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들어가도 될까요?”
노크의 주인공은 벨라야였다.
방으로 들어와 근처에 앉는 벨라야를 남자아이가 신뢰감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브로도, 괜찮아. 마법사님께서 낫게 해주실 거란다.”
“네, 할머니.”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징그럽고 무섭다며 피했을 텐데.
벨라야는 공손하게 대답하는 남자아이의 마물화 된 머리를 살갑게 쓰다듬었다.
“신기하네요. 남작 부인을 할머니라 호칭하는 아이들도, 아픈 아이들을 제 핏줄 마냥 대하는 남작 부인도.”
“호호, 그런가요. 귀족 여성이나 평민 여성이나 이 나이 때 여성이면 아이들에겐 할머니인 거죠.”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조금 유별난 사람이라 생각하며 손에 낀 장갑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벨라야가 입을 열었다.
“치료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괜찮을까요?”
“….”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지금 거절한다 해도 언젠가 또 물어올 기세였다.
다른 사람 눈에야 그저 몸을 붙잡고 마력을 불어넣거나 치료하는 것쯤으로 보일 테지.
“그러세요. 다만 치료 과정 중에 저나 이 아이에게 손대지 말아주셔야 합니다.”
“네, 말씀대로 할게요.”
“그럼 하겠습니다.”
장갑을 벗고 아이의 손을 잡았다.
손이 닿는 순간 화들짝 놀라던 아이는 이내 편안한 얼굴로 머리를 벽에 기대고 있었다.
저릿저릿한 기운이 몸속을 콕콕 찌르며 난입했다.
‘하루에 둘은 역시 좀 버거운가.’
앞을 보니, 나른하게 눈이 감긴 아이의 얼굴에서 수증기가 걷히듯 검은 기운이 날아가고 있었다.
벨라야 역시 아끼는 아이가 치료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겠지.
조금씩 본연의 얼굴을 찾아가는 아이를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슬쩍 옆을 곁눈질 했다.
‘뭐야, 왜 나를.’
곁눈질로 바라본 순간, 벨라야가 아이가 아닌 나를 너무나 맹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람에.
나는 그만 목줄기가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
다시 아이에게 집중하려 했지만 이미 한번 느껴버린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그쪽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날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해서?
아마 그 이유겠지.
난다 긴다 하는 마법사들을 데려다가 문의해 봤지만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는 일을, 처음 보는 동제국 사람인 내가 이리 조용하고 빠르게 치료하고 있으니.
하지만 저렇게 노려보듯 계속 쳐다보는 일은 실례이지 않나?
남작 부인이면 귀족의 예의범절에 대해 모를 리가 없는데.
나는 속으로 빨리 아이의 어두운 기운이 다 흡수되기만을 기다렸다.
“다 끝난 것 같네요.”
흡수되는 어두운 기운의 양이 점점 줄어든다 싶더니,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아이의 생명력만이 빨려들어 왔다.
그 순간 나는 재빨리 손을 뗐다.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찾은 남자아이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식은땀이….”
“괜찮아요!”
얼굴 가까이 다가온 벨라야의 손을 팔로 쳐내자,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연분홍빛 손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식은땀이 났길래 닦아주고 싶었어요.”
허둥지둥 장갑을 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조금 피로할 뿐이라서요. 이름이 브로도라고 했나요? 아이는 다 치료된 것 같아요.”
장갑을 다 끼고 나서야 마음에 안정이 찾아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했던 모양인지, 송글송글 맺혀있던 식은땀 한 줄기가 얼굴선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마법사님의 마법은 정말… 고요하네요. 이처럼 평화로운 마법은 처음 봐요.”
잠든 아이의 얼굴을 살피던 벨라야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옮겨왔다.
땀이 맺힌 이마를 본 그녀가 떨어트렸던 손수건을 손으로 꾹 쥐었다.
“닦아드리고 싶은데 바닥에 떨어트렸던 손수건뿐이네요.”
“좀 쉬면 금방 회복될 거라서요. 너무 염려치 마세요.”
너무 염려치 마시고 그만 나가달라는 말이었는데, 그녀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처음 만났을 때의 대화를 떠올려 보면 꽤나 눈치 빠른 사람 같았는데.
치료된 아이와 함께 그만 방을 나가달라 말하려 입을 뗐을 때였다.
“혹시 서제국에 언제 왔는지 물어도 될까요?”
“….”
이 할머니 치맨가?
우리는 아까의 대화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서 말고는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라 생각해 입을 다물고 있자, 이번엔 질문이 아닌 추측이 날아왔다.
“혹시 이틀 전이 아닌가요.”
“….”
나와 로건이 숲 속에서 눈을 뜬 날이 이틀 전이었다.
누군가 이 여자에게 마을에서 이방인을 보았다는 소식을 전한 시점이 이틀 전이었겠지.
나는 내내 숲 입구의 집에 있었지만 로건은 마을에 다녀왔었으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어르신 저는 지금….”
“알아요, 우린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죠.”
“…네, 그렇게 바로 말씀해주시니 쉽게 얘길 꺼내겠습니다. 저는 그만 대화하고 싶.”
“하지만 당신이 치료제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렇지 않나요?”
“….”
망치로 한 대 때려 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이었다.
이 여자 내 정체를 알고 있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는 도통….”
“….”
그때 벨라야가 덥석 내 볼에 손을 올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 것이다.
주름진 여자의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 전해졌다.
살짝 미간을 좁히며 벨라야는 잠시 후 손을 뗐다.
“긴가민가 했었는데 이제 알겠어요. 역시 당신이 치료제였군요.”
“….”
