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아가!”
집을 들어선 남자의 외침에 어디선가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작은 아이 하나가 그의 품으로 뛰어올랐다.
찰랑이는 검은 머리카락이 남자의 볼에 닿았다.
“아가, 오늘도 재밌게 놀았어?”
애정 어린 입맞춤을 작은 얼굴에 쏟아내자, 이내 아이는 까르륵거리며 제 아버지의 품을 파고들었다.
“말도 말아요. 얼마나 천방지축인지, 오늘 깨 먹은 접시만 해도 벌써 세 개랍니다.”
부엌에서 아이와 똑 닮은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나왔다. 척 보기에도 미인인 여자였다.
남자는 태연하게 웃으며 품 안의 아이를 허공으로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펄쩍펄쩍 아이가 날아오를 때마다, 여자의 타박과 아이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대장부로 태어났으니, 그 몫을 하는 거지. 안 그렇니, 아가?”
아가라고 불리는 아이는 이름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오직 번트 보호구역에서 종종 산파를 맡는 할멈만이 알고 있었으니까.
“아빠, 너무 심심했어요. 오두막에 놀러 가고 싶은데 엄마가 낮에는 안 된대요.”
낮에는 안 된다는 말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어쩔 수 없이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
“낮에는 무서운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아가가 다칠까 봐 그러지.”
“아니던데? 착한 사람들 많던데?”
아이는 조막만 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여운 말대답을 했다.
낮엔 일 층으로 올 수 없는 아이는 온종일을 맨 위층 다락방에서 지냈다. 거기에 난 창으로 바깥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아이의 유일한 낮 일과였다.
바깥엔 늘 똑같은 사람들이 보였다.
늘 턱수염을 벅벅 긁는 마부와 종종 먹을 것을 나눠주러 오는 부인들이 전부였지만, 아이는 그 모든 것을 늘 새로운 것을 보듯 흥미롭게 지켜봤다.
언젠가 한 번은 제 어머니와 부인이 바깥에서 대화 나누는 것을 보고 휘파람을 불어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얼마나 호되게 혼났던가.
다신 그런 짓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아이는 다락방 창문을 열 수 있었다.
“빨리 밤이 됐으면 좋겠다.”
외곽에 있는 아이의 집은 해가 저물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직 어둠이 짙어지고 나서야, 아이는 조심스럽게 마당을 밟아볼 수 있었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어둠을 사랑했다. 어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무한한 자유로움이었다.
“아버지가 오는 길에 오두막에 장난감도 넣어놨지! 웨인에서 제일 멋진 거로!”
“우와!”
집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소꿉놀이하는 게 유일한 놀잇거리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 되면 제 부모의 손을 이끌고 오두막으로 가, 딱 모래시계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만 놀다 오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제 아버지와 모래시계를 두 번이나 새로 엎을 때까지 오두막에서 놀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이다가 결국 다락으로 올라갔다. 창문을 열자 찬바람과 함께 새카맣게 잠든 마을이 보였다.
“여기는 번트.”
아이는 제 부모의 대화에서 주워들은 말을 곱씹었다.
“수도는 웨인. 여기는 번트. 엄마 이름은 올리비아. 아빠 이름은….”
아이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아빠 이름은 아직 모르네. 그럼, 내 이름은…. 아가.”
아이는 창턱에 올라앉아 발을 까딱거렸다. 제 어머니가 보면 질겁을 할 모습이었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겁이 없었다. 얌전한 인형 같은 생김새와는 딴판인 성격이었다.
멀리서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 늑대 보고 싶다.”
들개보다 훨씬 크다던데 많이 무서울까? 귀여울 것 같은데.
아이는 숲 입구를 뚫어져라 보며 늑대의 생김새를 상상했다.
“어? 늑대다.”
