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옷장의 틈새로 밖이 살짝 보이긴 했지만, 아주 다 보일 정도로 큰 건 아니었다. 그저 옅은 빛이 있는지 없는지만 보일 뿐.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나 해 본 짓을 스무 살씩이나 먹고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숨을 곳이 당장 여기뿐이라니. 눈뜨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야.’
미칠 노릇이었다. 저 발걸음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두려웠다.
나를 구하러 온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를 위협할 해로운 존재일 수도 있었다.
일단 이런 환경이라면 귀신일 확률이 제일 높지 않을까? 살인마라거나.
삐걱. 삐걱. 삐그극.
바닥을 짓이기는 듯 찍어 누르는 발소리가 이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나는 무릎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엄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숨을 죽였다. 아니, 극심한 긴장에 숨이 저절로 막혔다.
숨소리라도 나면 당장 들킬 듯이 조용했으니까.
‘제발…… 지나가라…. 그냥 지나가란 말이야…….’
그러면서도 옷장 틈새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옷장 앞까지는 오지 않은 모양이지만, 멀리서 인영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지금은 옷장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침대 근처를 서성이는 듯했다.
삐그극. 삐그극. 끄그그그극.
질질 끌리던 발소리가 우뚝 멈추었다.
“어딜 그렇게 꼭꼭 숨었어?”
내가 먼저 말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긋하고 상냥한 톤의 목소리에, 하마터면 여기 있다고 대답할 뻔했다.
입을 틀어막은 나는 그가 사람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일단 발소리로 보아,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생물임은 틀림없었다. 말도 할 줄 아니까, 그럼, 사람 아닐까?!
‘……근데 그건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귀신도 그럴 수 있잖아!’
와. 미쳐 버리겠네.
삐그극. 삐걱.
“분명 여기서 소리가 났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방을 배회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꽤 부드럽고 매력적이라, 그가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자꾸만 차올랐다.
하지만 연쇄 살인범도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다수이지 않은가!
나는 누구든 또는 무엇이든 쉽게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두드려 본 후에도 건너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어디 보자… 여기인가?”
콰광!
두 쪽으로 갈라져 겨우 붙어 있던 침대의 한쪽이 내려앉은 모양이다.
“여긴 없네.”
이 방에서는 사실 옷장 안에 없으면 그냥 없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그 정도로 숨을 곳이 없었다.
나는 모든 근육이 실시간으로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체험을 하고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누가 나 좀 살려 줘.’
끼익.
덜커덩.
책상의 의자가 머리채 잡히듯 뒤로 끄집어져 쓰러졌다.
“여기인가?”
불안한 예감은 틀릴 리가 없었다. 이제 옷장을 열어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을 테니까.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도 없네…. 그럼…… 거기구나?”
그의 혼잣말을 듣고 있으니 점점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이미 잡힌 것 같은 기분이.
“거기 꼼짝 말고 있어야 해. 알았지?”
어…… 엄마.
삐그극. 삐그극. 끄그그그극.
“그렇지 않으면… 내가 또 찾으러 다녀야 하잖아.”
이윽고 옷장 틈새로 들어오던 빛이 모두 차단되었다.
그가 옷장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벌컥!
옷장의 문이 반쯤 확 벌어진 순간, 나는 열리던 문을 붙잡고 다시 닫아 버렸다.
오로지 문에만 집중해서인지, 문 앞에 서 있던 인영의 정체를 쳐다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대로 기를 쓰고 옷장 문을 꽉 붙들었다.
내 손가락이 문틈에 있어, 문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었다.
손에서 땀이 나는지, 옷장 나무의 감촉이 녹아내릴 것처럼 축축했다.
밖에서 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문을 꽉 붙들고 있으면, 내가 널 억지로 끌어내려는 것 같잖아.”
‘같잖아’가 아니고 맞거든?!
나는 남자가 문을 잡아당기면 필사적으로 꽉 붙들며 닫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 문은 절대 열려선 안 된다. 내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너무 귀엽다…. 잘라서 소장하고 싶어질 정도야. 이렇게 작은 손가락으로 힘주고 있는 거야?”
지금 문틈 밖으로 삐져나와 있을 내 손가락을 보고 하는 소리인가?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후드득 흘러내렸다.
“특히 이 제일 작은 손가락 말이야. 갖고 싶어.”
그가 내 아군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귀신이거나 미친놈이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근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저기요? 이유라도 좀…….
‘흑… 그냥 기절하는 게 낫겠어.’
이 순간 기절하지도 못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멀쩡한 나 자신이 더 소름이었다.
쓸데없이 강한 내 정신력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니.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순간, 문 틈새의 내 손가락에 소름 끼치게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끼야아아아악!”
소스라치는 감촉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로 옷장 문을 걷어차 버렸다.
이어서 고꾸라져 엎어지듯 밖으로 넘어지는 순간, 그와 제대로 눈이 마주쳤다.
