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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래요-2화 (2/84)

2화. 이길래요

남자가 바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술로 껍질을 쭉 찢어 벗기더니 알맹이를 질래 입 속으로 쏙 넣어주었다. 혀 위 있던 동그란 알갱이가 볼 안쪽으로 또르르 굴러가며 입 안에 달큼한 사과 향의 길을 냈다.

“왜, 왜 이, 흐읏.”

그대로 남자의 입술이 질래를 덮쳤다. 잇새가 자연스레 열렸다. 도톰한 혓바닥이 제 안에서 꿈적꿈적 헛도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사탕을 굴리며 잘도 휘젓고 다녔다. 까슬까슬하면서도 말캉한 살덩이가 저의 것을 마법처럼 휘감더니 강렬하게 끌어내어 질래 입안에 들어간 사탕을 흡입했다.

제 혀를 뽑아버릴 듯한 강렬한 흡입에 질래는 이 모든 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고 말았다. 문제는 경험해보지 못한 지독한 달달함에 몸이 놀란 건지 도통 말을 듣질 않았다. 그때부턴 남자의 이끌림에 속절없이 끌려갔다. 제 페이스를 놓치고 만 것이다.

유별났던 새엄마의 유언대로 화사하게 꾸며진, 장미꽃이 만발한 이 비좁은 장례식장 수납공간에서. 게다가 정혼자가 있는 한 공간에서. 커튼 뒤에 숨은 채 깊고 진한 딥 키스에 전율 따위나 느껴버리다니. 이런 망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남자의 강압적인 키스에 축축하게, 흠뻑 젖어버린 제 음탕한 몸이 야속한 질래였다.

어쩌지, 눈 감은 채로 남자의 맛을 느끼고 말다니.

잠시 후 질래를 잠식했던 남자의 입술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남자가 질래 입에서 빼앗아간 달콤한 사탕을 음미하듯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꿀꺽 삼켜버렸다.

“미쳤어? 그 큰 걸 삼키면 어떡해?”

걱정스레 눈썹을 모으는 여자의 표정을 보며 남자는 씩, 특유의 청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받았네, 사탕 말이야.”

“뭐, 뭐하는….”

남자가 사과 맛으로 범벅된 달달한 입술을 여자의 이마에 도장 찍듯 지그시 눌렀다 뗐다.

“말도 안 되게 맛있어서….”

왼쪽 눈썹에 한 번 꾹, 다시 오른쪽 눈썹에 꾹.

“못 멈추겠다면?”

얼굴 곳곳에 제 뜨끈한 입술을 대며 정차하는 남자 때문에 질래는 정신을 못 차릴 뻔했다. 하지만.

“안 돼!”

가출했던 이성이 드디어 돌아온 모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남자랑 사탕이나 빨고 있을 나이도,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남자를 밀쳐내 보지만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했다. 하다못해 그의 가슴팍을 북처럼 쾅쾅 두드려 보기도 했다.

어릴 때 저와 결혼하겠다며 질질 짜던 귀여운 꼬마가, 어째서 13년 만에 이렇게 막무가내인 수컷이 되어 돌아온 걸까.

질래는 누나로서 말려야만 했다. 얼른 화제를 돌려 폭주하는 남자를 멈춰 세워본다.

“너, 정말 길래야?”

질래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저를 뇌쇄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남자가 질문에 응해왔다.

“너무 잘 컸나?”

“믿을 수가 없어.”

“이제 자격 생겼어?”

“너….”

“애인이야 아니야? 저기 앉아 있는 저 남자 말이야.”

“…….”

그가 커튼 틈새로 지목한 사람은 질래의 약혼자 윤태윤이었다.

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혼사가 오간 지는 1년 남짓 된 사이. 하지만 보나 마나 3개월 뒤엔 분명히 결혼할 사이. 이걸 두고 딱히 어떤 관계라고 정의해야만 할까?

확실한 건 남자는 줬고, 여자는 주지 않은 마음. 그런 애매한 사이인 태윤이 문상 절차를 마친 후 접객실에서 홀로 식사를 하며 질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 보지?”

