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게 내 무덤이었네?
남지유는 밤새 시달리며 몇 번이나 싸고 갔는지 일곱 번까지 세다가 짜증만 더 나서 관뒀다. 그가 두 번이나 세 번쯤 쌀 때 권성하가 겨우 한 번 쌌으니 얼추 네다섯 번은 정액을 받은 것 같다. 그때쯤 남지유는 정말 물밖에 나오는 게 없어서 “오빠, 지유 살려 주세요, 지유 죽어요.”라고 자존심을 몽땅 접고 애원했었다. 좆같은 말자지새끼는 물론 들어주지 않았고, 그대로 사정도 없이 절정에 다다른 다음에야 정신을 잃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 후에…… 권성하가 기절한 자신을 붙들고 처박았는지 안 박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 아침부터….”
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던 남지유는 배에 힘을 주자마자 왈칵 쏟아지는 정액에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뜨자마자 정액이 맞아 주다니 정말 씨발 복 받은 인생 아닌가. 남지유는 미끈거리는 액체가 제 다리 사이에서 뭉개지는 게 너무 끔찍해서 곧장 목욕가운으로 정액을 문질러 닦았다. 얼마나 많이 싸 놨는지 배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정액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당장 내일이 없는 놈처럼 좆질을 해 댄 터라 아직도 배 속이 욱신거렸다.
남지유가 정액을 닦아 내며 권성하를 욕하고 있을 때, 침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났다.
“남지유 님. 일어나셨습니까?”
남지유 님 어쩌고 하는 거 보면 권성하의 비서인 것 같다. 남지유는 정액이 흥건한 가운을 다시 입고 싶지는 않아서 보송보송한 이불을 끌어당기며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는 정사의 흔적이 확연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 않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안 좋으면 뭐 어쩔 건데요. 이사님이 보너스라도 쳐 준답니까?”
신경질인 대답이었으나 비서는 선뜻 긍정했다.
“예, 이사님께서 시계를 보내셨습니다. 남지유 님 취향에 맞춰서 고른 거니 부디 마음에 들길 바란다는 말씀 전하셨습니다.”
비서가 고급스러운 블랙케이스를 남지유에게 넘긴다. 블랑팡 시계였다. 가죽 스트랩에 고풍스럽고 정갈하여 어디 예의 차리는 자리에서 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취향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화려한 걸 좋아하는 남지유 취향에는 들까 말까 하다. 그래도 비싼 건 알아보는지라 흡족하게 시계를 둘러보고 있는데 케이스 백을 보자 절로 욕이 터졌다. 고풍스러운 이면에는 남녀가 흘레붙는 모습을 그린 자개가 숨어 있었다.
“씨발? 이걸 내 취향일 거라고 보냈대요?”
“예. 이사님께서 남지유 님을 위해 직접 고르신 겁니다.”
“…….”
줘도 안 가지니까 권 이사한테 돌려주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못했다. 어쨌든 유명 브랜드의 시리즈였고 어젯밤 남지유는 이만한 보너스를 받아야 할 만큼 극심한 노동을 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시계를 제자리에 돌려놓고는 입을 다물었다. 비서는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이사님께서 스파 마사지를 예약해 놓으셨습니다. 인터뷰는 세 시에 시작이시죠? 두 시간 뒤에 헤어 디자이너가 이곳으로 오니 편하게 받고 가시면 됩니다. 물론 약속 장소까지 차로 모셔다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누구 마음대로요? 저 다니는 숍 원장님 아니면 머리손질 안 받습니다. 취소하세요.”
“예, 그 원장님이시니 마음 놓고 받으십시오.”
“…….”
씨발, 그 새끼 내가 다니는 숍까지 알아? 남지유는 소름이 끼쳐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서는 할 말을 잃은 남지유에게 이십 분 뒤에 테라피스트가 올 거라는 말만 전해 주고는 객실을 빠져나갔다. 정액이 흠뻑 묻은 몸을 얼른 씻고 준비나 하라는 거였다.
권성하가 남지유랑 떡이나 칠 생각으로 고른 스위트 객실에는 따로 스파를 받을 룸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액 범벅이 된 목욕가운을 두고 욕실로 향한 남지유는 혹시 몸에 흔적이 남았을까 걱정되어 거울에 곳곳을 비쳐 보았다. 크기도 큰 말자지인 데다 정력까지 대단하신 새끼 밤시중을 드느라 밤새 고생한 몸엔 다행히도 손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유명 남배우가 섹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도 박은 게 아니라 박힌 것 같은 흔적을 달고 있다면 알음알음 좆같은 소문이 퍼질 게 뻔했다. 남지유는 가볍게 샤워를 하고는 권성하가 마지막 양심처럼 예약해 놓은 스파 마사지를 느긋하게 즐기기로 했다.
* * *
“고생하셨어요, 지유 씨. 오늘 유독 피부가 빛나서 사진 잘 나올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어제 잠을 못 자서 좀 걱정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시간을 보니 저녁이 다 되어 간다. 테라피스트의 손아래에서 극락을 본 남지유였으나 그래 봤자 밤새 시달렸던 몸이다. 좆몽둥이로 밤새 처맞은 배 속이 욱신거리고 다리 사이가 불편해서 멀쩡한 척 걷는 것도 힘들었다. 남지유는 스태프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와서는 매니저를 닦달했다.
“집으로 가자. 빨리.”
“아, 형 대표님이 부르셨는데…….”
“씨발 가라면 가, 그냥.”
“넵.”
원하는 대답을 받아 낸 남지유가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묻는다. 나른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대로 잠이 들 뻔한 걸 깨운 것은 운전석의 매니저였다.
“형, 전화 오는데요?”
“전화? 씨발, 그냥 문자잖아.”
“계속 진동이 오길래…… 죄송합니다.”
“됐어. 운전이나 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던 남지유가 의식적으로 표정을 펴며 미간을 문지른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얼굴과 몸뚱이 하나로 성공한 그에게는 얼굴이 곧 재산이었다.
뒤늦게 확인한 스폰서용 핸드폰에는 문자가 수십 통 와 있었다. 전부 최 사장이 보낸 문자였는데, 알림을 꺼 놓은지라 다른 놈 폰으로도 왕창 보내 놓은 것 같았다. 씨발, 내 번호 아무 데나 뿌리지 말라니까. 남지유가 짜증을 내면서도 차곡차곡 쌓인 문자를 확인한다.
[지유야 자니?]
[오빠랑 좀 만나자. 만나서 얘기 좀 해.]
[지유야 전화 좀 받아]
[혹시 권이사랑 잤어? 그놈이랑 상종하지 말랬지]
[오빠가 들은 게 있어서 그래 전화 좀 받아봐]
[지유야]
이후로도 비슷한 문자가 이어졌다. 권 이사가 벌써 최 사장을 치워 주려고 손을 썼나? 아주 만족스럽기 짝이 없었다. 브로커 그놈도 같이 잡아다 족쳐 주면 좋겠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최 사장 손에 있는 섹스 영상쯤이야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권 이사한테 부탁하면 더 손쉬운 일이겠지만, 그러면 약점을 잡은 놈이 최 사장에서 권 이사로 변경될 뿐이었다. 이 좆같은 스폰서 생활도 말끔히 청산하지 못할 테고.
