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2
석지환은 수연에게 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그 웃음은 평소 직원들에게 보이는 것과는 다른 웃음이었다.
휘문은 석지환의 눈이 빛을 발하며 진심으로 웃는 걸 처음으로 보았다. 석지환이 수연을 보는 눈은 앙탈부리며 할퀴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앙칼지게 노려보는 수연을 보면서도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만 노려봐. 맞아줬잖아."
"웃지 마! 느물거리는 꼴 정말 보기 싫어!"
수연은 화를 내면서도 지환이 끄는 대로 끌려갔다. 뒤에 남은 휘문은 이미 두 사람의 안중에도 없었다.
수연이 끌려간 곳은 회의실이었다. 창으로 들어온 노을빛에 회의실은 주홍빛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지환은 엷은 붉은빛으로 물든 수연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에 하루 종일 참았던 욕망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었다.
"네 독점욕이 얼마나 강한지 잊고 있었어."
수연은 여전히 두 눈에 힘을 풀지 않고서 지환을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분노가 아니라 원망이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네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은걸. 좀 떼어놓고 다니는 건데 그랬어. 내가 24시간 너한테만 매달려 있을 순 없잖아."
"날 아주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 취급하네. 내가 언제 24시간 나한테만 매달려 있으라고 했어? 난 그냥……,
그냥 오빠가 날 보지도 않으니까……."
그 말을 하는 수연의 눈망울이 너무 사랑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지환은 그대로 수연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갈망에 타는 혀로 입술을 부드럽게 핥으며 수연의 따뜻한 숨결을 삼켰다. 이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 당기자 수연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새어나왔다.
지환은 입술을 떼고 수연의 이마에 이마를 대고서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었어."
부정하려는 수연의 입술에 꽃잎이 스치는 것 같은 부드러운 키스를 했다.
"네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여. 거기다가 네가 날 보고 있는 걸 느끼면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아.
네 눈을 보고 싶어서 미칠 것처럼 돼."
"잘도 참았으면서……."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널 덮쳐버리라고? 그랬다간 나 무능력한 인간되는 거 시간문제야. 그래도 좋아?"
"좋다면 어쩔 건데? 오빠 눈이 다른 사람 보는 거 싫어.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도 싫고 웃는 것도 싫고, 닿는 건 제일 싫어.
나만 봤으면 좋겠고 나한테만 웃었으면 좋겠어. 그래, 나 이기적인 거 알아. 어린애처럼 말도 안 되는 투정부리고 있단 거 알아.
그런데 그래. 적어도 내가 보면 오빠도 날 봐줬으면 좋겠어. 내가 보고 있는데 다른 데 보는 거 싫단 말야. 그렇게 해줘.
응지환은 불가능한 요구를 진심으로 하고 있는 수연의 촉촉한 눈망울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기쁨이 전신을 휘감았다.
아랫도리로 피가 몰리고 뒷머리가 뜨끈하게 울렸다. 수연을 안고 싶다는 열망으로 호흡이 흐트러졌다.
"너만 보고 있어. 내 마음은 언제나 너만 보고 있어."
격정으로 충만한 지환은 폭발할 것 같은 열정으로 수연의 입술을 탐했다. 수연의 뺨이 열기로 달아오르고 도톰한 입술에서
격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올 때까지 노긋하고 끈끈한 키스를 퍼부었다.
"아…… 오빠……."
"한 시간 뒤에…… 약속이 있어."
지환은 헐떡거리며 녹아내리는 수연의 몸을 부드럽게 안으며 달래었다. 수연이 두 팔로 목을 감아오며 매달렸다.
"싫어."
"집에 가 있어. 빨리 갈게."
"싫어."
수연은 고집스럽게 매달리며 지환의 턱 끝에 입을 맞추었다. 지환은 손끝까지 저리는 떨리는 감각에 신음을 흘렸다.
수연이 먼저 해오는 키스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서 지환의 이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키스해 줘, 오빠."