한 톤 업 된 남자의 목소리가 질래의 귀에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리곤 커튼 사이로 태윤을 훔쳐보는 여자의 얼굴을 다시 제 가슴 쪽으로 끌어왔다.

“왜 이래? 안 놔?”

“싫다면?”

“여긴 왜 온 건데?”

“강화자동차 자율주행팀장 가질래 상무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럼 그냥 회사로 찾아오면 됐잖아.”

“몇 번 갔었는데 갈 때마다 까였어.”

돌연 질래의 머리를 훑고 지나가는 최근 몇 년 치의 기억. 사전에 잡힌 스케줄이 아니면 절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나름의 철칙 때문에 질래는 늘 신원미상의 방문자에 대해서는 비서를 통해 거절 의사를 전달하곤 했었다. 게다가 계열사 관계자가 아닌 이상, 젊은 남자라면 더더욱 만날 이유조차 없었다.

“이름이라도 말하지 그랬어.”

“신분증을 보여주긴 했지.”

“가길래, 못 들었는데?”

“이 씨야, 이름도 바꿨고. 이은우, 못 들었어?”

그런 생소한 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하긴. 우리 집에서 나갈 때 아버지가 신분 세탁 정도는 해줬으리라. 머릿속으로 일련의 과정을 정리하며 지금의 상황을 납득해 가던 찰나였다.

“줄래야, 상주 완장 어디에다 뒀어?”

하필이면 윤태윤이 굳이 상주 역할을 하겠다며 완장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질래의 초조한 마음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어쩌지? 이대로 들키면 큰일인데.

하필이면 커튼 뒤, 지금 질래의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는 저 완장을 찾고 있다니.

“괜찮아 오빠, 완장 저 안에 있긴 한데, 아직 그러지 마.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할 거야.”

아까부터 윤태윤을 졸졸 따라다니며 싹싹하게 굴던 줄래가 갑자기 질래가 있는 커튼 쪽으로 방향을 틀자, 태윤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접객실에서 나와 굳이 이 은밀한 남녀의 재회 현장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이제 놔, 오해 사기 싫으니까.”

질래가 다시 한 번 저를 품고 있는 남자를 힘껏 밀어내려던 그때, 완장을 찾으러 온 윤태윤의 그림자가 커튼에 드리워졌다. 어쩐 일인지 태윤은 쉽사리 커튼을 걷어 내지 못했다. 아마도 질래와 낯선 남자의 다리가 겹쳐진 걸 봤기 때문에, 도통 이 금단의 벽을 허물 용기가 나질 않았던 모양이다. 가끔은 모르는 게 더 약일 때도 있으니까.

문제는 커튼을 등지고 있던 질래는 태윤이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커튼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태윤의 갈등을 눈치챈 남자만이 순각에 더욱 과감한 행동을 할 뿐이었다.

“오해 아닌데. 진심인데.”

“흐읍.”

커튼을 벽 삼아 마주 서 있는 남녀 사이에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아무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태윤은 홀로 깊은 고뇌에 빠진 듯했다.

태윤이 커튼 앞에 온 줄도 몰랐던 질래는 은우의 입술이 제 것을 덮치자 저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고 말았다. 어쩌려고 이러니, 하는 책망도 잠시 닫아 버렸다.

나름 성공적인 첫 키스였다. 저보다 9살이나 어린 연하남의 입술은 참으로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입속을 헤집고 들어온 온기가 사람의 이성을 결박시킨 채 전혀 다른 가질래로 변질시켰다.

포악하게 빨아들이는 듯싶다가도 탄력 넘치는 탱탱한 살점이 사정없이 밀려들어 와 낙지처럼 꿈틀거리다가도 푸딩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묘한 마법이었다.

쿵쾅쿵쾅!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듯 꼭 격렬한 조깅 후의 컨디션처럼, 심장이 분당 120회 이상은 족히 뛰었으리라.

샤베트라도 먹고 온 건지, 시원하면서도 달큼한 체액이 그녀의 이성을 영하로 냉동시켰고 부딪치는 살결 덕에 체온은 급속도로 상승했다.

이런. 신음이 절로 흘렀다.

“하아….”

“…좋다. 그치?”

“…….”