이 순간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새벽달의 붉은 눈동자와 숲의 그림자보다 까만 머리카락. 도저히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얼굴.
차갑지만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
‘입술… 부드러워? 촉촉하다고?’
분명 넘어졌는데 아프지 않았다. 쓰러진 몸이 단단하면서도 포근한 무언가와 합체된 것처럼 맞닿았다.
그렇다.
의도치 않게 그를 덮친 나는, 그의 위에서 내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여러 의미로 당황해선 간신히 그의 입술에서 떨어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낯익은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고야 말았다.
이상하다. 분명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인데.
내 취향의 남자랄까. 응? 내 취향의 남자?!
‘대…, 대박!’
영상에서 보았던 바로 그 노엘이 눈앞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깨달아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 내 집에서 공포 게임의 홍보 영상을 보고 있었고, 지금 그 영상 속의 노엘과 같은 장소에 있단 말인데.
여기가 내 집이 아닌 걸 보니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오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하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참.
그게 가능해? 그럴 리가. 절대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이 감각, 이 미칠 듯한 감각은 현실이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쓸었다.
나는 일단 인간으로 보이는 그에게 뭐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물론 그가 나를 도와줄 거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강제로 옷장 문을 열려고 했으니까.
그렇지만 한번 시도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잘하면 말이 통할 수도 있고, 그가 나에 대해 뭔가 오해한 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하지. 만나서 반가워? 넘어지는 바람에 덮쳐서 미안해?’
그의 매혹적인 모습에 입이 절로 꾹 다물어졌는데, 노엘이 갑자기 나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았다.
바로 옆에 떨어진 검은 철퇴에 손을 얹으면서.
그 모습을 보니 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헉. 화났나? 만나서 반가워는 무슨!’
기겁한 나는 영상에서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저 철퇴가 내게 날아들기 전에.
쿵쿵쿵쿵.
잠잠했던 저택에 내 뛰는 발소리만 크게 울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 그가 여유롭게 나를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아까처럼 음산한 삐걱 소리를 내며 말이다.
전방에 계단이 보였다.
나는 계단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도 희미해 여기가 몇 층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아래로 내려오니 바닥이 대리석이었다. 아까보다는 좀 나았다. 적어도 삐걱거리는 소리는 이제 나지 않을 테니까.
창문이 많이 있었고, 큰 출입문이 보였다. 누가 봐도 밖으로 나가는 문처럼 생겼다.
당장 그 문으로 달려가 열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열쇠 구멍이 있었는데, 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삐그덕. 삐그덕.
노엘이 바로 위층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으아. 어디. 어디로……!’
두리번거리던 나는 벽난로 옆 검은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커튼 뒤에도 창문이 있어, 혹시나 하며 열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밖을 보려고 창문을 문질러 보았지만, 먼지가 바깥에도 쌓여 있는지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가 계단을 완전히 내려왔는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행여나 커튼이 흔들려 위치가 들킬까 몸을 뻣뻣이 굳혔다.
“또 숨은 거야? 리사는 숨바꼭질을 참 좋아한단 말이야.”
정적을 깨고 노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저택은 소리가 울려 목소리만으로 노엘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근데 매번 술래는 나인 거야? 찾아도 아무런 보상이 없으니 억울해지려는데.”
숨바꼭질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지려던 참이었다.
그때 또 다른 소리가 노엘에게로 향했다.
츠스스스스.
그런데 소리가 너무 이상했다. 꼭 지네 같은 벌레가 수십 개의 다리로 바닥을 쓸 듯이 걷는 것 같은…….
“노엘이다! 노엘, 여기서 뭐 해. 리사? 그게 뭐야. 사냥 중?”
짓궂은 목소리만 들어서는 사람 같았다.
“너는 몰라도 돼. 너야말로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곧 10시야.”
“벌써 10시가 돼 간다고? 이런… 아직 다리를 다 못 찾았는걸.”
숨죽인 채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10시가 되면 여기 있어선 안 되는 건가?
‘뭐야. 뭔데! 다리는 또 뭐지?’
츠스스스스스. 츠스스스스.
다리를 찾는다는 생명체가 계속해서 기묘한 소리를 냈다. 점점 더 확신이 생겼다. 이건 뭔가 기어 다니는 소리다.
“다리는 내일 같이 찾아 줄게. 그러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도록 해.”
“정말이지?! 꼭 같이 찾아 줘야 한다?”
“그럼. 물론이야.”
“신난다! 노엘이 같이 다리 찾아 준다!”
뭐야. 무섭게 왜 저래. 근데 다리만 찾는 거야?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었다.
괜히 커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들킬 확률을 높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츠스스스스. 츠스스스스스.
괴생명체가 이곳에서 멀어졌다.
나는 저 소름 돋는 소리에 막혀 있던 숨을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리고 다시 귀를 쫑긋 세워, 노엘의 위치를 파악하려는데…….
더 이상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