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외전 1화.
갈가리 찢겨 버린 명예 뒤엔 다행히 돈이 있었다.
수차례의 구속영장 청구에도 번번이 기각됐던 TY 그룹 윤태윤 본부장이 법의 심판을 받고 구속된 지 352일 만에 구속만기로 드디어 석방된 것이다.
태윤은 수의를 벗고 입소했을 때 입었던 명품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옷만 갈아입어도 제 신분을 찾은 것만 같아서 숨이 쉬어진다. 구질구질했던 구치소 생활이 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수치까진 벗지 못했다.
구치소 입구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의 입술을 죽일 듯이 응시하며 바라봤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살갗을 베는 고통을 주었지만 감내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보상으로 태윤을 기다리던 검은색 세단을 타고 곧장 자택으로 향했다.
검찰은 태윤의 석방이 확정되자마자 재판부에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스스로가 자백한 사하라 여사 사건만 살인교사 죄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유전무죄무전유죄 특권에 따라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된다.
윤태윤 인생에 구치소 생활이라니.
말로 다 할 수 없는 치욕은 둘째 치고 태윤은 사실 남몰래 많이 울었다. 이유 없이 수시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패배감. 그런 것도 문제였지만 유일하게 제 편이라 믿었던 줄래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허했다.
희한하게도 줄래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태윤의 삶은 매일이 장례식 같았다. 가질래는 이미 다른 놈의 아내가 됐고, 가줄래는 영원히 떠났다. 누군가의 부재가 이토록 아쉽다니. 마음도 몸도 진저리치게 외로웠다. 누구라도 제 몸을 진심으로 위로해줬으면 싶지만, 기나긴 재판 여정을 생각해서라도 욕정은 최대한 억제해야 했다.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어차피 TY 그룹의 수장 노릇하기에는 저지른 혐의가 중대해 물 건너갔다. 해외 지사로라도 파견돼서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는 게 어쩌다 보니 야망가 윤태윤 인생의 소박한 꿈이 됐다.
이런저런 사념이 머리를 헤집어놓을 때쯤 아무도 없는 텅 빈 펜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가질래와 함께하기로 했던 신혼집이자 줄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이야 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극약처방으로 한껏 술을 마셔봤지만 그럼에도 지난 추억이 잔혹하리만큼 짙어져만 갔다.
태윤은 결국 짐을 챙겼다. 이대로 있다간 재판도 받기 전에 제가 먼저 줄래 곁으로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아서. 살기 위해 세컨드 하우스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여행 가방에 옷 몇 벌과 다이아가 촘촘히 박혀 있는 시계, 한도무제한 카드를 챙긴 후 쓸데없이 드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띵동띵동.
홀로 있던 탓에 한없이 위태로운 태윤 앞으로 하필 사람이 배달됐다. 그것도 독주로 만취한 남자 앞에, 꽤나 매력적인 여자가 말이다.
인터폰 화면 속 여자는 유독 몸매가 눈에 띈다. 도드라진 어깨 라인과 풍만한 가슴골, 몸매 라인이 그대로 드러난 앙고라 니트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다름 아닌 지나였다.
물론 약속된 만남은 아니었다. 태윤에게 지나는 그야말로 불시에 들이닥친 태풍 같은 거였다. 과거 윤태윤이었다면 인터폰 화면을 끈 후 단호하게 돌아가라 말했겠지만, 지금 저는 위험한 수컷이다.
1년 넘게 구치소에서 굶주렸고, 여자의 따뜻한 위로가 누구보다 필요한 남자다. 게다가 눈 앞에 있는 사람은 한때나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로 꼽힌 이력도 갖고 있었다. 그는 일단 인터폰으로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최지나 씨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죠?”
어쩌면 태윤이 화면 속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는 자체가 벌써 반은 진 거나 다름없었다.
“뉴스 보고 고생했다 싶어서 친구로서 위로해주러 왔는데…. 우리 못 다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벌어지는 여자의 입술이 무척 관능적이었다. 태윤은 빨간 립으로 한껏 볼륨을 살린 도톰한 입술 안으로 제 물건을 깊숙이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윤은 아직 알코올이란 악마에게 완전히 이성을 지배당하진 않았다.
“할 이야기가 있었음 면회를 오지 그랬어요.”
무심하게 툭 내뱉는 태윤의 차가운 말투에 지나가 한쪽 입술을 씰룩인다. 남자를 유혹할 때 무기로 쓰던 그 미소였다.
“글쎄요, 구치소에서 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니라서….”
