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를 바꾸는 방법-1화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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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 프롤로그(1) ­ 이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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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1) ­ 이상혁

[19년_11월_29일_금요일]

[13:30]

시간이 흘러가듯,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도 지나갔지만, 햇빛은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높은 곳에서 지나간 것보다 짙은 구름이 태양을 집어삼킨 탓이었다.

19년 11월 끝자락의 하늘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늘에 가려진 평범한 주택.

그곳 베란다 창문에 달린 커튼 사이로 소파에 누워있는 남자가 보인다.

형광등도 켜지지 않은 거실에선 흐릿했던 바깥이 오히려 밝게만 느껴진다.

그는 누워있지만, 잠든 것은 아니었다.

지저분하리만큼 기다란 자신의 앞머리를 매만지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라도 떠올린 것일까.

그가 휴대전화기 전원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곤 한참을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뒤통수 아래까지 넘겨졌던 머리카락들이 제자리인 이마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 탓에 시야의 반절은 넘게 가려졌지만, 그는 불편하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구름에 가려 흐릿해진 햇빛들이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그것들은 마치 어두운 거실을 밝혀주려는 것처럼,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눈동자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미약하게나마 밝아진 거실.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쥔 것은 탁자 위의 담뱃갑이었다.

그는 담뱃갑을 살짝 흔들어봤지만, 귓가엔 담뱃잎이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속이 텅 비어있었다.

담뱃갑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술병이 그의 손에 붙잡혔다.

이것 또한 속이 텅 비어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빈 술병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술을 한두 방울이라도 마시고 싶었던 것인지, 입까지 크게 발리는 모습이다.

쓸쓸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는 이 남자, 이상혁이다.

지금은 점심시간 직후.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지치거나 졸리거나, 여러 가지 이유를 버티느라 괴로울 수 있는 시간대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살아갔던 상혁의 직업은 소설가였지만, 지금은 무직인 것처럼 살고 있다.

29살이라는 그의 나이가 20대라는 청춘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일이라는 미래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상혁의 하루.

그건 문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닌, 의학적인 현실도피였다.

다 써버린 공책에 더 이상의 글을 적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오늘과 내일을 지난날을 읽는 날로 넘겨 보내는 것이었다.

낡아가고 있었다.

“하….”

한숨도 저마다 의미나 용도가 다르다.

지금의 한숨은 착잡한 심정을 덜어내기 위한 것.

상혁은 그런 무거운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은 거실과 이어져 있지만, 조금 더 어두운 편이었다.

그런 탓에 눈살을 찌푸리며 시야를 확보하던 상혁이 싱크대에 있던 그릇 하나를 집고 수돗물을 틀었다.

이어서 그것을 한 모금 마시며 뒤편의 식탁에 몸을 기대었다.

표정이나 행동은 무미건조해도, 머릿속은 아침 출근길 지하철 환승역이 떠오를 만큼 혼잡했다.

마치, 제각기 흘러가는 무수한 인파에 뒤섞여 애먼 곳으로 흘러가듯.

물론, 목적지가 있다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내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혁이었기에 의지는 박약할 뿐이었다.

수많은 인파로 나타난 잡념. 아니, 소중한 추억.

현실과 동떨어진 기억들이 일순간 멈춰, 상혁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런 기억에 붙잡힌 상혁은 어두운 이곳에서 밝았던 주변을 떠올렸다.

바닥에 쌓인 쓰레기와 그곳에서 풍겨오는 퀴퀴한 냄새 따윈 의식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밝았던 과거.

상혁의 시선엔 거실 곳곳에 숨겨진 것처럼 남겨진 아늑한 물건이 담겼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때가 타 있는 식기 도구.

먼지가 가득 쌓인 실내 덧신 두 쌍.

담겨있던 꽃과 물이 말라버린 투명한 유리 화분.

그것들은 상혁에게 따스함을 전해주던 물건들이었지만, 현실과 추억의 거리만큼 낡아 있었다.

“….”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방황하던 상혁의 시선.

그것이 이번에는 맞은편 냉장고에 걸린 전신 거울에 붙잡혔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초췌한 얼굴과 지저분한 수염.

언제 갈아입은 것인지, 또 언제 세탁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때가 타고 늘어난 윗옷.

