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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래요-8화 (8/84)

8화. 메리크리스마스

우두둑우두둑.

순간 질래의 코트 단추들이 하나둘 팝콘처럼 튕겨져 나갔다. 캐시미어 코트가 재빠르게 여자의 몸에서 분리되어 침대 밑으로 휙, 마법의 양탄자처럼 날아갔다.

“하지 마! 가길래.”

다급해서 남자의 옛 이름까지 불러보았다. 하지만 그를 되돌리기엔 이미 역부족인 듯했다.

“서운한데?”

의외의 말이 또 그의 입에서 물음표를 그려냈다.

“알아듣게 말해.”

여자의 눈을 주시하던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턱 밑, 젖을 대로 젖어 속옷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슴 쪽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젖은 옷은 벗는 거라며, 기억 안 나? 8살 때. 내가 소나기 맞고 온 날.”

“지금이 그때랑….”

“그때 벗겼잖아.”

질래의 기억이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갔다.

비 내리던 여름밤, 소나기를 흠뻑 맞은 채로 은우가 돌아왔다.

자기 동생이 비에 젖어 들어왔는데 어느 누나가 그걸 보고만 있겠는가. 당연히 질래가 꼬맹이의 옷을 손수 갈아입혀 줬었다. 질래의 머릿속에도 각인돼 있던 또렷한 추억이었다.

분명히 일하는 사람한테 은우의 우산을 부탁했건만, 왜 저렇게 혼자 비에 젖어 들어 온 건지 질래는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줄래의 훼방이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저를 마중 나오지 않았다는 어린아이의 슬픈 눈빛을, 질래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 그 예쁘고 순수했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제게 꼭 장가들겠다던 그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변해버릴 수가 있지? 그런 안타까움도 잠시였다.

“선택해 가질래. 벗겨줘? 아니면 스스로 벗을래.”

“…….”

그가 답 없는 문제지를 그녀 앞에 또 내밀었다. 차마 아무 답도 고를 수가 없어서 고개를 휘휘 젓는 질래 앞으로 은우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젖은 옷, 안 불편해?”

“응, 안 불편해…. 이은우, 네가 불편해.”

역시나 어려운 사람이었다. 질래의 그 한마디가 은우에게 비수로 꽂혔나 보다. 그 노골적이고 당당했던 남자의 눈매가 일시에 처음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이때다 싶어 질래가 협상의 여왕답게 심리전에 돌입한다.

“여기서 사고 치면, 네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니?”

“그렇다면… 어쩔 건데?”

“가져…. 어차피 나, 너 힘으로 못 이겨.”

“그게 원하는 바야?”

제가 아는 은우라면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거란 확신에 질렀지만, 잘못된 계산법이었나 보다. 쏟아지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던 그때, 남자는 이미 야생 사자로 돌변해 있었다.

흥분한 듯 은우가 여자의 블라우스 단추를 거칠게 풀어내더니, 맨 위 옷깃 단추부터 차례대로 하나… 둘… 손을 댔다.

드디어 새하얀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세 번째 단추까지 풀어내려던 찰나였다.

“저기, 은우야.”

여자가 간절한 눈빛으로 제 손을 감싸길래, 남자는 일단 세 번째 단추에서 잠깐 정차하기로 했다.

“…말해.”

“여기서 못 멈추면 나한테 크리스마스가 악몽이 될 것 같아.”

“…….”

“너한테는 그런 거 상관없나 보네!”

은우의 날카로운 눈매가 연약하게 슬퍼졌다. 여자의 앞섶을 붙들고 있던 손이 서서히 블라우스에서 내려오더니 툭, 침대 매트리스 위로 떨어졌다. 이내 은우가 고개를 돌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질래도 함께 안도의 한숨을 잘게 뱉어냈다. 떨리던 동공도 점차 잠잠하게 제자리를 잡아갔다.

사실 그녀는 믿고 싶었다. 비록 1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제가 알던 그 착하고 순수했던, 저밖에 몰랐던 그 꼬마아이가 아직 그 안에 존재하길 바라고 또 바랐다.

“나쁘다.”

은우가 자조 섞인 한마디를 무심하게 툭 던졌다. 질래는 이제 이 대화의 마무리가 중요한 타이밍임에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납치한 너보다 내가 더 나빠?”

“가질래는 뭔데 이렇게 어려워?”

은우도 이상했다. 한 번도 사람에게 친절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여자라면 진절머리가 날 만큼 적대적으로 대해왔다. 그런 이은우가 여자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며 눈치나 보고 있다니.

그런데 가질래 인생에 자신이 악몽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끔찍했다. 은우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도통 방법을 모르겠다. 뭐가 윈윈 하는 행복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은우의 심중을 파악한 듯, 질래가 슬슬 마무리 패를 꺼내 들었다.

“내가 불행해져도 너 혼자 행복하게 살 자신 있음, 맘대로 해.”