“아이야, 꿈에서 너를 봤단다.”
*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도 까먹고 뒤로 몸을 물리는 바람에, 무게중심이 무너지며 의자에서 떨어졌다.
의자가 바닥에 엎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와당탕탕 의자가 구르는 소리에 곱게 잠들어 있던 아이가 잠에서 벌떡 깨 일어났다.
“으에?”
놀란 남자아이의 눈앞엔 차분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벨라야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내가 보였을 것이다.
“브로도.”
“…?”
“괜찮으니 이만 나가주겠니, 네 치료는 끝났단다.”
벨라야의 말에 남자아이가 제 얼굴을 더듬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전의 울퉁불퉁 딱딱한 느낌과는 달라졌겠지.
보드라운 피부가 만져지자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답삭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
몇 번씩이나 감사를 전한 아이가 눈물을 훔치며 방을 나가려는데, 벨라야가 아이를 불러 세웠다.
“브로도, 마법사님이 오늘 네게 베푼 은혜는 다른 이들에겐 비밀이란다. 만약 이 일을 발설할 시엔 치료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 거야.”
“예! 예, 잊지 않겠습니다!”
문 닫히는 소리도 없이 아이가 방을 나서자 방엔 적막이 찾아들었다.
달랑 한 개 켜 놓은 촛불이 흔들리자, 나를 바라보는 벨라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덩달아 흔들렸다.
상대방은 내 정체를 아는데, 나는 상대방의 정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상황에 숨이 막혀왔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좀 더 푹신한 곳에 앉는 게 어떠니.”
“….”
벨라야가 자신이 앉은 침대 옆을 손으로 짚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후….”
“….”
“많이 놀랐구나, 놀랄만한 일이지.”
“누굽니까, 당신.”
“….”
단도직입적인 내 물음에 벨라야는 뜻 모를 웃음을 머금었다.
“글쎄, 나를 누구라고 해야 할까.”
“….”
“지금은 서제국의 한 남작 부인이지. 그리고 예전엔 가난한 농가의 막내딸이기도 했고 위세가 드높은 공작가 출신일 때도 있었단다.”
이해하지 못 할 말만 늘어놓지 말고, 제대로 정체를 밝히라고 독촉하려 했을 때였다.
“그리고 아주아주 먼 옛날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해 모두를 저주했던 사람이기도 했지.”
“….”
“동제국 리베르 황가의 저주, 내가 그 저주를 건 사람이란다.”
회한이 차올라 당장이라도 흐를 것 같은 갈색 눈동자로 벨라야는 웃음 짓고 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 지금 저 할머니가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람.
그러나 언제까지 넋이 나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순 없었다.
세상에 내가 치매 걸린 할머니랑 거래를 한 거였다니.
“그 여자는 죽어서 이 세상에 없어요.”
“가능해.”
“….”
“내 이능력은 기억을 가진 환생, 영원한 삶이거든.”
*
나일은 시계탑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참 느리게도 흘러가는구나.
피비와 로건이 사라지고서 이틀이나 지났는데, 하늘은 참으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 나일, 치료제는 저주를 치료하는 게 아니에요. 흡수해요. 저주가 몸 안에 쌓이죠. 그럼… 죽게 된대요.
- 당신이랑 닿을 때마다 내가.
둘이 사라지고 나서 나일은 제 아비를 잡고 물었다.
자신이 들은 말들이 무엇이냐고, 그녀가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이냐고.
들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 앞에서 나일은 무너져 내렸다.
- 그래서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 나 살고 싶나 봐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는 여자의 그 죄책감 가득한 표정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만나야 했다, 만나자 마자 전할 말이 있었다.
그러려면 둘이 어디로 간 건지 알아내야 했는데.
“전하! 깨어났답니다.”
저 밑에서 들려온 벤자민의 목소리에 나일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놈의 상태는 겨우 목숨 한 가닥만 붙이고 있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야.”
“으….”
정신이 들었다지만 몸은 여전히 만신창이니 아프기도 하겠지.
꼴에 아프다고 신음은.
앓는 소리를 내는 알렉스의 뺨을 나일은 가볍게 때리듯 쳐댔다.
“야, 정신 차리라고.”
“….”
“야, 역적. 네가 아프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니까 묻는 말에 재깍재깍 대답하지 않으면 많이 곤란해질 거야.”
“….”
알렉스가 가늘게 뜬 실눈으로 제가 누워 있는 공간을 살폈다.
배에 둘둘 감긴 붕대를 만지는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아있네.”
“살아있는 놈한테 말 시키지 죽어있는 놈한테 말 시키겠냐? 네 죽다 살아난 감상평은 됐고, 산 거 자각했으면 묻는 말에나 대답해.”
“피비는?”
“….”
그렇지 않아도 피비에 대해서 물으려는 찰나에, 알렉스의 입에서 먼저 그 이름이 나오자 나일은 묘하게 배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피비는? 이 새x가 내 여자 이름을 아주 친근하게 부르고 자빠졌네.
그냥 죽도록 놔둘 걸 그랬나.
“그래, 피비. 피비 어딨어.”
“피비를 왜 방금 깬 나한테 찾아.”
“하늘로 붕 뜨더니 사라졌는데, 네놈이 내통한 서제국 놈들이 빼돌린 거 밖에 더 있겠냐?”
“뭐?”
하얗게 질리는 알렉스의 얼굴을 보며 나일은 쑤셔오는 이마를 짚었다.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정말 모르는 거야.
이 놈도 모르면 어디 가서 찾아야….
“2황자야.”
“….”
“내가 내통한 서제국 세력, 2황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