[지유야]
[톡 확인했네?]
[지유야 전화 좀 하자]
[오빠한테 영상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그사이 최 사장에게서 문자가 연달아 몇 개가 더 왔다. 투박한 손으로 터치가 힘들다며 문자도 잘 안 하던 인간인데 급하긴 급한가 보다. 남지유는 욕을 하며 짜증을 냈고, 운전하던 매니저는 그런 남지유의 눈치를 보며 차를 몰았다. 영상까지 들먹이니 당장 전화를 해야 하긴 했는데 매니저가 있어서 할 수가 없다.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일하는 중이라]
남지유는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 놓았다. 잠이 몽땅 달아나 버렸다. 그는 집으로 향하는 몇십 분 동안 눈을 감은 채 최 사장의 멱을 따는 상상 따위를 했다. 그래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식사를 사다 줄까 묻는 매니저를 돌려보내고 난 뒤에야 남지유는 그토록 바라던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씨발 뭔데, 왜 전화 안 받아?”
그러나 그렇게 문자를 보내며 재촉하던 놈이 어쩐 일로 감히 전화를 씹는다. 초조해진 남지유가 연달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온 지 몇 년은 된 아이돌 노래가 컬러링으로 나오고 있다. 지겨운 후렴구가 두 번 반복될 때쯤, 전화를 끊고 다시 걸려던 남지유는 연결이 된 걸 깨닫는다.
“여보세요? 최 사장님?”
- 안녕, 지유야. 집에는 잘 들어갔어?
뭐야, 최 사장 전화인데 왜 이 새끼가 받지? 당황한 남지유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렸다.
- 오빠가 물어보는데 대답해야지, 응?
“아, 좀…… 놀라서요. 그런데, 오빠가 왜 최 사장님 전화를…….”
- 지금 최 사장님이 오빠랑 같이 있거든. 야, 그 새끼 조용히 시켜.
“네?”
- 아니, 지유랑 전화하는데 돼지새끼가 좀 시끄럽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남지유가 대답을 못 하고 가만히 있자 수화기 너머 권성하가 나직하게 웃는 소리가 났다. 그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몹시도 즐거운 목소리로 남지유에게 속삭였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꼭 애인에게 하듯이 말이다.
- 오빠가 지금 지유 선물 준비해 놨는데 여기로 올래?
“지금요? 지금은 좀…….”
또 흉기에 찔릴까 봐 걱정이 된 남지유가 우선 빼고 본다.
- 싫어? 그러면 오빠가 좀 실망할 것 같은데 지유야. 응?
“아, 아뇨. 오빠가 부르는데 당연히 가야죠. 지금 갈게요. 어디신데요?”
- 우리 지유, 말 참 잘 들어서 예뻐.
다정한 척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니까 소름이 돋는다. 남지유는 집에 도착한 지 십 분도 안 되어서 다시 나갈 걸 생각하니까 왈칵 짜증이 터졌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운 터라 배도 고팠다. 짜증을 맘껏 부릴 수 있는 상대라면 그렇게 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감히 그럴 수 없는 상대였다. 남지유는 최 사장만 떨궈 내고 나면 이 새끼랑은 절대 상종도 안 하리라 다짐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 지금 오빠가 지유 집으로 차 보냈으니까 그거 타고 와.
“네?”
말하기가 무섭게 인터폰이 울렸다. 거실에서 서성거리며 전화를 하던 남지유는 곧장 인터폰을 확인했다. 인터폰에는 어제 본 까만 정장 차림의 무뚝뚝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씨발, 지금 보냈다는 사람이 왜 벌써 오고 지랄이야? 남지유는 혹시 권성하가 저를 스토킹하는 것은 아닐까 몹시 불안해졌지만 이제 와 발을 뺄 순 없었다. 최 사장과 같이 있다던 말도 그제야 불길하게 다가왔다.
“어…… 지금, 오셨네요. 저, 그럼 나가 볼게요.”
- 응, 빨리 와야 해? 우리 예쁜이 얼굴이 벌써 보고 싶네.
“네, 빨리 갈게요.”
불안하든 말든, 짜증이 나든 말든. 결국 남지유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로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권성하가 보낸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체감상 한 시간은 흐른 것 같았는데, 막상 확인해 보니 고작 이십 분이 흘러 있었다. 권성하의 부하가 안내해 준 곳은 반질반질한 전면 유리창이 빛나는 고급스러운 빌딩이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지라 어두컴컴해야 할 건물에 불이 켜진 모습은 묘하게 을씨년스러웠다. 건물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무리를 보니까 더 그래 보였다. 제 몸 하나 지킬 만한 뭐라도 가져왔어야 했나, 남지유가 달라질 것 없는 고민을 했다.
“어디로 가는 건데요?”
“이사님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
씨발,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그러니까 그곳이 어디냐고. 남지유는 끝도 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보며 초조하게 숨을 골랐다. 그를 가운데에 끼고 있는 사내들은 딱 봐도 주먹 좀 쓸 것같이 생겼다. 그렇다 보니 호굴로 연행되는 기분이었다. 권 이사는 조폭계 재벌이니 웬만하면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거라던 최 사장의 말이 지금처럼 선명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사내들은 남지유를 아주 극진하게 모셨다. 굳게 닫힌 문 안쪽으로, 안쪽으로, 안쪽으로. 몇 번의 문을 지나친 후에야 남지유는 권성하를 만날 수 있었다. 권성하는 누군가의 개인사무실 같은 아주 넓은 공간에서, 정장 무리를 위시한 채 홀로 군림하는 왕처럼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 예쁜이 왔어?”
존나 깜찍한 호칭에 반발할 겨를도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바닥에 최 사장이 반쯤 죽어 가는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입엔 양말 같은 게 대충 말려 들어가 있었고 손은 뒤로 묶인 채였는데, 눈이 마주치니 살려 달라고 애원하듯 낑낑거렸다. 그리고 온몸이 상처와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남지유는 끔찍한 광경에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남지유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자, 그 곁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이 가볍게 막아섰다. 겁에 질린 남지유는 그들에게 이끌려 저항도 못한 채 권성하의 앞으로 모셔졌다. 최 사장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남지유의 얼굴을 권성하가 부드럽게 잡아 돌렸다.
“오빠 두고 다른 새끼만 애타게 쳐다보니까 질투 나네?”
“죄, 죄송합니다.”
아양이나 떠는 처지란 걸 망각한 입에서 군기가 바싹 잡힌 대답이 나왔다. 권성하가 귀엽다는 듯이 웃더니, 남지유를 이끌어 제 무릎에다 앉힌다. 남창으로 굴러먹은 짬이 있는 남지유가 당황한 중에도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했다. 권성하가 제 어깨에다 팔을 두르며 얌전하게 앉은 남지유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는 남지유의 허벅다리를 은근하게 쓸어 만지면서 눈을 맞췄다. 그가 예쁘게 눈웃음을 쳤다.
“지유야, 오빠 선물 맘에 들어?”