그 순간, 숲길 어귀에서 작은 늑대 새끼 하나가 빠르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한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잿빛 머리통을 가진 새끼가 재빠르게 도랑을 몇 번 건너뛰더니 순식간에 아이의 집 근처까지 왔다. 아이의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사람이다!”
꼭 저만한 사람이었다. 늑대 새끼가 아니었다.
또래를 처음 보는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찰랑였다. 아이가 늑대 새끼로 착각한 소년은 급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한 몸짓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작게 휘파람을 휙, 불었다. 엄마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왠지 저 애는 아빠가 말한 무서운 사람이 아닐 것 같았다.
소년이 번뜩 고개를 쳐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한 발을 뒤로 물렸다. 금방이라도 달아나버릴 기세에 아이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가지 마! 가지 마! 안 가면 안 돼?”
“가지 마”를 중얼거리며 아이가 창문을 완전히 활짝 열었다.
소년은 창턱에 고양이처럼 올라앉은 아이를 올려봤다. 거친 숨을 고르느라 가슴팍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잠깐만 기다려봐.”
아이는 잠시 닫힌 문을 확인하더니, 창턱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섰다. 그리곤 이내 폴짝폴짝 외벽에 얼기설기 튀어나온 벽돌을 밟고 땅으로 내려왔다.
아이는 소년의 상처투성이인 발을 쳐다봤다. 소년은 그게 못내 부끄러운지 발을 뒤로 감췄다.
“나도 맨발이야.”
아이는 씩 웃으며 흙투성이가 된 제 발을 쭉 내밀었다. 소년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가만히 저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 놀래?”
대번에 그 말을 물을 만큼 아이는 심심했고, 잠이 오지 않았고, 또 외로웠다.
“저기에 우리 아빠가 장난감도 가져다 놨는데.”
아이의 손이 집 옆에 붙은 오두막을 가리켰다.
대충 보기에도 겨우내 쓸 장작을 갖다 놓거나, 창고로 보이는 오두막인데 대체 무엇을 하며 놀자는 건지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이 단박에 대답하지 않자, 초조해진 아이는 이번엔 숲을 가리켰다.
“늑대가 잡으러 올지도 몰라. 내가 숨겨줄게.”
아이는 조심스럽게 소년의 손을 잡아 쥐었다. 잔뜩 경계하는 표정과 달리 소년은 손을 내치지 않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아이는 좀 더 세게 소년을 잡아끌었다.
잔뜩 들뜬 아이의 발걸음과 달리, 질질 끌리는 소년의 걸음이 오두막으로 향했다.
소년은 오두막 문을 거듭해서 잠갔다. 밖에선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나서야,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넌 이름이 뭐야?”
아이는 손에 장난감을 들고 있었지만, 관심은 온통 눈앞의 소년에게 가 있었다.
무뚝뚝한 소년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이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를 기울여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그토록 사랑해마지않던 어둠이 밉기만 했다.
“내 이름은 아가야. 넌 이름이 뭐야?”
새처럼 총총거리는 목소리였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이름이 아가라니. 잿빛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했다.
“이름 알려주면 안 돼? 우리 엄마는 올리비아야. 아빠 이름은…. 아직 모르는데 내일 물어보고 알려줄게.”
아이는 묻지도 않은 말을 조잘대기 시작했다. 오늘 깨 먹은 접시부터, 아침이면 다락 창문으로 모이를 먹으러 오는 참새까지. 참 쓸데없는 얘기를 귀 아프게도 했다.
결국, 소년은 궁둥이를 조금 옮겨 달빛이 내려오는 창가 밑에 기댔다. 소년의 작은 손가락이 소복이 쌓인 먼지 위에서 움직였다.
[데베르]
“데베르? 이름이 데베르야?”
아이는 그 이름이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이름 엄청 멋있다. 되게 예뻐. 내가 들은 이름 중에 제일!”
아는 이름이라곤 몇 되지도 않으면서 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이름을 칭찬했다.
들어본 적 없는 칭찬에 소년의 귓바퀴가 새빨개졌다.
