 옆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나를 만지는 손가락이 섬세하고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

“그러게.”

“이번 계획으로 문을 잘 막아 놓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시간을 낼 수 있을 거야. 그럼 진짜 매일 함께할 수 있겠다.”

“그, 그래?”

그럼 안 되는데…!

“노엘. 역시 난 이 방에만 있을 순 없어. 그러니 다시 생각해 줘. 응?”

잠시 생각에 젖어 있던 그가 좋은 수라도 떠올렸는지 미소 지었다.

“그러면… 잠시만 뒤로 돌아볼래?”

나는 노엘의 말대로 순순히 뒤돌았고, 앞에 놓인 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그가 내게 목걸이 하나를 걸어 주더니 흡족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전에 받은 열쇠 목걸이도 걸고 있었는데. 두 개가 걸렸다 해서 특별히 거슬리진 않았다.

“예쁘다. 갑자기 웬 목걸이 선물이야?”

나는 작고 귀여운 하트 모양의 투명한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하트 모양이라니… 노엘 같지 않았다. 철퇴 모양 펜던트면 모를까.

아무튼 갑작스러운 선물이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 네가 어디 있든지 내가 단번에 알아낼 수 있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건 마력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야. 위치를 추적하는 힘이 부여되어 있지.”

세상에…….

마음에 들었다는 말 취소.

‘지금 나한테 대놓고 위치 추적기를 붙인 거나 다름없잖아!’

거기다 그런 얘길 하면서 왜 그렇게 자상한 표정인 건지.

이러면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매번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이다.

“그, 그래?”

“네가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 굳이 착용할 필요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가겠다고 하니, 나도 이런 조치라도 취해야지.”

그래, 여기 갇혀서 퀘스트를 못 하는 것보단 나았다.

어차피 위치 추적이 없을 때도, 노엘은 나를 귀신같이 잘 찾았다.

적어도 이 별장 안에선 어딜 가도 그에게 꽉 잡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마력석으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니….

마력석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과거의 리사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일 테니까.

“노엘은 마력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거야?”

“나도 그리 많지는 않아. 겨우 굴러다니던 걸 몇 개 주운 것뿐.”

“그렇구나….”

“목걸이로 혹시 불쾌한 건 아니지? 그럼 내 마음이 정말 아플 것 같아.”

“……부, 불쾌하기는! 날 지키려고 그런 거잖아. 못 나가는 것보단 차라리 이게 나은걸? 오히려 고마워!”

위치 추적을 해 주어 고맙단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노엘은 그런 내 뺨을 한 번 쓰다듬고는, 나를 제 품 안에 꼭 안아 넣었다.

아까도 했던 포옹이었지만, 이번 포옹은 뭔가 굉장히 간지럽고 달콤하다.

이 녀석과의 포옹은 할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그의 스킨십에 내가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체감되었다.

“고맙다고까지 해 주다니…. 리사, 넌 천사인 거야? 정말 착하잖아.”

‘오해인데. 착한 거 아닌데…. 다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건데!’

하지만 잠자코 착한 척해야겠지.

“매번 내가 안을 때마다 네가 이렇게 잘 안겨 줘서 걱정하기도 했어.”

“응? 걱정이라니.”

대체 무엇 때문에?

어쩐지 심장이 수축했다 팽창했다 심하게 반복하는 느낌이다.

“내가 싫은데, 네가 너무 착해서 거부를 못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노엘도 역시 이 관계를 불안해하고 있던 건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나 또한 어찌 될지 모르는 이 관계를 경계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난 그럴 정도로 착한 사람은 아닌걸.”

그래도 그에게 끌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사정없이 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내 정체가 밝혀진 순간, 이 남잔 다른 사람처럼 돌변할 것이다.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노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망했으니 후회되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다행이야. 내겐 얼마든지 나쁘게 해도 되니까. 혼자 힘들어하고 그러면 안 된다?”

“어? 나쁘게 해도 된다니……. 그건 좀….”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내게 그가 맑게 웃어 보였다.

야무지게 올라가는 그 입꼬리에서 꿀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꿀이 터져 나왔다.

“나는 너라면 다 괜찮아. 뭐든지 받아 줄 수 있어.”

순간 후광이 비추며 하늘에서 자애로운 빛이 쏟아지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노엘은 천사였다던가…….

“맞다! 청혼은 꼭대기 층인 10층에서 할 거야.”

“어, 응?”

예?

10층까지 있었다니. 엘리베이터도 없는 별장 아니었나.

“10층은 다른 층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넓이긴 하지만, 거대한 홀 하나로 되어 있거든.”

“그렇구나….”

거대한 홀이라니 얼마나 성대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나 조금 무서워지려 하는데.

“내 계획은 청혼한 다음 날 바로 결혼식을 올리는 건데. 네 생각은 어때?”

내 생각은 말이지. 공중에서 파사삭! 하며 가루로 분해되는 중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그러면 네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준비하느라 지친 몸으로 다음 날 바로 결혼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너만 괜찮으면 가능하고말고. 난 고작 그 정도로 쉽게 지치진 않거든.”

“그, 그래…? 네가 부디 무리하지 않길 바라.”

청혼 전까지는 어떻게든 이 별장을 탈출해야겠다.

마음이 또 급해지는 기분.

“무리하긴. 아무튼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한 거다?”

잠시 몸을 뗀 그가 환영 노엘에게서 보았던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응….”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찌릿하다.

같이 마주 보고 웃었어야 했는데, 나는 결국 그러지는 못했다. 그저 어색한 가짜 미소만 남발했을 뿐.

그가 알아챌까 봐 가슴만 졸이는 셈이었다.

차라리 나한테 못되게 굴면 좋을 텐데……. 쓸데없이 다정해선 나를 부드럽게도 몰아넣는다.

“지금도 이렇게 행복한데…. 너와 결혼하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행복해서 죽는 남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일 거야.”

그의 단단한 팔이 다시 나를 꽉 껴안았다.

이 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넓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순순히 파묻었다. 이미 중독된 그의 향기가 익숙하다.

“네가 계속… 그렇게 행복했으면 좋겠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없어도. 과거 리사가 아니어도.

그 집착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당연하지. 이제 네가 내 곁에 영원히 있을 거잖아. 평생 정말 행복할 거야.”

두근거리던 심장이 멈추었다가, 나를 집어삼킬 듯 조여 왔다.

***

오늘도 무사히 맞이한 아침.

알프레드도 합류해서 티타임을 가졌는데, 그렇게 점점 휑했던 공간이 떠들썩하게 메워졌다.

그리고 중대한 소식이 있었으니.

오늘 나와 동행할 이는 리마로 결정되었다.

무슨 기준으로 정해지는 건진 모르겠지만, 개인 호위 기사라도 생긴 느낌이었다.

그렇게 티타임 후, 리마와 나란히 4층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누나. 간만에 둘이 오붓하게 있게 되었네. 너무 좋다! 솔직히 문 지키러 가는 건 너무 무섭거든.”

“그랬구나. 하지만 리마가 다 이겨 먹을 거 같은걸?”

“잉? 그게 뭐야.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진짠데.

보기보다 겁이 많은 녀석이구나.

츠스스스. 츠스스스.

리마가 움직이는 소리를 곁에서 듣고 있으니, 오랜만이라 그런지 팔에 자꾸만 소름이 돋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