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미각을 잃어도 가질래
남자의 나지막한 중저음, 저를 존대하듯 가르치는 목소리가 마치 중독성 강한 주문인 듯 질래는 전신이 나른해졌다. 최면에 빠진 것처럼 여자는 그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혹은 본능대로 할 뿐이었다.
“손으론 기둥을 잡고. 혀끝을 뾰족하게.”
“이렇게요?”
고양이처럼 요염하게 치켜뜬 눈으로 약간은 어설프게 핥는 게 오히려 남자를 더 질질 싸게 만들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바티칸의 교황도 부럽지 않을 만큼, 제 밑에서 빠는 가질래를 보는 순간 은우는 모든 걸 다 이뤘다.
로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제 페니스를 잘 빨던 여자가, 갑자기 머뭇머뭇, 버벅거린다. 은우의 가르침을 원하는 듯 비 맞은 고양이처럼 또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요.”
남자의 마음이 괜스레 다급해졌다. 이미 흥분할 대로 했건만, 여기서 어떻게 더 잘 가르쳐야 여자가 잘 이해할지 그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은우는 나름 머리를 굴려 여자가 이해하기 쉽게 다시 설명을 이었다.
“자! 그럼 와인 병에서 코르크 마개를 빼낼 때처럼 두 손으로 기둥을 잡아 봐요. 그리고 좌우로 살살 돌려가면서 위아래로 페니스를 빨아요.”
갑자기 의욕이 과해진 걸까. 질래가 은우의 성기를 부러뜨릴 듯 세게 휘감은 채로 츄르릅, 춥, 흡입했다.
“어때요? 좋아요?”
“으읏, 좋은데, 너무 세게 쥐진 말고. 골절되면 곤란하거든요. 진료를 못 하니까.”
“우리 선생님. 실직하면 안 되는데.”
솔직히 좋았다. ‘우리 선생님’이란 말도, 제 것을 맛보는 여자도. 너무너무 좋아서 질래의 입안에서 빠르게 피스톤 운동을 하고픈 욕구가 솟구쳤지만, 일단은 참았다. 대신 또 가르쳐 줬다.
“귀두 부분을 막대 사탕 빨 듯 혀로 살살 건드려가면서….”
“손은요?”
“밑에 고환을 살짝, 살짝 터치해 봐요.”
질래는 그의 말대로 정성스레 그의 페니스를 맛보면서도 손으로는 그의 고환을 간질이듯 만져줬다. 말랑말랑하면서도 개 발바닥의 볼록살 같이 부드러운 촉감이 뭔가가 묘했다. 축축하면서도 차가운 쌍 알이 꿀렁꿀렁 거려 제법 굴리는 재미가 있었다.
남자도 페니스를 애무 받으면서도 제 급소를 쥐락펴락하는 여자 때문에 롤러코스터보다 더한 스릴감을 체험 중이었다.
그녀의 벌어진 입술에서 들락날락, 닦고 닦이는 페니스가 반짝반짝 빛날 만큼, 모든 게 황홀했다.
학습력은 얼마나 좋은지 한마디로 일취월장이었다. 어느새 가르쳐주지도 않은 스킬까지 선보이며 목구멍 깊이 넣었다 뺐다하며 분신을 쥔 채로 알아서 내달렸다.
살짝살짝 간질이듯 부드럽게 핥는 농염한 혀 놀림.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페니스를 농락하듯 점점 리드미컬해지는 테크닉에 사정감이 요도 끝까지 다다른 순간이었다.
은우는 질래의 입에서 소중이를 빼냈다. 제 손으로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으읏.
질래를 피해 침대 밖으로 쭈욱, 쭉, 제 분신을 뿜어냈다. 정말로 널리 널리 사정했다.
다리가 풀렸다. 바로 허리를 숙여 사랑하는 질래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었다.
“잘했어, 너무 좋았어.”
“칭찬해주는 거야?”
