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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4)화 (4/134)

4화

“엄마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황자를 목 졸라 죽일 생각을 하던 나는, 문 너머에서 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멍청이. 그냥 자는 척해야 되는데 소리를 왜 내냐고. 그렇지만 이미 소리를 내버린 후였다.

“네, 아직 안 자요. 그치만 이제 잘 거예요.”

“그렇군요… 저는 잠이 안 와서 한동안 못 잘 거 같아요.”

네에, 그러시군요. 속으로 대답을 해준 뒤, 돌아누워 잠을 청하려 했으나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왜 잠이 안 온다는 거지.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 자는 타입인가.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작은 방에 있는 침대는 하녀용이라 내가 보기에도 짧고 좁았다. 그 작은 침대 위에서 긴 다리를 구긴 채로 자려니, 불편해서 잠이 안 오겠지.

황자니까 평소에 얼마나 큰 침대를 썼겠냐구.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여긴 황자 궁이 아닌데. 아니, 그보다

‘불안하겠지.’

황자 입장에서 내가 오늘은 숨겨주고 치료도 해줬지만, 내가 언제까지 계속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당연히 불안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너를.

‘어떻게 죽일까 생각하고 있는걸.’

하하하… 나 벌써 살인마가 된 기분이야.

“벌써 잠든 건가요?”

“….”

“진짜 잠든 거예요?”

“….”

“잠이 참 안 오네.”

“….”

‘왜 자꾸 말을 거는 거야 진짜.’

이 자식이 잠자는 예비살인마를 깨우네.

무시하고 잠을 청하려던 나는 결국 이불을 걷어찼고, 터벅터벅 걸어가 작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갈게요.”

말과 동시에 문을 열어젖히자, 그가 예상과 같은 포즈로 침대에 구겨져 있긴 했는데.

“왜 벗고 있어요?”

그는 상의를 탈의한 채였다.

“옷이 좀 젖어서.”

어두운 방 안을 어슴푸레한 달빛만이 채우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 달빛을 받은 그의 상체가 번들거렸다.

‘이게 다 식은땀이야?’

가까이 다가서서 보자, 그의 이마와 상체 가득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만질게요. 놀라지 말아요.”

이마에 손을 데니 이미 불덩이였다.

“손이 차서 기분 좋네요.”

“아니, 이렇게 될 때까지 안 부르고 뭐 했어요.”

“잠든 거 같길래.”

아… 그는 몇 번이나 내가 자는지 확인했었지. 그래놓고 안 부르고 뭐 했냐고 묻다니, 정말 나사 빠진 질문이네.

내가 그의 복부 상처를 꿰맨 게 어제저녁이었다. 제대로 된 의료 지식도 없는 내가 대충 봉합한 게 어제저녁인데, 몸이 멀쩡할 리가 없지.

‘죽일 생각만 가득해서는.’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느라 이 사람이 지금 심각하게 아픈 상태라는 건 까맣게 잊은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 남자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었는데.

속에서 갑자기 울컥하고 올라왔다. 이럴 때까지 말을 안 한 남자한테 화가 나는지, 방치한 나한테 화가 나는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알죠. 바보예요? 구해줬으면 끝까지 책임지라고 말을 하라구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난 원래 찔리고 미안하면 성질내는 타입이다.

“그럼 빨리 책임져줄래요.”

그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힘겹게 웃어 보였다. 상처 부위를 둘러맨 붕대를 보니, 피가 크게 배어 나오는 상황은 아닌 듯싶었다.

“지금 아파요? 고통이 심한 거죠?”

그는 내 물음에 눈을 감은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 붕대랑 또 뭐가 필요하지. 그래, 진통제! 진통제로 쓸 만한 거!

“기다려요.”

죄스러운 감정이 솟구쳤다. 내일 죽이든 모래 죽이든,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단 오늘은 안 아프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 하녀들이 머무는 숙소를 찾았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안 자는구나.

“어머나, 아가씨!”

“노크도 없이 문 열어서 미안해, 급해서 그래.”

근데 언니들 안자고 뭐하나 보니까, 이 포커판 뭔데. 하녀 언니들은 옹기종기 동그랗게 모여앉아 포커를 치고 있던 모양이었다.

퇴근 후 여가시간에 업무지시 내리는 나쁜 상사가 바로 나네.

“무슨 일이세요?”

하녀 언니 하나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방문 이유를 물어왔다. 나쁜 상사가 된 듯한 미안한 마음에 목소리가 절로 기어 나왔다.

“있잖아 나, 그날이라 그런데.”

“그날이요?”

“응, 진통제 어디 있어? 아주 강력한 거.”

“아, 여기 있어요. 근데 아주 강력하지는 않은데. 그치 않아?”

