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가슴이 뛰냐고!
두 눈을 살며시 감은 후 질래는 은우를 떠올렸다. 흰 살결에 조각같이 배치된 근육들. 지독히도 다정한 유려한 손길을 떠올리며 밑에서 흐른 애액을 음부에 펴 발랐다.
“이쯤이었나, 흡. 으윽.”
동그랗게 발기된 구슬을 찾아 손가락으로 비비자 양 허벅지가 쫙 벌어졌다. 한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꼬집듯 문대면서도 한 손으론 양 유두를 엄지와 중지로 동시에 비비며 딱딱하게 만들었다.
제 체액을 선홍색 젖꼭지에 바른 후 손끝으로 돌돌 자극하자, 비비 꼬이는 허리가 들썩이며 침대를 알아서 치댔다.
어느새 양손이 음부로 내려간다.
한 손이 집요하게 발기된 옥구슬과 노니는 동안 다른 한 손에 질구를 배회하며 그 안을 넓혀갔다.
은우가 해주던 대로, 그를 상상하며,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돌려 조금씩 삽입했다.
그와의 정사를 떠올린다. 잊고 지낸 그의 육중한 살색 페니스를 이미지트레이닝 하듯 머릿속으로 소환해냈다.
“하앗, 으으읏.”
활화산이었구나.
죽은 줄 알았던 욕망이 꿀렁꿀렁 미친 듯이 분출됐다.
한참을 혼자서 저를 위로하자 손가락을 집어삼킨 벌렁대는 은밀한 구멍에서 애액을 왈칵왈칵 쏟아졌다. 제 반들반들해진 손가락을 타고 손등까지 점도 높은 시큼한 산성액이 투명하게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올라온 잉어처럼 파닥파닥, 질래는 침대에서 한없이 헤엄쳤다.
손가락이 길게 늘어진 은사로 범벅되어서 야한 냄새가 완전히 입혀지도록.
은우 없는 똑같은 일상 속에 찾아온 변화를, 이 환희를 오래오래 누리고 싶었다.
제각각 성감대에 포진시킨 손가락이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듯 들락날락 성급해졌으나 쫀쫀한 그 안을 아무리 누벼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 은우가 필요했다. 은우가 보고 싶다.
그런 외침이 저 파리에 들린 걸까. 아님, 또 통했나. 은우 전용 벨 소리인 달달한 러브 송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소름이 끼쳤다. 역시나 저를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는 남자였다. 질래는 통화 버튼을 애무하듯 살살 어루만졌다.
“은우야…!”
-뭐야,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야해!
“하고 싶어.”
-응?
“너랑… 하고 싶어.”
-진짜야?
“넣어줘.”
-실은, 나도 낮잠 자고 일어나자마자. 하! 미치겠다. 우리.
은우의 떨리는 목소리와 거칠어진 숨결이 전파를 타고 넘어왔다.
은우는 저를 거부하던 질래의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여자의 흐트러진 호흡에 한없이 흥분했다. 그녀의 색스러운 얼굴이 어찌나 그립던지.
-영상 통화할래?
“아니. 흐읍.”
-나, 파리에서 바로 퇴근 도장 못 찍는데. 한국 가면 바로 하아, 좋아.
“나도, 좋아.”
그렇게 맥락 없이 시작된 교성 가득한 둘만의 대화.
얼마나 지났을까, 둘은 서로의 목소리에 의지한 채 열정적인 섹스를 나눴다. 장거리도 막지 못한 사랑이었다.
헐떡이는 소리가 서로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가늠케 할 뿐. 은우의 손동작이 빨라졌다.
침대 위, 정제되지 않은 남녀의 목소리는 야릇했다.
질래 역시 저의 은밀한 부위를 자극하는 손길 따라 전신이 꼬여갔다.
이미 침대를 제 애액으로 흠뻑 적신 여자가 매트에 축 늘어진 채 야한 목소리로 은우를 자극했다.
서로의 격해진 신음을 들으며 절정에 이른 그 순간.
“으읏, 으누야 아앗!”
쌀 것 같아.
“나도, 미치겠어, 아앗. 흐으으.”
-하아! 하아!
남자의 익숙한 날숨이 파정 직전임을 알려왔다.
“안에다 해줘…. 아이, 갖고 싶어. 아앗.”
-으읏.
