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2. 프롤로그(2) 펼쳐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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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2) 펼쳐지는 이야기
[19년_11월_29일_금요일]
[17:40]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한 이곳은 높은 건물이 밀집되어있는 어두운 골목길.
상혁이 노신사에게 받은 명함과 눈앞의 허름한 건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머리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라며 자신을 이성적으로 말려 세웠을 테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변한 두 발이 행동부터 앞서게 한 것이었다.
“내가 미쳤지….”
노신사를 미친 사람이라 평가하던 상혁이 그를 직접 만나러 온 것이었다.
명함에 적힌 문구에 눈곱만큼이라도 현실성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자신을 이렇게 한심하게 여기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
그런데도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누구보다 절실했을 상혁은 언제라도 무너질 것처럼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엔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나 구조물 같은 것들이 가득할 것 같았지만,
그런 상혁의 예상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텅 비어있었다.
그 정도가 오히려 깔끔하다는 인상을 안겨줄 정도였다.
그리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엔, 천장에서 내려온 전선마다 위태롭게 걸린 백열들이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찌 됐든, 이곳이 상혁의 집보단 밝은 장소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런 곳에도 전기가 들어오네….”
상혁은 그런 것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저기로 올라가면 되나…?”
복도 왼편 끝자락에서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
상혁은 곧장 걸음을 옮겼고, 엘리베이터 또한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듯,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목적지는 7층. 자연스레 버튼을 누르려 했던 상혁의 손가락이 어째선지 주춤거린다.
허름했던 건물 외관을 떠올린 탓이었을까.
“하.”
상혁은 짧은 한숨을 내쉬곤, 엘리베이터 오른편에 나 있는 비상구 계단을 바라봤다.
건물만치 허름할 자신의 체력을 시험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상혁은 층마다 무엇이 있는지 고개만 살짝 내밀어 살펴봤지만,
마치, 이곳 전부가 복사된 것처럼 1층과 다를 것 없는 황량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상혁의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쯤, 목적지인 7층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로 아래층까지 있었던 백열등들이 없어 어두운 편이었다.
복도로 발을 내민 상혁은 숨을 고르며 창가를 바라봤다.
옆 건물에서 미약한 네온사인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들은 상혁에게 이 길의 끝을 펼쳐주려는 듯, 공기 속의 먼지들을 은은하게 밝혀줬다.
“7층 맨 끝….”
명함에서 시작된 상혁의 시선 끝엔 짙은 갈색 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고요했지만,
[딸깍딸깍딸깍…]
상혁이 문 앞에 다다르자, 그 건너편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괜한 긴장감이 맴돌았을 테지만, 상혁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는 문 사이로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이 상혁의 몸에 점점 넓어지는 노란 줄을 새겼다.
묘한 소리의 주인공은 시계의 태엽 소리였다.
상혁이 바라보는 정면의 커다란 괘종시계뿐만이 아닌, 이곳 전체에 크고 작은 시계가 가득했다.
상혁이 그런 신비한 풍경에 넋을 놓는 순간, 정면의 괘종시계 뒤편에서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어서오세요, 상혁 씨.”
노신사는 상혁이 찾아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반겨왔지만, 상혁은 되려 미간을 좁혔다.
“….”
그와 통성명을 한 기억이 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길어지는 침묵 탓에 고개만 살짝 숙인 뒤,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 명함… 도대체 무슨 뜻이죠?”
과거를 바꿔준다는 문구를 물어보는 것조차 어이없었던 것일까.
상혁에게선 조금 두루뭉술한 질문이 전해졌고,
“음?”
그런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노신사는 차라리 이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죠.”
노신사가 자신이 나왔던 괘종시계 뒤편의 방으로 향했다.
상혁은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온 마당에 망설일 필요도 없었기에 노신사를 뒤따랐다.
안쪽 방은 7평 정도 넓이의 개인 사무실 같은 공간이었다.
