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3)

一장. 장군 위륜

“마마! 마마!”

“마마! 어디 계시어요?!”

궁녀들이 사색이 되어 황궁의 후원을 뛰어다녔다.

“마마!”

궁녀들이 찾고 있는 다름 아닌 황제의 후궁인 영비였다.

“그쪽에 계시니?”

“아니, 이쪽에는 안 계셔. 그쪽은 살펴봤니?”

“어디 가셨지….”

궁녀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어제는 북벽 쪽으로 가셨다고 하지 않았니?”

“북벽 쪽에도 찾아봤는데 안 계셔.”

“하아… 대체 어디로 가셨담….”

궁녀들이 찾고 있는 영비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후궁이다.

그저 총애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태중에 황제의 용종을 잉태하고 있는 후궁이기도 했다.

젊은 황제에게는 아직 후사가 없다.

그런 까닭에 영비의 태중에 있는 용종은 훗날에 아들이 태어나든 딸이 태어나든 황제의 첫 번째 자식이 된다.

그런데 황제의 용종을 품은 후궁이 이 밤에 사라졌다.

물론 사라졌다고 해도 황궁 안에 있겠지만 문제는 영비가 최근에 몽유병 증상을 보였다는 것에 있다.

어제만 하더라도 북벽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영비를 한밤중에 발견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북벽에서 떨어져 큰일이 났을 일이 있던지라 오늘 밤 궁녀들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사라진 영비를 지금 다들 혼비백산이 되어 찾고 있는 중이었다.

“서궁 쪽으로 가시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 어린 생각시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외치는 소리에 궁녀들이 일제히 서궁 쪽으로 달려갔다.

“마마-!”

영비는 서궁에 있었다.

다만 영비가 서 있는 곳이 서궁의 오래된 우물 앞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마마-!”

“꺄악! 마마!”

궁녀들의 눈에 우물 안으로 고꾸라지는 영비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물 안으로 빠지는 영비를 보며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영비의 모습은 그녀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직후였다.

***

무거운 침묵이 영비의 처소에 흐르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영비의 진맥을 보던 어의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떠하냐.”

젊은 황제가 어의를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태중의 용종도 무사하십니다. 마음을 놓으셔도 될 듯하옵니다, 폐하.”

“그러하냐. 다행이로구나.”

영비도, 태중의 아이도 무사하다는 어의의 말에 젊은 황제 조영이 그제야 안도했다.

그러나 안도하는 황제 조영의 눈가 한쪽에 여전히 불안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조영이 불안해하는 까닭은 분명했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고, 또한 마지막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조영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영비가 북벽에서 헤매다가 추락할 뻔했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영비는 최근에 자꾸만 헛것이 보인다고 괴로워했었다.

영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지금 조영의 황후는 원인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린 채 앓아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비 외의 다른 후궁들 역시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사고로 다치거나 원인을 알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고, 그중에는 한 밤중에 귀신을 봤다며 놀란 후에 겁을 먹고 궁 밖 출입을 아예 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조영의 얼굴에 근심 어린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황제 조영은 반정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지났다.

원래 조영은 황제의 아우였다.

조영 이전의 황제는 조운으로 십 년 재위 동안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폭군이었다.

그의 폭정에 시달리다 못한 신하들이 조영을 앞세우고 반정을 일으켰고, 그 결과 조운의 목을 치고 조영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조영은 조운과는 배를 달리하고 태어났다. 조운보다 열 살이 어리고, 어렸을 때부터 호전적이고 폭군의 기질을 보였던 조운과는 달리 얌전하고 주위를 배려하는 사내였다.

일찌감치 선황의 모든 황자들 중에서 황제의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영이지만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운에게 밀려 황제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조운의 폭정이 나라를 망칠 지경에 이르자 형제의 피를 제 손에 묻히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반정으로부터 두 달이 지났고 조정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안정된 조정과는 달리 조영의 주변에는 갑작스런 변고가 끊이지 않았다.

황궁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영의 주변, 특히 그의 후원은 평온했었다.

어진 성품의 본부인과 본부인을 존중하고 섬기는 첩들까지 아무 문제없었다.

그러나 조영이 황제가 되고 본부인과 애첩들이 황궁에 들어와 황후와 후궁이 된 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영의 본부인인 황후는 병이 들었고 후궁들은 시름시름 앓거나, 갖은 사고로 다치거나 헛것을 보는 일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어제는 조영의 첫 아이를 잉태한 영비가 북벽에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배회하다가 궁녀들에게 발견되었고, 또 오늘은 영비 스스로 서궁의 우물에 몸을 던진 것을 궁녀들이 발견하고 건져내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고 태중의 아이도 무사하지만 이 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발될 것이 분명했다.

“사람의 짓이 아니옵니다.”

조영의 앞으로 불려온 무당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영비 마마께는 악독한 원귀가 들러붙어 있습니다.”

“원귀라 하였더냐?”

조영은 원래 무당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내였지만 이제 붙잡을 것이 무당 외에는 없다.

