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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에필로그 (41/47)

26. 에필로그

황성에서 근무하는 하녀들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이 몹시 바쁘다. 이들 중 바쁘지 않은 자를 꼽아 보라 한다면 누구도 쉽사리 꼽지 못하리라. 특히나 지금 시기에는 말이다.

아울러 현재 어느 곳보다도 바쁘고 분주한 곳이 황성, 이곳 중에서도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한나, 이건 어디다 둬?”

테베가 커다란 짐을 들고 물었다.

“깨진 건 저쪽. 멀쩡한 건 이쪽. 그리고 천들은 레나가 정돈 중이야.”

한나를 포함한 테레나 궁 하녀들 또한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레나. 옷가지는 베스한테 넘겨.”

사실 그들은 더는 테레나 궁 하녀가 아니었다. 아실리 로제가 즉위했을 때, 테레나 궁 하녀들은 황제가 기거하는 궁으로 이동했다. 황제의 뜻이었다.

“끝이 없네. 정말.”

잠시 후, 잠깐 쉬는 시간을 갖자며 하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다들 바쁘긴 마찬가지라 구슬땀을 한 아름씩 매단 채였다.

“내일이 대관식이라니 믿기지 않아. 후, 그날로부터 얼마나 흘렀지?”

헌 카펫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레나가 말했다.

“그날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는 이는 이곳에 막 들어온 신참내기 하녀였다.

“아! 한 달 전에 황궁이 갑자기 폭발했을 때 말이죠? 많은 사람이 죽고……. 성벽에서 일하는 제 사촌 오빠도 크게 다쳤어요.”

신입 하녀는 이전에 성문 근처의 궁을 담당했기에 중앙의 일에 무지했다.

“그래. 전 황태자가 황성에 침입해서 쑥대밭으로 만들고 전부 부숴 버렸잖아. 이제야 막 보수가 끝나서 정리하는 거고.”

“도무지 끝이 안 보이지만 말이지.”

난데없이 나타난 전 황태자 카스토르 드제 칼타니아스가 이곳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날 황궁이 폭발하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흘렀다. 보수 작업은 적극적으로 이어졌으나, 여전히 곳곳에서 그날의 흔적이 보이곤 했다.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날 이후로 사라셨다며? 전 황태자 말이야.”

“폐하께서 먼 곳으로 유배를 명하셨다던데.”

“엥? 죽은 거 아니야? 시체를 버린 거라던데?”

“그런 것치곤……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았어?”

호기심 많은 레나의 질문을 끝으로 다들 끄덕이며 수긍했지만 좀처럼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사실 난 좀 그래. 얘기 나오는 것으로도 께름칙하고.”

카스토르 드제 칼타니아스가 궁에서 벌였던 학살은 여전히 불편한 주제였다.

“뭐. 칙칙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난 좀 두근거리고 설레는 이야길 하고 싶은데 말이야. 너흰 어때?”

이를 재빠르게 눈치챈 한나가 얼른 말을 돌렸다. 궁 곳곳의 소문에 민감한 레나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럼 시녀님 얘기할까? 응? 우리 궁 시녀님 말이야. 오늘도 시녀님 봤니?”

여기서 말하는 시녀님이란 이곳에 있는 모두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레베카 아일린 폰 아벤타. 아벤타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요즘 하녀들의 최다 관심사이자 수다거리이기도 했다.

“아. 봤지, 봤지!”

“오늘도 엄청 냉정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곤란해하시던데.”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니까. 곤란해하시는 거!”

뺨에 양손을 얹고 짐짓 부끄러운 듯 고개를 흔든 누군가가 신나서 입을 떼었다.

“곧 혼인하실까?”

“당연하지!”

레나가 확신했다.

“결국은 시녀님이 넘어가게 되어 있다니까? 싫다, 싫다 해도 진짜 싫은 게 아니거든.”

“정말? 내 눈엔 정말 싫은 것처럼 보이던데.”

“아이참. 내가 그분을 한두 해 보니?”

레나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이게 다 네가 연애를 못 해봐서 그래. 내가 그분을 테레나 궁에서부터 뵈었다니까. 안 그러니, 한나?”

가만히 듣거나 고개만 주억이던 한나가 긍정했다.

“그렇긴 해. 근데 또 내키지 않은 것 같아 보이시기도 하고.”

그리 말하며 한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레나는 한나의 의문을 눈치챘다.