거기에 물건 대부분이 목재로 되어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노신사는 상혁에게 방 한가운데 놓인 책상 맞은편 자리를 권한 뒤, 자신은 그 맞은편에 앉아 끊어진 대화를 이었다.
“자, 어디서부터 이해를 못 하신 거죠?”
“…납골당에서 하셨던 말씀과 명함에 적힌 이 문구, 도대체 무슨 뜻이죠?”
“들었던 그대로, 적혀있는 그대로입니다.”
친절한 듯 친절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오자, 상혁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다시 물었지만,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는 겁니다.”
“아… 혹시 아까 타임머신 이야기를 해서 그러시나요? 그건 아닙니다.”
노신사는 검지를 저어대며 부정할 뿐이었다.
그건 선입견이 없었다면 진지하게 느껴질 모습이었지만, 상혁에게만큼은 그렇게 보일 수 없었기에.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괜한 걸음 한 것 같네요.”
이곳에 찾아온 게 허탈했을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나서려 했고,
“하하,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노신사가 그제야 양손으로 상혁을 저지시키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바꾸고 싶은 과거에 대해서 말씀해보시겠어요? 그게 빠를 것 같은데.”
“그니까 그게 무슨….”
“흠… 상혁 씨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설명하는 게 번거롭다는 티를 내고 싶었던 노신사의 아랫입술이 빼쭉 튀어나왔고,
“그래, 그거면 괜찮을 것 같군요.”
그런 얼굴의 노신사가 괜찮은 물건을 발견했다는 식으로 상혁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안주머니에 있는 열쇠 좀 꺼내 보시겠어요?”
“음…?”
무엇인가 꿰뚫려 보인 듯한 기분.
그것이 이상했을 상혁이 노신사가 가리키는 왼쪽 안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보다, 그곳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손에 닿는 무엇인가를 느끼곤, 그제야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허.”
정말 열쇠가 들어있었다.
상혁은 제가 이곳에 열쇠를 언제 넣어줬는지 떠올리는 것보다,
노신사가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하려 했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불쾌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에 별수 없이 열쇠를 건넬 뿐이었다.
노신사는 열쇠를 건네받은 오른손을 가만히 둔 채로 말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노신사의 손 위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에?”
그런 상황을 마주한 상혁의 입에선 제 두 눈을 의심하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잠, 잠시만….”
상혁은 눈을 여러 차례 깜빡거리며 흐릿해진 것 같은 시야를 되돌리려 했지만,
두 눈이 비춰주는 몽환적인 현상은 그대로였다.
흐릿해진 건 상혁의 시야가 아니었다.
노신사의 손 위에서 열쇠만 흐릿해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상혁이 그런 현상을 이해해보려는 순간, 점점 흐릿해지던 열쇠가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게 무슨….”
상혁의 입은 아직 다물어지지도 못했는데, 몽환적인 현상은 이제 막 시작이라는 것처럼 이어졌다.
노신사의 손 위에 흩어졌던 먼지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이내 점점 낯이 익은 형태로 뭉쳐졌다.
흩어져 사라졌던 열쇠가 원상 복구된 것이었다.
“자, 가져가시죠.”
한껏 재주를 부린 노신사는 지금까지도 움직이지 않았던 오른손을 그대로 상혁에게 내밀었다.
“분해, 그리고 재구축입니다.”
구축이라는 말에 재가 붙어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사라졌던 열쇠가 다시 만들어지며 달고 온 열쇠고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상혁은 자신이 걸어둔 적 없는 낯선 고리를 만지작거리며 그것이 전해주는 현실감을 파악했다.
고리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아주 잘 만져졌다. 환상이 아니었다.
“….”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상.
상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의심되는 장치를 찾으려 했지만,
“시간도 가능합니다.”
노신사에게선 허무맹랑한 말이 이어질 뿐이었다.
물론, 상혁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건 지금 이 현상이 마술이 아니라면, 현대 과학 기술이 이렇게 진보해서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을 진행 중인 탓이었다.