그런데 그 말이 오히려 남자의 본능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나 보다. 무리수였다. 은우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버렸다.

“제발! 도발하지 말라고!”

“왜? 내가 괴로운 건, 또 싫어?”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자꾸 그러면 나도 몰라, 이젠.”

뭔가가 잘못됐다. 하긴, 침대 위에서 맹수가 된 남자와 협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자가 질래를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그가 입고 있던 흰 티셔츠를 침대 밑으로 휙 벗어 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왜지? 제 앞에 훤히 드러난 남자의 상체 때문에 질래는 순간 심장이 파열돼 죽는 줄 알았다.

쿵쿵쿵쿵! 과호흡으로 숨이 안 쉬어질 만큼 가슴이 뛰었다. 남자의 비현실적인 몸매가, 그 비율이, 흰 피부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단단한 근육이 모두 아찔했다.

다만 그가 저에게 등지고 나서야 섹시한 등 근육 곳곳에 포진된 붉은 점들이 발견됐다. 전기 포트에서 쏟아진 뜨거운 물이 남긴 흔적들이었다.

그 상처를 본 순간 질래의 마음이 흔들린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이런 게 누나 마음일까?

“병원 가자, 은우야.”

제 상처를 보자마자 13년 전 누나의 얼굴로 되돌아간 모습에 남자는 그제야 찡그려졌던 마음이 살살 펴지는 것만 같았다.

어찌나 반갑던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그리워했던 그 얼굴이었다. 정말 혼자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 가기엔 너무 늦었어. 시간이.”

“응급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반신을 탈의한 남자가 코앞으로 바짝 다가온다. 숨도 못 쉬게. 질래는 그의 입김 탓을 해보며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였다.

“해줘, 나 다치면 항상 처치해줬잖아.”

“일단 열부터 식혀야….”

“안아줘. 흉 안 지게.”

“뭐?”

“안아 달라고.”

“…….”

질래도 그를 안아 주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다. 은우가… 이런! 남자로 보였다.

자꾸자꾸 다가오는 남자의 숨결이 흠뻑 젖어 있는 여자의 블라우스 옷깃을 붕 뜨게 할 만큼 여자를 잔뜩 움츠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남자의 시선엔 그녀의 가냘픈 쇄골이 더욱더 선명하게 보였지만.

자꾸 안고 싶게. 자꾸 갖고 싶게 말이지.

“왜? 내가 안아줘?”

“…….”

“그럼 공평하게, 누나도 벗어.”

“뭐?”

돌연 은우가 질래의 블라우스 앞섶을 뿍 찢어버렸다.

여자의 목 밑에서 출렁이는 브래지어 위에 그려진 두 개의 큰 동그라미가 당장이라도 한 입 베어 먹고 싶을 만큼 탐스럽게, 꽤나 먹음직스럽게 봉긋 솟아 있었다. 마치 잘 익은 복숭아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그의 손이 여자의 귓가를 덮고 있는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며칠 전 장례식장에서 은우가 남긴 하트가 제법 옅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많이 지워졌네, 이번엔 좀 특별한 곳 어때?”

남자 앞에서 제 속살을 들켜버린 질래는 이미 마론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 모습마저도 남자의 눈엔 저를 유혹하는 고혹적인 여자로 보인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가 젖은 블라우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질래의 관능미를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참지 못한 남자가 여자의 브래지어 한쪽을 쓱 밀어 올린다.

“저기, 은우야.”

“잠깐만.”

남자의 손바닥에 차고도 넘칠 희고 고운 큰 가슴, 그리고 깨끗한 선홍색 젖꼭지가 바짝 서서 그를 유혹해 오고 있었다. 분명, 남자의 눈엔 그랬다. 여자의 핑크색 몽우리를 본 순간 제 페니스가 브리프를 뚫고 나올 뻔했으니까.

“예뻐, 먹고 싶다.”

그 한마디에 잔뜩 겁먹은 질래가 은우 품에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왜 이래 이은우. 안 놔?”

하지만 제 손으로 가슴을 가리기엔 이미 한발 늦어 버렸다. 남자의 얼굴이 먼저 제 젖가슴에 파묻혀버렸다.

“으으읏.”

물컹한 가슴을 움켜쥔 남자가 제 손가락으로 여자의 유두를 비틀어 버렸다. 동시에 떨고 있던 질래의 몸이 남자의 품에서 저도 모르게 들썩였다.

땡, 땡, 땡, 땡….

이 집과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던 앤틱한 벽시계가 자정이 지났음을 알려온다.

“메리 크리스마스. 질래 누나.”

그 인사와 함께 자신의 손끝에 튀어나온 핑크색 꼭지를 검붉은 혀끝으로 꾹꾹 눌러 버리는 야속한 남자 때문에.

“아아앙.”