내게 진통제를 내민 하녀 언니 하나가 다른 언니에게 물었다.

“맞아요. 강력한 진통제는 되게 비싸서 대부분 귀족분만 사용하시니까.”

안 되는데, 그 남자 지금 많이 아픈데.

“차이가 커?”

“크죠. 그건 좀 덜 아프게 해주는 정도고, 귀족께서 쓰시는 건 아예 고통을 사라지게….”

그거야! 내가 원하는 거!

“그건 없어? 나도 귀족이잖아.”

“아가씨 평소에 별로 통증 없으셔서 일반 진통제만 드셨잖아요. 오늘은 많이 아프세요?”

“응, 나 너무 아픈데.”

나는 아파 죽겠다는 얼굴로 몸을 비비 꼬았다. 언니들도 알잖아, 그날의 고통. 빨리 강력한 진통제 구해줘.

“구할 방법이 있긴 한데.”

“야, 근데 그건 다른 거잖아.”

“안 아프게 해주는 건 똑같잖아. 아가씨가 저렇게 아파하시는데.”

하녀 둘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그럼 제가 가져다드릴 테니까 나중에 혹시 걸리면 변호해주셔야 해요?”

“응? 그럼 당연하지. 근데 어디서 가져 오길래?”

“도련님 방이요.”

오빠 방에서?

*

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하얀 가루약을 바라보았다.

‘이게 그렇게 효과가 좋단 말이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남자의 표정은 더욱 심하게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약을 먹이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자, 그가 누워있던 자리가 땀으로 흥건했다.

“일단 진통제부터 먹어요.”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그가 약을 꿀꺽 삼키는 걸 지켜본 나는 역시나 사탕을 내밀었다.

어렸을 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는 함부로 받아먹는 게 아니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다.

내 속마음도 모르는 그는, 아기새 마냥 내가 내미는 모든 것을 잘 받아먹었다.

어휴 이 바보 같은 인간아, 내가 바로 그 나쁜 사람이란 말야.

엄청 아플 텐데도 웃을 정신은 있나 보다. 그가 피식 웃더니 예쁜 입술을 벌려 사탕을 쏙 입에 넣었다. 

“자 이제 다시 누워요.”

“애기 취급당하는 것도 기분이 괜찮군요.”

“아프면 다 애기처럼 대해줘야죠, 서럽지 않게.”

물론 죽기 전 한정이지만. 이제는 붕대를 교체할 차례였다.

‘몸에 식은땀이 많이 나서 끈적끈적할 테니 일단 닦아줘야겠지.’

침대 근처에 있는 초에 불을 붙이자, 작은 방은 금세 환해졌다.

그리고 새 수건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던 나는 그만.

‘왜 이제까지 몰랐지.’

눈앞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의 상체가 보였다.

그는 내 쪽을 바라보며 한쪽 팔꿈치를 침대에 대어 상체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어깨가 선이 너무나 예쁘게 떨어지는 직각 어깨였다.

가방 따위가 흘러내릴 일은 전혀 없는 그런 어깨.

‘와.’

저런 어깨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맞다.

‘다.부.지.다.’

실로 다부진 어깨였다.

다부지다의 뜻이 뭔가.

벅찬 일을 견디어 낼 만큼 굳세고 야무진 어깨였고, 생김새가 빈틈없고 옹골찬 어깨였다.

저런 몸은 쌀 포대를 입혀 놔도 멋이 나는 몸인데. 역시 소설 속, 공들이 그렇게까지 미쳐 날뛸 만했네.

‘저 야리한 얼굴에 저 굳센 어깨의 조합은 너무 반칙 아닌가.’

눈앞에 있는 이놈이 황자놈이 아니라 그냥 일반 병사였다면, 나는 아마 저런 희귀한 조합을 살려낸 내 선택을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을 텐데.

그러나 기뻐할 수 없는 나는, 웃지 못 할 얼굴로 그의 가슴팍을 문질렀다.

“아.”

물수건이 닿자, 그가 살짝 몸을 뒤로 뺐다.

“너무 찬가? 미안해요.”

물 온도가 너무 찬 모양이었다.

“호오.”

나는 물수건을 호호 불었다.

이러면 좀 낫겠지.

“차갑겠지만 열 날 때는 찬물로 닦는 게 좋아요. 이제까지 잘 참았잖아요? 조금만 더 힘내요.”

다시 물수건을 몸에 대었을 때 그는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 황자는 참을성이 좋은 편인 듯했다. 내 거친 손길에도 그는 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어 냈으니까.

나는 세심하게 그의 가슴팍을 닦았다.

쇄골도 닦고, 목도 닦고….

