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의 사육법-41화 (41/54)

41화 ? 예감 (4)

액션 영화를 본 김에 가혜는 최신작과 관련된 시리즈를 다시 보았다.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면서 가혜는 무릎에 올려 둔 팝콘을 야금야금 주워 먹었다. 휙휙 화면을 날아다니는 히어로를 보면서 가혜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돈이 좋긴 좋구나. 널찍한 화면은 히어로들이 싸울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고 음향은 실감이 날 정도로 웅장했다.

3D 화면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깜깜한 환경이나 앉아 있는 자세가 불편하지도 않았다.

가혜는 눈을 깜박이고 네 번째 영화의 오프닝에 집중했다. 지난 에피소드를 상기해 주기 위함인 듯 히어로의 과거 이야기가 지나가고 화면에 현재라는 문구가 떴을 때였다. 어두운 방 안에 별안간 빛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가혜와 윤석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단 후가 문가에 기대 서 있었다. 둘이서 무엇을 하냐는 듯 화면에 지나가는 영상을 무심하게 보더니 윤석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나와.”

단 후는 재킷만 벗고는 윤석이 앉았던 자리를 차지했다. 커다란 손이 가혜의 무릎에 있던 팝콘을 집었다. 손에 있던 팝콘을 먹던 그는 무표정으로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 봐?”

“네?”

“장면이 계속 지나가고 있잖아.”

나란히 앉아서 히어로 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상상조차 하지 않은 장면이라 가혜는 단 후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그의 옆모습을 훑고 지나갔다.

단 후는 자신의 손에 있던 팝콘 중 하나를 집어 가혜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오랜만에 팝콘을 먹는데 나쁘지 않네.”

손바닥에 있던 팝콘이 바닥을 드러내자 단 후는 또다시 가혜의 무릎에 있는 팝콘 그릇에 손을 뻗었다. 시선은 화면에 고정한 채로 손만 내밀어 팝콘을 가져가는 모습에 가혜는 아예 그릇을 단 후에게 주었다.

“나는 많이 먹었어요.”

슬쩍 눈썹을 올리는 단 후를 보며 가혜가 이유를 덧붙였다. 그는 별 말하지 않고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팝콘을 먹었다.

“이 영화 알아요?”

“지나가다 이야기를 들었던 정도.”

“그럼 이 편이 처음이라는 거예요?”

“응.”

“내용이 이해가 돼요?”

“아직까지는.”

가혜는 단 후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전 내용과 연결된 부분이었다. 캐릭터들의 대화도 옛날 일을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 볼 만해요?”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다는 말이 괜찮다는 거였다. 가혜는 테이블 위에 있던 리모컨을 가지고 정지 버튼을 눌렀다. 영상이 멈추자 단 후의 시선이 그녀 쪽으로 옮겨졌다.

“1편부터 봐요.”

“이게 몇 편인데?”

“4편이요.”

“넌 봤잖아.”

물론 하루에 같은 시리즈물을 두 번이나 볼 계획은 없었으나 먼저 시리즈물을 본 사람으로서 단 후의 모습은 용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장면은 그때 그 복선 때문이었다든지, 인물과의 관계라든지. 그걸 놓치면서 영화를 보는 건 보지 않은 거랑 다름없었다.

“재밌으니까 다시 봐도 괜찮아요. 1편부터 봐요. 1편 본 다음에 저녁 먹고 다시 그다음 편 봐요.”

“괜찮겠어?”

“안 괜찮은 건 또 뭐예요?”

웃으며 가혜는 1편을 틀었다.

* * *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될 때까지 세희와 침대에 있던 유야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격렬한 섹스로 잠에 빠졌던 것과는 별개로 유야는 노크 소리에 잠기운을 모두 물렀다. 선명한 눈동자가 문을 보았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자 유야는 옆에 누운 세희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왜……?”

“먼저 씻어.”

다른 말 없이 나온 씻으란 말에 세희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대로 헤어지면 언제 자신을 찾아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휘감았다.

“왜 그런 얼굴이야?”

“오늘도 여기서 자면 안 돼? 나 유야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애처로운 표정으로 매달리는 세희의 팔을 풀고 유야가 어쩔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세희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구나.”

미묘한 웃음이었다. 감탄인 것 같은 데 비웃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희는 웃음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시야에 꽉 들어찬 유야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서 세희는 홀린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유야의 곁에 있는 것. 그의 옆자리에 있는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전부였다.

“알았어. 대신 얌전히 있어야 해.”

“응. 약속할게.”

“그럼 어서 가서 씻어.”