수연이 요구해 오면 참을 수가 없었다. 지환은 미칠 것 같은 욕정에 허덕이며 수연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머리를 잡아 돌리며 혀를 빼어 깊숙이 밀어 넣었다. 맞이하는 수연의 혀가 부딪치며 휘감겨왔다.
그 순간 아랫도리가 욱신 저리더니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일었다. 지환은 잘록한 허리를 잡고서 가볍게 들어올렸다.
지환에게 이성은 더 이상 남아 있질 않았다.
회의실 원탁에 눕히자 수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세우며 긴 다리를 벌렸다. 지환은 테이블 앞에 서서 기대에 들뜬 미소를 지었다.
두 팔을 위로 올린 채 다리를 벌리고 누운 수연을 내려다보았다. 지환의 눈은 성욕에 찬 야수처럼 광포하고 뜨거웠다.
사냥감을 보는 육식동물 같은 지환을 보고서도 수연은 매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날카로운 이빨에 짓이겨져 살점이 너덜해지고 피가 낭자해도 좋은 것처럼…….
지환은 허기진 짐승처럼 수연의 치마 속을 파고들었다. 팬티를 끌어내리고 두 손으로 탐스러운 엉덩이를 움켜쥐고는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흐읏!"
수연이 격한 숨을 토해 내며 지환을 보았다. 지환은 욕망이 제어되지 않은 눈으로 수연을 보며 천천히 머리를 내렸다.
"아앗…… 오빠……."
지환은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는 수연의 은밀한 곳을 혀로 핥았다. 입구를 슬쩍슬쩍 핥다가 뱀처럼 빠르게
혀를 놀리며 점점 깊숙이 파고들었다. 수연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댔다. 지환이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키스를 하자
수연은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고서 지환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원하는 걸 말해 봐."
"흑…… 오빠……."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지환은 거친 손길로 수연의 블라우스를 벗겼다. 드러난 복부에 키스를 하며 브래지어를 밀어 올렸다.
수연은 욕구 불만에 찬 표정으로 지환의 얼굴을 감싸 쥐며 자신의 가슴으로 끌었다.
지환은 풍만한 가슴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수연의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특히 수연의 가슴에는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도 컴퓨터 모니터에 수연의 가슴이 아른거릴 정도였고, 수연의 가슴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정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사실을 수연이 알게 되면 자신은 정말 수연의 노예가 돼버릴 것이다.
지환은 광적이게 빠져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눈부시고 희고 매끄러운 피부에 키스를
하고 꼿꼿이 솟은 유두를 핥았다. 어서 입 안에 넣어 빨고 싶은 걸 참으며 머리를 들고서 수연을 보았다. 그리고는 깔깔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만족하니?"
수연이 머리를 흔들더니 상체를 일으켜 지환의 입술을 찾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깊고 진한 키스를 나누며 서로의 몸을 어루만졌다.
지환은 윗도리와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러나 와이셔츠를 채 벗기도 전에 수연의 입술이 다가와 지환의
가슴에 키스를 흩뿌렸다. 지난번에 찾은 지환의 성감대에 혀를 대고서 원을 그리며 돌렸다. 지환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신음을
삼키며 수연을 주시했다.
수연은 혀끝으로 지환의 유두를 핥았다. 부드럽게 핥다가 이로 살짝 깨물기를 반복하며 지환의 바지와 팬티를 벗겼다.
이미 크게 발기해 있는 지환의 물건을 본 수연은 꿀꺽 침을 삼키며 근육화 된 지환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순간, 욕망이 극에 달한 지환은 난폭하게 수연의 허벅지를 잡아당겼다. 넓게 벌린 다리 사이를 향해 허리를 움직였다.
깊이 찔러 넣은 순간 수연은 비명을 토하며 무너졌다. 지환은 자신의 격렬한 기세에 밀려올라가는 수연의 허리를 붙잡아 고정시키고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유두를 머금어 세게 빨았다.