그럴 리가. 최 사장을 찢어 죽이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했다. 남지유는 저를 사랑해 주는 보호자 밑에서 아주 곱게 자란 온실 속 화초였다. 그 흔한 주먹다툼 한번 해 본 적 없었고 하물며 초주검이 된 상대를 직접 대면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그 앞에다 피칠갑을 한 최 사장을 떨어뜨려 놓으니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남지유는 자꾸만 최 사장에게로 향하려는 시선을 다잡으면서 권성하를 바라보았다. 반듯한 입술에서 떨리는 숨이 샜다.
“……네. 맘에 들어요.”
“그런데 표정이 왜 이렇게 뻣뻣해. 응? 예쁘게 웃어 줘야 오빠가 선물한 보람이 날 거 아냐.”
“정, 말 기뻐요…… 오빠.”
이런 상황에서도 웃으라고 하니 표정을 지어내는 데 익숙한 얼굴이 자연스럽게 웃음을 그려 냈다. 그림처럼 웃는 얼굴을 권성하가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따라 웃었다. 사람 하나를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보일 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조폭새끼들은 다 이런가? 애초에 일반인한테 이런 걸 보여 줘도 되는 거야? 돈을 받고 보라고 해도 싫은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한 남지유는 억울하고 짜증이 나면서도 권성하가 무서워 미칠 지경이었다. 이 얼굴만 예쁜 또라이가 언제 돌변해서 저를 최 사장처럼 만들지, 어젯밤에 그렇게 기어오르고도 멀쩡히 살아 있는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씨발.
“예쁜이 밥도 아직 안 먹었다며. 굶고 다니면 오빠가 속상해.”
“오, 오빠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우리 지유는 말하는 것도 어떻게 이리 예쁘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잘 들어갔냐며 안부를 물은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끼니를 거른 걸 알고 있는 것도, 어떻게 이리 빠삭한지 이쪽이야말로 의문이었다. 순간 등골 오싹한 예감이 남지유를 스친다. 최 사장의 일이 해결된 뒤에도, 권 이사의 자지나 받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아주 좆같은 예감이었다.
권성하가 뒤로 손짓하자 위시해 있던 사내들 중 한 명이 다가와 틴 케이스를 내민다. 거기에는 달달한 냄새가 나는 쿠키가 한가득 있었다. 설마 저걸, 지금 이 상황에 먹으라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 설마가 맞았다. 남지유는 속으로 질색하면서도 권성하가 직접 먹여 주는 손길을 감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피비린내가 풍기고, 근처에서는 최 사장이 처맞고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퍽도 넘어가겠다 싶었지만 무서운 분께서 친히 떠먹여 주시니 미슐랭 쓰리스타 못지않았다. 애써 웃은 남지유가 입을 벌려 쿠키를 받아먹었다.
“이거 먹고 좀 이따 맛있는 거 사 줄게. 오빠가 레스토랑 예약해 놨어.”
“네, 네에.”
“우리 예쁜이, 쿠키 맛있어?”
“맛있어요, 오빠.”
입 안에서 파삭파삭 부서지는 쿠키를 아주 맛있다는 듯 먹는 남지유의 얼굴은 핏기가 빠져 창백하다. 권성하는 입을 작게 벌려 조금씩 베어 먹는 남지유를 보면서 “부스러기 다 흘리고 먹네. 애기야?” 하고 웃었고 쑥스러운 척 시선을 내리까는 남지유에게 뽀뽀하며 부스러기가 묻은 입술을 핥아 주었다. 그리고 차마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을 한다.
“지유야. 저 새끼 어떻게 하고 싶어? 오빠가 지유한테 주는 선물이니까 지유 맘대로 해도 돼.”
“저는, 저…… 잘 모르겠어요.”
“지유 보지에다 멋대로 쑤셨던 좆 잘라 줄까? 아님 지유가 찍었던 영화에서처럼 공구리 쳐 줘? 말만 해, 오빠가 다 해 줄게, 응?”
애인한테 속삭이듯 아주 부드럽게 말하는 내용이 가관이다. 남지유는 그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어절이 끝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잘, 저는, 그냥, 모, 모르겠어요.”
“우리 지유 맘이 너무 착하네. 섹스 영상 갖고 협박한 놈 생각해 주는 거야?”
권성하의 입에서 영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남지유가 화들짝 놀라 그를 본다. 하지만, 그래, 최 사장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았던 놈이다. 핸드폰에 있는 메시지를 확인해서 아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영상이 권성하의 손에 들어가진 않았으리라.
권성하는 차게 굳은 얼굴을 부드럽게 쓸다가 깨물린 아랫입술을 어루만졌다. 걱정이라기보다는 제 것에 흠집 나는 게 싫은 것 같았다. 남지유는 깨문 입술을 얌전히 놓았다.
“지유야, 오빠는 저 새끼처럼 영상 가지고 협박하는 추잡한 짓 안 해요.”
“…네에.”
“맘이 여려서 어떡하나, 우리 지유. 저 개새끼 그냥 오빠가 알아서 처리해 줘?”
궁지에 몰린 입장에서는 아주 달가운 객관식이었다. 남지유가 살짝 눈물이 떠오른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권성하가 귀엽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멀리서 최 사장이 가로막힌 입으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곧장 둔탁한 타격음으로 이어졌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자리가 아니라 맨바닥에 머리통을 부닥친 최 사장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는지 앓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씨발, 진짜 죽은 거 아니야? 남지유는 겁이 나 떨면서도 차마 그쪽을 볼 수 없어 권성하의 어깨에다 얼굴을 기댔다. 권성하가 달래 주듯이 움츠린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못내 흐뭇한 말투로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저거 치워. 예쁜이가 무서워하잖아.”
“네, 이사님.”
이어서 구둣발 여럿이 이동하는 소리와 묵직한 무언가가 질질 끌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남지유는 눈을 질끈 감고 딴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되지가 않았다. 저대로 나간 최 사장은 어떻게 될지, 집에 돌아갈 순 있을지, 산에 묻힐지, 바다에 잠길지…… 왜 권성하는 이딴 걸 선물이랍시고 보여 준 건지. 두려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권성하는 두려움에 떠는 남지유를 보며 “우리 예쁜이, 무서웠어요?”라고 하며 아주 너그러운 척 뽀뽀하고 쓰다듬으며 달래 주었다. 판을 짠 장본인인 주제에 말이다.
“지유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갈까?”
“…입맛이, 없어요. 오빠….”
정말이었다. 뭐 하나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아까 간신히 넘긴 쿠키도 속이 너무 역해서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권성하는 남지유가 낸 최대의 용기를 아주 간단하게 짓밟았다.
“저런 개새끼도 오래 씹질 한 사이라고 걱정되나 봐. 응? 우리 지유가, 오빠 성의는 좆도 생각 안 하는 거 보면.”
“아, 아니요. 아니에요, 오빠.”
“아니야? 우리 지유 저 새끼한테 정말 맘 뜬 거 맞아? 으응?”
애초에 믿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는지. 권성하와 남지유는 고작 어제 처음으로 몸을 섞은 사이였다. 이렇게 상간남 잡듯이 추궁당할 입장이 상호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시체가 될 예정인 최 사장이 치워지는 광경을 목격한 남지유로서는 도저히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남지유가 카메라 앞에서나 보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곧장 말을 바꾼다.
“지유 배고파요, 오빠. 밥, 먹으러 가요. 네?”
권성하가 그제야 웃었다.
