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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래요-65화 (65/84)

65화. 고성능의 신형 남자친구

시작은 아무도 모르게, 결국은 쏟아지는 교성에 티가 팍팍 나게, 둘만의 은밀하고도 위대한 스파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실은 혈기왕성한 대형견의 습격으로 열정적인 사정 놀이가 끝날 줄을 모르니 질래의 탄탄한 배가 갈수록 홀쭉해졌다. 복근의 실근이 좀 더 뚜렷해졌다.

해바라기 샤워기를 폭포수 삼아 서로의 몸을 한 차례 더 달군 후 연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통유리로 된 레스토랑으로 사이좋게 이동했다.

테이블로 향하는 길엔 손과 손이 이어졌을 뿐. 스파 후 한결 뽀얘진 연인의 시선은 끈덕지게 서로를 향해 있었다.

에펠탑 근방에서 시작된 야간 디너는 약 1시간 반가량 진행된다고 했다. 이후 크루즈 스위트룸을 이용하든지 지상의 호텔을 이용하든지 내일 오전까진 온전히 둘만을 위한 배라며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둘만의 배라니, 은우와 질래는 그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직원들의 시선을 피해 둘만의 파티를 벌일 수 있단 뜻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늦은 밤. 테이블에 앉아 파리의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기다리는 연인의 입술은 파리에서 나눈 수많은 비밀 덕에 들썩들썩, 야릇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마주 보고만 있어도 까르륵, 웃고 또 웃을 수 있는 사춘기 때도 못 느껴봤던 감성이 서른셋, 질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은우 역시 엄마를 보낸 후 해외를 전전하며 유목민처럼 살아왔던 지난날을 변제받는 듯, 오늘이 생에 가장 많이 웃어본 하루 같았다.

제각각 이런저런 회환에 젖어 있던 그때 향초와 생화로 분위기를 낸 테이블 위로 전식이 놓였다.

태양을 헹구고 빨아서 얻어낸 빛깔이라고 했던가. 분홍과 주홍 사이. 오묘한 색감의 로제와인이 잔 속에서 찰랑찰랑 영롱하게 빛났다. 은은하게 풍기는 스위트한 과일 향이 질래의 후각을 매료시켰다.

“석양색이네. 예쁘다.”

“가질래 탐스러운 볼이 더 예뻐.”

질래가 시원한 로제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켜 음미하는 동안 은우는 광대를 실룩이는 볼 빨간 여자를 계속 주시했다. 질래는 그 시선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제 앞에 놓인 아기자기한 음식들을 무심하게 맛보았다.

시트러스 크럼블, 렌틸콩으로 입맛을 돋우자 그레몰라타를 얹은 가리비와 묽은 버터너츠 크림, 보르도식 달팽이 요리가 새로운 와인과 함께 내어졌다.

질래의 까다로운 입맛에도 합격점을 얻을 만큼 모든 요리가 훌륭했다.

“여기 잘하네. 달팽이 잡내가 전혀 안 나.”

“가질래만 할까.”

달팽이가 왜 저로 연결되지? 순간 엉덩이 사이를 핥던 남자의 색스러운 모습이 그려졌다. 빨릴 때마다 저릿했던 그 쫄깃한 감각이 떠올랐다.

당황한 나머지 질래는 달팽이 하나를 콕 집어 입안으로 넣었다.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서도 저만 바라보는 은우의 시선이 뜨거워 볼에서 시작된 홧홧한 열기가 귓불까지 번졌다.

“안 먹어? 먹여줘?”

남자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다. 그러면서도 가지런한 치아를 환희 드러내며 질래를 향한 눈빛 구애를 멈추지 않았다.

“먹여줄게.”

은우가 가리비를 먹기 좋게 썰어낸 후 질래 앞으로 쭉 내밀었다. 이상했다. 먹여주는 게 처음도 아닌데 9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마치 어린 애 취급을 당하는 듯한 이 기막힌 상황이 우스웠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말이 더 가관이다.

“너! 치약 광고 찍어라.”

“…갑자기?”

“잘 팔릴 거 같아서, GH 계열사 거 찍음 되겠네.”

“그냥 먹어! 팔 아파.”

은우가 당황한 여자의 입속으로 제가 썬 가리비를 쏙, 넣어주었다. 그러자 입술을 오물이며 냠냠 씹고 있는 여자가 사랑스러워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손을 뻗어 여자의 볼을 꼬집고 싶지만 생각보다 넓은 테이블이 한없이 야속했다.

“맛, 있네.”

“내가 먹여줘서 더 맛있는 걸걸?”

“갑자기?”

말투마저 저를 닮아가는 여자를 보며 은우가 입술을 힘껏 늘렸다.

“오빠 말 따라 하는 거 봐. 귀엽다.”

“또 오빠 소리….”

“아빠 할래? 해 봐! 아! 빠!”