“믿기 어려우신가요?”
거기에 그런 것들을 떠나서도, 눈앞의 노인이 사람은 맞는지,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피곤해진 자신이 드디어 헛것을 보는 게 아닌지,
피폐한 삶을 살아가던 자신이 드디어 미쳐버린 것이 아닌지도 짚어봤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의 끝, 저편에선 두 눈으로 마주한 현상과 노신사의 말들이 전부 사실이길 바라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잠시만요, 잠시만….”
매사에 과하리만큼 신중하다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상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는 것은 오래 걸렸을지언정, 현지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했던 만큼 결정은 빠른 것이었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음, 바꾸고 싶은 과거에 대해 떠오르는 것 전부를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
[18:00]
현지는 자살했다.
하지만 상혁은 그것을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하다못해 현지의 마음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럴듯한 유서 한 장 없는 죽음을 자살이라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혁이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시간은 흘렀고, 두터운 진실의 벽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벽 앞에서 좌절하며, 현지의 자살이 제 탓일지도 모른다고 자책하며 망가졌다.
만에 하나라도, 억에 하나라도.
현지가 자살한 이유에 자신의 잘못이 섞여 있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잘못했고, 서로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인지.
하늘에 묻고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저희는 연인 사이였고 동거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1년 전 이맘때, 제가 청혼을 했고 승낙받았습니다. 현지는 정말 기뻐했고요.”
상혁은 청혼을 승낙했던 현지의 모습이 떠올라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어지는 기억이 한없이 어두운 탓에 그런 얼굴도 급격히 굳어져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였어요. 현지가 갑자기 무슨 일이 있다면서, 가야 할 곳이 있다면서 떠났습니다.”
“가야 할 곳이라….”
“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보내줬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질 않더군요.”
“흠….”
“처음엔 걱정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혼을 거절당했다는 생각이 들었겠네요.”
“맞습니다. 그래도 얼굴은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땐 마치, 현지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고요.”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다… 하하,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그렇게 며칠 지나서 전화가 한 통 왔어요. 형사였는데, 현지가 자살했다더군요.”
“극적이군요.”
“제가 그걸 어떻게 자살이라 받아들이겠어요. 당연히 타살이라 생각했죠.”
“잠시만, 잠시만.”
노신사가 처음으로 상혁의 말을 끊어가며 물었다.
“현지 씨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뭐죠?”
그 표정은 날카로웠고, 질문도 꽤 원초적이었다.
상혁은 그런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금세 차분한 표정을 짓고 대답했다.
“저흰 정말 긴 시간을 알고 지냈어요. 현지는 늘 웃고 있었고요. 저를 떠나던 그날도… 만약 자살한 게 사실이라면 유서 한 장쯤은, 하다못해 제가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요…?”
“…넘어가죠.”
노신사가 상혁의 대답에 실망한 것처럼 말하자,
“예, 저도 압니다. 다들 그런 반응이었어요.”
상혁도 그런 반응을 자주 봐왔다는 식으로 대답하며 말을 이었다.
“저도 알아요. 제가 억지 부리고 있다는 걸. 근데 자살을 인정하려 해도, 이상한 점이 있어요.”
“이상한 점?”
“현지는 가족이 없었습니다.”
“흠… 가족이 없는 것이 이상할 이유가 되나요?”
“알고 지낸 시간이 9년이에요. 현지는 분명, 가끔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거나, 외식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음…?”
“그런데 등본에서 확인한 부모님의 기록은… 두 분 모두 09년도에 사고사 처리되어있었습니다.”
“아….”
어느 부분에서 당황한 것일까. 노신사의 입이 조금 크게 벌어졌다.
“역시 이상하죠? 뭐, 애초에 저는 현지 부모님을 뵌 적이 없기도 하지만요. 생각해보면 9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저는 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어요.”
“9년이라… 계속해서 들려주시죠.”
“…첫 만남은 스무 살 때였습니다. 저흰 대학교 동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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