* * *
“맛있어, 지유야? 안 뺏을 테니까 천천히 먹어. 응?”
“흐읍, 흣, ……우응.”
입맛이 없다던 남지유를 억지로 끌고 온 권성하가 밥이 아닌 제 좆을 물린 채로 말한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메뉴 하나하나가 남지유의 입맛에 맞춘 선정이긴 했으나 사람 하나 골로 보낸 걸 목격한 남지유는 몇 입 먹지도 못했다. 그러자 권성하는 기분이 틀어졌는지 달래 주고 예뻐해 주며 한입 더 먹이려는 태도를 싹 버리고는 “예쁜 짓 좀 해 봐.”라고 갑처럼 말씀하셨다. 그 말에 을인 남지유가 입으로 예쁜 짓을 하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후… 지유는 밥 대신 좆물만 먹고 사나. 맛있는 거 사 준대도 싫다고, 응? 오빠 좆이나 물고 앉았네.”
통째로 빌려 직원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의 프라이빗룸에서, 남지유는 우아한 클래식 음악 따위를 들으며 또다시 생사를 건 펠라를 하고 있었다. 어제 한 번 경험했다고 자지를 물고 빠는 솜씨가 한결 훌륭해졌다. 권성하는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앉은 채로 제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지를 빨아 먹는 남지유를 바라보았다. 남지유가 몹시 예쁜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스러운 손길로 만져 주며 말이다. 권성하를 위해 열심히 물고 빠느라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희고 기다란 손이 제멋대로 어루만졌다.
이 상황을 맘껏 즐기는 권성하와는 달리, 남지유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기에 일부러 야한 신음까지 흘리며 흥을 돋우려 애를 썼다. 노력이 헛되진 않았는지 권성하가 남지유의 매끈한 이마를 건드리며 물었다.
“우리 지유가 왜 발정이 났지? 입보지도 보지라고 자지 먹으니까 좋아, 지유야?”
“우우응, 흡, 흐읏, 응.”
할 수만 있다면 이 새끼를 영영 음소거하고 싶다. 남지유는 짜증을 감추며 겉으로는 고분고분한 체 살짝 눈을 치떠 권성하를 보았다. 그러자 다정하던 손이 금세 난폭해진다. 권성하는 잘 세팅된 머리채를 붙잡아 손을 움직이며 입보지에 자지를 쑤셔 박았다. 억센 손에 붙잡힌 남지유는 저항도 못한 채로 억지로 고갯짓을 해 가며 자지를 삼켰다. 목젖까지 찔러 드는 자지는 몹시 크고 단단해서 아플 지경이다. 권성하의 단단한 허벅다리를 지지대 삼아 흔들리는 남지유는 그 와중에 혀로 물고 빨며 권성하가 최대한 빨리 사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거친 몸짓에도 순종하는 귀여운 남창을 보는 권성하의 눈길이 퍽 부드럽다. 그는 뜨거운 숨을 그대로 토해 내며 속삭였다.
“입에다 싸 줄까?”
“으웃, 우으응, 웅……!”
남지유가 거칠게 처박히면서도 알아볼 수는 있을 만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권성하는 예쁜 눈웃음을 짓더니, 곧장 머리채를 붙잡아 자지를 빼내었다. 사정이 임박했던 말자지가 남지유의 잘생긴 이목구비 곳곳에다가 멋대로 정액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수려한 얼굴을, 정액이 먹음직스러운 슈가글레이즈처럼 장식한다.
남지유는 얼굴에 바로 쏟아지는 뜨끈한 액체를 느끼며 속으로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했다. 정액처리 따위를 질색하는 그로서는 권성하의 좆같은 심술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래 봤자, 그가 뭘 할 수 있겠나. 속으로 온갖 울분을 삼킨 탓에 불퉁히 삐져나온 말은 꽤 서럽고 서운해 보였다.
“…지유 입보지에 싸 달라고 했는데…….”
“아, 어쩌나. 입에 싸는 거 싫다는 줄 알았지. 삐쳤어? 오빠가 미안해.”
“……괜찮아요.”
씨발 진심으로 미안한 척 달래는 말투도 좆같다. 그래도 성질대로 왈칵 짜증을 낼 수 없었기에 정숙한 남창처럼 고분고분 대답만 할 뿐이었다. 남지유는 그저, 권성하가 자신을 잘 써먹고 온전한 상태로 집에 되돌려 놓는 것. 그것만을 원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고분고분한 척 구는 것쯤이야 얼마든 할 수 있었다.
권성하는 고급스러운 손수건으로 남지유의 얼굴을 아주 정성껏 닦아 주었다. 일부러 입에 싸 달라는 걸 무시한 주제에 손짓과 표정만은 참 다정스러웠다. 남지유는 눈을 감고 가증스러운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다가 문득 손이 떨어져 나가자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권성하가 그런 남지유와 눈을 맞춘 채로 직원을 불렀다. “오, 오빠 왜요?” 불안해하는 남지유가 정액이 닦이다 만 얼굴이나 권성하의 다리 사이에 주저앉은 제 몸을 어찌할 틈도 없이,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권성하는 남지유를 위해 잠깐도 기다려 주지 않고는 직원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남지유가 결국 권성하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감춰 버린다. 권성하는 그 뒤통수를 만져 주며 웃었다.
“부르셨습니까?”
“접시 치우고 디저트는… 30분 후에 내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아주 잘도 한다. 남지유는 조마조마한 가슴 때문에 밭은 숨을 몰아쉬어 가며 얼른 이 좆같은 상황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가 들린다. 테이블 아래에 숨은 몸이기는 하지만 혹시나 들킬까 봐 심장이 떨려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부디 저 직원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간절하게 바랐으나 샹들리에가 번쩍번쩍 빛나는 환한 룸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다. 지울 수 없는 수치심에 권성하의 다리 사이로 웅크린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권성하는 그 귀여운 몸짓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직원이 나간 후에야 남지유를 달랬다.
“괜찮아, 오빠가 잘 가려 줘서 못 봤어.”
“…저, 뒷문으로 나갈래요.”
“우리 지유 많이 놀랐나 보네. 쟤들 지유 털끝도 못 보게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응?”
“…….”
상황을 이딴 식으로 만들어 놓고 사과만 하면 다인 줄 아는 뻔뻔함이 짜증스러웠다. 그렇지만, 권 이사 같은 권력자에게는 그게 정말 다였다.
남지유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든다. 그 얼굴에 미처 숨기지 못한 짜증이 한가득 어른거린다. 레스토랑으로 입장하면서 이미 얼굴을 다 내보였는데, 단둘뿐인 곳에서 남자 가랑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꼴을 보였을지도 모르니, 씨발 소문이 어떻게 날지 뻔한 일이었다. 권성하는 그걸 다 알면서도 그 상황에 굳이 직원을 불렀고, 놀란 저를 달래 주는 척하는 개새끼일 뿐이다.
권성하는 정말 미안한 듯 미간을 곱게 찌푸리더니 사탕 하나 쥐여 주듯 속삭거렸다.
“지유야. 정 불안하면 쟤들 입 함부로 못 놀리게 혼내 줄까?”
문득 최 사장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생판 남보다야 자신의 커리어가 중요한 법이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남지유는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 지유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줄게.”
