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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20화 (20/145)

20화.

내가 이 별장을 탈출할 때쯤엔 숨바꼭질의 고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노엘을 성공적으로 따돌렸다는 데에 대한 이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허, 무서운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기분이 좋은 건 들키지 않아서겠지.

술래가 나를 찾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짜릿할 줄이야.

나는 문에 귀를 대고 밖에 있을 노엘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지? 벌써 통로를 빠져나간 건가.’

지금쯤이면 옆방들을 살펴볼 타이밍일 텐데.

여기까지 들어와 놓고 다른 방을 보지도 않고 나갔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기분 탓인지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이 방에 나 말고 아무도 없는 건 확실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속으로 삼십 초만 세고 문을 열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삼십 초가 될 때까지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끼익.

문을 최대한 살짝, 얼굴의 반만큼만 열어 보았다.

분명 좁은 통로가 보여야 했지만, 까맣게 꽉 막혀 있었다.

……?

“리사,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튀어 나갈 것 같은 눈알로 노엘을 응시했다. 입은 열려 있지만, 호흡은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문 바로 앞에 서 있느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노엘이 감격한 사람처럼 눈을 곱게 휘었고, 입꼬리를 요염하게 들어 올렸다.

같은 미소라도 어둠 속에서 마주하고 안 하고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

“노, 노엘…… 내가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어쩐지 김이 팍 샜다. 노엘을 따돌렸다고 기뻐했던 시간이 몇 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네가 까치발까지 들어 올리면서 힘들게 숨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서 찾았다고 외치겠어. 그랬다면 네가 아주 실망했을 거 아니야.”

헉.

실망이 아니라 사망했겠지. 사인은 심장 마비.

“그러니까 내가 문 뒤에 숨어 있는 걸 봤다는 소리네?”

“그럼, 계속 보고 있었지. 너는 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겠지만. 그런 모습도 참 귀엽더라. 좀 더 빨리 나왔어야 했는데, 널 감상하느라 그러지 못했어.”

“허…….”

정말 경악할 노릇이었다.

아까 그 모습을 노엘이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절규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내가 실망하지 않도록 일부러 밖에서 기다려 준 거라니.’

이 패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뿐더러, 해소할 곳도 없었다.

“인제 그만 가자. 숨바꼭질은 끝났어.”

노엘이 문을 천천히 열어젖히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기, 나 진짜 도망간 거 아니야. 돌아가려 했어. 정말이야.”

내 동공 지진을 유심히 감상하던 그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 지었다.

“누가 보면 내가 널 잡아먹으려는 줄 알겠어.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 그렇게 웃지 말라고!’

나는 노엘이 내민 손바닥 위로 고양이처럼 손을 올렸다. 그러자 잠깐이었지만 노엘의 눈썹이 기분 좋게 움찔거렸다.

“노엘……. 우리 오해를 풀자. 우린 대화가 필요해. 나는 너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물론, 너와의 이야기는 언제든지 환영이야. 일단은 내 방으로 갈까? 여긴…… 더 있고 싶지 않아서.”

역시 노엘에게 이곳은 매우 불편한 곳임이 틀림없었다.

나 같아도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것 같긴 했으니.

문제는 양쪽 방 중 하나에 내 퀘스트 보석이 있을 것이란 사실인데.

붉은 보석을 이렇게 코앞에 두고 놓칠 수는 없었다.

노엘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면, 언제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러니 노엘에게 애절한 부탁을 좀 해 봐야겠다.

“노엘, 조금만 더 나를 기다려 줄 수는 없을까?”

나는 일부러 내게 내민 그의 손을 양손으로 꽉 쥐어 잡았다.

그는 눈이 동그래져선 아이처럼 놀란 듯했다.

“기다려 달라니……. 왜? 그거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내가 음… 그러니까,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혼자만의 시간이라…….”

“그래서 말인데. 이 좁은 통로를 나가서 밖에서 기다려 주면 안 될까?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나갈게.”

“흠…….”

노엘은 이게 뭐 하자는 건가 싶었는지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였다.

“혼자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그래! 어차피 여기서 나가는 길은 이 좁은 통로뿐이잖아? 내가 도망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그의 손에서 땀이 나도록 부여잡고 힘을 주었다.

제발 그가 긍정의 답을 내놓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껄끄럽게 고개를 끄덕였을 땐, 나도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알았어. 그러면 저기 제일 밖에 있는 문 쪽에서 기다릴게.”

“고마워! 노엘, 네가 제일 최고야. 너무 좋아 진짜!”

나도 모르게 기뻐선 그의 손을 잡은 채로 방방 뛰었다.

반면 어째선지 노엘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그덕거리며 당황스러워했고, 얼굴은 갑자기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드디어 퀘스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껏 감격했다.

그렇게 노엘이 좁은 통로를 지나 사라지는 걸 지켜본 뒤에야 안심한 나는 오른쪽 방을 살피러 들어갔다.

다행히도 이번엔 헛걸음이 아닌 느낌이 확 들었다.

문 속에 문이 또 있었는데, 단단한 금속 소재로 되어 있었다. 실험 용도로 쓰이는 곳이 맞는 것 같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내부가 넓었다. 적어도 아까 그 방의 세 배는 되는 듯했다.