세희는 불청객의 방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문을 봤다가 바닥에 떨어진 유야의 셔츠를 몸에 걸쳤다. 허벅지까지 오는 유야의 셔츠를 대충 입고는 욕실로 향하자 문이 열렸다.

“민현 씨가 오셨습니다.”

유야의 오른팔인 야마자키 쇼헤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안의 상황을 훑어보더니 나신으로 있는 유야를 바라보았다. 나체로 있는 유야의 행동이 익숙한 듯 그는 옷장에서 유야가 입을 옷을 챙겼다.

“옷 입으시죠.”

익숙하게 유야가 입을 옷을 챙긴 야마자키는 아이를 보살피듯 살뜰하게 옷을 입혀 주었다.

느긋하게 옷에 팔을 끼워 넣은 유야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자 야마자키가 흉터가 있는 눈꺼풀 위로 안대를 씌워 주었다.

유야는 눈을 깜박이더니 손으로 안대가 있는 쪽을 쓰다듬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던 유야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 언제 해도 기분이 별로라니까.”

안대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며 유야는 민현이 있는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민현은 침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유야와 야마자키의 뒤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눈에 담았다. 낯이 익은 여자의 옷이었다.

“아직도 세희 씨가 여기에 있는 모양이군요.”

“아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야는 부정하지 않고 민현을 지나쳐 상석에 앉았다. 색사의 기운이 여전히 유야의 나른한 몸짓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너무 빠지면 나중에 힘드실 텐데요.”

의미심장한 민현의 말에 유야는 입꼬리를 말았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유야가 관자놀이 쪽을 검지로 긁적였다.

“언제는 꼬시라면서요. 제게 신상명세서를 가져다준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참신하긴 하네요.”

“만나는 횟수가 많은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민현의 말에 풀려있던 유야의 분위기가 사납게 바뀌었다.

“당신이 내 감시역처럼 굴 줄 몰랐는데 설마 우리 관계를 내가 착각을 하고 있는 건가요? 난 우리가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신민현 씨.”

주인의 꼬인 심사를 알아차렸는지 야마자키가 민현의 뒤로 바짝 붙어 섰다. 손만 뻗으면 민현의 목을 조르기 쉬운 위치였다. 언제든 명령만 내려달라는 듯 야마자키가 유야를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위기감에 민현이 입을 다물자 유야가 다시 표정을 풀고 야마자키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야마자키, 손님이 놀라시잖아. 뒤로 물러서.”

야마자키와 민현을 번갈아 보며 말하는 유야는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대방의 표정을 어린아이처럼 보다가 턱을 팔에 괬다.

“신민현 씨 난 아직 대답을 못 들었어요. 우리는 어떤 관계인 겁니까?”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토키와 류노스케라는 공동의 적을 둔.”

“역시 그런 거죠? 하마터면 귀찮은 감시역인 줄 알고 민현 씨를 죽여 버릴 뻔했잖습니까.”

민현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자 그제야 유야는 눈으로 민현의 앞에 있던 차를 가리켰다. 마지못해 잔을 든 민현의 머리 위로 유야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당신과 나, 그리고 사카구치 의원까지. 우리 셋은 공동의 적을 둔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나는 토키와 회를, 당신은 최가혜를, 사카구치 의원은 땅만 가지면 되는 겁니다. 역할을 망각하지 말아요.”

형형한 눈빛의 유야를 보고는 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에서 깬 가혜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제 눈을 비볐다. 벽에 걸린 시계는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혜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제 허리에 팔을 감고 있는 단 후 쪽으로 돌아누웠다. 두 눈을 감고 있는 그는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단 후. 늦었어요. 지각이에요.”

그가 지각을 한다 해도 단 후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곧 토키와 회의 법이고 시간이었다. 하지만 가혜는 그것에 대한 개념보다 일반적인 개념이 우선이었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는 것. 곁에서 겪은 단 후 역시 거의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했기에 가혜는 당연하다는 듯이 단 후를 불렀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깨웠다. 자신이 도망친 이후로 깊게 잠드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밤새도록 영화를 본 탓이겠지. 가혜는 빈 팝콘 그릇이 올려진 테이블을 확인했다. 한 편만 더 보고 자러 간다는 것이 계속 이어져 결국 히어로 물의 최신편까지 다 섭렵하고서야 잠이 들었었다.

“단 후. 어서 눈 떠 봐요.”

몇 번 더 단 후를 부르자 그제야 그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열한 시에요.”

가헤의 말에 단 후는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녀의 몸을 힘주어 끌어당겼다.

“어서 일어나야죠!”

자신을 인형처럼 끌어안고서 다시 눈을 감는 단 후의 행동에 애가 타는 건 가혜였다. 일어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품에서 바동대는 가혜를 향해 단 후가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오늘은 주말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어요?”