조정의 신하들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현명하다고 하는 학사들도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이제 조영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패는 무당밖에 없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악랄한 계집의 원귀가 후원에 남아서 황후 마마를 비롯해서 폐하의 후궁들에게 그런 사특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원귀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제사를 지내 원귀의 넋을 달래면 되는 것이냐?”

“폐하, 그 원귀는 폭군의 시절에 목이 잘려 죽은 악비의 원혼이옵니다.”

“악비라면….”

무당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에 조영이 아연실색했다.

악비는 조영도 아는 여인이다.

폭군의 재위 시절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던 여인이었다.

예전에 형님인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황궁에 들어올 때 조영은 가끔 악비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천하절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미인에 사내들의 영혼까지 홀리는 육체를 가진 여인이었다.

당연히 폭군 조운은 그녀에게 푹 빠져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곤 했었다.

금은보화를 원하면 그녀의 앞에 그것들을 태산처럼 쌓아 놓았고 그녀가 원하면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의 목을 잘라 그 앞에 가져다 바쳤다.

조운이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배후에는 악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충언을 하는 조정 대신들의 귀와 혀를 잘라 제게 주기를 바랐고 어린 소녀들의 목을 베고 그 피를 받아서 목욕을 하는 끔찍하고 잔인한 짓을 일삼았다.

누구라도 그녀의 눈에 들지 못하면 죽어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녀가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고 말한 이유 하나로 폭군 조운은 그녀를 위해 작은 성읍 하나를 전부 불살라 버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폭군 조운을 사로잡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인한 짓을 저질렀으나 결국에는 조운에 의해 그 목이 달아났다.

그것이 조운이 반정으로 끌려 내려오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조운이 그렇게나 총애하던 후궁 악비의 목을 친 까닭은 그녀가 외간 사내들과 간통을 저지르다 들켰기 때문이다.

악비는 요부로 불릴 정도로 음심이 강한 여자였다.

폭군 조운만으로 만족할 여자가 아니었다.

조운이 황궁을 비운 사이에 외간 사내들을 처소로 끌어들여 집단 난교를 즐기다가 그 현장을 조운에게 들켜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악비가 그렇게 목이 잘려 죽은 후에 황궁에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악비의 원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황궁에 떠돌며 황궁의 여인들을 저주한다는 소문이었다.

실제로 조운의 황후와 후궁들 중에 기괴한 변고를 당해 죽거나 병신이 되는 일이 잦았다. 결국에는 조운도 반정으로 옥좌에서 끌려 내려와 칼날에 목이 잘려 그 생을 마감했으니 그 역시 악비의 저주라고 할 수 있었다.

“악비의 원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조영이 잠시 탄식했다.

“그러면 그 원혼은 어찌 달래야 하는 것이냐.”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을 강제로 쫓아낼 수 없다면 달래서라도 떠나보내야 산 사람 살지 않겠는가.

이러다가 제 황후를 비롯해서 제 자식을 잉태한 영비까지 큰일이 날까 싶어 조영의 안색이 심히 어두웠다.

“원귀를 저승으로 보내려면 그 한을 풀어줘야 하는 법이옵니다.”

“악비의 한을 어떻게 풀어주라는 것이냐?”

“악비는 생전에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음란한 간통을 저지르다 목이 잘렸습니다. 그러니 그 음욕을 만족시켜 주기 전에는 절대로 저승으로 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악비가 만족하도록 음욕을 충족시켜주면 그 원혼이 떠난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무당이 머리를 조아렸다.

“원혼의 음욕을 어떻게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냐. 사내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육체가 없는 귀신과 인간이 어떻게 교접을 하겠느냐.”

“폐하. 젊은 궁녀 한 명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면 소인이 그 궁녀의 몸에 악비가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악비가 깃든 궁녀로 하여금 사내와 교접을 하게 하면 될 것이옵니다.”

“악비가 깃든 궁녀와 사내를 교접을 시킨다…. 정말 그렇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냐?”

“말끔하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하오나 폐하. 귀신과 교접을 하려면 어지간한 사내로는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조영이 무당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어지간한 사내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귀신은 음기가 강한 존재이옵니다. 특히 원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옵니다. 그런 강한 음기와 접촉을 하면 보통 사내들은 쉽게 기를 빨려 반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사내들로는 악비의 원혼을 만족시키기 힘들뿐더러, 원혼에게 기를 빨린 사내들 역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 어떤 사내라야 한다는 것이냐?”

“양의 기운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사내여야 하옵니다.”

“기운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체격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신력까지 보통의 사람보다 강인해야 합니다. 또한 귀신에게 홀리지 않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고 며칠 밤을 새워도 지치지 않을 기력의 소유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내가 어디 있다고….”

조영이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퍼뜩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체격이 좋고, 정신력이 강하며, 의지가 남들보다 단단하고 지치지 않는 체력을 소유한 사내.

그런 사내를 조영은 딱 한 명 알고 있다.

“무엇보다 폐하, 사내는 여인을 알지 못하는 동정이어야 하옵니다.”

“동정이라….”

그런 사내를 딱 한 명 알지만 그 사내가 동정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그것은 물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부탁을 그 사내에게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 사내는 이런 일을 부탁하고 싶은 그런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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