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은 대가는 가혹했다. “살려 달라고 빌어 봐.” 한 손에 가녀린 목을 움켜쥐고 있는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인은 절벽 끝에서 제 목숨줄을 잡고 있는 단단한 팔을 붙들고 감히 발버둥도 치지 못했다. “살…려…주…세요….” 겨우 다섯 음절을 뱉는 동안, 흰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그는 팽개치듯 제인의 목을 놓아주었다. 바닥에 너절하게 쓰러진 제인이 콜록대며 연신 기침을 해 댔다. “내일은 꽃놀이를 갈까.” 그가 천천히 다가와 제인의 등을 쓸었다. 다정한 미소. 다정한 눈빛. 다정한 말투. 그는 잔인한 면모를 보여 준 다음엔 늘 다정함을 흉내 냈다. 늘 곁을 지켜 주던 따뜻한 이가 그리워 눈물이 났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는데도. 《까마귀 죽이기》