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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924)화 (923/1,192)

제924화

묵용감도 그 아이를 보고, 묵용청양이 떠올랐다. 묵용청양은 딸이지만, 사내아이에게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는 청양이 매사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똑같아서 마음이 흡족했다. 어렸던 계집아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커서 벌써 열두 살이 되었다.

그해, 백천범이 초왕부에 왔을 때도 겨우 열세 살에 불과했다. 사실 당시 그녀는 너무 여위어서 여덟아홉 살처럼 보였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속으로 한숨이 푹 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패륜이에 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여기저기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지만, 백천범의 소식은 전혀 없었다. 그는 그녀가 패륜이에 온 것인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만약 왔다면,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이런 떠들썩한 대회를 놓칠 리 없었다.

묵용감은 뒤를 바라보았다. 온통 시커먼 사람 머리가 꽉 차 있어서 도대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만약 백천범이 왔다면 아마 백성들 틈에 섞여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으니 그녀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들은 임무를 띠고 이곳에 왔다. 사람을 찾기에는 좋은 시기가 아니기에 그는 패륜이 시내 곳곳에 기호를 더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를 수행하는 시위들이 기호를 발견하기만 하면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었다. 모든 참가자들이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다들 서로 다른 색깔의 조끼를 입고 하의에는 덧바지를 둘렀다. 오색찬란한 허리띠를 맨 채 그들은 사냥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외곽에 있던 백성들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들 손을 흔들며 함성을 질렀고, 관중석에 있는 귀족들도 흥분을 감추지 않고 사냥터 한가운데를 둘러봤다. 양 잡기 대회가 이렇게 시끌벅적한 이유는 내기에 걸린 금액이 꽤 크기 때문이었다.

내기를 좋아하는 어떤 이들은 모든 가산을 걸었다. 이긴다면 단숨에 부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진다면 목을 매달 만한 비뚤어진 나무를 찾아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할지도 몰랐다. 한 차례의 승패에 온 집안의 명운이 달려있으니, 누가 담담할 수 있겠는가?

육황자 곤청락이 나왔을 때가 가장 환호성이 컸다. 그가 바로 역대 양 잡기 대회에서 항상 첫 깃발을 뽑았던 사람이었다. 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돈을 걸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리자 곤청락은 득의만만하게 턱을 쳐들고 먼 곳을 향해 공수했다. 아마 환호성에 대한 답례일 것이다.

태자가 마지막으로 사냥터에 들어섰다. 그는 짙은 붉은색 조끼를 입었는데, 덧바지까지 홍색이었다. 금색 허리띠를 묶은 모습이 당당하고 고귀해 보여서 다들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한아타 안에 있던 사람들도 거의 다 밖으로 나왔다. 다들 금색 장막 아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황제의 왕좌는 아직 텅 비어 있었다. 묵용감은 실눈을 뜨고 황실 자제들을 훑어보았다. 단번에 누가 십사황자 곤청동인지 알아냈다.

몽달 황제는 아들이 모두 열네 명이었는데, 그중에 여섯 명만 살아남았다. 태자는 다섯 번째였고, 그다음이 육황자, 팔왕야, 십일왕야, 십삼왕야 그리고 십사황자였다. 육황자를 왕으로 봉하지 않은 것 외에도 십사황자 곤청동이 더 있었다. 황자의 예복은 왕과 달라서 어깨에 수놓은 문양이 용이 아니라 기린이었다. 육황자가 사냥터로 내려가, 남아 있는 황자는 십사황자 곤청동 뿐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십사황자 곤청동에게 꽂혔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도원곡 주인은 나이가 가장 어린 십사황자에게 자객을 보내려는 것일까?

한 무리의 양 떼가 풀려났다. 양들은 몸에 있는 털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건 용사들의 시야를 어지럽게 하려는 장치였다. 아무리 용맹한 사람이라도 눈이 나쁘면 파도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었다.

양을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누구든지 양 떼의 우두머리 양을 잡으면 이기는 것이다. 열다섯 명의 용사가 삼십 마리의 양을 상대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도 탈락하지 않고, 모두 끝까지 싸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종종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예를 들면, 한 용사가 피곤해서 잠시 쉬고 있는데 우두머리 양이 다른 사람에게 쫓기다 그를 향해 달려온 적이 있다. 그는 아주 손쉽게 그 양을 붙잡았고, 그해의 양 잡기 대회는 예상치 못한 이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재산을 탕진했다. 그래서 양 잡기 대회는 실력만 있다고 우승하는 게 아니라 운도 따라야 했다. 운이라는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양 잡기 대회는 꽤 볼 만한 행사였다.

양 떼는 용사들에게 쫓기어 사방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곧 다시 모여들었다. 양 떼는 항상 우두머리 양 곁을 맴도는 습성이 있었다. 아무리 멀리 도망가도 다시 우두머리 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런 양의 특성 때문에 양 잡기 대회는 우승이 쉽지 않았다. 우두머리 양을 발견했다가도 잠시 뒤에 다른 양들이 달려와 뒤섞여 버리곤 했다.