질래는 목구멍으로 넘긴 가리비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각도에서도 훈훈함을 잃지 않는 남자의 눈빛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던 찰나, 다행히도 그들 앞에 화제 전환 거리가 생겼다. 본식이 등장한 것이다.

브루셀 스프라우트가 곁들어진 오리 스테이크와 농어구이 요리, 그리고 감자튀김까지 질래가 다 좋아하는 메뉴였다.

“유럽에만 오면 감자 요리가 그렇게 맛있더라?”

“그래?”

은우가 이번엔 감자튀김을 집어 질래의 입술에 꾹 물렸다. 동시에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로 질래를 긴장케 했다.

“한국 가면 우리 어디서 살까?”

벌써 그런 고민을 하는 거야? 질래는 이런 은우가 재밌었다. 가질래 앞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말할 수 있는 남자. 은우가 연하라는 사실을 잊은 지는 꽤 된 듯했다.

남녀가 몸이 섞이면 그때부턴 희한하게 평등해진다. 어느새 그와 함께 가질래의 서른셋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동거하게?”

“그럼 별거하게?”

또 웃었다. 어떻게 너하고만 있으면 일상이 이렇게 웃을 일투성이인 걸까? 게다가 든든함까지 갖춘 고성능의 신형 남자친구였다.

“나 돌아갈 때까지 힘든 일이 있어도 잘 기다릴 수 있지?”

질래가 눈꺼풀을 내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질래는 다 잘할 수 있어, 한국 가면 상으로 직접 요리해 줄게.”

“잘해?”

“꽤 맛있을걸. 기대해도 좋아.”

“넌! 요리도 잘하니?”

저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민망함에 오리 스테이크를 잽싸게 썰어내려 하자 은우가 먼저 썰어 놓은 고기를 질래 앞에 밀어줬다.

“나, 요리 말고 다른 것도 잘하나 보네. 또 뭘 잘하는데?”

늑대가 보였다. 정기가 흘러넘치는 한 마리의 굶주린 엉큼한 늑대였다. 아니. 늑대치곤 턱선이 꽤나 섹시했다. 게다가 입술이 요물이다. 방탕함이 그득 실린 미소마저도 반할 지경이니 질래도 미치겠다.

“왜 귀까지 빨개져? …자꾸자꾸 빨고 싶게.”

질래의 얼굴에 대형 화재가 났다. 왜 이렇게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그와 쌓은 야한 추억들이 한 보따리였다. 좋았던 건지, 불쑥불쑥 머릿속에서 꺼내졌다. 이미 가질래 책장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건지 신기하게도 옷을 입은 남자의 몸에서 벗은 남자가 보였다. 너무 놀라 두 눈을 깜빡깜빡, 떴다 감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지 모르겠다.

“눈에 뭐 들어갔어? 아님, 보고 있자니 눈부셔서 그러나.”

또 말렸다. 완전히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그만 좀 빨지! 아파 죽겠으니까.”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질래는 그에게 얼마든지 은밀한 부위를 더 내줄 의사가 있었다.

“어디가? 눈꺼풀은 안 빨았는데.”

“넌, 왜 밥을 안 먹니? 사람이 편식하면 못써.”

도대체 이게 무슨 대화란 말인가. 은우의 적수가 못 됐다. 대체 뭘 편식했다는 건지. 제가 말해 놓고도 도저히 수습이 안 됐다.

“내가 오늘 편식한 건 아나 보네.”

혼잣말로 시크하게 툭 내뱉으면서도 연이어 입술을 쌜룩이던 남자가 드디어 농어구이 한 조각을 맛보았다.

“가질래보단, 별로다.”

“…….”

혹 그가 말한 요리라는 게 여자를 요리하는 법은 아닌지. 질래는 이은우의 레시피에 푹 빠져버렸다.

민망해질 때면 자연스레 넓은 곳으로 시야를 돌렸다.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파리의 야경을 구경했다.

콩코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 퐁네프다리, 오르세 미술관까지 낮과는 전혀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파리가 질래를 맞이했다.

다만 86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딕 양식 건축의 최고의 걸작.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려한 자태를 야경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괜스레 먹먹했다.

은우와 파리에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한 달 전 뉴스로 접한 화재 소식은 질래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미안하게도 파리의 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언제 그런 일을 겪었냐는 듯 반짝반짝, 생기가 넘쳐흘렀다.

“너랑 있어서 그런지 파리가 내가 알던 파리가 아니야.”

“한국 가서도 마찬가지일걸? 함께하는 매일이 새로울 거야.”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해?”

질래의 물음에 은우가 와인 한 모금을 들이켰다. 디저트로 나온 두툼한 숙성 치즈를 하나 집더니 저 대신 질래의 입속에 건넨 후 그녀의 달뜬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리야.”

“…….”

“매일, 매일.”