그런 남지유를 기특한 듯 바라보던 권성하가 불쑥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얼결에 그를 따라 몸을 일으킨 남지유는 한마디 붙일 새도 없이 그대로 식탁에 눕혀졌다. 레스토랑 테이블에 잘생긴 남배우가 만찬처럼 펼쳐진다. 부드러운 색채의 환한 조명을 한 몸에 받는 그는 다리를 벌리고 어정쩡하게 누워 있는 모습조차 화보 같았다. 제 잘생긴 이목구비가 권성하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도 모르는 남지유가 다소 불안한 눈으로 권성하를 올려다봤다. 권성하는 남지유의 정장바지를 벗겨 내고 있었다. 불안감이 확 엄습해 왔다.
“다음에 오빠 만날 때는 치마 입고 와. 쯧, 바로 박기 불편하네.”
“오, 오빠? 왜요? 여기서 하게요? 진짜요?”
“왜, 지유는 오빠 자지 받기 싫어?”
권성하는 퍽 다정하게 말했지만 행동만은 거침이 없었다. 미약하게 저항하는 몸짓에도 부득불 바지와 속옷을 다 벗겨 낸 그가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발기한 제 자지를 쓰다듬는다. 이미 한 번 입으로 빼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지는 금세 빨갛게 흥분해 있었다. 남지유는 아연실색하여 허둥지둥 아랫보지를 손으로 가렸다. 어젯밤에 지나치게 시달린 기억보다는 당장 밖에 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권성하를 바라보는 표정이 처연해졌다.
“아, 안 돼요, 오빠. 누가 오면요?”
고개까지 저어 가며 설득하려 드는 모습은 참 부질없고 귀여웠다. 권성하는 귀여운 재롱 보듯이 웃어넘기더니 아랫보지를 가린 손을 단번에 떼어 냈다. 보호자를 잃은 비좁은 구멍이 샹들리에 조명 아래에 훤히 드러났고 그 구멍에 큼직한 말자지가 당장이라도 쑤셔 박을 듯 문질러졌다. 이 개새끼, 씨발, 아무 데서나 발정 나는 종마 같은 새끼! 속으로 마구 욕을 지껄이는 남지유는 언뜻 울상이었다.
“오, 오빠… 밖에 들리면 어떡해요? 들릴 것 같은데. 들릴 거예요.”
“그거야, 우리 지유가 잘 참으면 되는 문제지. 안 그래, 지유야?”
“저는, 아니 지유는, 오빠 자지가 너무 커다래서, 못, 참을 것 같…….”
이제는 말을 다 들어 주지도 않는다. 그냥 처박으려던 권성하는 어제 남지유가 열심히 보지를 풀던 장면이 떠올랐는지 제 손가락을 다짜고짜 남지유의 입에다 쑤셔 넣었다. 내려다보는 눈빛에 희열이 들끓고 있다. 남지유가 어쩔 수 없이 정성껏 빨아올리기 시작했다. 혀로 감고 입술로 빨 때마다 쪽쪽 뽀뽀하는 소리가 애교처럼 흘렀다. 권성하는 그걸 부드럽게 지켜보다가, 남지유가 열심히 적신 손가락으로 비좁은 보지를 풀어 주었다.
“아, 으으. 오빠아.”
“왜 보채. 응? 빨리 박아 줘?”
그게 아니라 배려 없는 손길이 아파서 그렇다. 남지유는 욕이 치미는 속맘을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촘촘한 속눈썹을 내리깔면서 “아, 아파서…….”라며 가련한 척 청승을 떨었다. 그러자 “우리 지유는 오빠가 어제 쑤셔 줬는데 또 아다처럼 구네.”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귀여워하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답을 주었다. 흥분이 어려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곧장 손가락을 빼낸 권성하가 그보다 훨씬 큰 말자지를 들이밀었다. 남지유는 그 순간 성공한 기업가의 대부분이 사이코패스라는 연구 결과를 떠올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프다는데 꼴려서 당장 처박을 생각이 들 리가 없었다.
“오빠, 잠깐만요. 저, 지유 콘돔 써야…….”
“콘돔? 우리 지유, 아기집도 없어서 임신할 일도 없는데 무슨 콘돔이야.”
“그치만.”
가랑이에서 정액이 새는 좆같은 기분을 이 새끼가 알 리가 없지. 시무룩하게 입을 닫은 남지유에게 권성하는 여전히 자지를 문질러 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그럼 밖에 애들 보고 사 오라고 할까? 금방 올 건데. 응?”
“아, 아뇨! 괜찮아요. 그냥, 그냥 하세요…….”
씨발, 뭔 말을 하면 더 좆같은 말로 응수를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제 입으로 삽입까지 허락한 남지유가 가랑이에 닿는 말자지를 질린 얼굴로 바라보다, 차마 못 보겠는지 고개를 돌린다. 그의 손끝이 하얀 테이블보를 붙잡았다. 어제 첫 삽입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몸이 떨리고 있었으나 권성하에게는 그것마저 하나의 즐거움인 것 같았다. 활짝 열린 다리 사이로 권성하의 자지가 느긋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 아으응.”
“하… 지유 보지가 벌써 젖었나. 뜨겁고 미끈거리는 게, 응? 오빠 자지 물고 안 놔주네?”
“으앙, 아, 그럴 리, 없잖아요… 아! 오빠 살, 살살요… 으응, 앙.”
“예쁜이 오빠 말 못 믿어?”
반쯤 들어섰던 자지가 단번에 끝까지 짓쳐들었다. 남지유는 장소도 잊고 크게 할딱거리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권성하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남지유가 정신 차릴 여유도 주지 않고 퍽퍽 박아 대기 시작했다. “아앙, 앙! 아, 오빠, 저, 잠깐.” 테이블 위에 펼쳐진 남지유가 좆질을 당하며 파득파득 흔들린다. 그는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는 분한 눈으로 권성하를 바라보았다. 발갛게 익은 얼굴에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으니 아주 꼴렸다.
권성하는 조르는 방법까지 탁월한 그에게 기꺼이 자지를 박아 주었다. 더욱 거칠어진 몸짓에 테이블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처박히는 남지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쾌감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야릇한 소리를 더욱 참기가 힘들어졌다. 남지유가 양손으로 입을 가로막은 채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권성하는 웬일로 다정하게 눈웃음을 지어 주더니, 억지로 손을 떼어 내 제 어깨에 두르게 하며 더 깊숙이 처박았다. 남지유의 입에서 참았던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앙! 오빠아, 앙! 아아, 앙. 안 돼요, 흑, 밖에 들리는데, 아으응!”
“지유야,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잘 참아야지. 내일 증권가 찌라시에 배우 남지유가 남자 스폰서한테 좆질당한다고 실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응?”
“아앙, 앙! 그치마안, 아, 오빠, 싫어, 못 참겠, 으으응, 천천히, 앙, 아아!”