“어떻게 안 사랑해? 이런 여자를.”
“잘해서?”
“못해도…. 당연히 사랑하지.”
이렇게 우리의 병원 놀이는 어느새 끝나 있었다. 솔직히 그게 왜 병원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장소가 병실 같아서?
한의원인지, 대학병원인지, 사제지간인지 사실 맥락을 잃은 지도 오래였다. 은우는 그저 제 물건을 사랑해준 여자의 입술을 정성스레 핥으며 계속 사랑을 나누고 싶을 뿐이었다.
“얼른 나아. 홍콩이든, 유럽이든, 다 보내 줄 테니까. 나만 좋아서 미안하잖아.”
그러자 질래가 아니라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입술이 뻘겋게 부어오른 여자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이제 곧 가야겠네.”
이른 저녁 비행기라서 은우는 공항에 미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분명 이별을 고했건만, 오후 늦게 또다시 이별이라니.
“가기 싫다.”
“갈 거잖아.”
“잡을래? …안 갈게.”
“…….”
그러자 질래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듯, 입술을 꿈질댔다.
“질래야, 하고 싶은 말 있음 뭐든 해. 다 들어 줄 테니까.”
“…만약에 말이야.”
“만약은 싫은데….”
“나보다 훨씬 귀엽고,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고백해도… 나일 자신 있어?”
은우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듣고 싶어서였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서 그랬다.
이별을 앞두고 구두상의 서약서 같은 거랄까.
그런데 은우가 입가에 손을 댄 채 시간을 끌었다. 왜지. 자신 없다는 뜻일까?
“기다려 봐.”
“…….”
질래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만 개 그려질 때쯤 은우가 누워 있는 여자의 사타구니를 파고들었다.
자몽의 단면처럼 상큼하고, 예쁜 색을 지닌 그녀의 깊고 깊은 샘. 그곳에서 흘러내린 애액을 한 번에 쭉 빨아들였다.
움찔대는 여자의 속살에 코를 처박은 후 매우 낮은 목소리로 고백해 본다.
“입맛이 한결같데.”
“…그게, 나쁜 건가?”
“만약에 말이야.”
“…만약, 싫다며. 흐읏.”
음부를 훑은 은우가 이번에는 질래의 동공을 따뜻하게 응시했다.
“미각을 잃어도 난, 가질래.”
“…자신.”
“있어!”
***
같은 시간, 본부장실에 앉아 있는 태윤의 목에는 성난 힘줄이 불거졌다.
“이은우 개새끼!”
책상에는 처리할 일이 한가득이건만 두 시간 전에 찾아온 어린놈 때문에 태윤은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TY그룹의 후계자인 태윤은 부모를 일찍이 여읜 후 이 회사를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아버지가 이룩한 성과를 다른 임원진들과 친인척들이 거저먹은 후 회사를 말아먹을 뻔한 순간에도 그들의 손에서 다시 TY그룹을 일으켜 세운 게 바로 태윤이었다.
20대 초반 일찍이 경영 필드에 뛰어들면서 학업과 회사 운영을 함께한 악바리로도 유명했다.
그렇다고 자기 관리에 소홀했던 적도 없었다. 훤칠한 외모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국내 톱스타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내놓으라 하는 집안 자제들로부터 선 자리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갖고 싶은 건 뭐든지 제 손안에 들어왔다.
그런데 왜, 가질래만은 안 되는 걸까. 어디서 굴러들어온 잘 다듬어지지도 않은 돌한테 밀려 나가리 신세가 되다니, 태윤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젖비린내 나는 놈한테 패배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놈 하나 이기겠다고 유치하게 거짓 제보까지 했다.
쾅! 쾅! 쾅! 사정없이 주먹으로 책상 유리를 내리쳤다. 깨진 유리 사이로 그의 찢긴 손에서 흐르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유리 틈새를 채운 핏물이 마치 저주의 강물처럼 보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아까부터 눈치 없이 인터폰이 계속 울렸다. 모든 회의와 스케줄을 취소하라고 했건만 대체 누가 저를 이토록 애타게 찾는단 말인가.