질래가 픽한 디저트인 모엘루 쇼콜라보다도 달콤한 남자였다. 그 달짝지근한 남자가 때때로 짐승같이 거칠게 변한다는 게 반전 매력이기도 했지만….

결국 크루즈의 항해가 멈출 때까지 아름다운 야경놀이를 빙자한 둘만의 뜨거운 밤은 계속되고 말았다.

직원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가 잠들 때까지. 통유리로 된 레스토랑에서 시작된 연인의 누드쇼는 파리의 낭만적인 야경이 그대로 보이는 라운지 바, 발코니에서도 끝날 줄을 몰랐다.

어느새 눈앞엔 새벽 1시에 딱 한 번 보여준다는 그 유명한 화이트 에펠탑이 펼쳐졌다.

순백의 다이아 드레스를 입은 에펠탑 앞에서 질래를 향한 은우의 사정, 사정은 한 편의 장편 영화처럼 절찬 상영 중이었다.

허물고 세우기를 지속한 파리에서의 극락의 밤.

아침 일찍 만나자는 지나의 문자가 온 줄도 모른 채 서로를 향한 끝없는 치댐이 계속됐다.

***

“왜 자꾸 날 피하는데?”

“왜 자꾸 질척이는데?”

이른 저녁. 술에 취해 태윤을 찾아온 줄래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 후 집 안으로 무단 침입했다.

때마침 거실에서 독한 위스키를 청하던 태윤과 딱 마주친 덕에 둘은 한바탕 실랑이 중이었다.

줄래는 이미 남자 앞에서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빠만 끝내면 하루아침에 끝이야?”

“처제가 형부 집에서 이러는 건….”

“혼인 신고도 안 했다며. 아직도 형부 노릇이 하고 싶어?”

마지막 단추까지 다 풀어낸 줄래가 치마마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하늘하늘한 시스루 블라우스 사이로 봉긋 솟은 가슴이 넘실댔다. 연갈색의 유두가 고스란히 비치는 새하얀 망사 속옷은 이른 저녁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발이었다.

입은 듯 벗은 듯, 착시현상마저 일으키는 망사 팬티는 누가 봐도 술 취한 남자를 유혹하려 작정한 여자의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졌다.

태윤은 술김이라 그런지 솔직히 꼴릴 뻔했다. 그래서 일부러 피했다. 더 이상 줄래를 품고 싶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었다.

“왜 안 봐?”

그녀가 어깨에 걸친 블라우스를 마저 벗었다. 마치 태윤의 이성을 훔치려 발악하는 듯 망사 브래지어의 훅마저 과감하게 끌러냈다.

투둑. 브래지어가 그녀의 가슴에서 대리석 바닥으로 낙하했다.

출렁출렁. 사과만 한 어여쁜 가슴이 양쪽으로 쫙 퍼졌다.

“이래도?”

알코올에 이성을 맡긴 태윤의 시선이 그제야 힐끔힐끔, 여자에게로 향했다.

가줄래가 가질래로 보이다니….

순간 태윤은 자신이 진짜 취했음을 깨달아버렸다.

급격하게 하체가 불어났다. 남자의 잠옷 바지 위로 분신이 우뚝 섰다. 항상 집에서는 속옷을 탈의한 채로 있던 탓에 그걸 여자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빨아줄게.”

어느새 나체의 여인이 성큼 다가와 하체에 장막을 친 남자의 막대기를 꺼내려 바지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검붉은 페니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자 제 성기를 쥔 여자의 작은 손을 남자가 잽싸게 멈춰 세웠다.

“왜? 왜 막는데!”

슬픔에 젖어 있는 눈으로. 술에 취한 남자가 여자를 응시했다. 그 힘 빠진 눈빛에 그만 줄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뭔가가 있구나.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가 드디어 꾹 닫혀 있던 입술을 열어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테러에 대해서 물은 적 있지? 안 무섭냐고.”

“요즘은 잠잠하던데. 그게 왜?”

“곧 내가 테러당할 거야.”

잠깐이었지만 줄래의 속눈썹이 흔들렸다.

“오빠, 진짜 취했구나? 왜, 협박이라도 당했어?”

“모든 게 다 끝났다고. 너도 테러당하기 싫음, 나랑 이제 최대한 멀리 지내.”

“…대체 무슨 소리야?”

남자의 딱딱한 페니스를 쥔 줄래가 멍멍한 표정으로 태윤을 올려다봤다. 동그래진 동공은 이미 혼쭐이 나있었다.

“니네 자매, 다 놔 줄 거라고.”

풀썩, 다 벗은 여자가 결국 남자의 막대기를 놓은 채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위스키 병을 들고 거실을 떠나는 남자의 등에 대고 여자는 알 수 없는 말만 미친 사람처럼 되뇌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어.”

등진 남자를 보던 여자의 애달픈 눈이 대리석 바닥 쪽으로 푹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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