드디어 사정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제 손으로 위안했음에도 뭔가 질래와 함께한 듯한 이 충만함.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갔을지언정, 오랜만에 욕정에 충실했던 두 사람은 색다른 경험이 준 황홀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콩콩 뛰는 맥이 경주를 마친 뒤에도 미친 듯이 질주했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숨소리가 마치 손만 뻗으면 서로가 잡힐 듯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한 침대에서 사랑으로 얽히고설킨 기분이었다.
-사랑해, 질래야, 안고 싶다.
“나도, 안기고파. 네 품에….”
-응?
“아니, 계속 기다리게만 해서, 미안해. 은우야.”
-아니지, 기다릴 자격 줘서 나야말로 고맙지, 그래서 말인데….
은우가 무언가를 부탁하려 하자 질래가 그의 말을 잠시 멈춰 세웠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연유에서였다.
“잠깐만, 나부터, 나부터 말할래.”
오랜만에 질래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매우 기분 좋을 때 나오는 여자의 콧소리 덕에 은우 역시 입술에서 하얀 치아가 계속 드러났다. 질래를 위해 몰래 준비했던 선물이 상상 이상의 효과를 낸 듯 은우는 뿌듯했다. 얼른 그 소식을 전하라며, 질래를 재촉했다.
-먼저 말해.
“나! GH 쪽 일 제안 받았어.”
실은 은우가 기 회장에게 몰래 제안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른 척, 나른해진 목소리로 태연하게 물어봤다.
-그래서, 가슴이 어때?
“가슴이, 뭐?”
-뛰냐고. 다시 일하게 돼서.
질래는 가슴이 뛰냐는 질문에 볼록하게 둔덕을 이룬 젖가슴 위로 제 작은 손을 올려놨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심장이 은우와의 은밀한 통화 덕인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쿵쾅쿵쾅, 악수를 요청해 오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오랜만에?”
-그래서 말인데. 이번엔 내 차례야.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뭔데?”
-꼭… 들어주기다.
“…일단 들어보고.”
-뭐냐면….
은우가 망설이듯 말끝을 살짝 흐렸다. 단 몇 초간의 공백이 밀당하듯 질래의 맘을 애태웠다.
혹시 할리우드 건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올 때쯤 은우가 질래에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부탁했다.
부드럽게 늘어진 여자의 눈매가 동그랗게 커지더니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깜빡깜빡, 몇 번이나 열었다, 닫는 질래였다.
어떡하지?
질래는 통화 당시에는 은우에게 확답을 주지 못했다.
그저 은우와 화끈한 전화 통화를 마무리한 후 부엌으로 나와 유리잔 한가득 붉은 와인을 채웠다.
***
은우가 처음으로 부탁한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깊은 고민에 빠진 밤.
오르가슴을 느낀 후에 홀로 있는 게 왠지 쓸쓸해서 저 대신 조잘거려 줄 상대를 찾는다는 게 결국 거실의 있는 대형 TV였다.
리모컨을 들어 전원을 누르자 하필이면 뉴스가 흘러나왔다.
게다가 재판 중이라 포승줄에 묶인 채 걸어가는 윤태윤이 큰 화면 속을 생생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오전에 포토라인에서 했던 인터뷰 장면도 영상 중간에 삽입됐다.
-죄송합니다. 모든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혹 저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사죄를 구하며 저 역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몇 달간 침묵을 유지했던 초췌해진 윤태윤의 메시지가 오랜만에 달궈진 질래의 몸과 마음을 진동시켰다. 뭔가 각성된 느낌이었다.
‘그래, 많이 왔어, 이젠 나도 새로운 시작이 필요해.’
질래는 그를 보자마자 유리잔에 담긴 달달한 붉은 와인을 벌컥벌컥 깔끔하게 비워냈다.
입가에 핏물처럼 흐르는 와인을 야릇한 냄새가 풍기는 손등으로 쓱 닦아냈다.
왠지 은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열어 톡톡톡톡, 양손으로 빠르게 한글 자판을 두드렸다.
오랜만에 사랑을 확인한 은우에게 보내는 마음을 담은 메시지였다.
[그래, 알겠어. 갈게.]
***
은우는 이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톱스타나 다름없었다.
은우가 떴다 하면 공항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런 은우가 제 남자라는 게 질래는 아직도 실감이 되지 않았다.
한 일주일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엄청나게 그의 품이 간절해졌다.
은우의 목선에 얼굴을 묻을 때 잔잔하게 코를 적시는 저만이 알고 있는 그의 체향과 그의 품에 코알라처럼 매달려 있으면 싱크대나 식탁에 앉혀 제 얼굴에 퇴근 도장을 찍던 은우의 따뜻한 입술이 그리웠다.