진통제도 센 걸루다가 먹였고, 식은땀 흘린 것도 다 닦아줬고, 이제 붕대만 새로 갈아주고 나가면 되겠다 싶어서 손에 붕대를 들고 황자 쪽을 보자, 잠이 든 건지 그의 눈이 어느새 감겨 있었다.

주황색 불빛이 드리운 그의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았다.

새액거리는 남자의 숨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왔고, 그 소리에 맞춰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내 입으로 계속 아플 때는 애기처럼 옆에 있어 줘야 된다, 뭐 그런 말을 자꾸 해서 그런가. 눈을 감고 잠든 그가 꼭 아이처럼 어려 보였다.

‘아기 같네.’

속에 숨겨 놓은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자는 얼굴은 왜 이리 순해 보인담. 저렇게 평화로운 얼굴로 자니 내 기분까지 평화로워질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무시무시한 생각을 했던 내 앞에서 남자가 저리 무방비한 얼굴로 자고 있으니,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오늘은 푹 자게 두자.’

고통에 신음하다 겨우 잠들었는데 깨우지 말고 나가야지.

침대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렸을 때였다.

“옆에 있어요?”

그가 팔을 휘저었고, 그의 손끝이 내 약지 손가락 끝을 살짝 잡았다가 떨어졌다.

“…있구나.”

“네, 옆에 있어요.”

내 존재를 확인하는 그의 목소리가 어째서 안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의 이마로 손을 뻗어 확인해보니, 확실히 좀 전보다 열이 내려가 있었다.

그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말을 건네 왔다.

“이제 괜찮겠죠. 진통제 먹었으니까. 가서 자요. 오늘 많이 놀라고 힘들었잖아요.”

방금 옆에 있냐구 물어 놓구서, 센 척하기는.

“애가 아픈데, 가서 혼자 자는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하ㅎ… 저 애인건가요.”

지금은 아프니까 애기 취급해준다.

대신 아픈 거 다 낫고 어른으로 돌아오고 나면 얄짤 없이 저세상행이다.

두말 안 한다.

“이 세상사람 맞아요?”

뜨끔했다. 애라는 말에 피식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던 그가 대뜸 물어온 말이었다.

뭐지 이 특급 눈치는.

아무래도 빙의자다 보니 어색한 행동이 있었던 건가?

“그렇잖아요. 귀족들은 보통 유모 손에서 자라니까, 애가 아플 때 잠을 못 자는 건 보통 유모라구요. 엄마들이 아니라.”

아, 그 말이었구나.

놀라라. 빙의자 들킨 줄 알았네.

“몰라요. 다른 엄마들은 그랬는지 몰라도 우리 엄마는 안 그랬어요.”

우리 엄마는 안 그랬다라.

참 눈 하나 안 깜박이고 거짓말을 잘도 한다, 나.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엄마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아플 때는 늘 할머니가 옆에 있었다.

그냥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일 뿐.

나는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엄마의 손길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처럼.

“아… 그런 거구나, 당신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나 봐요. 잘 모르는 나한테도 이렇게 한없이 친절한 걸 보면.”

“….”

“…착각이 들 정도예요.”

그래도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하니. 빙의자 가슴 철렁하게.

초를 켜놔서 그런가.

아니면 남자의 몸에서 나는 열기 때문에 방이 덥혀 졌나. 괜히 더운 기분이 들었다.

아니, 초는 무슨.

가득 사랑받고 자란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나니, 거짓말 때문에 열기가 오른 거겠지. 

“미안해요. 아까 목에 칼 들이댄 건.”

“어쩔 수 없었잖아요. 당신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거고, 이해해요 그건.”

왜 얘길 나누면 나눌수록, 당신은 소설 속 피비의 장례식도 안 온 그 개자식이 아니라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건데.

아니다, 휘둘리지 말자.

소설 속 그는 제 속내를 감추는 것에 능하고, 모범적인 황자의 가면을 쓰고서 주변인들을 제 입맛에 맞게 구슬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지금도 그런 거다.

내게 잘 보이고 내 호감을 사야 내가 저를 신고하지 않고 보살펴 줄 테니까. 그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 내게 잘 보여야 하는 처지다.

흔들리지 마.

소설 속에서 죽는 거랑 실제로 죽는 건 달라 이건 실제야.

소설 속에서 일어났던 내 죽음의 순간을 떠올려서 그런가. 더 얘기했다간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내려갈 것만 같았다.

“이제 나갈게요. 푹 자요.”

“어딜 가.”

정말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아래에서 내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고, 침대와 작별했던 내 엉덩이가 다시 침대랑 만났다.

“원래 이래?”

내게 갑자기 그가 다른 사람처럼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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