화면 속 여자가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모니터로 보이는 깊게 패인 가슴골이 태윤을 시험했다. 제길. 허리 밑이 아우성이다.
술이 점점 올라 태윤의 사고를 마비시킴과 동시에 이성이 비운 자리엔 욕망만이 그득했다.
“이 문 열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들어오겠다?”
태윤이 한없이 가벼워진 입술을 열어 지나가 저와 같은 생각 중인지를 조심스레 떠본다. 그러자 눈동자가 깊어진 여자가 얼른 답변을 이었다.
“제가 청담동에서 사라지기 전, 그때 본부장님의 휴대폰만 보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요?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니지. 은근하고 밀접한 사이로 꽤나 서로를 즐겁게 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런 아쉬움이 내내 있었어요, 저한텐. 그거 언젠간 해결하고 싶었거든요.”
딸각.
지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철옹성 같았던 금단의 문이 열렸다. 이후 지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펜트하우스 현관문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분.
태윤은 현관문을 연 채로 그녀가 와주기만을 잠잠히 기다렸다.
이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잘록한 허리라인이 돋보이는 앙골라 니트 원피스를 입은 섹시한 양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골반을 흔드는 걸음걸이가 빳빳하게 커진 남심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이다.
태윤은 대문이 닫히는 순간 허리를 속박하고 있던 버클을 풀려 했다.
“잠깐만요.”
어깨라인을 한껏 드러냈던 오픈 숄더 앙골라 니트가 갑자기 여자의 쇄골을 덮는다.
그 순간 태윤의 미간도 험상궂게 살짝 좁혀졌다. 더 벗어야 할 타이밍에 왜, 어깨를 가리는 거지?
의문에 찬 남자의 얼굴을 지나가 금세도 알아챈다. 모든 건 애초에 의도한 몸짓이었으니까.
“그 바지 벗기 전에 나부터 빨아 봐요.”
“뭐?”
“개처럼 빨아보라고요, 그럼 허락해 줄게요.”
성급하게 버클을 풀려했던 태윤의 손이 허벅지 밑으로 가볍게 떨어졌다. 얼굴 가득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배달된 최상의 선물인데 공은 좀 들여야 하지 않겠어요? 나도 한번쯤 보고 싶어서요. 천하의 윤태윤 본부장이 제 몸 구석구석을 빠는 거 말이에요.”
태윤의 목울대가 어이없다는 듯 크게 꿀렁였다. 단 한 번도 살면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제 성기를 빠는 여자를 내려다 본 적은 있어도 여자의 음부 안으로 코를 처박은 채 핥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유일하게 오랜 시간 몸을 섞었던 줄래에게 조차 정성스러운 애무를 해준 적이 거의 없었다. 고동색 젖꼭지를 빨고 핥아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태윤은 뭔가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헐벗은 여자 속에 욕구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따져 봐도 이 여자를 놓치면 아쉬운 사람은 저였다.
“좋아, 이제 와 깨끗한 척하면 가소롭겠지. 구치소도 갔다 온 마당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도 아니고, 안 그래?”
“싸고 먹고, 사는 거 다 똑같은데 누가 더 깨끗하고 덜 더럽고 기준이 있나요? 어차피 벗으면 다 본능대로 산다고요.”
지나는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소파에 앉아 남자를 유혹하듯 한쪽 다리를 관능적이게 꼬았다. 태윤을 지배하려는 듯 이글거리는 눈빛과 약간 내밀어진 입술이 그에게 고정돼 있었다.
‘저 봐! 날 더럽다고 멸시 하던 윤태윤도 어쩔 수 없잖아? 굶주리면 다 똑같은 거야.’
지나의 가슴 속에 묘한 쾌감이 흘렀다. 저를 돌하르방처럼 취급했던, 눈빛 또한 지독히도 무심했던 남자가 지금 이 순간, 꺾였다. 여자를 향한 간절함 따위라곤 이만치도 없었던 그 무례한 얼굴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를 원했던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이 윤태윤의 표정은 영락없이 지나를 원하고 갈망했다.
지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핸드백을 열어 무언가를 찾더니 핸드크림을 손바닥에 짜 굳이 비비듯 펴 발랐다. 순시에 남자가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어머!”
태윤은 지나가 입은 하얀 앙골라 니트 원피스를 허리까지 과감하게 끌어 내렸다. 그러자 태윤이 가장 좋아하는 살색 브래지어가 동그란 가슴을 품은 채 그대로 드러났다. 부드러운 살점이 태윤을 유혹했다.