수연은 까무러칠 듯 헐떡이며 두 팔로 지환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가늘고 긴 다리를 들어 지환의 허리에 둘렀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서 움직이는 지환의 것을 미친 듯이 죄며 비명을 질렀다.
"오빠…… 아아……."
"기다려. 조금만 더……."
"너무 좋아……."
"더…… 말해 봐."
"사랑…… 해, 오빠……."
섹스 중의 고백은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그 말이 담긴 몸과 마음을 독차지했는데도 밖으로 나온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지잉 울렸다.
지환은 새삼 뜨겁게 끓어오르는 애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질 듯 충만한 사랑이 몸으로 폭발했다.
바닥이 뒤흔들리는 현기증을 느끼며 수연의 뜨겁고 촉촉한 몸 안에서 몸부림쳤다. 진한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수연의 손톱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달콤한 통증이 전신의 혈관을 타고 맥동했다.
사랑한다, 오수연. 네가 동생이 아니었어도 아꼈을 거고, 여자가 아니었어도 널 원했을 거다. 네가 사람이 아니었대도 널 사랑했을 거고
사랑할 거다. 날 바라보는 네 눈, 네 미소, 네 영혼을 사랑한다.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독한 내 사랑은 널 불행하게 했을 테지.
그래서 다행이다. 네가 날 사랑해 줘서…….
수연은 구름 구두를 신고 장을 보았다. 구름 바퀴를 타고 드라이브를 했고 구름 위에 집을 짓고 구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지환을 기다렸다.
수연의 세상은 온통 행복한 구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수연은 지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음모와 유두가 아슬아슬하게 내비치는 얇은 슬립을 입고서.
어둠 속에서 흑장미와 같은 검붉은 슬립을 입은 수연은 마녀처럼 위험스러웠다. 섹시한 마녀가 되어 집안을 돌아다니며 촛불을 켰다.
한 아름 사온 흑장미의 꽃잎을 뜯어 현관에서 침대까지 꽃길을 만들어 놓고 검은 실크의 침대 시트에도 흩뿌렸다.
이런 건 남자가 해주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고 투덜투덜하면서도 수연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싸늘한 냉기가 흘렀던 지환의 집은 진시황의 아방궁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변모해 있었다. 그러니 퇴근해 들어온 지환이 낯선 집을
보듯 흠칫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른한 포즈로 소파에 앉아 있는 수연을 보고선 곧 상황을 파악한 지환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수연은 굽 높은 샌들을 신고서 엉덩이를 흔들며 지환에게로 다가갔다.
"자, 지금부터 내가 오빠 시중을 들어줄게. 날 시녀라고 생각해도 좋아. 오빠가 사족을 못 쓰고 좋아하는 시녀."
수연은 은밀한 미소를 지으며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라벤더 바스 큐브를 넣고 살짝 휘저은 다음 옷을 벗는 지환을 도왔다.
"같이 하자."
"나중에. 오늘은 내 계획대로 해줘."
수연은 알몸의 지환을 욕조에 들어가도록 하고는 준비해 둔 와인을 가져왔다. 느긋하게 욕조에 앉아 있던 지환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물에 뭘 푼 거야?"
"향기 좋지? 라벤더야."
"몸에서 꽃향기 나는 건 싫은데……."
수연은 난처해하는 지환의 표정을 보며 쿡쿡 웃었다. 와인 잔을 지환의 손에 쥐여주고는 샤워 호스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서 지환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지환은 눈을 감고선 수연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샴푸 거품 속으로 손을 넣어 부드럽게 긁어주자 지환은 기분 좋은 신음소리를 냈다.
"시원해?"
"응. ……내일 쉬기로 했다."
"어머, 정말? 웬일이야, 일 중독자가?"
"저녁 약속도 원래는 내일 스케줄이었어."
"음, 감동인걸. 앞당겨 다 하느라 오늘 그렇게 바빴구나? 휴가 내라고 한 말 걸렸어?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보다 내가 우선순위인 건 너무도 당연한데 왜 이렇게 고마울까. 그럼 참, 나도 휴가원 낼 걸 그랬네."
