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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6화 (6/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6화

그 후, 그레이스는 추위로 뺨이 빨갛게 물든 샐리와 만나 저택 내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대체 어디 계셨던 거냐고, 한참을 찾았다며 다그치는 샐리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어쩐지 그사이 있었던 일을 솔직히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현명한 시녀인 샐리는 더 이상 추궁을 이어 가진 않았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시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 대신 이렇게 연신 당부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산책을 다녀온 후 책을 읽고, 저녁을 먹은 후 목욕까지 마치고 잘 준비를 하는 지금까지 연신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퍼붓는 샐리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질린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샐리.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요. 귀에 딱지가 앉겠어요.”

“제가 마음 졸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잔소리도 모자라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뭘 그렇게까지. 펠릭스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가 봤자 뭘 그리 멀리 간다고…….”

“펠릭스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니 더 하죠!”

또다시 잔소리가 이어질 기미가 보여 그레이스가 소심한 반론을 내놓자, 샐리가 빗질을 멈췄다. 그러더니 맞은편 화장대에 비치는 그레이스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또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껏 수도에서 궁중암투와는 멀리 떨어져 곱게 자라셨으니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공작님 펠릭스 경께서는 정적이 아주 많으신 분이에요.”

“……그런가요?”

“두 손가락, 아니, 두 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다 세지 못할 만큼 많죠. 안 그렇겠어요? 선황 폐하의 하나뿐인 여동생의 장자에 현 황제의 사촌. 게다가 제국 최고의 기사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 게다가 황제의 신임까지 얻고 계시죠. 그 누구든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고 배기겠어요?”

“……하지만 공작님을 모두가 두려워하잖아요. 그…….”

“혹, 그 말도 안 되는 저주 말씀이신가요?”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샐리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그 저주는 공작님의 ‘계속해서 일어난 불행한 우연’을 보고, 떠들기 좋아하는 것들이 멋대로 떠들어댄 것뿐이랍니다!”

“……하지만 우연이라기엔 지금껏 공작님과 결혼했거나 약혼했던 여자들은 전부 미치거나 죽었다고…….”

“아니에요. 엘렉트라 님과 혼인 전, 공작님과 약혼했었던 숙녀분은 지금껏 아주 잘 살아 계신걸요?”

“……하하.”

“그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랍니다! 암요!”

그레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충 샐리의 말에 동조하는 척했다. 괜히 솔직하게 ‘우연이라기엔 네 사람이나 잘 못 되었다’고 말했다간, 샐리가 진짜로 화를 낼 것이 자명해 보였다.

‘……미안, 샐리. 나는 그 ‘불행한 우연’인지 ‘저주’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망치려고 해.’

그레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샐리는 그런 그레이스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홀로 펠릭스 공작과 그 동생 레온 펠릭스 공자에 대해 연민 어린 감정을 늘어놓았다.

“귀족들이란 어찌나 그렇게 독살스럽게 입을 놀려 대는지 모르겠어요! 큰 마님께서 돌아가신 건 어디까지나 산욕열 때문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모든 건 레온 공자님이 저주를 받은 아이라 그렇다’며 떠들어 대고 말이죠!”

“……산욕열 때문이셨나요?”

“그럼요! 그런데 너 나 할 것 없이 저주라고 떠들며 그 어리고 불쌍한 공자님을 핍박하고 모진 말을 퍼부었답니다. 심지어 큰 마님께서 레온 공자님께 남기신 유품인 레드 다이아몬드 목걸이마저 ‘저주받은 보석’이라고 떠들어 대지 않겠어요?”

“……정말요?”

“네! 그러면서도 그 목걸이가 가진 가치에 대해서는 또 어찌나 눈이 벌겋게 변해서 달려드는지! 레온 공자님께 접근하는 귀족들 중 십중팔구는 그 하나뿐인 목걸이를 손에 넣기 위해 껄덕대는 작자들뿐이랍니다. ……뭐, 물론 레온 공자님께서 그것을 주겠다고 해도 공작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겠지만요.”