“하하….”

상혁은 오랜만에 보는 거울보다,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옅은 웃음소리를 냈지만,

고개는 제 모습에서 도망치듯 숙여버렸다.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거실 탁자에 놓인 작은 액자였고, 이번엔 상혁의 두 발도 함께였다.

액자의 사진 속에는 지금과 같은 사람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말끔한 모습의 상혁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품에 안겨 밝게 웃는 여자.

사진 속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지만,

“….”

그것을 마주한 상혁은 지독하게 슬픈 표정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현지야….”

그건 애처롭다면 누구보다 애처롭고 애절하다면 무엇보다 애절한 목소리였지만, 이제는 전할 수가 없어졌기에.

상혁은 그저, 액자 앞에 힘없이 주저앉을 뿐이었다.

오늘은 사진 속의 여자, 김현지의 첫 기일이다.

▶▶▶ ▶▶▶

[15:30]

초겨울을 알리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납골당.

이곳은 어째선지 인적도 없어, 스산하리만큼 조용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

그리고 그런 납골당 안으로 들어서는 정장 차림의 남자.

비교적 단정해진 모습의 상혁이 걸음을 멈추고, 입구에 놓인 거울 앞에서 웃는 얼굴을 연습했다.

그 모습이 어색하고 창피할지라도, 그다지 개의치 않으려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하는 여자의 사진을 마주할 때도, 하다못해 눈을 감고 떠올릴 때마저도.

상혁은 어떤 방식으로든 현지를 마주할 때마다 늘 슬픈 표정만 짓게 되었기에.

그렇기에 오늘 이곳에서만큼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마주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연습을 치른 상혁이 조금 더 안쪽으로 향했다.

그토록 외면했던 현실이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안치된 자리를 단번에 찾아내는 안타까운 모습.

“나 왔어. 잘 있었어?”

연습은 성과를 보이듯. 상혁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고,

“난 잘 지내고 있어. 글도 잘 쓰고, 밥도 잘 먹고. 자기 말대로 운동도 해.”

속뜻만큼은 선한 거짓말까지 전했다.

“담배도 끊으려 노력 중이야. 노력 중인데….”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거짓된 근황을 전하던 상혁이 자신과 현지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창에 손을 뻗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이었지만, 손에 전해지는 건 익숙한 온기가 아니었다.

그곳에선 그저, 자신과 현지를 구분 짓는 유리창이 현실이라는 차가운 온도만 전해줄 뿐이었다.

“거짓말 싫어하잖아… 내가 거짓말하면 금방 알아차렸잖아….”

그리움과 함께 늘어지던 말끝이 힘겹게 지은 미소를 밀어냈을 때.

현실은 전보다 차갑게 상혁에게 불어왔다.

그것이 괴로웠을 상혁의 고개가 또다시 숙여졌고, 그런 순간.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고 하죠.”

상혁의 뒤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려왔다.

상혁은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는 것보다, 미간부터 세게 좁혔다.

평소 철학을 좋아했기에, 그의 말이 블레이즈 파스칼의 고전 명언이라는 것을 단번에 떠올렸고,

동시에 낯선 이가 자신을 비꼬는 것으로 판단한 탓이었다.

상혁은 이미 잔뜩 좁힌 미간을 조금 더 험상궂게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뒤편엔 양복 차림의 노인이. 아니, 굉장히 멀끔한 모습의 노신사가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묘한 상황을 연출한 건 본인이었지만, 노신사는 입술을 살짝 내밀고 턱수염만 매만졌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아쉽다는 내색이었다.

그리고 험상궂게 고개를 돌린 상혁 또한 그런 노신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지만,

“….”

혹여나 이 사람이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현지의 지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것을 떠올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혹시 현지 지인분 되시나요…?”

거기에 고개만 돌렸던 무례한 행동도 후회하는 척, 몸을 바르게 돌려 노신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음… 아니라고 해야겠죠.”

다만, 노신사에게서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부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듯한 대답이었다.

게다가 표정이나 목소리도 사뭇 진지한 탓에 장난을 치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와 말장난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상혁은 그런 대답을 단편적으로 듣고, 상실된 기대감을 토대로 노신사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했다.

정상이 아니라고.

“그 정도로 실망하셨나요?”