“사실 전 6황자님 말이야. 아니, 이젠 불카누스의 신관님이시지? 어찌 되신 걸까. 분명 사형장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눈속임이었고, 도망가셨던 거라던데?”

“그렇지만, 내 친척이 분명 그분이 돌아가시는 걸 봤단 말이야. 콜로세움에서.”

얌전히 듣고 있던 한나가 슬쩍 끼어들었다.

“에이. 비슷하게 생긴 사형수를 꾸며다 놓은 거라잖아.”

하녀 사이의 수다가 선을 넘으면 곤란했다.

“너 그 말 잘못하면 경을 친다 알지?”

한나가 보기에 레베카는 아실리 로제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좀처럼 깊은 속내를 보이지 않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 성에서 전 황자의 얘기는 조심해야 할 거리였다.

하녀들도 알아차린 듯 얼른 말을 돌렸다. 다른 궁에서 차출된 아이테라가 입을 열었다.

“난 전 6황자님 좋더라. 솔직히 그분이 뭐가 빠지니? 물론 그냥 선망하는 거니까 오해는 말아 줘. 오래 살고 싶으니.”

플뢰온에게 호의적이긴 하나 동시에 플뢰온의 성질머리를 잘 아는지라 그녀가 얼른 덧붙였다.

“그분은 잘생겨, 지위도 높아, 재력도 있어. 우리같이 천한 것에게도 그만하면 다정하시잖아? 특히나 외모가 아주! 물론 성격도 좋으시지만 말이야.”

“성격 말이지…….”

레나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한나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플뢰온의 이전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저리 말하지 못할 것이었다.

<윗사람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시종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별로입니다.>

어느 날 돌아온 전 6황자가 레베카의 한마디를 듣고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황제의 측근 하녀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레베카님은 좋아하는 분이 있지 않았어?”

다른 하녀가 새로운 가능성을 꺼내 들었다.

“맞아. 들어오는 혼담도 거절하시고. 특히나 늘 하고 계시는 그 목걸이……. 좋아하는 분이 주신 거라던데? 내가 살짝 여쭤봤어.”

“어머, 뭐야. 그럼 지금 구애하시는 6황자님이랑은 안 되는 거야?”

또 다른 하녀가 실로 안타깝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입이 간질간질한 레네가 슬그머니 말했다.

“그 목걸이 말인데. 사실 전 6황자님이…….”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키가 껑충 큰 하녀가 들어섰다.

“뭐야, 너희 여기서 놀 시간이 있어?”

물빛 머리칼을 가진 하녀가 냉소를 띠고 바라보자, 하녀들이 허둥지둥 일어났다.

“어머, 얘. 잠시 쉰 거야, 우리.”

다들 떨떠름히 넘기며 딴청을 부렸다.

“레나. 넌 고참이면서 신참 애들이랑 뭐하는 거야?”

“네가 너무 빡빡한 거야, 레네!”

레나는 찔리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움찔하며 말했다.

“네가 전에 있던 테렛 궁은 쉴 시간 없이 빡빡했겠지만, 여긴 그렇지 않거든?”

레네는 코웃음 쳤다.

“그 말 그대로 하녀장님께 전해도 되니?”

그 말에 레나가 히익 어깨를 부르르 떨더니 허둥지둥 빗자루를 들었다.

“하면 될 거 아냐. 물이나 뿌려 줘!”

“사람 분무기 취급 말랬지?”

“어머, 내가 뭘 어쨌다고. 너 신관이잖아?”

그렇게 말하곤 레나는 입을 삐죽였다. 레나와 레네. 이름이 비슷한 물빛 머리 하녀는 사실 다른 궁에서 넘어온 하녀였다. 레나와 레네. 이름이 비슷해 부딪칠 일이 많은 두 사람이었다.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레네 쪽이 항상 승리했지만.

‘테렛 궁이 비어서 여길 왔다지만, 너무 구박한다니까 정말.’

전 4황자가 사용했던 테렛 궁은 현재 비어 있었다. 이는 주인이 부재한 탓이었다.

<전 4황자님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지신 걸까?>

그가 어디로 사라졌나를 두고 하녀들 사이에 이런 저런 얘기가 돌았지만, 정확한 사실을 아는 이는 없었다.

<너희 혹시 그분 얼굴을 아니?>

<아니?>

<엄청 추남이라던데.>

<엥, 소문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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