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뜨니 낯선 환경이 펼쳐졌다.
햇빛을 보면 낮인 것 같은데, 검은 먼지로 뒤덮인 창문 틈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올 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내리니, 손바닥 밑의 썩은 나무 바닥이 축축했다.
“윽!”
어디선가 흘러오는 비릿한 냄새와 함께 기분이 나빠진 나는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뭐야. 이거 뭔데? 여긴 어디?’
묵직한 어둠이 내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점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각몽인가? 꿈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했다.
‘그래, 꿈은 언제나 생생했지.’
나는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는 대신 다시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양손으로는 얼굴을 포옥 감싸 안았다.
이러고 있으니 더 이상 무서운 주변 환경이 보이지 않았다.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기분 나쁜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자, 어서 좀 깨자. 꿈아. 제발 날 좀 되돌려 놓아 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꿈에서 깰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여기선 1초가 1분 같았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한기만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거기다 눈을 가리고 있으니 다른 감각이 더욱 예민해졌다.
당장 근처 어딘가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슥.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
퉁.
천장 위에서 누군가 바닥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
챙그랑!
깡통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치여 나뒹구는 소리.
‘하, 이대로는 안 되겠어.’
작게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나를 일어서게 하기엔 충분한 자극이었다.
큰 용기를 내어 내가 있는 곳이 안전한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양옆으로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안전한 곳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으니 이렇게 탁 트인 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겠다.
‘제발 좀 깨어나라.’
나는 조금씩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꿈에서 깨어나길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것만이 지금 나를 구할 수 있는 빛이자 희망이었다.
“저기요?”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가시거리가 짧아 당장이라도 앞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럼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겠지.
다리는 후들후들 떨린 지 오래였다. 지금 상황은 심장이 터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겨우 다리를 움직이는데 문득 앞쪽에 방이 있는 게 보였다.
‘저 안에 들어가 꿈이 깨길 기다려야지.’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어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고.
습하디습한 벽에 딱 붙어서 걷는데 작은 액자가 많이도 걸려 있다.
캄캄해서 거의 회색 아니면 하얀색 정도로 추정되었지만, 형태는 꽤 뚜렷하게 보였다.
액자마다 동그란 게 그려져 있었는데 눈알 같기도 하고 알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동그라미 안에 작은 원이 또 있었다.
‘눈알이네.’
대체 어떤 화가가 캔버스에 눈알만 하나씩 크게 그려 넣는단 말인가.
그래도 나름 눈알의 옅은 핏줄까지 묘사한 정성스러운 그림이었다.
나는 기괴한 눈알 액자 10개가 주르륵 연속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정상적인 장소가 아니야.’
다리의 떨림이 전이되어 이젠 손마저 떨려 왔다.
쀽!
무언가를 밟았는데, 포도알이라도 밟은 듯 톡 터지며 끈적한 액체가 앞으로 튀었다.
발을 떼 보았으나 이미 짜부라져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나는 구두 바닥이 찝찝해져서, 여러 번 바닥에 대고 문지른 후에야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간신히 방의 문 앞에 선 나는 닫혀 있는 문을 열지 말지 고민했다.
이 방의 너머를 볼 자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아까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리라. 여기에 나만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삐걱.
‘응?’
어디선가 오래된 나무 바닥의 신음이 들려왔다.
즉시 좌우 통로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라도 정지된 것처럼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삐걱. 삐걱.
잘못 들은 소리가 아니다.
지레 겁을 먹은 나는 당장 방문을 확 열어젖히고 재빨리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의 방인 것 같았다.
침대와 옷장과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사용을 안 한 지 아주 오래된 듯했다.
이불 같은 흰 천들이 여기저기 찢겨 널브러져 있었고, 침대는 두 쪽으로 갈라져 간당간당 붙어 있었다.
그 외에는 하얗고 촘촘한 거미줄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어휴. 거미줄…. 와. 무슨…….”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힘차게 떨리던 다리가 탁 풀려 버렸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돌처럼 꼼짝을 않고 있자니, 좀 전의 그 소리가 다시 귀를 때렸다.
삐걱. 삐걱.
묵직한 발걸음이 제법 가까워졌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발바닥에 억눌려, 삐그덕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즉시 방의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문을 닫을 수도 있겠지만, 의문의 발소리 주인과 딱 마주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삐걱. 삐걱.
‘뭐지? 뭐가 오는 거지……?’
내 눈은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았고, 이 방 안에서 숨을 곳은 제일 멀쩡해 보이는 옷장뿐이었다.