이번에는 묘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치, 상혁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제게 매겨진 평가에 이어지는 질문인 것이었다.

“에…?”

상혁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당황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닙니다.”

금세 표정을 굳히며 시큰둥하게 대답하곤, 몸을 돌려 현지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건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알아차려 달라는 행동이었다.

“하하하, 역시 재밌군요.”

그리고 그런 속마음도 전부 이해했다는 것처럼 호탕하게 웃어대는 노신사.

그런 그도 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도 했었죠. 미래만이 우리들의 목적이다.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에도 동일 인물의 말이 인용되었지만, 상혁은 그런 질문을 무시하고 앞만 바라봤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랑하는 여자와 내일을 그리고 미래로 나아갔지만, 이제는 그런 현지를 꿈꾸며 과거만 추억할 뿐이었기에.

그렇기에 상혁은 노신사의 질문에 한 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지만, 심기만큼은 아주 크게 요동치고 있을 것이었다.

“수학자였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신사는 조금은 무례할 정도로 일방적인 질문을 이어나갔고,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 타임머신이 필요한 걸까요….”

“…하.”

이성이 끊어지는 듯한 한숨이 내쉬어졌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불쾌함을 견딜 수 없었을 상혁이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노신사를 노려봤다.

하지만 오늘은 현지의 첫 기일.

그것도 그녀 바로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도 없는 그였기에.

상혁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차라리 착실하게 대답해주는 것이 눈앞의 빌어먹을 노인을 돌려보낼 방법이라고.

“후.”

그런 결론과 짧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상혁이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겪은 일이 불행이라고 결정하는 것이 본인인 탓이겠죠.”

“오…!”

드디어 시작된 대화. 그것을 반기는 노신사의 눈썹과 광대가 씰룩거린다.

“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과거는 지나간 것이니, 미래를 지향하는 건 당연한 거겠죠.”

상혁은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고, 살아있는 자신과 죽은 현지를 멀어지게 하는 말들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파스칼은 수학자이자, 실존주의자였기에 그런 말을 했으리라 봅니다.”

“음…!”

“….”

잠시 침묵이 흐르는 건, 상혁이 제가 뱉은 실존주의라는 이론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기는 탓이었고,

제 모습을 제가 직접 부정했다는 게, 어쩌면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게 괴로웠기에.

상혁은 손을 들어 관자놀이와 이마를 세게 짚다, 그대로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타임머신? 이런 질문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아니, 그만… 그냥 그만두고 갈 길 가주시죠. 부탁합니다.”

분명한 의사 표현을 전한 뒤, 고개를 살짝 숙여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는 상혁이었다.

“흠…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완강한 모습에 대화를 잇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노신사가 잔뜩 올라갔던 입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합니다.”

상혁은 적당히 인사를 전하고 고개를 돌려, 다시 현지의 사진을 바라봤다.

아직 뒤에 서 있을 노신사를 의식하는 것조차 짜증이 났기에, 그녀의 얼굴을 더욱더 곧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차… 이걸 깜빡했네….”

다만, 출입구 방향으로 몸을 틀었던 노신사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리며 상혁의 뒤로 돌아왔고,

“바꿀 수 있어요.”

그런 짧은 말과 함께 현지가 안치된 유리창에 종이 한 장을 끼웠다.

때라도 탈까. 상혁은 노신사가 끼운 종이를 재빨리 뽑아, 그 앞면과 뒷면을 흘겨봤다.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은 평범한 명함이었지만, 뒷면의 문구가 노신사를 재평가하게 했다.

미친 사람이라고.

“하, 제발 좀… 신고하기 전에 갈 길 가시라고­”

더는 불쾌한 감정을 견딜 수 없었던 상혁이 몸을 돌려 언성을 높이려 했지만,

“요…?”

뒤편엔 아무도 없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뒤편에 서 있던 노신사가 사라진 것이었다.

자리를 떠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순식간인 상황인 탓이었을까.

상혁이 묘한 스산함을 느끼며 바깥으로 뛰쳐나갔지만, 이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제야 조문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납골당 입구.

그리고 그곳에 멍하니 서 있는 상혁.

노신사가 건넨 명함의 앞면에는 간단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고, 앞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과거를 바꿔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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