벽이며 바닥이며 온통 하얀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고, 거대한 원통형의 유리관이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유리관 옆에 떨어져 있는 붉은 보석이 반짝였다.

노엘이 밖에서 기다리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곧장 붉은 보석을 손에 쥐어 들자 정말 주위가 새하얗게 변했다.

실험실에는 베키와 연구원 한 명이 있었는데.

베키는 원통 유리관 옆의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고, 어깨를 부르르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씩씩한 베키라도 감당하긴 힘든 일인 거겠지.

-자, 일단 이 주사를 맞아야 하니 팔을 내밀어 보련?-

연구원은 팔을 내밀지 않는 베키에게 강제로 주사를 놓았다.

-이 주사를 맞으면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안심해도 돼.-

나는 연구원 옆에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노려보았다.

‘이봐. 연구원! 너 같으면 안심이 되겠냐고!’

벽돌 깨기를 하듯 연구원의 머리를 손으로 내려쳤지만, 환영인지라 그대로 통과할 뿐이었다.

-베키는 용감하니까. 잘 견뎌낼 거야.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연구원은 소름 돋는 미소를 띠었다. 반드시 실험에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미소가 틀림없다.

-저는… 용감하지 않아요. 무서워요.-

베키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고, 곧 기절이라도 할 사람처럼 보였다.

-무섭다니. 베키! 예뻐지려고 하는 거란다. 이 실험에 성공한다면 정말 아름다워질 거야.-

-저는 예뻐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살려 주시면 안 돼요? 제발 저 좀 보내 주세요…….-

말을 내뱉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아마 이미 반쯤은 패닉 상태에 빠진 게 아닐까 싶었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도 나지 않는 그런 상태.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더 들어왔는데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산하는 남자였다.

그 엄청난 중압감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정도였으니.

악당 중의 악당. 그중에서도 최고 위치에 있는 자가 분명했다.

-시, 시드 공작님께서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

주사기를 버리던 연구원이 당황해선 허둥지둥 인사를 했다.

‘저 녀석이 시드 공작이란 말이지.’

드디어 그 유명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이 별장의 주인, 이 모든 불행의 원흉인 시드 공작.

‘그렇다면 시드 공작도 이 별장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

시드 공작은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턱을 괴었다.

-이번 실험은 아주 중요해. 내 딸이 그토록 원하던 걸 얻게 해 줄 수 있단 말이지.-

-물론입니다. 제가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요즘 시체가 너무 늘어나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더군.-

-제게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실험은 곧 시작될 겁니다. 베키에게 투여한 약물도 이제 체내로 모두 흡수가 되었을 테니….-

베키는 이미 모든 저항력을 잃고 말았다. 공허한 사람처럼 멍하니 있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여기서 실험 과정을 좀 지켜봐도 되겠나?-

-예? 예… 원하신다면 그리하시지요.-

연구원은 즉시 베키를 원통 유리관 안으로 넣었고, 유리관과 연결된 복잡한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리마의 융합 실험 때랑 비슷하게 생긴 기계들이었다.

연구원은 마력석을 꺼내 그 기계 중 하나에 장착했다. 분명 융합 실험 때도 본 것 같은데, 확실히 마력석이 핵심 재료가 맞는가 보다.

이내 연구원이 가장 큰 빨간 버튼을 누르자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발생했다.

원통 유리관 안에 보글보글한 거품이 서서히 차올랐다.

‘저, 저건! 저게 뭐지?’

유리관의 밑에 있는 작은 구멍들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아주 촘촘하고 하얀 거품이었다.

거품은 곧 베키를 덮치다 못해 원통 유리관의 전부를 장악했다.

그러자 베키의 모습도 거품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저기서 살아남는 게 가능하긴 한 거야?’

지켜보던 나는 다리가 하도 떨려 유리관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어린 베키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시드 공작……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을….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어.’

이윽고 바닥의 구멍이 빨아들이는지 하얀 거품이 점점 아래로 꺼졌고, 흘러내리며 사라졌다.

베키도 물거품과 함께 내려오다 쓰러져 버렸다.

“세상에.”

그녀의 피부가 온통 하얗게 되었고, 갈색이었던 머리도 하얀색이 되었다.

게다가 몸도 커졌다. 꼬마 베키는 나만큼이나 순식간에 나이를 먹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한 머리카락이 온몸을 덮을 정도로 길어졌고, 손톱도 굉장히 날카로워 보였는데.

결국 베키는 그대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젠장! 저 하얀 괴물은 대체 뭐지? 내 딸은 그저 피부만 하얗게 되길 원했을 뿐이라고 말했을 텐데!-

-저, 그, 그게…… 부작용인 거 같습니다. 고, 공작님!-

-이 무능한 것. 자넨 해고일세. 해고야!-

시드 공작은 화가 나서 분노를 토하며 나가 버렸고, 연구원은 그의 화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바짝 붙어 따라나섰다.

나는 원통 유리관으로 가까이 가 누워 있는 베키를 쓰다듬듯 유리관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렇게 또 소중한 생명이 떠나가게 된 것이었다.

“네가…… 베키였구나. 그래서 네가… 그렇게 된 거였어.”

아까 나를 가차 없이 공격했던 흰머리 귀신이 떠올랐다.

그녀도 리마처럼 어째선지 지금은 살아 있지만, 아무튼.

이유를 불문하고 그녀가 살아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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