한탄 섞인 샐리의 말에 그레이스는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왜 그때 아서가 자신을 향해 목걸이를 운운하며 추궁했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되었다.

그레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레온을 떠올렸다.

‘그렇게 소중한 거라서, 내가 가지겠다고 농담을 하니까 울상을 지었구나.’

그 모습을 떠올리자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작게 미소가 터져 나왔다.

그레이스는 어느새 자신의 머리 정돈을 마치고 빗을 정리하는 샐리를 향해 동조하듯 말했다.

“……그러게. 그럴 만하네요.”

“그러니까요! 나쁜 사람들 같으니. ……에휴, 매년 이맘때쯤 있는 공자님 생일에 꽃 한 송이 보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레온 공자님이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그 선물까지 빼앗으려고 그 유난에 난리를 벌이니 원…….”

그러자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샐리의 푸념에 어색하게 웃던 그레이스는 곧이어 터져 나온 샐리의 말에 인상을 썼다. 그러고는 휙 고개를 돌려 샐리를 향해 되물었다.

“잠깐만요, 샐리. 뭐라고요?”

“……네? 왜 그러세요? 혹시 제가 귀족분들 욕을 한 것으로 그러…….”

“아뇨! 그 사람들 이야기 말고요. 조금 전에, 이맘때쯤 레온의 생일이라고 그러지 않았나요?”

“……아, 네. 5일 뒤가,레온 공자님의 생일이랍니다.”

그레이스의 추궁에 샐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대답에 그레이스는 다급히 숨을 들이켜며 벌떡 화장대 앞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샐리, 왜 그걸 이제 말해 줬어요?”

“예!? 아, 아니. 그게……. 지금껏 레온 공자님의 생일을 물으신 분이 없으셔서……. 당연히 마님께서도 그러리라 생각했죠. 생활 반경도 다르시고, 지금껏 레온 공자님의 생일은 공작님과 기사들끼리 챙겨 왔기에 딱히 마님께서 신경 쓰실 일도 없으실 테고…….”

샐리의 변명에 그레이스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만약 오늘 낮에 산책을 하다 레온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신도 모른 채 넘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레온을 만났고, 그 아이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레이스는 낭패라는 듯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지금 자신이 가진 재산을 떠올렸다.

‘……큰일이네. 갖고 온 게 별로 없어.’

원래부터 내놓은 자식인 자신이기에 살면서 용돈 또한 겨우 떨어진 드레스를 입지 않을 만큼만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랬으니 앨버튼 가에서 새삼 결혼한다고 지참금을 넉넉히 쥐어 줄 리도 없었고, 또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수도의 변호사를 고용해서라도 한 재산 넉넉히 가져올 것을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며, 어떻게든 레온에게 줄 만한 선물을 생각하던 그레이스의 머릿속에 번득 한 물건이 떠올랐다.

‘맞아. 그게 있었지.’

그레이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샐리를 향해 말했다.

“샐리, 미안하지만 저기 가방 속에 있는 낡은 가죽주머니 좀 가져다줄래요?”

“아, 네!”

그레이스의 명령에 샐리는 얼른 그녀의 가방에서 낡은 가죽주머니를 꺼내 가져왔다. 얼른 그것을 받아 든 그레이스는 그것을 화장대 위로 쏟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온갖 낡고 잡동사니 같은 장신구들이 쏟아졌다. 그레이스는 그것들을 전부 헤집은 끝에, 연하늘색의 토파즈 목걸이 하나를 찾아냈다.

“……아, 다행이다. 남아 있었어!”

그 연하늘색 토파즈 목걸이는 그레이스가 1년 치 용돈을 모아 산 자신의 성년식 선물이었다.

바로 두 해 전, 성년식에서 가족들로부터 주먹만 한 자수정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를 선물 받았던 언니가 부러웠다.

그래서 자신 또한 주먹만 한 자수정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실목걸이라도 기대했었건만, ‘가문의 수치’인 자신에게 그런 것을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씁쓸하지만,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랍시고 그녀가 성년이 되자마자 산 것이었다.