남자의 열기가 입술에서 떨어져 나갔음에도 질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을 뿐. 부끄러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수치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가길래랑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초점 잃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금까지 달콤하게 느껴놓고 돌연 얼굴을 붉히는 죽 끓듯이 변하는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반면 수줍은 색으로 덧입혀진 여자의 볼과 붉어진 입술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남자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어릴 때부터 질래 누나와의 키스를 수백 번도 더 상상해 보았다. 비록 당시엔 가족관계로 매여 있었다지만 따지고 보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생판 남 아니겠는가.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저를 챙겨 주었던 질래 누나에게 늘 장가가겠다던 꼬맹이가 지금 그 꿈의 첫발을 내딛은 셈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입술이 그녀의 입술과 맞물려 야하게 얽히고설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제 손을 지지대 삼아 얼굴을 기댄 여자 역시 이 키스를 수동적으로 응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미적지근했지만 후에는 충분히 꼼틀꼼틀, 강렬하게 반응했으니까.

사실 어떠한 여자를 봐도 성적 매력을 못 느꼈던 은우에게 질래와의 저돌적인 키스는 특별했다. 제 막대기가 그녀의 풍만한 가슴 밑에 우뚝,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보면 말이다.

갖고 싶었지만, 절대로 가질 수 없었던 사람. 그래서 더더욱 흥분됐을까?

뉴스에서 사하라 여사의 빈소 풍경을 본 그는 한 번쯤 질래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기막힌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하필 사하라 여사가 사망한 당일, 한때는 제 아버지였던 강화그룹 가정만 회장이 미국 출장 중이란 소식을 들은 것이다. 적어도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없는 시간에 한 번쯤은 용기를 내어 13년 동안 제 머릿속을 지배해 왔던 여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제 감정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찾아와 끝내 일을 벌였다.

질래 역시 풋풋한 어린 남자의 체취에, 저돌적이면서도 곰살궂은 접촉에 이미 녹다운되고 말았다. 다리가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돼 사라진 듯 온몸이 나른하다 못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툭! 불시에 바닥으로 겉옷이 낙하했다. 분명 질래와 은우의 것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열어서는 안 될 커튼을 젖힌 질래의 약혼자 태윤의 손에서 던져진 고급스러움이 풍기는 명품 재킷이었다.

순간, 은우가 질래를 감췄다. 여자의 몸이 은우의 품 안으로 쏙 들어와 완벽하게 가려졌다. 적어도 제가 본 여자의 벌어진 입술, 반쯤 감긴 실눈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보호자 같은 마음. 소유욕보다는 질래를 애지중지 아껴주고픈 진심이 그 짧은 순간에 더 크게 발동한 것이다.

그런 마음은 태윤도 마찬가지였다. 행여나 다른 남자 품에 숨어버린 질래의 모습을 누가 볼까 봐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 커튼을 닫아 버렸다. 분명한 건 아직 자신에게 입술조차 내주지 않은, 마음에 품고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 안에서 흐느끼듯 농락당했다는 잔혹한 현실이었다.

이성이고 나발이고 제 약혼자를 음미한 남자에게 주먹을 뻗으려던 순간.

“태윤 오빠, 안에서 뭐 해? 완장 못 찾았어?”

날릴 뻔한 태윤의 손을 막아선 건 예비 처제인 줄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남자의 품에서 뛰쳐나와 그 앞에서 양팔을 벌린 채 보호하고 있는 가질래 때문에 태윤의 억장이 무너진다. 대체 둘이 무슨 사이길래 저 남자 편을 들까 싶어서, 태윤은 제가 던지려 했던 주먹에 되레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오빠! 내가 찾아줘?”

“아니, 찾았어, 잠깐만 옷 좀 가다듬고 나갈게.”

공중에서 멈춰버린 태윤의 주먹이 그의 허벅지 밑으로, 맥없이 뚝 떨어졌다. 그리곤 애써 분노를 억누른 채 거짓 차분함으로 목소리를 곱씹듯 뱉어냈다.

“누군데 여기서 둘이….”

은우는 재빨리 제 앞을 가로막은 여자를 등 뒤로 숨긴 후 몸통을 돌려 태윤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이길래요.”

“네?”

“악수할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이은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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