참고 싶어도 절제가 안 되는 걸 남지유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저 굵고 기다란 자지로 배 속을 찔러 댈 때마다 눈앞이 하얘지며 절로 달뜬 소리가 터졌다. 남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참다가 “자꾸 오빠 거에 흠집 낼래?”라며 혼을 내는 소리에 다시금 얌전히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선정한 클래식이 부드럽게 흐르는 가운데, 질척거리는 소리와 남지유가 앙앙 간드러지게 자지러지는 소리가 룸을 가득 채운다. 비좁은 구멍을 가득 채운 압박감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쾌락마저 황홀했다. 남지유는 들키든 말든 권성하의 좆질에 몸을 맡기고 싶은 맘과 겨우 성공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것은 곧 입을 가로막고 싶다는 욕심으로 흘렀다. 그러나 감히 권성하가 직접 둘러 놓은 팔을 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입술을 깨물 수도 없었다. 결국 애타게 권성하를 바라보는 눈만 젖어 들었다. “오빠, 천천히요, 제발, 지유 힘들어요…….” 힘든 척, 버거운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힘들고 버거워서 감당이 안 되었다.
물론, 성격 더러운 남지유가 애처롭게 빌빌댈수록 권성하는 더욱 성욕이 돋아났다. 그는 짓궂은 심보를 감추지 않고 남지유가 가장 느끼는 부분을 마구 찔러 대기 시작했다. 권성하의 옆구리로 뻗어진 맨다리가 쭉 펴지더니 할딱대던 고개마저 젖힌 채 자지러진다.
“아아앙! 으앙, 앙, 오빠아, 어떡해, 흑, 앙, 싫어요.”
“지유야, 씨발, 보지로 오빠 자지 꽉꽉 물어 대면서, 싫기는. 응?”
“아응, 흑, 소리 못 참겠, 단 말예요, 아앙, 아! 오빠아, 제발.”
권성하가 픽 웃었다.
“지유 입보지가 천박한 걸, 왜 오빠 탓을 해. 정 그러면 오빠 넥타이라도 물려 줘?”
“네, 네에, 앙! 오빠 넥타이, 지유 입보지에다, 물려 주세요, 흑, 아앙.”
간절함이 극까지 치달으니 뭐든 좋다고 애원을 해 댄다. 너그러운 웃음 따위를 지은 권성하는 여전히 허리를 튕겨 가며 제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멋이 있는 스테파노 리치 넥타이가 곧장 남지유의 발랑 까진 입보지에 처박혔다. 거칠고 배려 없는 손길이었지만 남지유는 아주 감사한 듯 눈웃음을 지으려 애를 썼다. 물론 그게 권성하를 더 동하게 했음은 당연하다.
권성하는 남지유의 골반을 붙잡고 제멋대로 박아 대기 시작했다. 남지유가 권성하의 넥타이를 입에 문 채 자지러졌다.
“응으응! 응, 으응, 흐으응.”
“지유야, 아무리, 오빠가 입보지 채워 줬어도, 응? 알아서 참아야지.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으으응, 웅, 우응, 응……!”
“배우짓 관두고 오빠한테 시집오고 싶어? 발랑 까졌네, 우리 지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좆같았지만, 권성하의 커다란 말자지에 쑤셔지는 남지유로서는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제 신음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커다란 게 배 속을 가득 채울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눈앞이 하얘지고 자지가 발딱거려 그저 죽을 맛이었다. 권성하가 넋이 나간 채로 가쁜 숨을 할딱대는 남지유에게 웃어 주며 “오빠가 30분 뒤에 디저트 내오라고 했는데, 지금 벌써 10분이 지났네. 지유야, 보지 잘 조여야지. 다 들키고 싶어?” 라고 하자 남지유가 울면서도 열심히 조이고 허리를 흔들었다. 불명예스럽게 배우 인생을 끝내고, 진짜 권성하의 자지나 받는 남창으로 살고 싶진 않았다.
워낙 비좁은 구멍인 데다 그 구멍으로 최 사장의 두툼한 지갑을 열게 만들 만큼 기술이 훌륭했던 남지유는 아주 능숙하고 노련하게 권성하를 만족시켰다. 자존심 강한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아끼는 옷에 정액을 두 번이나 싸지르긴 했지만, 어쨌든 결국 권성하를 사정시키기는 했다. 남지유는 울음과 정액으로 흥건해진 모습으로 권성하를 애처롭게 올려다봤다. 얼마나 지났냐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권성하는 사정의 여운이 아른거리는 나른한 얼굴로 웃으며 남지유의 입에 처박힌 넥타이를 조심스럽게 빼 주었다. 그가 손등으로 발간 뺨을 툭툭 두드렸다.
“딱 5분 남았네. 정리하고 지유가 좋아하는 케이크 먹자.”
“흑, 흐으. 네…….”
“그만 울고. 응? 예쁜 얼굴이 더 귀여워졌잖아.”
남지유는 눈물이 흥건한 얼굴을 닦으며 키스하는 권성하에게 얌전히 얼굴을 내주면서도, 정말 결단코, 다신 이 또라이 새끼와 상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 *
정액 맛 빼고는 음식 맛도 기억 안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남지유는 권성하의 람보르기니 조수석에 올라탔다. 택시를 타든 걸어가든 아무튼 혼자 가고 싶은 맘이 절실했던 남지유였지만 “우리 예쁜이, 누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해?”라고 하며 걱정하는 척 데려다주겠다는 무서운 새끼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성질머리만 봐서는 신호무시에 속도위반을 알차게 저지를 것 같은 권성하는 뜻밖에도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오늘 오빠 만나서 좋았어? 오빠 선물은 맘에 들었고? 레스토랑 괜찮았으면 다음에 또 갈까? 같은 말을 물어보는 모습은 정말 데이트가 끝나고 애인을 데려다주는 다정한 남자 같기도 했다. 무엇 하나 진심으로 긍정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권성하는 굳이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아도 아주 능숙하게 남지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네비도 없는데, 소름이 끼쳤다. 사람 눈이 닿지 않은 으슥한 골목에 차를 댄 권성하가 한 손으로 핸들을 건드리며 남지유를 바라본다. 예쁜 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존나 사이코패스 같았다. 남지유는 한시라도 빨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불쑥 인사부터 꺼내고 봤다.
“오빠,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지유야.”
“네, 네?”
권성하가 기어를 잡던 손을 뻗어 남지유의 목덜미를 제멋대로 어루만진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곱게만 보였던 손에는 단단한 굳은살이 가득했다. 그는 긴장으로 얌전해진 목덜미를 쓸다가 부하를 시켜 새로 사다 준 옷 안쪽으로 슬그머니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권성하의 손안에서 맘껏 희롱당했다.
권성하가 저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는 남지유에게 “오빠 봐야지.”라고 한마디를 하고는 머뭇머뭇 눈을 맞추는 남지유를 향해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지유랑 오래 보고 싶거든. 최 사장, 응? 그 새끼가 우리 지유 보지를 오 년이나 독점했는데, 오빠는 그 새끼보다 더 오래 보고 싶어요. 우리 지유를.”
최 사장을 오 년이나 본 건 남지유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세어 본 적이 없으니까. 남지유는 저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시선에서 감히 눈을 떼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오빠, 저는.”
“응, 지유는.”
“…지유는 그러니까, 더는, 스폰 안 받으려고, 했어요……. 최 사장님하고도 정말 끝내려고 했는데.”
권성하는 아주 귀여운 말을 들었다는 듯 눈꼬리까지 접어 가며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 지유가 오빠랑 연애하고 싶다고?”