시계는 있지만 달력은 없는 이 방의 단점이었다.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은 조금만 신경을 놓아도 날짜 감각을 잃었다. 가혜는 몸에서 힘을 빼고 단 후가 하자는 대로 누웠다. 주말이라고 이렇게 뒹군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느라 밤을 새운 것도 처음이었다. 섹스가 아닌 다른 일로 그와 밤을 지새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혜는 보다 친근해진 단 후를 보며 칭얼대듯 말했다.

“배고파요.”

그대로 다시 잠을 잘 기세였던 단 후의 눈이 떠졌다. 가혜를 안은 채로 일어난 단 후는 그녀의 무릎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는 위로 들어 올렸다.

“앗!”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붙잡아.”

방금 잠에서 깬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나직한 음성이 가혜의 귓가에 맴돌았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적어도 씻고 밥을 먹어야 할 것 아니야.”

“혼, 혼자 씻을 수 있어요.”

“따로 씻으면 시간이 두 배로 걸리잖아.”

“단 후는 다른 방에 있는 욕실을 이용하면 되잖아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가혜를 보며 단 후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여기서 씻을 거야.”

못을 박듯 이야기한 단 후의 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가혜가 미간을 찡그렸다. 차라리 따로 씻는 게 시간이 덜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욕실의 문이 열리고 단 후는 가혜를 데리고 욕조로 향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욕조에 서 있는 가혜의 옷을 하나둘씩 벗겼다.

“너는 몇 번이나 내게 몸을 보였으면서 아직도 얼굴을 붉히는 거야?”

“이게, 어떻게 익숙해져요.”

“흐음. 네 여기는 익숙해진 것 같은데?”

단 후는 찬 공기에 바짝 선 가헤의 분홍빛 유두를 검지로 튕겼다.

“흣.”

“여전히 민감하고.”

“씻기만 할 거예요. 배고프다고요.”

“아아. 그래. 누가 뭐래?”

단 후는 가혜의 말을 건성으로 받고는 제 옷가지도 벗었다. 보기 좋게 잡힌 몸매가 나타났다. 얼굴과 비례하는 몸이었다. 가혜는 잘생긴 단 후의 얼굴과 더불어 흠잡을 때 없는 단 후의 몸을 훔쳐보았다.

그러다 그의 등 뒤에 있는 문신을 발견하고는 거기서 마이너스 점수를 주었다. 근육을 따라 움직이는 문신이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사실적인 문신이었다. 가혜는 자신과 눈을 마주친 호랑이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온도를 맞춘 샤워기로 가혜의 몸을 적힌 후 거품을 낸 바스타월을 들고 단 후가 다가왔다.

“팔 위로 들어 봐.”

“이건 진짜 내가 할게요.”

예전에 단 후가 몸을 씻겨 준다고 가혜를 지금처럼 세워 둔 적이 있었다. 반 협박조의 말에 팔을 들고 순순히 그에게 몸을 맡겼는데 자꾸만 예민한 곳을 만지는 손에 흠뻑 젖고 말았다.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속으로 끙끙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번에도 씻겨 준다고 해 놓고서는…… 했잖아요.”

섹스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우물대며 말하자 단 후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 섹스는 네가 흥분만 안 했어도 안 했어.”

“일부러 만졌잖아요.”

홍시처럼 붉어진 가혜의 얼굴을 보며 단 후가 조금 더 약을 올렸다.

“내가 어디를 만졌는데? 난 네 몸을 씻겨 준 기억밖에 없어.”

“유독 내가 느끼는 곳만.”

“그러니까 거긴 어디냐고. 오늘은 네가 씻을 수 있도록 해 주지.”

정확한 명칭을 말하지 않으면 또 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태도에 가혜가 수치심에 떨면서도 입을 열었다.

“가슴이랑…….”

“더 자세히 말해.”

단 후가 거품이 묻은 손으로 가혜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하아…….”

기다렸다는 듯이 휘어지는 허리에 단 후가 가혜의 가녀린 몸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움직이다가 넘어지면 큰일 나.”

“그러니까 만…… 만지지 마요.”

“네가 제대로 말을 안 하니까 그런 거야.”

뻔뻔한 얼굴로 모든 잘못을 가혜의 탓으로 돌린 단 후는 이로 그녀의 귓바퀴를 물었다.

“으읏……!”

혀로 귓바퀴를 핥고 진득하게 애무를 하자 가혜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네가 말을 안 하면 내가 직접 찾아보는 방법밖에 없겠지. 배고프면 협조를 하는 게 어때?”