또한 각양각색의 채색이 어우러져 시야를 어지럽히니 목표를 헷갈리기 쉬웠다. 다들 답답한 마음이 컸지만 그게 바로 양 잡기 대회의 묘미였다.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더 끄는 건 용사들의 박투博斗였다. 거의 모든 시선이 태자와 육황자에게 집중되었다. 그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백성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정작 두 사람이 직접 싸우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오늘이 좋은 기회였다.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오늘 대회에서 판가름 날 것이었다.

육황자 곤청락은 여러 차례 양 잡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경험이 있기에 그는 앞장서서 나갔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경기장에서는 모두가 평등했고, 신분의 귀천에 따라 양보하지 않았다. 파도의 칭호는 몽달인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영광이기에 모두 최선을 다했다.

우두머리 양의 귀에는 붉은 천이 묶여 있었지만, 알록달록한 색채 속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육황자의 시선은 줄곧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양 떼 속에서 자유롭게 발걸음을 옮겼고, 천천히 우두머리 양에게 다가갔다. 곁눈으로 보니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양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태자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때 한 사람이 머리 위로 날아와 뭇사람의 환호를 받았다.

태자의 붉은 의상이 어찌나 눈부신지, 마치 한 마리의 홍학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날아가더니 두 손을 뻗어 우두머리 양의 뿔을 잡으려고 했다.

그 광경을 본 백천범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정말 대단한 자였다. 물론 자신의 부군보다는 못하지만…….

육황자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무작정 앞으로 달려갔다. 결국 양들은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육황자는 땅에 몸을 날려 재빨리 몸을 뒤척이며 태자를 향해 발길질을 했고, 태자는 이를 피하려고 공중에서 몸을 돌렸다.

태자는 땅에 떨어지기 전, 몸을 기울인 채 천근추千斤墜 자세를 취했다. 육황자는 깜짝 놀라 땅바닥을 뒹굴며 피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동시에 땅을 차고 뛰어올라 싸움을 이어가면서 우두머리 양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청색 조끼를 입은 용사가 우두머리 양을 사냥터 구석으로 몰고는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걸 본 육황자와 태자는 즉시 싸움을 멈추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육황자는 연속 발차기인 연환척連環踢으로 그 용사를 쓰러뜨리고는 용사를 이용해 뒤쫓아 오는 태자를 가로막았다. 태자는 그대로 그 용사의 몸을 밟고 날아올라 구석에 있는 우두머리 양에게 팔을 뻗었다.

육황자가 태자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태자는 얼굴은 피했지만, 대신 어깨를 맞았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주먹에 가해진 힘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육황자는 득의만만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눈빛은 더욱더 매서워졌다. 그는 단숨에 다가가 태자의 허리띠를 잡고 들어 올리려고 했다.

주먹을 맞은 건 사소한 일이었지만, 당당한 태자가 사람들 앞에서 땅에 내팽개침을 당하는 건 큰 치욕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육황자가 두 손으로 태자의 허리띠를 붙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행스럽게도 태자의 하체가 매우 안정적으로 몸을 지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유감스러워할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잠시 대치하는 동안, 우두머리 양은 또 다른 사람의 포위망에 걸려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휴전하고 그 포위망 안으로 뛰어들었다. 양 떼는 또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드넓은 사냥터에서 사람과 양이 쉴 새 없이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격이니, 어떤 사람은 동작이 느려지고 숨을 크게 헐떡거렸다. 그러나 육황자와 태자만은 여전히 투지가 불타올랐고, 박투를 벌이며 우두머리 양을 쫓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육황자와 태자에게 꽂혀 있던 때. 맨 끝에 앉아 있던 묵용감만이 십사황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묵용감이 영십일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틈을 타서 영십일은 고개를 숙인 채 물러갔고, 잠시 후, 영십구도 자리를 비웠다.

이때, 사냥터는 매우 치열한 형세로 치닫고 있었다. 육황자와 태자는 정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계속 싸웠고, 다른 사람들은 그 틈에 숨을 돌렸다. 체력을 아껴야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양 떼는 다시 모여서 우두머리 양을 가운데에 놓고 단단히 보호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검은 그림자가 뜨거운 태양 아래를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그 그림자는 곧장 금빛 장막 밑에 앉아 있던 십사황자에게 향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태자와 육황자에게 꽂혀 있는 그때, 영십일은 그 사이에 금빛 장막 아래를 습격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십사황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피할 도리가 없었다.

십사황자는 웬 사내가 우레와 같은 기세로 오른쪽 가슴을 내리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장육부가 모두 뒤틀리는 것 같았고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피를 잔뜩 토해 냈다.

게다가 군중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바로 뒤에서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외곽 울타리가 넘어지는 소리였다. 그 틈새로 수많은 백성이 밀려들어 왔다. 다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경기를 더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운데에 있던 호위대가 대적을 마주한 것처럼 막아섰지만, 그렇게 많은 인원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군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호위대 대열을 망쳐 놓았다. 관람석에 있던 권력자들도 그걸 보고 놀라 군중을 피하려고 우왕좌왕했다. 사냥터 안도 엉망이 되었다. 누군가 고함을 쳤다.

“황제 폐하를 보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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