"그렇지 않아도 팀장한테 말해 뒀어."
수연은 깜짝 놀라 헹구던 손을 멈추고 지환을 보았다.
"진짜야? 오빠가 내 휴가원을 냈어? 그러면 팀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어차피 곧 알게 될 텐데 뭘."
"그렇긴 하지만……. 아, 그럼 내일 늦잠자도 되는 거네? 좋아라."
"그것만 좋아?"
"낮잠도 자고 오랜만에 영화도 봐야지."
수연은 지환이 무슨 말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면서도 빙글빙글 돌려 말하며 장난을 쳤다. 지환이 젖은 손을 뻗어 수연의 허리를 확 낚아챘다.
"꺄악!"
수연은 비명을 지르며 지환의 어깨를 밀어냈다. 욕조로 끌어들이려는 지환의 얼굴에 샤워 호스를 갖다댔다.
지환이 놀라며 물러나는 틈을 타 간신히 지환의 손에서 빠져나온 수연은 가쁜 숨을 쉬며 까르르 웃었다.
"자, 왕께선 천천히 씻고 나오세요. 소녀는 다음 코스를 준비하러 가겠어요."
수연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욕실을 나왔다. 잠시 후 지환이 검은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수연은 두 다리를 벌리고
거실 중앙에 버티고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드라이어를 들고서 말이다.
"이쪽입니다, 폐하."
수연은 장미 꽃잎이 흩뿌려져 있는 침대로 올라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유혹하는 수연의 손짓에 지환은 기꺼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내 무릎에 누워."
"머리가 젖어서 안 돼."
"괜찮아. 누워."
수연은 버티는 지환의 머리를 끌어당겨 기어이 자신의 무릎에 눕게 했다. 준비해 놓은 딸기 접시를 지환의 배 위에 올려놓고는
하나씩 집어 먹이면서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주었다.
"저쪽으로 얼굴 돌려."
지환은 얼굴을 돌리기 전 딸기를 집어 수연의 입에 넣어주었다. 짧은 머리가 뽀송뽀송 마른 걸 느낀 수연은 드라이어를 끄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환이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음 코스는 뭐지?"
"인샬라(신의 뜻대로)."
수연은 사랑에 겨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지환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수연의 눈을 뜨겁게 보고 있던 지환이 시선을 내렸다.
수연은 그 눈이 자신의 가슴을 보고 있단 걸 알았다. 수연은 손을 올려 어깨의 끈을 내렸다. 핏빛의 화려한 레이스가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환이 훅,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수연은 지환의 아랫도리가 흥분하고 있는 걸 느꼈다.
지환이 얼마나 열망하며, 또 그 열망을 얼마나 억제하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수연은 흐려지는 지환의 눈을 보며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가슴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지환의 눈이 크게 흔들리더니 입술이 벌어졌다.
수연은 여자의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지환이 자신의 가슴에 애착하는 건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걸…….
수연은 몸을 숙이며 지환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처럼 지환의 입 속으로 자신의 유두를 밀어 넣었다.
잠깐 머뭇하던 지환이 곧 맹렬한 기세로 젖을 빨았다. 수연은 가슴으로 숨을 몰아쉬며 지환의 머리를 더욱 꼭 안았다.
지환은 한 손으로 수연의 허리를 안고서 또 한 손으로는 수연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수연은 지환의 몸 위로
허물어져 내렸다.
지환은 자신의 약점을 들킨 걸 복수라도 하려는 듯이 수연의 몸을 거칠게 점령해 갔다. 자신을 애태우는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다급히 수연의 몸 안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지환은 난폭하고 사나웠다. 수연을 몇 번이나 황홀경에 올려놓고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금 끌어내렸다. 수연은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지환의 몸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오빠…… 제발……."
"원하는 걸 말해."
"아, 제발……."
"말해."
"더…… 더 세게……."