슬금슬금 올라온 손이 유두를 빙글빙글 돌리자 가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가 개발한 유두는 여전히 민감했고 나날이 그 감도를 더해 가는 중이었다.

“자, 어서.”

어르는 듯한 단 후의 목소리는 다정하다 못해 사랑하는 여자를 대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달콤했다. 가혜는 그 소리를 악마의 유혹처럼 느끼면서도 번번이 넘어가고 말았다.

“유두.”

단 후는 손을 유두를 만지던 손을 뗐다. 대신 그의 시선이 그 자리를 대신하듯 뜨겁게 박혀 들었다. 가혜는 시선만으로도 범해지는 기분에 아랫배가 꽉 조여졌다.

“골반.”

“확실히 여기를 만져 주면 좋아했지.”

단 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와 골반에 닿았다. 가혜는 그 시선에 단 후가 자신을 어떻게 만졌는지 떠올렸다.

“아래도…….”

“최가혜. 같은 말을 또다시 해 줘야 해?”

“하지만 아래를…….”

진심으로 난처해하는 가혜의 얼굴을 보는 건 그의 큰 즐거움이었지만 요사이 달라진 그녀의 태도를 바꾸고 싶지 않았다. 단 후는 억지로 그녀를 다그치는 걸 그만두고 그녀의 손에 바스타월을 맡겼다.

“네가 제대로 말을 안 한 벌이야. 네가 나를 씻겨.”

적당히 물로 몸을 적힌 단 후는 가혜에게 손짓했다.

“그러고 있으면 몇 시간이고 욕실에 있겠는데. 최가혜.”

얼떨떨한 얼굴로 바스타월을 쥔 가혜가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거품이 난 타월을 단 후의 등에 가져다 댄 순간 손목을 잡혀 앞으로 몸을 돌려 세워졌다.

“너도 씻어야지.”

한쪽으로 올라간 단 후의 입꼬리에 이상함을 느낀 찰나 그는 타월을 쥔 가혜의 손을 잡고 그대로 그녀의 몸을 쓸었다. 하얀 거품에 둘러싸인 몸을 보면서 단 후는 가혜의 손에서 바스 타월을 뺏었다.

“네 몸으로 나를 씻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구는 가혜를 보며 단 후가 혀를 쯧쯧 찼다.

“너는 시청각 자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그는 손을 뻗어 가혜의 몸을 제 몸에 댔다. 거품이 묻은 몸은 훨씬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어깨를 감싼 팔로 가혜의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녀의 몸에 묻은 거품이 단 후에게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이해가 가나?”

“이, 이런 식일 거라고는…….”

“몰랐겠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런 식이니까 힘내서 해 봐. 어서, 배고프잖아? 훨씬 빨리 끝날 거야.”

단 후의 속삭임에 가혜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그의 눈은 네 사정을 봐주는 건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혜는 두 눈을 감고 단 후의 몸을 꽉 붙들었다. 그에게 스스로 안긴 모양새로 몸을 움직였다. 가슴에 그의 근육이 닿고 있었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몸과 다른 단 후의 몸은 아플 정도로 단단했다.

“언제까지 앞만 하고 있을래?”

“아…….”

그를 놓고뒤를 돌아가자 용과 호랑이 문신이 가혜를 반겼다. 마치 이 상황을 보고 있는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뜨여진 눈 위로 가혜가 몸을 가져다 댔다. 제 몸이 문신을 지날 때마다 느낌이 이상했다. 앞과 달리 몸과 닿는 면적이 큰 등은 가슴보다 더 단단한 느낌이었다. 의도치 않게 등과 많이 쓸린 유두가 빨갛게 색을 머금었다.

“흐흣…….”

작게 새어 나온 신음을 들은 단 후가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 몸에다 대고 자위하지 마.”

“아니에요.”

그가 시켰으면서 자위라고 이야기하다니.

가혜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사실 아래가 젖어 들고 있었다. 거품의 매끄러움이 제 예상의 범위를 넘고 있었다. 살과 살을 맞댄 채 비벼지고 있는데도 마찰력이 거의 없었다. 힘들이지 않아도 그녀의 몸이 단 후의 몸을 타고 올랐다. 처음에는 몸으로 비누칠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몸을 맞댈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까지 상체만 씻길 거야. 이리 와.”

가혜를 끌어당긴 단 후는 욕조에 앉은 채로 그녀를 제 아래에 끌어다 앉혔다. 얼떨결에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가 된 가혜는 놀란 얼굴로 단 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도 깨끗하게 해 줘야지.”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는 각을 세운 단 후의 페니스가 있었다.

단 후는 동그랗게 뜬 가혜의 두 눈을 보면서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손을 뻗어 턱을 간질인 그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두 손으로 네 가슴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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