태윤이 인터폰을 눌렀다.
“무슨 일이지? 오늘 일찍 퇴근한다 그랬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가줄래 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제야 태윤의 눈에 수십 통의 부재 전화로 채워진 휴대폰이 들어왔다. 대부분이 가줄래가 건 전화였다. 태윤은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인터폰을 눌러 비서에게 지시했다.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본부장실 문이 열리자 한껏 꾸민 여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과하게 꾸민 게 꼭 나 좀 봐 달라고 애원하는 여자처럼 보였다.
“갑자기 찾아오지 말라 그랬을 텐데?”
“가족끼리 왜 이래, 그러게, 전화 좀 받지 그랬어.”
줄래가 핸드백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소파에 앉으려는 순간 태윤의 손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 설마, 손으로 유리를 깨뜨린 거야?”
“하, 그랬나?”
“요즘 왜 이래, 그러게 왜 혼자 생쇼를 해. 허위 제보했다가 취소라니, 모양 빠지게.”
태윤이 줄래에게서 등진 채로 창밖을 바라보자 그녀가 먼저 태윤에게로 다가갔다.
본부장실을 잘 아는 듯 캐비닛에 있는 구급상자를 꺼내와 태윤의 손을 처치했다.
상처를 소독하는 순간에도 태윤은 먼 허공만 바라볼 뿐,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대신 나지막한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었다.
“…힘들다.”
“기댈래?”
“…아니.”
태윤은 분명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줄래는 그의 축 처진 고개를 제 가슴으로 끌어와 기대게 했다.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 그걸 태윤에게 듣게 해준 유일한 사람이 가줄래였다.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외도 후 급작스러운 사고. 태윤의 인생 속엔 누구 하나 기댈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 저에게 줄래는 종종 따뜻한 가슴을 내주곤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밀어냈을 텐데 오늘따라 여자의 심장 뛰는 소리가 희한하게 위로가 됐다. 줄래에게는 가질래에게서 느꼈던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가족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왜 내가 아니라, 그 자식일까?”
줄래의 말캉한 속살에 기댄 채 태윤이 덤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즘 매번 그 질문인 거 알아? 그러게, 왜 오빠는 항상 내가 아니라, 가질랜데?”
“이래서 세상이 공평한 건가?”
“난, 그 말 잘 모르겠어. 대체 뭐가 공평한 건데. 혹 공평하다 쳐. 그럼 뭐! 내가 하나도 기쁜 게 없는데.”
“…하.”
태윤의 입에선 연신 한숨이 쏟아졌다. 제 블라우스에 뜨거운 숨결을 토악질하듯 쏟아내는 태윤의 머리칼을 줄래는 말없이 쓰다듬었다. 그러자 남자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이은우가 내 약점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질래는 나한테서 멀어져만 가.”
태윤의 그 말이 줄래를 아프게 했다. 제 몸에 기대있으면서도 오로지 가질래 생각만 하는 미운 남자.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남자. 그래서 그의 얼굴을 의자로 원위치시킨 후 줄래는 책상에 걸터앉았다.
“혼인신고까지 했다면서, 뭐가 그렇게 불안해?”
“…둘이 사랑하는 거 같아.”
태윤의 말에 줄래가 입술을 비튼 채로 크게 비웃었다. 태윤의 입에서 나온 말치곤 매우 감상적이었다. 천하의 윤태윤이 두려워하게 사랑이라니, 그 실체가 우스웠다.
게다가 저가 아는 언니 가질래는 남자를 이성으로 사랑할만한 위인이 못됐다. 태윤의 어이없는 걱정이 줄래를 오랜만에 실소케 했다.
“가질래가, 그 어린애를? 아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