겨우 사정해서 정상에 도달한 수연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밤이 깊어 있었다.
얼마 후, 수연은 짧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검은 유리의 창으론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눈을 뜬 수연은 뒤에서 안고 있는 지환의
고른 숨소리를 들었다. 수연은 이불 속에서 손을 움직였다. 등 뒤로 손을 돌려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이윽고 자신이 원한 걸 찾은
수연은 주인과 함께 잠들어 있는 그것을 매만졌다. 조금씩 더 손에 힘을 주며 조몰락거리는데 까칠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수연은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손 안에서 단단해지고 커진 것을 자신의 몸 안으로 넣었다. 둘은 동시에 신음을 흘렸고
수연은 좀더 깊이 받아들이길 원하며 옆으로 누운 채 한쪽 다리를 들어 지환의 다리 위에 올렸다. 그러자 지환이 몸을 움직여 깊숙이 넣어왔다.
수연은 자신의 몸 안에 꽉 찬 걸 느끼며 만족한 미소를 짓고는 눈을 감았다.
"더 잘래."
지환의 팔이 수연의 허리를 넘어왔다. 수연은 자신의 음모를 쓰다듬는 지환의 손길에 흐릿한 신음소리를 냈다.
"정말 자는 건 아니겠지?"
"자."
"세워놓고 잔다고?"
"응. 그러니까 움직이지도 말고 빼지도 마. 오빠가 나한테서 떨어지는 거 싫으니까."
지환은 한숨을 쉬었고 수연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수마에 얽혀들었다.
다시 두 시간쯤 흘렀을 때 수연은 잠에서 놓여났다. 정확히 말해선 비몽사몽 속에서 속눈썹을 달싹이고 있었을 때 인내심이
극에 달한 지환이 몸을 움직여 깨운 것이었다. 수연은 이미 몸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지환의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함 속에서 시작된 정사는 다시금 격렬한 흥분을 일으켰고 서로의 몸에서 절정의 환희를 찾아갔다.
시녀에서 여왕이 된 수연은 침대에 앉은 채 늦은 아침을 먹었고 지환이 씻겨주는 샤워를 했다. 차를 몰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꼭 붙은 채 공원을 산책했다. 여름을 맞이하는 평일의 공원은 나른하고 한적하며 향기로웠다. 두 사람은 나무를 보고 꽃향기를 맡으며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었다. 이따금씩 지환이 수연의 이마에 키스를 했고, 눈이 마주치면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맞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팝콘을 사고 비디오를 빌렸다. 수연은 나란한 걸음걸음을 보며 가슴 벅찼다.
오빠와 함께 걷고 있어. 이 햇살을 오빠와 함께 받으며 걷고 있어.
믿을 수 없는 감격에 세상이 온통 핑크빛이었다. 수연은 환한 미소를 띤 채 몇 번이고 지환의 눈을 확인하고 팔에 매달렸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웃느냐고 놀리지 않고 마주 웃어주는 지환이 있어 행복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넘치는 행복감으로 가득해 집으로 돌아왔다. 불을 끄고 비디오를 보았다. 지환은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었고
수연은 그런 지환의 다리 사이에 앉아 오래된 영화를 봤다.
지환은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수연은 콜라와 팝콘을 먹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리차드 기어의 바지 벨트를 풀 때 지환의 손이 수연의
티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수연의 가슴은 곧 지환의 손에 잡혔고 수연은 지환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예전엔 못 느꼈는데……."
수연은 가슴이 주물러질 때마다 숨을 몰아쉬며 허덕거렸다.
"저때…… 저 남자 표정…… 굉장히 섹시한 거 같아."
"나보다?"
"글쎄……."
"TV 부숴버린다."
수연은 신음 섞인 목소리로 키득키득 웃고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지환을 보았다.
"내가 저렇게 하면 오빠도 저런 표정이 될까?"
