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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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씨발. 똑바로 안 해?”

오늘따라 날이 선 양 감독의 목소리가 쨍, 하고 울렸다. 순식간에 촬영장 분위기가 얼음물을 끼얹은 듯 불편하게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양 감독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내 밑에 깔려있던 희민이 후, 한숨을 내쉬더니 날 발로 밀어냈다.

"야, 한희민!”

"잠시만 쉬고 싶어요.”

희민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자 양 감독이 인상을 구기더니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10분간 쉬었다가 다시 집합!”

B급 포르노를 찍으면서, 영화라도 찍는 듯 유세를 떠는 양 감독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샤워가운을 걸친 희민이 한숨을 내쉬며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그가 총총 걸어가 비상계단 쪽으로 향하자 발걸음 소리를 잔뜩 죽이며 멈춰 섰다.

하지만 계단에 서 있던 사람은 희민뿐만이 아니었다.

샤워 가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던 희민의 손을 양 감독이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만하자는 게 무슨 소리야.”

가녀린 손에서 담배가 떨어져 바닥으로 굴러갔다. 예상치 못한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숨을 죽였다. 나의 희민이 저 곰 같은 새끼랑 사귀고 있었다니. 눈이 발바닥에 달렸나? 감자같이 생긴 양 감독이랑 사귀긴 왜 사귄 거야. 희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새어 나왔다.

"말 그대로 이런 관계 그만하자는 거지.”

"나랑 촬영하기로 한 영화는 어떡하려고.”

"영화?”

희민은 코웃음을 치며 양 감독을 쏘아보았다.

"영화를 찍을 생각은 있어? 씨발, 포르노나 찍어대는 주제에.”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양 감독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희민이 눈을 번들거리며 쏘아붙였다.

"애초에 날 꼬셔낼 때 네가 뭐라 했어. 날 배우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잖아. 남자 새끼들 자지나 빨아주고, 밑에서 처박히는 시늉이나 하는 게 배우야?”

"진짜 처박게 하는 수가 있어.”

양 감독이 분노를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마 나랑 만나고 있으니 진짜 섹스는 안 시키는 거야.”

"지랄을 하세요. 아주 대단한 배려 납셨네.”

이죽대는 희민에게 양 감독이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네가 어디 가서 배우나 할 수 있는 줄 알아? 이미 포르노 배우로 얼굴 다 팔려서 멀쩡한 배역 따낼 수도 없어.”

"씨발, 그럼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란 걸 말해줬어야지!”

희민이 쨍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애초에 얼굴은 다 모자이크하겠다고 했잖아!”

"얼굴 모자이크 처리된 포르노를 누가 봐. 얼굴 드러내야 팔릴 거 아냐. 네가 가진 게 얼굴밖에 더 있어?”

양 감독은 느른한 목소리로 비웃었다.

"그나마도 볼수록 질리는 얼굴이잖아. 상대 배우들이 하도 안 서서 몇 명을 교체했는지 알아?”

양 감독이 손가락으로 희민의 고개를 쿡쿡 찔렀다.

"지금 촬영하는 그 새끼가 어려서 뭣도 모르고 계속 세우는 거지. 너랑 할 땐 나도 안 서.”

"네가 안 서는 걸 왜 내 탓으로 돌리고 지랄이야, 이 고자 새끼가!”

퉷, 소리와 함께 희민이 양 감독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양 감독의 눈이 흉흉하게 내려앉더니 곧바로 희민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짝!

우렁찬 소리와 함께 희민의 고개가 돌아간 순간. 이성이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죽여 없는 사람처럼 대화를 엿듣던 내 눈에서 불꽃이 튀어 나갔다.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내려오는 날 발견한 양 감독의 눈이 커졌다.

"저 새끼가 지금 뭐…….”

양 감독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퍽, 날아오는 내 주먹에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희민의 비명 소리를 뒤로 한 채 양 감독의 몸에 올라타 미친 듯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덩치가 곰만 한 양 감독이었으나 전국 체전에서 유도로 우승했던 내게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곧 희민이 날 다급하게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이 미친놈아!”

이성이 나간 날 희민이 발로 걷어차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양 감독의 얼굴이 너덜너덜해진 채 눈가와 뺨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희민이 황급하게 양 감독을 일으켜 세웠으나 그는 희민의 팔을 뿌리치고 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가…….”

"어디서 배우에게 손을 댑니까.”

내 분노에 찬 목소리에 양 감독이 코웃음을 쳤다.

"배우 같은 소리 하네. 포르노나 찍는 주제에.”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둘이 뭐야. 떡정이라도 들었어?”

양 감독의 차가운 시선이 희민에게 향했다.

"이 새끼 때문에 나랑 그만하자고 한 거야?”

"미쳤냐? 얼굴에 솜털이 보송한 새끼랑.”

희민의 질겁에도 양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고소할 거야. 합의 따위 절대 없으니까 넌 콩밥 먹을 준비하고.”

양 감독은 나와 희민을 차례로 노려본 후 그대로 걸어 나갔다. 콩밥이라니, 그의 촌스러운 단어 선택에 코웃음을 쳤다. 희민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날 흘겨보았다.

"이 또라이 새끼야. 왜 끼어들어서 일을 크게 만들어?”

"형이 맞았잖아요.”

내 말에 희민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맞든 말든, 네가 뭔데.”

돌아서는 희민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형, 배우 하고 싶어요?”

"이거 놔.”

희민은 즉시 내 팔을 뿌리쳤지만 다시 다급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내가 배우 시켜줄게요. 이런 거 그만 찍어요.”

내 얼굴에 희민의 비웃는 듯한 시선이 머물렀다.

"왜. 너도 저예산으로 포르노 하나 찍게?”

"저희 아버지 에이 프로덕션 대표예요.”

내 말에 순간 희민의 눈이 커졌다. 가장 규모가 큰 외화 수입 영화사인 비케이 픽처스와 드라마, 게임, 애니 콘텐츠 제작사를 모두 소유한 에이 프로덕션. 희민의 눈이 내 얼굴에 한참 머무르다가 후줄근한 내 옷, 그리고 낡은 운동화로 차례로 옮겨갔다.

"지랄하고 있네. 너 허언증 있냐?”

내 말을 단숨에 비웃은 희민이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의 가녀린 뒷모습은 언제나와 같이 깊은 욕정을 불러일으켰다. 배우가 되고 싶은 거였구나. 희민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지척에 있는 줄도 모르고 세상 헛짓거리를 했다니. 입가에 미소가 완연하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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