질래는 손끝을 입술에 지그시 갖다 댔다. 슬그머니 눈을 감은 채로 은우의 다정한 입술의 감촉을 떠올리다가 정신 차리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디어 은우와 만나는 날.
질래는 오랜만에 단골로 다녔던 메이크업 의상실을 예약해뒀다.
워낙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즐비한 곳이라 시상식 시즌에는 예약 잡기가 치열한데, 다행히 기 회장 덕에 원장의 스케줄을 뺄 수 있었다.
강화그룹 장녀였을 땐 당연했던 특혜를 이제 남을 통해서 누리려니 질래는 여전히 이상했다.
게다가 오늘은 종합예술인들의 축제이자 일 년에 한 번뿐인 백송예술대상 시상식이 있는 날.
그래서 수많은 톱스타들이 이곳을 들릴 게 자명했다.
그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질래도 오늘 백송예술대상에 참석할 예정이기에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하루기도 했다.
TV 남자 신인연기상 후보에 오른 은우가 지난밤, 제 수상이 유력하다며 기 회장과 함께 와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가겠다 답문했음에도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저를 잊었겠지만 혹시라도 화면에 얼굴이 비칠 경우 누군가 그걸 문제 삼지 않을까 두려웠다.
얼마나 우습겠는가. 자숙하겠다던 사람이 일 년 만에 예술 시상식에 앉아 있다는 게.
하지만 은우가 원했다. 제 영광스러운 자리에 그녀가 와서 축하해 주길 바라는 그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1년간 한 번도 제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없던 은우였다.
심지어는 자신의 스케줄과 성적 욕구마저 포기하며, 매일 밤 저에게로 달려와 힘든 시간을 지켜줬던 남자 아니겠는가.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또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적당히 과하게, 곱디곱게,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단아함으로 메이크업과 드레스 코드를 맞췄다. 몇 시간 동안 공들인 결과였다.
은우가 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를 환히 비추는 은우만의 별자리가 되고 싶은 질래였다.
오늘만큼은 은데렐라에게 유리 구두를 신겨줄 퀸이 되리라.
“어제도 예쁘더니 오늘은 더 예쁘구나. 은우가 반할 만해.”
백송예술대상 관람석에서 재회한 기 회장의 칭찬에 질래는 어깨에 자신감을 얻었다.
빈말이어도 은우가 반할만한 여자라는 말이 질래의 입술을 바록거리게 만들었다.
그래, 오늘은 오직 은우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 시상식장을 찾은 거야. 과거 가질래를 버리고 당당해지자.
기 회장 역시 백송예술대상에 올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후원까지 해가며 VIP로 참석했다.
물론 세상은 아직 은우가 GH 일가 손자란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은우가 연예계를 은퇴할 때까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 사항이기도 했다.
연예인이 된 저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제 연인이자 GH 그룹에서 일하게 될 질래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앞서 1부의 수많은 시상식이 지나가고 마지막을 장식할 TV 남자 신인연기상을 발표만 남았다. 괜히 질래가 신인상 후보자인 것처럼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마음이 초조했다.
보통 여자 신인상이 1부 마지막을 장식했는데 이번에는 순서를 바꿔 남자 시상자가 1부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한 해는 유독 반짝반짝 떠오른 남자 스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쟁쟁한 후보들의 영상이 지나가고 마지막 은우의 영상이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그 응원 소리만으로도 은우가 대세인 게 분명한 지금, 질래는 괜스레 가슴이 쫄깃해졌다.
흘러나오는 웅장한 BGM이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 가운데 작년 TV 부분 신인상을 받은 남녀 배우가 시상자로 무대 위에 올랐다.
TV에서만 보던 그 핫한 연예인들이었다. 특히나 가슴골이 확 드러난 여배우의 누드 톤 드레스엔 눈길을 갔다. 누가 배우들 아니랄까 남녀 할 것 없이 풍기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새삼 은우가 그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게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여배우가 제 손에 들린 봉투에서 수상자가 적힌 종이를 꺼내 들자 관객들의 고함 소리가 더욱더 장내를 꽉 채웠다.
이후로도 한참 동안 뜸 들인 후 관객석을 바라보며 종이에 적힌 글자를 한자씩 얽어냈다.
“TV 부문 남자 신인상 수상자는….”
또 시간을 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우가 확실한데 혹시라도 아닐까 봐 질래 역시 두 손 꼭 모은 채로 그녀의 입술만 주시하던 그때였다.
“JTBS의 ‘그 남자의 불시착’에서 준하 역을 맡았던 이은우 씨.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