수연의 말에 지환의 눈이 텔레비전 화면을 향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의 다리 사이로 내려가고 있었다. 수연은 지환의 눈썹이
꿈틀하는 걸 보고선 몸을 돌렸다. 지환의 벌린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은 수연은 기대에 찬 눈으로 지환을 재촉했다.
"소파에 앉아 봐."
"진심이야?"
"응. 오빠 표정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어."
수연의 탐욕적인 눈은 빛을 발했고 그 눈에 지환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다음에 하자."
"왜? 지금 해보고 싶어."
"다음에 해."
"왜? 싫어?"
"그래."
"왜 싫어?"
"……아무래도 너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표정이 될 거 같으니까."
한참을 뜸 들인 뒤 나온 대답에 수연은 깔깔깔 웃으며 양 손으로 지환의 뺨을 감쌌다. 지환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수연은 표정은 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며 지환을 달랬다. 그래서 겨우 소파에 앉히는데 성공했다.
수연은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엉덩이를 들고는 지환의 바지와 팬티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지환의 것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살짝 부드럽게 쓰다듬은 것뿐인데도 그것은 움찔하며 움직였다. 수연은 좀더 대담하게 애무를 하며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검게 난 음모에 키스를 하다가 붙잡고 있는 그것에 혀끝을 대었다. 그 순간 지환의 몸이 흠칫 떠는 게 느껴졌다.
수연은 약속을 어기고 눈을 들어 지환의 표정을 보았다.
"너…… 반칙이야."
지환이 신음하는 소리로 화를 냈다. 하지만 수연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생글 웃으며 단단하게 팽창한 지환의 것에 입을 맞추었다.
"으음……."
수연은 이제 익숙해진 지환의 것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혀로 부드럽게 핥아 올렸다. 이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왔을 때를
생각하자 아랫도리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수연은 민감해진 아랫도리의 반응을 느끼며 지환의 것을 빨아들였다.
끝에서 맑은 액체가 한 방울 흘러나왔다. 그 순간 지환의 손이 수연의 겨드랑이를 잡고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소파 위로 올려진 수연은
허겁지겁 옷을 벗고 지환의 허벅지에 올라탔다. 나체가 된 수연은 따뜻한 애액을 흘리고 있는 곳으로 지환의 것을 이끌었다.
단숨에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서 탄탄한 어깨 근육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엉덩이를 비틀며 지환을 불렀다.
"오빠."
"응?"
"우리 봐."
수연은 눈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지환이 시선을 내려 두 사람의 음모가 얽혀있는 걸 보자 수연은 좀더 상체를 젖혀 두 사람의 음부가
드러나도록 했다.
"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게 좋아. 안심이 돼. 그래서…… 오빠랑 섹스하는 게…… 좋아."
수연은 만족한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S자로 휘었다. 점점 더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쾌감에 몸을 실었다.
지환은 음란한 소리를 내며 격정에 몸을 떠는 수연의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애무해 주었다.
수연이 원한다면 영원히라도 이렇게 있고 싶었다. 그것이 또한 자신이 원하는 거였다.
그들의 낮은 밤과도 같았지만 그들에게 밤은 짧기만 했다. 그들에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고, 느끼고,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시간이 부족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에 사랑의 시간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사흘의 축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토요일 오전 9시 55분, 수연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자신의 방 창문에 붙어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젯밤, 결코 떨어지고 싶지 않아하는 수
연의 몸을 떼어놓은 지환은 내일 부모님을 찾아뵙겠다는 말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미가 폭발할 걸 생각하면 무섭고 불안했다. 어머니의 얼음장 같은 반응을 예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다시 또 지환과 헤어진다는 건 수연에게 죽음과 맞닿는 의미였다. 그래서 수연은 어젯밤 부모님께 오늘 자신과 결혼할 사람이
인사를 드리러 올 것이라고 말해 두었다.
초조하게 창밖을 내려다보던 수연은 대문 앞으로 지환의 벤츠가 세워지는 걸 보고서 재빨리 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마지막 계단에서 내려선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부엌에서 아줌마가 나오는 걸 보고서 수연이 앞서 나갔다.