사람 하나는 들어가고도 충분히 남을 크기.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옷장으로 빠르게 들어가 앉은 나는 문을 살며시 닫고 숨을 죽였다.
***
드드드득. 드드드득.
책상 위에서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몸부림을 쳤다.
얼핏 보니 친구였다. 새벽 2시에 갑자기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이 시간엔 웬일?”
- 메리 크리스마스!
“푸흡. 뭐야. 새삼……. 그 말 하려고 전화까지 한 거야?”
- 너야말로 역시나 안 자고 있었네. 후후.
“낮잠을 너무 잤더니 잠이 안 와서. 뭐 할 게임 없나 찾아보고 있었지.”
- 이번 크리스마스도 게임하고, 소설 읽으며 보내려고?
“응. 이번 크리스마스도 나 홀로 힐링할 거야. 너는 남친 만나?”
- 어제 만났어. 오늘은 나도 혼자 힐링…. 근데 너 그거 알아?
“아니 몰라.”
- 뭐야. 뭔 줄 알고!
“왜 뭔데? 히히.”
- 크리스마스 새벽 3시에 잠에서 깨 무언갈 보고 있으면, 그 매체로 빙의하게 된대.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바로 이 친구였다.
그녀와 수다를 떨다 전화를 끊고 나니 2시 30분.
새벽이고 하니 그녀의 정신이 말짱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괜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열심히 게임을 검색하던 나는 심해 깊은 곳에서 찾은 게임 하나에 홀린 듯이 들어갔다.
정보 보기를 누르니 나온 지 이제 1분 된 따끈따끈한 게임이었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인지 뭔지, 미치도록 잘생긴 남자가 얼굴로 유혹하고 있었다.
곧장 홍보용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이런, 알고 보니 공포 게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라 실망스러웠지만, 얼굴이 워낙 내 취향이라…….
배경이 아주 시커멓고 음울했다. 웬 저택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모양인데, 어느 귀족의 별장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설명을 듣지 않고 앞으로 넘겨 버렸다. 남자 주인공의 얼굴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으로.
‘아. 분위기 좀 무섭…….’
어느 어두컴컴한 방 안에 그가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장 안에 산 채로 갇혀서, 앉지도 못하는 그 좁은 공간에서.
영상 속 플레이어가 유리장 앞에 다가가자,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유리문은 안에서는 열 수가 없어. 그러니, 네가 문을 열어 주어야 해. 나 좀 여기서 꺼내 줄래?]
간절한 그의 눈빛에 거절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상황이 무척 안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얼굴이…….
“저 표정 봐. 완전히 홀리겠네, 홀리겠어. 이건 구해 주지 않으면 대역죄인이지!”
덜컥.
영상 속의 플레이어가 유리문을 열어 주자,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그의 윤기 나는 까만 머리카락이 조그마한 바람에도 크게 살랑거렸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이제 좀 살 것 같아. 나는 노엘이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그저 작게 미소 지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우와. 이 표정도 대박이야. 아니, 얼굴 미쳤잖아!”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 미모를 재차 감상했다. 침이 턱까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마침 크리스마스인데 이름도 노엘이네.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는 노엘과 함께 지내볼까!”
이미 공포 게임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였다.
[이름이 리사라고? 예쁘게 생겼는데, 이름도 정말 예쁘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외형은 보이지 않았지만 노엘의 말에 의하면 예쁜가 보다. 그래 봤자 노엘의 외모만 할까.
영상은 이제 거의 끝날 즈음이었다.
허리춤을 뒤척거리던 노엘이 검은 철퇴를 꺼내 들었다.
“응? 저건 뭐 하려고……?”
[이곳이 무섭다고? 걱정하지 마. 너는 착하니까… 내가 꼭 아프지 않게 보내 줄게.]
……이래서 공포 게임이라는 건가.
이거 뭔데? 갑자기 뭔데! 아니, 왜?
아. 왜!
[싫다고? 그건 좀… 곤란한데……. 조금만 참으면, 금방 끝날 거야.]
영상 속의 플레이어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노엘도 슬슬 속도를 높여 다가왔다. 철퇴를 쓰다듬듯 매만지면서.
[왜 점점 멀어지는 거야? 나한테서 도망가려고…? 그러지 마.]
플레이어는 냅다 뒤돌아 뛰었고, 동영상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어후…….”
입 주변으로 흐르던 침이 바싹 마른 것이 느껴졌다.
찝찝하게 끝난 동영상 때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모니터의 시계를 보니 정확히 3시였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불현듯 친구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크리스마스 새벽 3시에 잠에서 깨 무언갈 보고 있으면, 그 매체로 빙의하게 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