‘……그때는 어울리지 않게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레이스는 오늘따라 더욱 예쁘게 반짝거리는 토파즈 목걸이를 손에 꼭 쥐며 샐리에게 말했다.

“샐리, 정말 미안하지만 벨벳 상자를 하나 구할 수 있을까요? 기왕이면 이 목걸이가 들어갈 수 있을 크기면 좋겠는데.”

“미안하긴요. 어렵지 않은 부탁인걸요. 언제까지 가져다드릴까요?”

“내일 아침까지 부탁드릴게요, 그럼.”

“예, 알겠습니다. 아침까지 꼭 구해다 드릴게요. 그럼, 푹 쉬세요.”

“네. 내일 봐요, 샐리.”

빗에 엉킨 머리카락을 다 정리하고, 침대에 넣어 둔 간이 화로를 꺼내는 것으로 잘 준비를 마친 샐리는 그레이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레이스는 문 밖을 나서는 샐리에게 인사를 한 후 침대 위로 올라가 시트를 덮고 누웠다. 샐리가 따끈하게 데우고 간 덕분에 따뜻한 침대에 살짝 언 손과 발을 녹이며 그레이스는 눈을 감았다.

‘이 목걸이를 받고, 레온이 기뻐해 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레이스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난 그레이스는 홀로 침실 옆에 딸린 욕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속드레스를 갈아입었다.

그것도 모르고 잠이 든 그레이스를 상상하며 침실로 온 샐리는 화장대에 앉아 있는 그레이스를 보자 놀라며 다가와 말했다.

“어머나. 벌써 일어나셨어요?”

“응. 좀 일찍 눈이 떠졌어요.”

“좀 일찍이요? 너무 이른 시간인데요?”

“하하, 그런가요?”

“네.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샐리는 그레이스를 위해 준비해 온 세숫물을 내려놓고 바삐 옷장으로 걸어가 그레이스가 입은 옷에 어울리는 코트와 겉드레스를 골랐다.

그레이스는 빠른 손놀림으로 자신의 드레스를 입히고 화장대에 앉혀 머리 손질을 돕는 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샐리가 다정히 눈을 맞추며 그레이스를 향해 말했다.

“혹시, 제게 뭐 하시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 다른 건 아니고요. 벨벳 상자는…….”

“여기 있답니다.”

그레이스의 말에 샐리는 입고 있던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벨벳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딱 그레이스가 가진 목걸이가 들어갈 만한 크기에, 겉에는 멋들어진 은색 리본이 달린 예쁜 상자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완전히 만족하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샐리. 잘 쓸게요.”

“그런데 상자는 왜 찾으셨어요?”

“꼭 필요한 일이 있어서요.”

“……그런가요?”

그레이스의 대답에 샐리는 어쩐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 센스 있는 모습에 그레이스는 살짝 미소 지으며, 어느새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는 데 집중한 샐리를 향해 말했다.

“샐리, 오늘도 내게 잡힌 일정은 없는 거죠?”

“네? 아, 네. 없죠?”

“그럼 오늘도 어제 갔던 곳으로 산책을 나가고 싶은데, 길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그레이스는 샐리의 시선이 자신의 머리에 쏠린 틈을 타 넓은 드레스 폭에 감추어 두었던 목걸이를 몰래 빼내 상자 속에 넣으며 물었다.

그러자 샐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던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그렇다면, 네. 알겠습니다. 대신 더 두꺼운 코트로 입혀 드려야겠네요.”

“고마워요, 샐리.”

“어제처럼,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에 나가실 거죠? 저는 그럼 식사하시는 동안 차를 준비해 둘게요.”

솜씨 좋게 그레이스의 긴 머리를 틀어 올린 후, 샐리는 화장대 옆에 걸어 두었던 코트 대신 더 두꺼운 코트를 가져왔다.

그레이스는 그것을 받아 들어 입고는 벽면에 기대 선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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