"제가 열게요."
문을 열고 현관 밖으로 나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지환을 보았다. 회색 양복을 입은 지환은 그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기품 있어 보였다.
빈틈없는 표정에 예리한 눈이 이지적으로 번득였다.
"잘 잤니?"
말하는 지환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수연은 불안이 역력한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은 가볍게 수연의 등을 감싸 안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환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오른 순간 안방에서 부모님이 나오셨다. 일
제히 놀란 시선이 지환에게 꽂혔다. 부모님은 잠깐 동안 그렇게 정지한 채 충격을 감당하고 있었다.
지환이 먼저 시선을 내리고 머리를 숙였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지환의 머리 위로 거친 고함이 터졌다.
"당장 나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아빠!"
"너 당장 이리 들어오지 못해!"
각오하고 있던 반응이었지만 현실은 더 지독하게 와 닿았다. 아버지는 보자마자 분노를 터트렸고 어머니는 싸늘한 눈초리로 지환을
노려보기만 할뿐이었다. 수연은 애원하며 아버지의 팔을 붙들었다.
"아빠, 제발 화부터 내지 말고 우리 얘기 좀 들어줘. 흥분하지 말고 앉으셔서……."
"무슨 얘기! 키워준 부모 버린 배은망덕한 놈이 무슨 할 얘기가 있어!"
아버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코로 거친 숨을 내뿜으면서 주먹까지 덜덜 떨었다. 수연은 이렇게 무작정 화부터 내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해서 안절부절못했다.
"너 이 자식, 거기 서! 어디 감히 내 집엘 발을 들여! 혼자 살겠다고 부모형제 버린 놈이 무슨 낯짝으로 여길 들어와!"
"우선 절부터 받으십시오."
"저놈이, 저놈이 나가라는데도! 시건방진 놈!"
지환은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는 아버지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은 채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키워주신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자라게 해주신 것,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감사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내 집에서 썩 나가!"
"하지만 오늘은 한때 아들이었던 놈으로 온 게 아니라 따님을 사랑하는 남자로 왔습니다. 아버님, 수연이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뭐, 뭣이!"
분노로 이성을 잃은 아버지는 말릴 틈도 없이 지환의 머리를 향해 무선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이 죽일 놈!"
"아빠!"
수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던져 지환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 모습에 더 놀란 건 부모님이었다.
"아빠 정말 왜 이래!"
"너, 너……!"
충격에 휩싸인 아버지는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수연과 지환을 보았다. 수연은 거의 울먹이며 지환의
머리를 살폈다. 전화기의 모서리에 찍힌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
지환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가 나는 이마를 눌렀다. 눈이 뒤집힌 수연은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대로 화를 내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리치는 대신 간절한 눈으로 애원했다.
"아빠 이해해. 화내시는 거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여기까지 올 만큼 우리도 절박하다는 것도 좀 알아줘.
한번만이라도 우리 얘기 진지하게 들어줄 순 없어?"
"무슨 얘기! 딸년이 제 애비 뒤통수친 얘기! 네가, 네가 날 이렇게 실망을 시켜!"
"죄송해요, 아빠. 하지만 나 지환 오빠 사랑해. 결혼하고 싶……."
짝!
차분하게 말하려 애쓰던 수연은 뺨에 닿은 충격에 머리가 멍했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연은 얼얼한 뺨을 돌려 어머니를 보았다.
탈속의 분위기를 풍기는 검은 한복을 입고서 이교도를 단죄하는 잔혹한 군주처럼 선 어머니를 보았다. 아버지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어머니의 팽팽하고 흰 피부는 너무 맑고 깨끗해서 차라리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날카로운 검은
눈만이 살아서 매섭게 빛났다.
"어, 엄마……."
놀라서 목소리마저 잠긴 수연의 앞으로 지환이 막아섰다.
"뭐하시는 겁니까!"