아니? 씨발, 스폰 안 받는다니까, 연애가 왜 나와? 그 황당한 사고 전개에 당황한 남지유가 입만 벙긋대자 권성하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는 목덜미를 건드려 대던 손으로 남지유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애인의 애교에 아주 흐뭇한 남자처럼 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꼼짝 못하고 권성하의 전용 남창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이 휘몰아쳤다.
“오빠는 원래 연애 같은 거 안 하는 주의인데.”
“아, 아뇨. 오빠, 그런 게 아니라요.”
“우리 예쁜이가 이렇게 부탁하니까, 응? 오빠가 맘이 약해지네.”
남지유의 창백한 얼굴 아래로 각종 욕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오빠, 씨발, 진짜 그게 아니라니까요?”
“지유야, 오빠 앞에서 버릇없이 구는 거, 오늘은 부끄러워하는 거 아니까 참는데 다음부턴 그러지 마? 오빠 화나면 무서워.”
“아니, 씨, 아, 진짜……. 아니에요, 정말!”
권성하의 분노가 두려웠던 남지유는 와중에 욕설을 줄여 가며 답답함에 발을 굴렀다. 권성하는 그 발악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다가 멋대로 목덜미를 끌어당겨 키스했다. 다물린 아랫입술이 깨물려서 입을 벌리자 순식간에 혀가 입 안으로 침범한다. 제멋대로 비집고 들어와 안을 잔뜩 헤집어 놓는 키스는 권성하의 섹스 방식과도 비슷했다. 거칠고, 짜릿했다.
간질간질한 쾌락에 눈을 감고 젖어 들던 남지유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으슥한 골목이라고는 해도 누가 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차 데이트를 즐기다가 스캔들이 나는 경우가 한둘도 아닌데, 씨발 이 경우에는 연애에다 커밍아웃까지 겹치니까 존나 등골이 오싹해진다. 남지유는 입술을 떼어 내려 권성하의 어깨를 밀어내고 고개를 틀어도 봤지만 단단한 품이나, 억센 손이나, 남지유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체념한 남지유의 입술을 맘껏 탐한 권성하는 본인이 만족할 때쯤 되어서야 키스를 끝냈다. 그는 원망스럽게 저를 보는 발칙한 눈을 보며 웃었다. 그의 손끝이 거친 키스에 부어오른 입술을 건드렸다.
“지유가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사 주고, 용돈도 꼬박꼬박 챙겨 줄 테니까, 응? 그렇게 삐치지 말고.”
말을 해도 들어 먹지를 않는 상대에게 더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남지유는 지쳐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나만 겪어도 힘겨운 이벤트를 하루에 몰아 겪은 남지유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오후 늦게야 눈을 떴다. 자의로 눈을 뜬 것도 아니었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핸드폰 진동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맡을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암막커튼이 드리워진 방에 홀로 뜬 핸드폰 불빛만 눈부시게 밝았다. 가물가물한 눈을 비빈 그가 화면을 다시 보았다. 대표님 연락이었다.
“…왜.”
- 너 왜 다 죽어 가? 어제 오라고 전달했는데 왜 안 왔고.
“씨발…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해? 아침부터 웃기는 소리 하네.”
- 야, 지금 대낮이야. 그리고 대표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야지, 어?
대표님이 핸드폰 너머로 길길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잔소리가 끝날 때쯤에는 남지유도 어느 정도 정신이 든 상태라 침대 옆 리모컨을 눌러 전등을 밝히고 커튼을 걷었다. 전망 좋은 침실에 한낮의 햇볕이 쏟아졌다. 이틀 연속으로 말자지를 받았던 몸이 욱신거리고 쑤셨다. 남지유는 어제 받은 스파 마사지가 생각났다가, 그걸 생각함과 동시에 권성하가 떠올라 짜증이 치솟았다.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 너 찍고 싶다던 그 영화. 투자 제의가 왔는데 거기 회사 높으신 분이 널 좀 만나 보고 싶다고 한다더라. 네 팬이래.
“씨발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높으신 분 술 따라 드리면서 투자 받아 와라 이거네? 내가 씨발, 출장 접대부인 줄 알아?”
종일 권성하를 상대하느라 쌓인 울분이 애꿎은 대표에게로 터졌다. 남지유의 유난스러운 지랄을 한두 번 겪는 게 아닌 대표는 괜히 입씨름하지 않고 넘어갔다. 술 따라 주고 투자 받아 오라는 거냐는 그의 말이 사실이기도 했다.
- 그 영화, 투자 예상 금액에 한참 못 미친다며. 너 그거 꼭 찍고 싶어 했잖아. 무산되면 어쩌려고?
남지유는 짜증을 내며 머리를 헝클었다. 좋은 시나리오였고 감독님의 실력도 좋았지만, 소재가 썩 대중적이지 않아 제작 지원이 크게 들어오지 않는 중이었다. 하나, 그러잖아도 스폰서 때문에 골치가 아픈 남지유로서는 또 높으신 분 만나며 딸랑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주, 존나게 피곤한 일이었다.
“아… 나중에 말해. 나 지금 머리 깨질 것 같아.”
- 그럼 일단 말은 해 놓겠는데, 빨리 정해라. 너 그거 무산되면 내가 찍은 시나리오 다시 보고. 어?
“그거 별로라고. 매니지먼트 대표라는 사람이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
영화 얘기로 잠깐 말다툼이 이어진 후 전화가 끝났다. 화를 쏟아 내며 잠이 완전히 달아난 남지유는 속이 답답해서 물을 연달아 세 잔이나 마시고는 찬물로 샤워까지 했다. 그러자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일단 끈질기게 협박을 해 오던 최 사장을 치웠으니 목표의 반은 이룬 것이다. 어디에 남아 있을지 모를 영상도 권성하가 알아서 처리를 해 준다고 했으니 차라리 다행이었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렇다. 남지유는 권성하가 멋대로 두 번이나 키스한 후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새끼는 애새끼 다루듯 남지유의 코끝을 건드리면서 말했다.
‘우리 지유 이제 오빠랑 연애하는데, 오빠가 당연히 해결해 줘야지. 지유가 딴 놈이랑 씹질 하는 영상 돌아다니는 건, 오빠도 싫거든.’
참 믿음직스러우면서 앞날이 참 막막해지게 만드는 미친놈이었다. 그래도 최 사장은 남지유 스스로 손을 쓰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는데, 권성하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어설프게 수를 쓰다가 걸려서 사무실 바닥에 피를 흘리고 엎어져 있을 제 모습이 선명했다. 남지유는 결국 권성하가 질릴 때까지 전용 남창 노릇을 해 줘야 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 새끼를 떼어 내려면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또라이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근데 그런 또라이가 진짜 있긴 할까…….
조금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 시궁창에 빠졌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진열된 차키 중 BMW 그란 쿠페를 고른 뒤 집을 나섰다. 어디 공기 좋고 물 맑은 데서 드라이브나 하며 머리를 식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나오자마자 또 그 익숙한 사내가 보였다. 남지유를 호텔로 데려가고 빌딩으로 데려갔던 그 사내였다. 그리고 그가 데려다준 곳마다 지옥이었다. 남지유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넓히며 사내를 경계했다.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들어가셨…….”
“됐고. 또 뭡니까?”