잇새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흘러버렸다. 끝끝내 제 정점을 남자에게 물리고 말았다. 자꾸자꾸 젖어 들었다.

“으읍… 안… 돼.”

은우의 입속에서 이리저리 놀아나는 여자의 한쪽 유두. 아찔했다. 터져버릴 듯한 자극에 제 가슴의 꽃이 부풀 대로 부풀어 버렸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예민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급행열차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제 가슴을 움켜쥔 남자를 밀어내면서도 한 손으로는 침대 시트를 꽉 쥐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각에 여자는 적당히 끙끙대고 있었다. 남자의 잇새에 끼인 제 유두가 비틀릴 때마다 바들바들 온몸이 자지러지게 반응해 왔다. 어느새 브래지어 사이에서 맺힌 새빨간 산수유가 남자의 타액에 온통 녹진거렸다.

은우는 황홀했다. 그 작은 열매가 달큼해서 입안에서 굴리고 으깼다. 짓누르며 쭉쭉 빨아먹기를 반복했다. 유륜을 스무스하게 핥고 젖꼭지는 농락하듯 찔러댔다.

“하, 미치겠다.”

제 밑에서 붉게 노을 진 새초롬한 여자의 얼굴이 은우를 더더욱 흥분시켰다. 토해낼 듯 말 듯한 여자의 신음이 애달파서 남자의 애무가 한층 깊어졌다.

허벅지를 어루만지고 쓸어 올리는 촉감이 짜릿해서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을 틀어막느라 질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그녀의 탄탄한 복근을 타고 올라온 남자의 손이 끝내 브래지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가슴 속에 쑤욱, 들어왔다.

“흐읍.”

질래의 몸이 뒤틀렸다.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감각이었다. 부끄러우면서도 남자의 손에 내맡긴 가슴을 어떻게 거두어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른둘.

한 번쯤은 알 법도 한 쾌락 아닌가. 게다가 결혼 전, 이미 경험이 있는 태윤에게 저만 처음이란 게 억울하기도 했다.

“안 되겠다. 잘 안 보여.”

은우가 질래의 가녀린 몸통을 끌어안은 채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내려 하자 그제야 이은우가 누구인지 정신이 번뜩 뜨이는 질래였다.

“하지 마.”

하지만 이미 속옷이 날아갔다.

질래는 수줍게 볼 터치된 얼굴이 뜨겁다 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얼른 가슴을 가려보지만, 그녀의 팔은 곧 남자의 손에 의해 제압되고 말았다.

환한 형광등 조명 아래 결국 제 벗은 가슴을 훤히 다 드러내고만 여자라니. 부끄러웠다. 평소 대중목욕탕도 잘 안 가는 질래였건만, 13년 만에 만난 동생 앞에서 이렇게 양팔을 붙잡힌 채 홀딱 벗은 상반신을 보여주게 될 줄이야.

“미쳤어. 더 예뻐진 거 알아? 수도 없이 그려봤는데, 말도 안 돼. 너무 예뻐.”

남자가 떨고 있는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누워 있어도 자연스레 원을 그리며 볼록하게 퍼져 있는 가슴이 은우의 눈에 너무도 아름다웠다. 남자의 큰 손에 차고도 넘치는 풍만한 사이즈에 비해 앙증맞은 선홍빛 유두가 사랑스러웠다.

감격에 겨워 아름다운 여자를 감상 중인 남자와 달리 질래는 어디론가 숨고 싶은데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힘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이 남자.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 걸까.

닫힌 입으로 남자에게 수없이 질문해 보지만, 들릴 리 없는 남자는 그저 질래의 가슴을 무슨 보물선이라도 발견한 듯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이런 질래의 속마음에 대답하는 건 의외의 곳에 있었다. 천장에서 방 안을 밝히던 형광등이 내내 불안하게 발광하더니 결국은 깜박이기 시작한 것이다.

“은우야 불, 불 나갔나 봐.”

“아쉽네, 자세히 보고 싶은데.”

깜빡이는 형광등 덕분에 집 안에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보였다, 사라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환영처럼 아른거리더니, 잔뜩 예민해져선지 신경세포가 한결 더 신랄하게 반응해 왔다.

“일단 형광등부터….”

“덕분에 더 섹시해 보여.”

상반신을 탈의한 가질래가 눈앞에 있는데 수명 다한 형광등 따위가 은우에게 문제 될 리가 없었다. 이미 제 이성의 필라멘트가 나간 지 오래였기에.

남자는 재빨리 양손에 여자의 가슴을 한가득 담아 버렸다. 그가 굳이 양손으로 끌어모으지 않아도 손쉽게 젖무덤이 만들어졌다. 그 깊은 골짜기가 탐나서 얼른 제 코를 처박은 채 킁킁거리며 그 사이를 핥아 내렸다.

“눕혔는데도 대단한 존재감이네.”

“은우야 그만해. 흐읏… 으읍. 은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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