“더럽게 꼴리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야.”
술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태윤의 자태는 온통 흐트러져 있었다. 옷깃이며, 소매며, 풀어헤친 단추와 풀린 눈동자까지. 안타까울 만큼 슬퍼 보이는 남자의 연약한 시선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어디부터 빨아 줄 건데요?”
“글쎄, 어디서부터 빨면 나한테 애원하려나. 하고 싶다고. 넣어달라고.”
태윤이 지나의 브래지어 속 한쪽 가슴을 제 앞에 꺼내어 손끝으로 유두를 살짝 눌렀다. 탱탱한 가슴위로 큼지막한 연갈색 꼭지가 물기 좋게끔 바짝 섰다. 꿀꺽. 입맛을 다시는 태윤의 입 안에 끈적한 침이 고였다. 탱글탱글한 젖꼭지를 한입에 베어 먹을 것 같았던 남자의 입술은 의외의 곳으로 뜨끈한 열기를 내렸다.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의 입새부터 갈랐다. 축축하게 젖은 혀가 얽히고설켜 그 안을 무자비하게 적시는 동안 열기로 가득 찬 남자의 손이 브래지어를 이탈한 지나의 한쪽 가슴을 포악하게 주물렀다. 발기된 유두가 비틀리자 얇은 신음이 흘렀다.
“으윽.”
젖가슴이 그의 손아귀에서 사정없이 뭉개질 동안 입술의 부딪힘은 더욱 거세졌다.
꽤나 저돌적인 입맞춤이었다. 혓바닥의 격렬한 엮임이 점막 구석구석에 휘몰아쳤다. 지난 시시비비를 잊게 할 만큼 본능에 충실한 움직임은 지나의 몸을 서서히 달궈갔다. 하체가 속절없이 울컥댔다.
“하아!”
물기를 머금은 혀가 지나의 입안을 이곳저곳 찌르며 침범하는 동안 젖꼭지를 문지르는 태윤의 손이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가며 여자의 쾌감을 조종했다. 꼭지를 부드럽게 돌리다가도 집요하게 꾹꾹 눌렀다 세우며 발기시키는 야살스러움에 여자가 자지러진다. 급기야 스스로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낼 만큼, 남자의 진득한 애무에 무너졌다.
아랫입술, 윗입술 할 것 없이 개처럼 핥았다가도 성급하게 혓바닥을 문지르며 빨아들이는 움직임이 너무도 현란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아윽.”
그저 입술이 닿았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전에 젖꼭지를 물었던 수많은 남자가 준 쾌감과는 다른 찌릿함이 흘렀다. 한쪽 유두를 긁어내면서 다른 한쪽엔 뜨거운 입김을 내리는 남자 때문에 저도 모르게 숨겨둔 마음을 끄집어냈다.
“하아, 좋아요. 아주 좋아.”
젖꼭지를 물어 잘근잘근 씹었다 뱉었다 게걸스럽게 문지르며 핥는 애무에 천하의 지나도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름끼치도록 야릇한 감각에 괜스레 가슴이 뛰고 움찔대는 속살 사이로 윤기가 흘렀다. 촉촉하게 속옷이 젖어갔다.
“으읏. 으흐응.”
예민하게 곤두선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능란하게 애무하자 지나의 허리가 알아서 휘었다. 뒤틀린 등줄기로 흐른 찌르르한 전율이 입술까지 닿아 잇새를 타고 야한 소리를 냈다.
축축한 혀의 돌기가 능란하게 선 꼭지를 알알하게 핥고 지나갈 때면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흔들렸다. 질구에서 사타구니로 사정없이 넘쳐흐르는 뜨거운 애액이, 그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이심전심, 몸에서 마음으로 서로의 욕망을 눈치 채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초.
충분히 젖은 여자의 은밀한 음부를 확인한 남자가 바지를 내린 후 다급하게 드로즈에서 제 검붉은 페니스를 꺼내려던 그때였다.
“잠깐만요, 설마 벌써 넣으려고요?”
서로가 서로를 강렬히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제 몸짓을 멈춰 세운 지나를 보며 태윤의 머리가 모로 기울었다.
“충분히 젖었던데… 이제, 하지?”
그러자 서운하다는 듯 지나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요염하게 세운 손가락을 제 은밀한 부위에 내린 채로 헐떡이던 입술을 색스럽게 벌렸다.
“핥으라고 했잖아요, 굶주린 대형견처럼, 게걸스럽게….”
“뭐, 게걸스럽게?”
“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