“이사님께서 보내신 선물을 인도해 드리러 왔습니다.”
“고작 선물 하나 주려고 사람을 이렇게 놀라게 합니까? 뭐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길래?”
“죄송합니다. 이사님께서 연애기념 선물이니 꼭 오늘 전달해 드리라고 하셔서…….”
“…….”
그 말에 남지유의 독설이 쏙 들어갔다. 그는 무엇도 바르지 않아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가며 욕을 삼켰다. 드라이브고 뭐고 나오지 말고 집에나 처박혀 있을 걸 그랬다. 이 남자가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다 지치든 말든, 결국 선물 전달을 못 해서 권성하에게 깨지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그에게는 박살 난 자존심을 챙기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한참 동안 울분을 삼킨 남지유가 “선물이나 주고 가세요.”라고 씹어뱉듯 말하자, 사내는 주차장 안쪽으로 그를 모셔 갔다. 걸음이 멈춘 곳에는 남지유가 그토록 애썼으나 결국엔 구하지 못했던, 국내에 몇 대 들어오지도 않은 페라리 신형 모델이 서 있었다. 출고가만 오억 이천짜리였다. 것도 그가 줄을 대기도 전에 이미 예약이 끝났던 차.
남지유는 어제 피투성이가 된 최 사장을 봤던 때보다 더욱 놀라서 사내와 차를 번갈아 쳐다봤다. 입을 가린 손마저 잘생긴 그는 표정 관리를 못하고 있는 얼굴에서도 빛이 났다. 빛이 나는 얼굴은 왕창 짜증을 내던 스스로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선물이라고요?”
“예. 이사님께서 선물과 같이 보내신 메시지가 있는데 읽어 드릴까요?”
“아뇨! 됐습니다. 읽지 마세요. 감동이 깨질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신경질을 잔뜩 부리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차 근처를 빙빙 도는 남지유에게서는 언뜻 흥분까지 엿보였다. 그는 잠깐이나마 권성하가 진심으로 괜찮아졌다. 사실 좆같은 점을 다 빼고 조건만 따져 본다면 아주 좋은 남자였다. 돈 많고, 권력도 있는 데다, 얼굴도 그만하면 잘생겼다. 물론 그 모든 장점을 상쇄할 만큼 좆같은 단점이 존나 크긴 하지만, 그래, 연애가 뭐 어렵다고. 그냥 밥 먹고 섹스하고, 그런 거 아닌가? 거기다 적당히 기어올라도 봐줄 만큼 그를 맘에 들어 하고 있으니 남지유는 적당히 어울려 주다 권성하가 질릴 때쯤 안전한 이별을 하면 그만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내가 남지유에게 케이스에 담긴 차키를 건네주었다. 남지유는 냉큼 받아 들었다.
“그럼 선물 잘 받으셨다고 이사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사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남지유는 반짝반짝한 차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감격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미 드라이브를 하겠다고 다른 차키를 가져오긴 했지만 드림카를 두고 다른 걸 탈 생각이 들 리가 없다. 남지유는 곧장 페라리 문을 열었다. 기분 탓인지 차문이 열리는 느낌도 남다른 것 같다. 그는 하나하나 작은 거에 행복해하며 운전석에 올랐다. 마트료시카인가, 선물 속에 또 선물이 있다. 조수석에 가지런히 놓인 쇼핑백을 집어 든 남지유가 아주 너그러운 맘으로 선물을 확인한다.
그리고 좋았던 기분은 그 순간 박살이 났다.
“아니, 씨발……. 이 미친 새끼…….”
쇼핑백에 한가득 담긴 것은 여성용 옷이었다. 대부분이 치마였고 스타킹도 있었으며, 다른 쇼핑백에는 하이힐까지 담겨 있었다. 거기다 존나 섬세하게 속옷까지 빼놓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그 좆같은 단점이 어디 갈 리 없었다. 쇼핑백을 내팽개친 남지유는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어제 권성하가 그를 레스토랑 테이블에다 엎어뜨린 후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음에 오빠 만날 때는 치마 입고 와. 쯧, 바로 박기 불편하네.’
그때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고 넘겼는데 권성하는 상상 이상의 미친놈이었다. 그게 진심이었다니. 씨발. 다 큰 사내놈한테 치마랑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속옷을 입히고 싶나? 씨발? 오빠라고 부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 새끼는 진짜 최 사장을 능가하는 상변태였다.
남지유가 한참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핸들로 엎어진 몸이 흠칫 떨렸다. 망설이다 겨우 확인한 핸드폰에는 역시나 [권성하♥] 이름 석 자가 떠 있었다. 권성하라는 이름도 짜증이 나는데 그 옆에 붙은 하트를 보니 더욱 짜증이 난다. 그나마 그것도 멋대로 ‘성하 오빠♥’라고 저장하려는 걸 제발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 달라며 애걸복걸하여 타협한 것이었다. 남지유는 또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 우리 예쁜이, 오빠가 보낸 선물 잘 받았어? 좋아했다고 하던데 왜 목소리에 힘이 없을까. 그 새끼가 거짓말한 거야?
“아, 아니에요, 정말 잘 받았어요. 오빠. 이 차 정말 갖고 싶었던 건데, 너무 기뻐요.”
- 오빠가 직접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오늘 일이 좀 많네. 보고 싶다, 우리 지유. 사진 좀 찍어서 보내 봐.
“네에, 전화 끝나고 찍어서 보내 드릴게요.”
남지유는 그 후로도 선물이 너무 기쁜 척 살갑게 말을 붙이며 쇼핑백 화제가 나오지 않게끔 유도했다. 물론,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 차 안에 넣어 둔 선물은 봤어? 오빠가 지유 생각하면서 고른 거야.
“…….”
씨발! 욕을 삼킨 남지유는 권성하가 침묵을 의심하기 전에 대답했다.
“네, 봤어요.”
- 맘에 들어?
“네에…… 맘에 들어요.”
- 다음에 오빠 만날 때 입고 와. 우리 지유, 안 그래도 예쁜데 오빠가 사 준 거 입고 오면 더 예쁘겠네?
“그치만… 다 너무 예쁜데요, 오빠. 제 몸에 맞을지 잘 모르겠어요…….”
- 지유야, 다이어트라도 하려고? 우리 지유는 그런 거 안 해도 예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응?
말이, 씨발, 안 통한다. 무슨 의도로 얘기하는지 뻔히 알면서 능청스럽게 모른 척하는 게 제일 빡쳤다. 하긴 애초에 말이 통할 새끼였다면 스폰 거절을 연애 제안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 이런 놈한테 걸린 건지. 남지유는 정말로 속이 터질 것 같아서 핸들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그사이 권성하가 웃으며 덧붙였다.
- 오빠가 다 지유 사이즈에 맞춰서 산 거니까 걱정 말고 입어. 나중에는 오빠가 맞춤옷으로 뽑아 줄 테니까 응?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지유야.
이 순간 남지유는 누군가와 상종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에도 권력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부드럽게 달래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남지유가 여장을 할 것을 당연히 전제한 어투였다. 터지려는 한숨조차 권성하의 눈치를 보며 감춘 그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에, 오빠. 생각해 주셔서, 정말 기뻐요.”
스스로 말하면서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