"불쌍해서 데려다 키웠더니 기어이 네놈이 내 집에 풍파를 일으켜! 천한 피는 못 속이지! 처음부터 난 네놈이 얼마나 추악한 놈인지
알고 있었다. 악마 같은 놈! 내가 널 기어이 버렸어야 했어. 어린 것이 사악하기 이를 데가 없더니……. 기생충 같은 놈!"
"엄마! 어, 어떻게 그런 말을……."
수연은 자신의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뒤틀린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지독한 말을 입에 올리는
것도 들은 적이 없었다. 서로를 맹렬하게 노려보는 두 사람 주위로 소름 끼치게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절…… 왜 데리고 오셨습니까?"
묻는 지환의 목소리는 천 년 묵은 우물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진 것처럼 어둡고 깊었다. 수연은 그 질문에 담긴 지환의 사무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가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뜻이 아니었어. 널 데려온 건 내 뜻이 아니었어! 넌, 넌……."
어머니의 검은 눈이 붉게 물들었다. 수연은 부들부들 떨며 흥분하는 어머니를 처음 보았다. 목에 보랏빛 핏대를 세우며 얼굴이
붉어지도록 흥분한 어머니는 차라리 사람다워 보였다.
"넌 내 원한이다. 내 원한이야! 저주스러운 놈! 넌 내 고통의 원흉이다! 너를…… 너를 두고 내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몸 파는 계집이 낳은 네놈이 내 아들이라고,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나를, 나를 그렇게 들볶고……."
"그만해!"
아버지가 소리쳤다. 수연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술파는 계집이 낳은 놈이라는 말이 가슴속에 맺혔다. 그
런데 지환은 그다지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생모에 대해서 지환은 알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거의 쓰러질 것처럼 비틀비틀 몸을 돌린 어머니는 소리친 아버지를 원망스런 눈길로 보았다. 그때 지환이 평정을 되찾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한때나마 오수연이 오빠여서 안 되는 겁니까? 아니면 몸 파는 어미의 아들이라서 안 되는 겁니까? 어느 쪽이건 전 수연이랑 결혼할 겁니다."
"뭐야! 저놈이 터진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해! 이 자식 다시 한번 말해 봐!"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아버지를 밀어뜨린 건 지환이었다. 수연은 거실 바닥으로 나자빠진 아버지를 보고서 충격에 휩싸였다.
다시금 지환의 냉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락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나 있는 딸마저 잃고 싶지 않으시면."
"천한 것이라 하는 짓거리도 추잡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감히 어디서 누굴 넘봐!"
"천한 것이 독이 올랐으니 건드리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머님."
"네까짓 게 누굴 협박해!"
지환을 때리려고 든 어머니의 손은 지환의 억센 손에 잡히고 말았다.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며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지환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 손 놓지 못해!"
파랗게 질려가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수연은 안타까움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어머니를 붙잡고 있는 지환의 팔에 떨리는 손을 올리고
흐느꼈다.
"그러지 마, 오빠. 오빠……."
그제야 지환은 붙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듯 거칠게 놓았다. 수연은 지환의 관자놀이에 푸른 핏줄이 불끈불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사실은 지환도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라면서…… 두 분께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바라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결국엔 절 인정하지 않으신 두 분, 두 분께 제가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
용서하는 방법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전 두 분을 용서했고 수연일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두 분 보다 앞서 있는 제가 가르쳐 드리죠."
무겁게 말을 마친 지환은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오빠……."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던 수연은 지환의 제지에 멈추어 섰다. 돌아본 지환은 부모님이 보고 있는 앞에서 수연의 이마에 짧은 키스를 했다.
"부모님 돌봐 드려. 전화할게."
수연은 거실 끄트머리에 서서 현관을 나가는 지환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 차갑고 어둡고 무거운 공기 속에 자신을 버려두고 가는 지환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환의 말대로 자신이 돌봐 드려야 하는 자신의 부모님이었다. 천천히 몸을 돌린 수연은 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손수건을 보고 가만히 주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