“데베르, 우리 맨날 이렇게 만나면 좋겠다. 엄청 재밌잖아, 그치?”
아이는 눈치가 없는 편이었다.
“너, 근데 이거.”
고개를 푹 숙인 소년의 목덜미에 붉은 상흔이 가득했다. 무의식적으로 상처로 다가가던 아이의 손이 매섭게 내쳐졌다.
소년의 눈이 이글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아니야! 데베르, 내가 잘못했어! 안 건들게! 안 만질게!”
아이는 얼른 문 앞을 막아서고 쫑알거렸다.
소년이 화를 내는 것보다 겨우 만난 제 친구가 사라지는 게 더 무서웠다.
“데베르, 우리 그냥 놀자.”
소년의 셔츠 끝을 잡은 아이는 조심조심 오두막 안으로 다시 친구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이었다.
아이는 매일 밤 다락으로 올라가 소년이 오는지를 살폈다. 소년은 어떨 때는 매일, 어떨 때는 열흘에 한 번꼴로 숲길에서 나타났다. 셔츠 밑엔 항상 붉은 자국이 가득했지만, 아이는 소년이 영영 오지 않을까 봐 못 본 척했다.
“너 글자 다 배웠어?”
소년이 처음으로 물은 말이었다.
아이는 이미 글자를 다 뗐으면서도, 처음으로 듣는 소년의 목소리가 좋아 가만히 귀만 기울였다.
“글자 몰라? 이름은 알아봤잖아.”
“모르면 어떻게 돼?”
말간 물음에 소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글자를 모르면 편지를 못 써.”
“편지?”
“편지를 쓰면 만나지 못해도 만날 수 있어.”
몇 번 아이의 얼굴을 살피던 소년은 나무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렸다. 하지만 처음 이름을 썼을 때와 달리, 아이의 부모가 말끔히 오두막을 청소한 탓에 먼지가 없다는 걸 몰랐다.
“안 보여, 데베르.”
소년은 한숨을 쉬더니 제 손바닥을 내밀었다. 힘주어 손톱으로 그을 때마다 하얗게 질리는 손바닥 위로 글씨가 얼추 보였다.
“보여!”
“잘 봐. 아가.”
아가라는 이름이 이상하긴 했지만, 소년도 이젠 그것도 이름이겠거니 인정한 터였다.
소년은 올 때마다 부지런히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아이를 가르쳤다. 아이도 맹랑하게 모르는 척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벽난로를 피우지 않아도 추운 줄을 몰랐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소년의 수업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태껏 셔츠 아래로만 보이던 붉은 자국이 얼굴에도 보였다. 아이는 제 손톱만 씹어대며 울상을 지었다. 알은척도 하고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또 소년이 화를 낼까 봐 지레 겁이 나서 할 수 없었다.
“아가. 나 이젠 못 와.”
“왜?”
아이의 얼굴이 울 듯이 일그러졌다.
소년은 아이의 뺨을 작게 토닥였다.
“전쟁이 나서 나도 아버지를 따라 웨인으로 가.”
“전쟁이 뭔데?”
“싸우는 거.”
“왜 싸우는데?”
아이는 못 만난다는 소년의 말에 이젠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건 나도 몰라.”
“너도 싸우러 가?”
“아니, 나는 나중에 싸우러 가.”
“안 가면 안 돼? 싸우지 마. 다치지 마!”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위로해본 적 없는 소년은 제 두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활짝 펼쳤다. 아이는 덥석 그 손을 잡았다.
“이제 글씨 다 배웠잖아. 내가 편지할게, 아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소년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벌써 손가락 하나 정도 커 있었다.
멀어지는 소년을 향해 아이가 소리를 내질렀다.
“나 잊으면 안 돼!”
멀찍이 선 소년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달빛을 받아 유난히 선명한 얼굴이 아이의 가슴에 새겨졌다.
소년은 헤어지는 날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